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출판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책의 저자 이혜정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평균 A학점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150명의 학생들을 먼저 찾아내어 그들의 학습 비법을 다른 서울대생들과 비교하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결과는 상당히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바로, 자기 스스로의 생각마저 되도록 내려놓고 교수님의 수업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적은 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모두 외우듯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혜정 교수는 최고의 인재인 서울대생들이 자기 생각을 답안지에 쓰기보다는, 그저 교수들의 말을 모두 그대로 녹음하고 받아써서 답안지를 작성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입장에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시험과 성적에 있어서 문제를 출제하는 교수님들이나 선생님들의 생각을 아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서울대생은 수업 중 사소한 농담마저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해 외운다고 밝혔는데, 스쳐가는 가벼운 말에도 평생 학문을 닦아온 교수님들의 사고가 배어있고, 그러한 농담이 수업 중에 튀어나오게 된 배경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이나 선생님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성적과 시험에 대한 예측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집니다. 초등학교든 중고등학교든 마찬가지죠. 특히 내신이 정말 중요한 중고등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시험 문제를 유출하지 않으면서도 내실 있게 수업을 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직접적으로 문제에 대해 알려주기보단 간접적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 애쓰지요.
둘째, 자신의 생각을 자제하며 교수님의 수업에 집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노이즈 없이 순수한 정보만을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업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들곤 하죠. 그러나, 지금 앞에선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 한 시간 이상 길고 긴 설명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이야기를 모두 다 듣고 나서. 한번 복습을 해서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고 나서. 그런 다음에 자기의 생각을 되살피고 펼쳐내 본들 아무런 손해도 발생하지 않지요.
우선 수업 때는 최대한 집중해서 적고, 복습을 하며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자기의 생각이 뭐든 떠오른다면 그를 위한 공부를 별도로 하는 것이 서울대의 우등생들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그들은 학습의 양 자체를 굉장히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죠. 마치 그물을 넓게 만들어 크게 펼치듯, 많은 양의 지식과 정보를 얻어내가다 보면, 결국엔 그 안에 정답이 걸리기 마련이란 것이죠.
셋째,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어 답안지에 쓸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상당한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알기에 서울대의 우등생들은 확실한 답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교수님들의 수업을 암기하고, 답안지에 작성하는 것이겠지요. 자기의 공부를 따로 할 시간은 방학 때, 시험이 끝났을 때, 이렇게 따로 가지면 됩니다. 굳이 정해진 일정이 있는 수업과 시험에 자기의 생각을 앞세울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즉, 이것이 가장 효율적인 전략임을 서울대의 우등생들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수용적 태도와 통합적 지식 습득
이제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보지요. 세상엔 너무나 방대한 지식체계가 있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 방대한 지식의 세계에서 작은 조각부터 하나씩 떼어서 차근 차근 전수받고 있습니다. 지식을 한 조각씩 따로 떼어서 배우다보니 우리가 배우는 것이 어디서 왔는지, 그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알파벳을 배울 때 그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페니키아라는 지중해 국가를 거쳐, 그리스에서 로마로 옮겨가며 유럽 각국에 퍼졌다는 것을 배우는 아이는 없지요.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학교 교육은 과목을 나누고, 단계별로 그것을 배치했습니다. 국영수, 초중고, 학년이라는 절차가 그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이런 과목과 학년이라는 제도가 아이들의 학습을 칸칸이 나누어놓았습니다. 이번에 시험이 어디서 나오는지, 난이도는 어떨지가 주된 관심사가 되면서 그에 맞게 공부를 하게 되고 그게 학습 습관이 됩니다. 선행학습이 생겨나고, 교과목 별로 성적의 편차가 생깁니다. 사실은 다 같은 공부인데도 수학 포기자, 영어 포기자가 나타났죠.
지식을 잘 습득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학교제도가 오히려 아이들의 참된 공부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의 대답은, 지식과 정보를 토막내지 않고 통합적인 지식으로, 한꺼번에 다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한권의 책을 잘 읽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요? 서울대 우등생들의 습관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우선 그 책에 있는 정보를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자신의 것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책을 읽으며 드는 자신의 생각은 조금 미뤄두고 책 내용 안에서 모르는 것을 먼저 해결한 뒤, 마지막에 자신의 생각을 따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극대화됩니다. 이혜정 교수는 이런 특성을 “수용성이 높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머리를 스폰지 같은 상태로 만들어놓는 것입니다. 물을 쫙 빨아들이듯 지식을 빨아들일 수 있도록요.
사실 대학보다는 초중고의 교실이 오히려 이런 방식의 공부가 쉽게 이루어집니다. “질문”이 권장되는 환경이기 때문이죠. 대학은 기본적으로 다루는 학문 자체가 어렵고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자기의 생각을 펼쳐내 주길 바라는 성격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수업 중에는 질문하기가 까다롭습니다. 그에 비해 학교에서는 수업 중에 질문을 하는 것이 훨씬 쉽죠. 복도나 교무실로 따라가서 질문을 해도 됩니다. 그러면서 최대한 시험 문제에 대해 캐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럴때마다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팁을 얻어낼 수도 있죠. 그렇게 모아온 정보를 곱씹으며 최대한 많은 지식을 선생님의 이야기 속에 하나로 묶어, 자신의 것으로 녹여내는 것입니다.
높은 수용성으로 지식을 통합적으로 흡수하는 아이들의 주도적인 힘. 어떻게 길러줄 수 있을까요? 관계성과 경청, 그리고 몰입과 참여의 습관이 어린 시절부터 일구어져야 합니다. 시작은, 바로 대화죠.
수용성을 키우는 대화와 학습 몰입
흔히 “방전시킨다”고 하죠. 아이들이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뛰놀 수 있게 하는 일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흥밋거리와 자극 투성이기 때문에 조금만 쉬어도 금새 힘을 되찾고 뛰쳐나가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이 원하는대로 에너지를 발산하게 해주지 않으면, 그 에너지는 우리에게 고스란히 날아오죠. 에너지를 모두 발산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조금 맞춰줍니다.
우선 이것이 아이들의 수용성을 키우는 육아의 기본 전제입니다. 아이들의 욕구를 먼저 해소하고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준 뒤, 차분히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죠. 아이의 수용성은 먼저 아이의 욕구를 수용해 준 뒤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협상과 거래로 인하여 키워집니다.
들어줄 수 없는 아이들의 요구가 있다면 우리의 입장과 의사를 충분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알아들을 때까지요. 수용성 역시 하나의 특성이기 때문에 학습을 통해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설명하고 어떤 대안을 제시하거나, 약속을 한 뒤 지키는 노력을 해서 아이에게 부모의 수용적 태도와 노력을 인식시키고, 아이들에게 수용을 학습시키면, 지나치게 허용적인 육아로 흐르지 않으면서 이런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환경 조건을 수용하는 것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충분한 설명과 협상, 대안 제시와 약속을 지키는 것. 우리의 수용 노력을 보여주고 아이들에게도 따라하도록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모든 경우에 “배경지식”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글을 사랑하는 이유는, 너무나 쉽고 효과적인 문자일 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이라는 명군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역사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식을 토막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식 하나를 배우고 “문제” 풀이로 넘어가기보다는, 하나의 지식에 대해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 요즘은 정보 검색이 워낙 쉬워져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공부에 관해 설명해줄 만한 지식을 얻기 어렵지 않습니다. 잘 모르는 것이 나온다면 그 자리에서 검색을 해서 같이 알려줘도 좋습니다. 알고자 하는 태도를 학습시키려는 것이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특히 배경지식을 함께 얻어갈 수 있도록 하는 독서지도는 아이들의 학습 효율을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한권의 책에 담긴 하나의 아이디어를 위한 생각의 지도를 펼쳐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우리 스스로 연습해보려면 유명한 평론가의 영화 리뷰를 한번 읽어보면 됩니다. 전문적 영화 평론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여러개의 영화와 장르명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장르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 리뷰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영화에 대해서도 이해가 부족하게 되죠. 정말 재밌게 본 영화가 있다면, 좋은 리뷰를 찾아 읽은 다음 거기에 인용된 것들을 빠짐없이 찾아보도록 해보시길 바랍니다. 아이들 입장에서 어떻게 배경지식을 풀어 설명해줄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자신의 생각을 펼치되, 그것을 경청하는 태도보다 앞세워선 안되겠지요. 위계의 중요성을 이해하도록 하고, 예의와 교양, 식견을 지닌 아이로 길러야 합니다. 아이돌의 댄스음악보다는 클래식이, 만화보단 다큐멘터리가 더 고급 문화입니다. 상호간의 존중은 마땅히 있어야 하지만 교양의 측면에서 위계는 명확합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어떤가요? 최근 교권 문제가 말이 많습니다만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를 모르는 아이가 과연 수업에 집중을 할지 의문입니다. 학교 선생님을 무시하는 아이가 학원 선생님이나 과외 선생님을 그처럼 따를까요?
위계를 이해하는 것은 아이들이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하여 자발적으로 행동을 통제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아이의 학습과 생활태도를 나아지게 할 수 있지요. 흔히 말하는 옆길로 새는 아이들은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할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것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현대 사회에서 어떠한 행위나 가치의 위계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댓말도 없고 수평적으로만 보이는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이나 영국 사회가 사실은 숨막히는 계층으로 나뉘어진 위계사회라는 것을 알면 깜짝 놀라실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가 나아가 살게 될 세계의 위계에 대해 미리 배워가는 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상호존중이 없는 문화가 나쁜 것이죠. 그러니 부모와 자녀의 위계부터 시작해, 세상 만물의 순서와 위계를 알리고 그 사이에도 존중이 있음을 명확히 인지시키셔야 합니다. 그런 뒤에 이렇게 위계 차이가 나는 우리가 어떻게 너를 존중하고 아끼는지 알도록 하고, 아이들 역시 우리를 존중하도록 하시면 여러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물론 우리가 그를 위해 모범을 먼저 보여야겠죠.
이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 완전한 학습에의 몰입입니다. 위에서 우리가 이야기 나눈 것과 같이, 아이들은 먼저 우리와의 협상으로 인해 자신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한 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책상에 앉습니다. 그런 다음 지식의 위계를 알고 보다 고등한 정보를 학습하게 된 상황에 맞추어 겸손한 태도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함께 하나의 지식에 대해서 충분한 대화를 나눕니다.
한 쪽의 글, 하나의 문장에도 얼마나 많은 설명들이 뒤따를 수 있을지 대화하며 충분히 긴 시간을 책 속의 내용에 대해 토론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책과 노트를 통해 함께 살피벼 목습합니다. 오늘 수업에서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는지 묻고, 사소한 것까지 메모하도록 다시 주지합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늘어나는 필기의 양을 보며 우리의 대화도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그럴수록 아이는 지식에 더욱 몰입하게 되며 학교에서 선생님이 한 이야기에도 더욱 집중하고, 수업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수업에 100% 몰입하여 모든 내용을 받아적고 암기하는 공부방법의 효과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통합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며 배경지식까지 얻게 되니 일석이조죠. 그러나, 진짜 그것이 왜 중요한지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 하나 하나 수업에 최대한 몰입하며 시간을 금쪽같이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