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세미나 기록
세상 어느곳이나 그렇지만 연말의 대학원은 특히나 바쁘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기말 과제의 제출시한을 넘긴 상태이며 지도교수님과 다른 선생님들 모두가 논문 심사와 프로포절 등, 학기말에 쏟아지는 바쁜 일정을 감당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그 바쁜 시간을 쪼개내어 모여 공부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하듯이.
12월 13일. 9시 30분에 사범대학 세미나실에 모두 모여 둘러앉았다. 오늘의 숨가쁜 일정을 예감한 양, 사회를 맡은 나는 빠르게 세미나의 시작을 고했다. 오늘의 책은 <사람에게 귀 기울이기>. '질적 연구'라는 연구방법론 분야에서 인상깊은(물론, 수 많은 학자들이 인상깊은 성과를 내곤한다) 성과를 낸 아네트 라로가 깊이있는 숙고와 성찰의 방법론으로, 자기의 경험에 의거하여 써낸 연구 메뉴얼이다.(질적 연구가 무엇인가 첨언하자면, 엄격한 수리과학적 통계 검증으로써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양적 연구'라고 하며, 그와 대척점에서 개인의 인상이나 경험 등, 모순될 수 있고 불안정한 것들 속다서 다방면적인 고찰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질적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아네트 라로의 전작인 <불평등한 어린시절>을 읽어본 바 있으면서도, 교수님께서 이 책을 번역하신 의도는 무엇일까 잠시 궁금했다. 단지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서라기엔 교수님께서 굳이 공들여하실 작업은 아닌듯했다. 학부생들에게 권할만한 굉장히 친절한 책이고 '개인적 경험'을 상세히 회고하듯 쓰여졌기에 이것을 읽어나가는데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잠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회의와는 별개로, 라로는 굉장히 섬세하고 생생하게 질적연구의 의의와 방법, 주의사항들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소개하고 있다. 훌륭한 다른 연구서들이 그렇듯 연구자 자신의 풍성한 선행연구 검토와 충실한 연구 경험이 합쳐져 매우 설득력있게 '제안'하고 '설득'한다. 사람에게 귀 기울이는 것의 '발현적 특성'과 '협력적 성찰'에 대해서.
"우리 근데 안쉬어요?"
"5분. 딱 5분만 쉽시다."
우리의 주말 세미나는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타이트한 리듬으로 진행되었다. 사회자로서 내가 해야할 소임이기도 했다. 나는 재빠르게 발언 순서를 순환했고, 교수님의 말씀대로 모두의 목소리가 울리도록 했다. 그런 리듬 속, 우리는 고작 5분의 쉬는 시간을 갖은 뒤, 다시 내달렸다. 열두시 반까지 꽉 찬 세시간의, 스무명의 목소리의 공진 속에. 개인적으로는, 고등학생 때부터 해 온 가장 익숙한 규모와 리듬으로, 알찬 세미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연구자로서 가지게 되는 주관성을 경계할 여러 방안을 논했고 연구의 설계와 선행연구부터, 데이터의 취합과 분석까지, 질적 연구가 가지게 되는 그 모든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라로가 제안한 '성찰'과 '귀 기울이기'의 필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좋은 연구를 위해서는, 특히 객관적 체계적으로 으로 연구자의 주관성을 통제해야하는 질적 연구를 위해서는, 사람, 그중에서도 특히 동료 연구자들에게 항상 귀를 기울이고 배움을 청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혹시, 교수님들은 어떠셔요? 사실 우리가 과정생들이고, 지도교수님께 가르침을 받는 입장인데 누구보다도 교수님들에게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불현듯, 이 질문이 튀어나왔다. 교수님의 말을 잘 듣는것. 그것이, 짧게는 2년, 길게는 3,4년 혹은 그 이상. 자신의 불완전함과 학문세계의 체계성 사이에서 방황하는 연구자 후보생인 대학원생들에게,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대상은, 다름 아닌 지도교수님이실듯했다.
이 질문은 단순히 의존적이거나 기계적인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박사과정에 이르고 코스워크(대학원에서의 커리큘럼 이수)가 거진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의 나의 학위 논문에 대한 경험에서부터, 책을 읽는 동안 이루어진 성찰이었다.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님은 최소한의 최소한이어도 과정생들의 연구에 대한 행정적인 책임이 부여된다. 공부를 하는 동안 과정생들이 발산해낸 그 무수한 무리수들은, 아무리 불성실한 교수들이라 할지라도, 일정한 지도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한 사람의 연구자로 독립할 수 있기 위해선, 연구 참여자들과 만나, 그들에게 귀 기울이고, 다른 여러 문헌들에 귀 기울이기 전에, 무엇보다도, 한 사람의 대학원생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졸업하는 과정을 총괄하는 교수님들과, 늘 연구에 대해 논의하고, 지도받고, 이 과정에서 풍성한 성찰을 해내는 것이 가장 성실하고 이로운 연구방법이다. 이거 딱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그 상상 못할 비효율은, 지도교수님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업무 부담이다.
"그래서, 김영득 선생님이 안전교육의 역사사회학을 하고 싶다고 왔을 때도, 그것이 '뭘 하고싶다'라는 것이지, '뭘 알고싶다'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진 못했던 것이고, 그래서 제게도 그 연구문제가 와닿지 않았던 겁니다."
이런 나의 질문에, 자리에 함께 한 두분의 교수님들께서도 저마다의 해답을 내어주셨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싶은지를 모르고 무언가를 하려한다. '무엇을 하겠다' 이전에 '무엇을 알아내겠다' 혹은 '무엇을 배우겠다'라는 질문이 명확해야 한다. 대부분의 연구자 후보생들은 그러한 성찰을 이루지 못하고 어떻게 졸업을 하겠다고 무수히 많은 비효율적 대화와 작업을 이어가곤 한다. 나 역시 그러했든, 보통은, 어지간히 뒹구르기 전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나 역시, 다른 이들이 그러했듯 이제야 그 답을 알아간다. 내가 진짜로 던져야 할 그 질문을 만나기 전에는, 그래서 그 질문이 정돈되기 전에는, 나도 교수님도, 다른 도반들도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교수님 저 김장하러 가야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숨가쁘게 이어진 세 시간의 세미나를 마치고 나는 바쁘게 학교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다시금 어떻게 기말 과제를 마치고, 학위논문으로 발전시켜나갈지를 고민했다. 다른 도반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위해, 그리고 교수님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 내가 충분히 숙고한 결과물을 제시해야한다. 내 질적 연구가 어떤 발현적 특성들을 보였고, 그 결과물을 내가 정리해내고, 데이터를 다루었는지를 보여야 한다. 그러니까, 귀 기울이기 위해선 나 자신이 충실한 연구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나서야 한다. 그 날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우리는 다음 세미나를 위해서 계획을 논의했고, 다음 세미나 사회자를 지정했다. 기말과제를 제출한 뒤에 저마다의 시간을 가진 뒤, 함께 공부해야 할 테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는 우리 학문 공동체가 서로에게 긴밀하고 내밀하게 귀 기울일 수 있도록, 그런 돌다리를 놓도록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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