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있으나 모두에게 용기를 강요할 순 없다.
저는 부모님께 만두와 양육에 관한 글을 보여드렸고, 우리 가족은 옛 시절을 추억하기도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며 귀경 차량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론은 “잘 컸다”는 것이지만 그 과정의 이야기들은 당연히 자랑스러운 것만 있지는 않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면 어릴 때 집에 혼자 남겨진 일이 많다 보니 저는 손톱을 물어뜯게 되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워낙 어릴 때의 경험으로 뿌리박힌 버릇이고 그 뒤에도 부모님이 계속 맞벌이를 하셨기에 내면에 자리한 정서적 상처가 성장기에 해소되지 못한 것이겠지요.
“스스로 살아가는 아이”라는 것은 부모들에게 이상입니다. 좋다고 보일만한 사례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고등학교 3년을 다 합쳐 단 10개월 밖에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정시에서 SKY중 한 대학의 중상위권 학과에 원서를 넣을 수 있는 수능 총점이었지만, 1차를 넘기고 2차에서 떨어졌습니다. 사교육 비용과 학부모의 교육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이러한 학습의 자발성은 대단한 매력이지요. 알아서 독서실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와서, 6시에 밥만 차려놓으면 기어나와서(정말로) 밥을 밀어넣고 학교에 갔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저의 어두운 면을 굳이 밝혔듯, “아이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 역시 대단한 어려움과 고민이 수반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죠. 내 아이의 인생과 운명은 확신 없는 나의 도박에 의해서 “방치될”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저 역시, 그저 우연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아이”를 만들기 위한 교사들의 오랜 노력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1900년대 초반부터, 과거의 지식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실사구시의 교육”을 시도한 교육운동가들이 있었지요. 이들의 교육운동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며 활발하게 이루어지다가 안타깝게도 소련의 우주비행선 발사라는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순식간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합니다. “적국은 달에 로켓을 쏘아올리는데 미국의 학교는 아이들에게 지식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라는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도 이런 견해의 충돌은 교육의 영역에서 무척이나 빈발합니다. 당장 "이해찬 1세대"라는, 지금쯤 아이 학교에 입학시킬 준비를 하는 세대라면 익히 알고 있는 교육정책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경제가 어렵고, 국가경쟁력을 위해선 지식교육을 해야 하는데 쉬운 수능? 놀다가 대학? 이런 된서리를 맞고 이해찬 당시 교육부총리가 사임을 하고 단박에 수능교육이 강화되었었으니까요. "아이들의 자발성"과 "지식교육의 중요성"이 국가 수준에서조차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니, 학부모들은 얼마나 고되고 갈피를 잡기 어려울까요. 내 젊음은 짧고,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선 단 한번 뿐인 육아의 시간에 오로지 최선의 길만을 추적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먼저 한가지, 답을 드리자면 스스로 살아가는,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있고, 제도화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어디에서나 "혁신학교"들이 있습니다. 혁신학교가 제대로 운영되는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의 자발성을 중시하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진단, 해결할 수 있도록 교사를 훈련시키고,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학교에선 이것을 심화시켜나가구요. 다만 고등학교에서는 고민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혁신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첫 시험부터 내신을 경쟁해야 하는데, 비혁신학교를 나오고 매일 학원에서 문제를 암기해 오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10년간이나 아이들의 자발성에 대한 신념을 갖고 사교육을 참아내며 혁신학교에서 아이를 키운 학부모들은 순식간에 좌절감에 빠집니다. 아이들도 흔들리지요. 내신이 학종에 반영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혁신고등학교라고 해도 학부모의 민원, 내신의 공정성 등의 문제로 결국 "지식경쟁"에 아이를 노출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크던 작던 말입니다. 아무리 공교육이 몸부림을 쳐도 "시험"의 약점을 파고드는 사교육의 공세를 피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꿋꿋하게 내신경쟁을 견뎌내며, 아이의 자발성에 의거하여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정책이 다행히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입니다. 2007년 최초로 수시에서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이래로 초기의 문란했던 스펙경쟁의 문제를 많이 해결해 지금은 학습자의 자발성이 크게 작용하는 입시제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혁신교육을 통해서 아이의 자발성을 중시하는 교육에 대한 믿음, 그리고 몇차례의 고난의 순간들을 어떻게든 이겨만 낸다면, 우리 아이들의 자발성을 잃지 않고, 학부모로서도 아이에게 배움의 폭력을 행하지 않고 양육을 하는 것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침, 4차 산업혁명이 터져준 덕분에 "지식"이 아닌 "역량"으로 교육의 중점이 옮아가고 있어서, 아이들의 자발성에 의하여 발산되는 역량이 좀 더 중시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과 신념, 인내에도 불구하고...여전히 양육과 자녀교육은 가시밭길입니다. 경제사정 탓에 자발적으로 성장시켜낸 우리 아이가 취업전선에서 좌초될 가능성이 무척 크기 때문입니다. 능력만 있으면 창업하겠죠. 그리고 유튜버 등 신산업이 계속 생기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의 노동시장은 그 어떤 신산업도 순식간에 레드오션으로 만들어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창업하면 경쟁업체가 달라붙고, 유투버를 해도 신인들이 매일 데뷔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승리"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몇번의 경쟁에서 패배하면, 그 여파는 곧 부모에게 미치지요. 그 때가 되어서야 "아 내가 아이를 잘못키웠구나."라고 자책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악몽입니다.
그러한 공포를 극대화하는 것이 사교육이고, 이러한 전체 상황을 악의적으로 왜곡한 드라마 <SKY캐슬>이었습니다. 1년 전 겨울 SKY캐슬이 한창 유명세를 탔을 때 이러한 현상에 분노한 교사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교육의 공포마케팅의 관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드라마였으니까요. 수억원의 사교육비를 들이는 경쟁자들이 있다. 그들은 불법도 불사한다. 대한민국 교육은 결코 공정하거나 합리적이지 않다. 폐쇄형 독서책상이 그 드라마 덕에 유명세를 치르고, 컨설팅 시장이 활발해졌습니다. 내신조작이라는 연출은 이미 수능강화를 주장하던 계층들의 목소리를 강화시켜줬더군요. 혁신교육을 위해 아이를 기르는 만큼의 시간을 교육에 헌신한 수천 수만의 교사들의 오랜 노력이, 드라마 한 편의 영향력보다 약했다는 현실에 분루를 삼켰습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살아가는 아이"라는 이상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 길이 제도화되어 있고, 대학입시와 취업에까지 무리없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한번뿐인 아이의 삶, 부모로서의 삶 속에서 쉽사리 그 길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나름의 이유를 품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공포이고, 때때로 무지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고 우리는 모든 변화상에 대처하며 아이를 기를 수는 없으니까요.
만두가 먹고 싶다는 문자를 엄마에게 하다가 쓴 글에 많은 어버이들의 관심이 몰리고 구독을 눌러주신 점에 다시금, 우리가 아이를 기르며 품게 되는 고민에 대하여 공감과 위로의 말씀을 어떻게 드릴 수 있을까 이틀 동안 이런저런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고민을 브런치 개설 초기에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만들기"라는 시리즈로 두어편 써보기도 했지만 제 부족함에 글의 방향을 정하지 못했지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기에 우연의 산물인 저의 경험만으론 아동의 자발성에 대해서 논의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자발성의 세례를 받았다는 감사함에, 그리고 혁신교사의 한사람으로서, 자발성을 키워내는 교육에 대해선 전문성을 갖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양심의 목소리에 또 귀 기을일 수 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짤막하게 노크를 드려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방문해주신 분들, 공감해주신 분들, 구독을 눌러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건네며...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또 고민을 계속 이어가고,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정답은 없지만 모두들 같은 고민들을 하고 계시니 서로에게 벗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