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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4. 2023

행복한 배움은 가능할까

내 손 안에 놓여진 진리의 길

 우리는 모두 배움의 기쁨을 기억합니다. 첫 직장에서 일을 배우며 하루하루 효능감을 느끼던 날들, 대학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사회에 대해 배워가던 날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쾌감. 그런 행복한 배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던 것들도 포기하고 공부의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그 속에서 아주 많은 인내의 시간을 거친 끝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삶의 토대는 마련되었습니다. 


 아이를 기르고 있노라면 배움의 기쁨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하룻밤 사이에 부쩍 얼굴이 자란 아이의 얼굴 속에서, 자기 손으로 처음 물건을 쥐고 흔드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리고 아이와 함께 말과 단어를 배워나가는 과정은 배움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것인지를 우리에게 되새기게 하죠. 


 그 단계를 마치고 나서 아이가 글을 쓰고 읽게 되면, 이제 학교 공부를 향해 달려나가야 합니다. 아이를 통해 느끼던 배움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우리가 지나온 시간보다 더 많이 인내하며 버텨나가야 하죠. 


 돌이켜보면 배움의 기쁨은 찰나에 지나지 않고 오로지 고통의 가시밭길 같기도 합니다. 첫 직장에서 일을 배우던 즐거움도 잠시고, 수학 문제 하나를 풀면 더 어려운 문제가 수십개씩 밀려오니까요. 대학에서 내가 빛나던 시절도, 어찌 그리 짧기만 하던지요. 


 그 때문에 우리는 행복한 배움에 대한 믿음 없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제시해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놓입니다. 저는 이것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 맛에 비유합니다. 공부란 게,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하니, 음식에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것을 자꾸만 먹이고 있는 셈이죠. 배는 부를 것이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아이들에게 식사와 미각의 즐거움으로 남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그 맛을 안다면, 세세히 이렇게 먹고, 이런 맛이라며 아이에게 알려줄 텐데 말이죠. 


 행복한 배움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할 것은 가장 먼저 세상을 열린 가능성의 공간으로 보는 것입니다. 앞서서 설명한 적응-조절과 비슷하게, 우리의 행동에 따라 이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삶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이미 충분히 해보았기 때문에, 좌절도 여러번 경험했기 때문에 체념이 익숙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보지 않은 일도 많지 않던가요?      


 커피 이야기로 잠시 돌아가자면, 저는 두 해 전부터 원두를 직접 볶아서 마시고 있습니다. 요령은 간단합니다. 1kg에 1만원에서 2만원쯤 하는 생두라는 것을 삽니다. 생두는 나무 열매인 커피 체리를 따서 겉의 과육은 벗기고, 속의 씨앗만을 건조시킨 상태입니다. 이것을 볶으면 원두가 되고, 그 상태로 가루를 내 뜨거운 물로 우려낸 것이 우리가 마시는 커피죠. 


 5년 전까지는 제가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다른이와 마찬가지로 커피숍에서 사마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커피 머신이 하나 생겨 원두를 갈아서 내려먹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커피의 맛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외국 여행에서 아주 훌륭한 커피를 여러 가지 맛보고 나서는 이런 원두의 다양한 맛은 어떻게 하면 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되었고, 생두를 구매해서 집에서 콩을 볶기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커피나무와는 맞지 않기 때문에, 또 충분한 땅이 없기 때문에 직접 기르지 못하는 것 빼곤 꽤나 많은 일을 스스로 하고 있군요. 


 처음엔 프라이팬에 커피콩을 볶다가 지금은 유리 뚜껑이 달린 라면냄비에 하고 있습니다. 수백만원짜리 로스팅 머신이 없어도 제법 맛있게 콩을 볶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과 공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볶은 콩을 주변에 마음껏 선물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물용으로 쓰이는 원두커피가 500g 단위에, 못해도 2만원을 넘긴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투자 대비 소득이 큰 공부의 성과죠. 


 이 공부를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루에 10분만 투자하면 10잔 분량의 원두커피가 나옵니다. 일주일에 세 번만 해도 저 한사람 먹기에 충분하고, 매일 10분씩만 볶으면 우리 직장 동료 여럿에게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배움의 과정입니까?


 자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라면 냄비로 볶아낸 콩의 맛이 그 콩의 최상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천만원짜리 전문 로스팅 머신이라면 같은 생두로도 훨씬 좋은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거의 매일 10분씩, 양치하듯 샤워하듯 콩을 볶으며 이 콩이 최상의 맛을 내고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번 다음엔 더 맛있는 콩을 만들겠다 다짐하며 맛을 보죠. 다행히 지금까지 제가 라면냄비로 볶은 콩이 어디서 사먹든 그 커피보단 맛있습니다. 꽃향기가 화사한 맛이 납니다. 그러나 과연 이 콩을 나는 최상의 것으로 만드는지는 알 수 없기에, 공부와 노력은 계속됩니다. 그렇다고 전문 로스팅 머신에 굴할 마음도 없죠. 내 손으로 볶은 내 콩이니까요.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 아이를 기르는 것에 정답은 없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답은 있을 테지만, 그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정답인지 끝없이 질문하며 아이와 함께 책을 보고, 여행을 다니고, 토론과 대화를 하겠지요. 잠깐 제가 볶은 커피 이야기인데, 볶은 그 즉시 커피를 내려서 맛을 보면 제대로 맛이 안 납니다. 한 일주일 숙성시키면 균일하게 좋은 맛을 내지요. 아이의 교육도 비슷합니다. 지금 내가 한 일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 한달 뒤, 반년 뒤에나 알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뒤늦게 후회하는 일도 있지만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할 때는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겠지요.      


 그러니까 배움의 본질은 이 정답을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다만 끊이지 않고 질문을 던져가며 계속해나가는 것입니다. 자녀교육에서, 우리의 공부에서 행복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 정답을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박한 경제 상황과 미래의 불안이 조급한 정답 찾기로 우리를 내몰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정답이 없는데 어찌 그 일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성장 과정이 발견되기 때문이죠. 수학 문제를 풀어본다고 해보겠습니다. 문제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럼 우린 이런 공식 저런 공식을 써가며 여러 가지 풀이에 도전해보죠. 그런데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고, 결국 문제는 틀렸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열심히 문제를 풀어낸 한 장의 종이, 그리고 여러 가지 풀이방식이 틀렸다는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원래 수학공부에 있어서 여러 가지 풀이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게 본질인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수학문제를 통해 충분히 성장을 거둔 것입니다. 이쯤만 하더라도 상은 아니더라도, 칭찬은 듬뿍 해줘야 하겠죠. 


 문제를 틀려도 열심히 풀기만 했다면 상을 받을 수 있다? 어떠세요 기분이 확 좋아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육에 있어선 그것이 참입니다. 이건 정답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행복한 배움은 그러므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풀어나가는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비롯됩니다. 최상의 맛은 아니라 할지라도 매일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는 것, 꼭 우등생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 우리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 부모와 아이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알아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마음 속이든 사진첩이든, 아니면 일기장에든 기록해나가는 것.      


 때론 우리 자신의 부족한 전문적 자본,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으로 인해 불안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겠지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면 됩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원래 다이어트도 초반이 살이 가장 잘 빠지거든요. 공부도 처음 새로 배울 때가 가장 쉽습니다. 우리의 자본들을 쌓아나가는 것이 자녀교육에 불을 붙이려 하는 지금이라면, 아이는 부모님들이 확확 성장해나가는 것을 보며 큰 감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의 피드백으로 생겨난 효능감이, 우리의 네가지 자본 형성에 더욱 큰 동기를 부여하겠지요.      


 배움의 중심이 아이라면, 우리 삶의 중심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만 기억하신다면, 우리의 삶 또한 온전한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가정의 행복한 배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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