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가져가서 빚어먹어
어릴 적 우리집은 도매서점이었다. 서점에 붙은 단칸방으로 내가 6살 때 이사를 간 우리 부모님은 아침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황소처럼 일하셨다. 바쁘신 부모님 대신 두살 터울의 누나를 따라다니며 나는 보살핌을 받았는데 이제 그 누나도 여덟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가야했고 나는 종종 집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하루는, 누나는 늦게 집에 오고 부모님 두분 모두 책을 배송하러 나가셔서 나 혼자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여섯살 때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밥을 거르지 말라며 냉장고에 반찬을 꺼내 먹으라고 일러주셨는데, 나는 그 말씀 그대로 이미 펴져 있던 상에, 주걱을 들고 밥을 퍼 담고, 냉장고에서 구운 조기와 다른 반찬을 두어가지 꺼내 맛있게 먹었다. 여섯살 때 말이다.
문제는 그 때의 나는 그것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점이다. 부모님도 그랬다. 여섯살에 혼자 밥을 차려먹은 일을 부모님은 술자리만 생기면 자랑을 하셨고 나는 옆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칭찬을 귀담아들었다. 대전 토박이로 서점 일을 하시단 시절이라 술자리가 많았고 그 때마다 내가 여섯살 때 밥을 차려먹은 일이 꺼내지곤 했다.
내가 여덟살이 되어 학교를 드디어 가게 되었을 때. 여섯살 때 일 때문...이라기보단 가게 일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엄마는 내가 집에 돌아오면 알아서 라면 좀 끓여먹으라고 무심한듯 말씀하셨는데, 되바라진 나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라서 부엌으로 들어가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올렸다. 당연히 여덟살 짜리가 라면 물을 맞출 수 있을리가 없고, 그걸 엄마가 등 뒤에서 가르쳐주지시도 않으셨기에 거의 백이면 백 라면탕을 만들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기로는, 라면 물을 맞춘 것이 아니라 냄비의 딱 절반 정도 물을 붓고 라면을 끓인 것이 아니었을까. 여덟살의 인지능력의 한계였다.
심지어 한번은 라면탕이 된 국물을 졸이겠다고 팔팔 끓여놓았는데, 그만 잠이 들었다. 엄마가 가게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잠을 깨 후다닥 부엌으로 들어갔다. 라면물이 완전이 졸아붙어 면이 바닥에 눌러붙어 있고 솥이 까맣게 타 있었다. 당연히 나 스스로 그 냄비를 렌지에서 내려 물을 붓고, 어떻게 치워보겠다고 손으로 면을 긁어낸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엄마는 조금도 화를 내지도 혼내지도 않으셨다. 쿨하셔.
그러다가 열한살 쯤 라면 물을 맞추기 시작했고...열두살 때는 참치로 동그랑땡을 처음 만들었고...열세살 때 부터는 떡국을 끓였고...혼자 해내게 되었다. 지금은 뭐, 가정식 요리경력 25년이라고 뻥을 칠 수 있게 되었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빈번한 영역인 밥을 혼자서 해 냈다는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삼았던 내 경험, 그것을 같이 맞장구치고 칭찬해주셨던 부모님. 지금 생각해보니 그 어린 시절의 경험이, 내가 지금도 어지간한 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성향을 띄게 된 건 아닐까 한다.
여덟 살 때는 소풍 날 입고 갈 바지 옆이 터진 것을 알아냈는데, 짙은 남색 바지를 이불 꿰메는 데나 쓰는 굵은 실로 혼자서 칭칭 꿰멨다. 엄마는 소풍에 따라오셨다가 장기자랑을 한다고 전체 학급이 모인 앞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아들네미의 그 바느질 자국을 보고 뒷목을 잡으셨다. 놀랍게도 3년 뒤인 4학년 때, 실과 시간에 내 바느질 과제물을 보신 담임 선생님은 바느질은 이렇게 하는 거라 외치셨다. 친한 아이들 여럿의 과제를 내가 거들어주게 되었다.
나의 알아서 하기 능력, 그리고 나에 대한 엄마의 신뢰는 나이를 먹고 살림을 꾸려 분가를 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 가족의 혈관을 흐르고 있다. 중학교 때 엄마가 명절 만두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 바쁘신 게라, 명절 음식을 이것저것 차리시고는 그만 만두는 한번 먹을 만큼만 하고 체력이 다하셨다. 냉장고에 만두 속이 방치되는 것을 본 나는, 명절이 지나고 일주일 내내 혼자서 만두를 해 먹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말이다.
일주일 내내 만두를 빚어먹다보니 역시 군만두다. 군만두가 최고지. 만두국은 다시 국물 없이는 영 맛이 심심하다. 만두를 처리하기 위해 하는 요리인데 만두보다 국물에 손이 많이 가선, 역시나 중학생 수준의 요리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찐만두는 가장 맛있는 방법 중 하나지만 찜통 등 손이 많이 가서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끓는 물에 만두를 넣어서 물만두를 건져먹다가, 한 3일째를 넘기면서 군만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쉽다. 훨씬 맛있다.
군만두를 몇번 만들다 보니 나중엔 요령이 붙어 교자만두처럼 얇게 빚어보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두툼하게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어린 시절이라, 고등학생 때 또 만두속을 만들어놓고 엄마가 체력이 다하시자, 나는 또 만두를 신나게 빚어먹었는데 치즈를 넣는 등 별 짓을 다했다. 나만 실력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고 엄마의 실력도 성장했다. 두부가 많이 들어가는 고전적 스타일이었던 엄마의 만두속은, 최근엔 고기와 양배추 위주로 만들어져 아주 환상적인 맛이다. 내가 만두속을 만들어보지 못해 특히 간을 잘 못하는데 엄마는 나이를 드셔서 간을 잘 못보신다면서도 만두속 간은 기가 막히다. 그리고 만두피도 굳이 밀가루를 치대서 만들다가 지금은 마트에서 사서 빚는다. 그쪽이 더 맛있다.
내가 이런 소리를 엄마에게 하면, 엄마는 당신께서 젊으시던 시절 나에게 정성을 다하지 못하셨다며 씁쓸하게 한숨을 쉬신다. 그러나 나는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으로 평균보다 꽤 큰 덩치, 평균보다 꽤 나가는 체중, 평균보다 꽤 쏠쏠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님은 온 힘을 다하셨고 팍팍한 삶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 자식인 나의 역할로 조금 배분되었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잘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1년 전까진 명절 때마다 엄마가 만두속을 해서 그대로 고스란히 내게 주셨었는데, 작년 추석부턴 이제는 완전히 명절 음식에서 손을 떼시기로 하고 명절 가족 식사는 예전보다 많이 단촐해졌다. 내가 작년 겨울에 엄마에게 속을 받아 빚었던 만두를 몇일간 기막히게 맛있게 먹었는데 추석 때는 만들지 못했다. 내가 만두, 특히 군만두를 좋아하는지라 굳이 만들어서 먹을만큼 좋아하는데도.
그래서 방금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명절날 대전에서 같이 올라오시고, 안바쁘시면 만두속 좀 해주시라고. 나는 처가에서 하루를 보낸 뒤 우리집으로 가서 밥을 먹고, 만두속을 받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은, 설날 하얀 떡국에 어울리는 하얀 만두다. 새해엔 역시 만두국이지. 이제는 나이를 먹고 냉장고에 엄마가 챙겨주신 국물거리도 많아서, 만두국도 기가 맥히게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