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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택이 아니라 컨택이었어

순진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은

by 공존

그 후로 오랫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2009년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학부생 시절의 나의 생활도, 그리고 2014년,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난 뒤의 나의 생활도. 바깥으로야 정신 없이 휙휙 지나가던 시절 - 교생실습의 바쁜 한달과 졸업논문, 그리고 고3 담임과 혁신교육 업무 병행 - 이었지만, 나의 내면에 큰 소용돌이가 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3, 4월의 짧은 기간 강의를 듣고 나서 5월에 교생을 다녀오니 어느새 나의 대학생활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교수님은 매주 A4 한장 분량의 교육주제 에세이를 작성해 메일로 제출토록 지도하셨다. 그리고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낸 에세이의 주제를 피드백하고, 그것을 교육과 사회의 관계로 확장시켜나가는 작업을 계속하셨다. 학생들에게는 평소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교육적 시사점을 발견해나가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이를 테면,


"저는 그래서 교육의 보편성을 위해 대학 평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대학 평준화를 제도적인 측면에서만 시행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교육의 보편성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평준화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평준화된 대학들의 커리큘럼과 교수의 질, 강의 수준이 모두 대등하게 이루어져야 그 교육과정을 따르는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교육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대학의 평준화가 어려운 겁니다."


라는 식의 대화가 대표적으로 수업 안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한달의 교생실습으로 강의 일정의 1/3을 소화하지 못한 나에 대해서 교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는가 하면- 당연히 그냥 평범한 학부생A지 뭐. 그것이 당시에나 지금에나 스스로에 대한 담담한 평가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쫓기듯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교직 시장에 나섰고, 그리고 2014년에도 여전히, 쫓기듯 살고있었다.


왜 교수님은 내게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하셨을까? 내가 어떤 큰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있어서라기보단, 당시에 두살 아래의 동생이 교수님 밑에서 석사과정에 입문하여 인연을 이어갔고, 그렇게 이어진 인연들이 식사 자리에서 툭 하고 튀어나와 페이스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다.


그 당시에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있었냐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고 있었다. 페이스북은 연애와 정치, 게임과 취미 등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올리는 공간이었다. 다만 그러는 사이에 계속해서 경력과 함께 학교 업무 늘고, 성과는 쌓이고 있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기 얼마 전 처음으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학생들을 지도해서 다문화UCC를 제작했는데, 그게 경기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년 비담임으로 휴식기를 보낼 때엔 글쎄, 옆자리 선생님께 낚여서(이 분은 지금은 내 뒤를 이어 교육과정 부장을 하고 계신데) 교육청 사업에 처음 끼어들게 되었다. 그때 교육청 일을 해보고 나서야 승진을 노리는 교사들이 이런 일을 주로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대망의 2017년. 나는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교수님의 포스팅에 댓글을 달았다.




- 교수님, 이번에 싱가포르에 혁신교육 연수를 다녀오는데요, 혹시 싱가로프 교육에 대해 좀 여쭐 수 있을까요?


나는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교수님의 포스팅에 댓글을 달았다. 지역 교육지원청에서 주관하는 일주일의 혁신교육연수에 응모하여 연수인원으로 선정되었고, 교육의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였으므로 연수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어서였다. 교수님께 여쭤보기 전에 찾아본 바로는 누구나가 알고 있는대로 중학교부터 서열화가 심각해 초등학교에서 학력경쟁이 치열하며, 그마저도 기득권을 형성한 중국인들에게 크게 유리한 교육체계라고 한다. 그리고 신문방송이 모두 리콴유 총통의 관리통제 아래에 있어, 사회진보에도 제약이 따른다는 정도다. 그럼, 그런데, 어째서 싱가포르는 이런 비민주성과 사회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경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 글쎄요 싱가포르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어요. 연구를 한 바가 없어서...그나저나 연수? 열심히 하네ㅎㅎ

- 네 교수님. 일주일간 다녀오는데...제가 내년에 대학원 입시를 생각하고 있는데요, 민주주의와 교육의 관계를 중심으로 공부하려고 합니다. 찾아보니 싱가포르가 그렇게 비민주적인데 어떻게 교육과 경제가 선진국 소리를 듣는지...ㅎㅎ 잘 다녀와서 또 말씀 올리겠습니다.

- !!!!!


교수님은 담백하게 "잘 모른다"고 답변을 하셨다. 나는 나대로 싱가포르 연수를 위해 공부한 것과 나름의 연구주제를 말씀드리고 대화를 마쳤다. 교수님은 느낌표 다섯개를 다시 댓글로 다셨다. 나는 격려의 뜻으로 알고 남은 기간 천천히 연수를 준비했다.


그렇게 찾아간 싱가포르에서 만난 교육의 실상은 충격이었다. "교육선진국"을 방문한 것이었으므로 우리는 싱가포르에서도 교육과정이 잘 짜인, 평판이 좋은 학교들만 하루에 두곳 꼴로 돌아보았는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흰 피부의 중국인 교사, 검은 피부의 인도-말레이 청소부>로 요약된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예외없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중국인들이었고, 육체노동은 검은 피부의 동남아인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아동들은 어떻게 자랄까? 교과서에서는 인종화합을 말하지만 아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극복하기 어려운 절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단계가 올라갈수록 학생의 비율에서 동남아계는 크게 줄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현상과 인식, 교육이 유리되는 곳에서 어떻게 인간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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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모든 문제를 관찰하고 검토하고 증명하는 것이 가장 좋은 공부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가르치는 사람. 고등학교 영어교사. 교육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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