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소스 치킨 스테이크
오늘은 학부모총회 날이었다.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학부모총회 때문에 오늘 대학원 수업까지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하루 결석을 했는데, 다행히도 칼퇴를 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정시 정각에 바로 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마늘을 사기 전, 채소 코너를 한바퀴 보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 언제 와?"
"으음...30분쯤?"
- 아니- 칼퇴했다며. 하원 좀 해주지.
"칼퇴는 했지. 하원은 네가 나가면 되잖아."
그리고 나는 주부로서의 한마디를 던졌다.
"난 마늘 사러 마트 왔다. 네가 살림을 아니."
집에 오니 아이는 이불을 덮고 침대에 콕 박혀 있다. 아빠가 왔는데 나와보지도 않는 정말 고-이얀 미운 여섯살. 하원 버스에서 잠들었단다. 억지로 잠을 깼으니 불쾌지수가 올라가 있는 상태로, 남은 피로를 이불 속에 감싸여 풀고 있는 참인가보다.
"간식은?"
"구운감자 먹였어."
"...잠깐. 이리 와봐."
"응? 왜?"
"자 따라해. - 구운 감자도 좋은데 아가야, 포도는 어때?"
"아 알았어."
이런 이런. 아내에게 잔소리를 던지고 마늘을 손질한다. 깐마늘을 간단히 헹구고, 꼭지를 딴 뒤, 한번 더 헹군 뒤 채반에 물기를 뺀다. 1.6키로의 마늘...500알은 되려나. 20분도 넘는 시간이 훌쩍 가는 기분. 단조로운 작업을 유튜브를 보며 인내한다. 꼭 마늘 때문은 아니지만, 오늘 나는 고급지게 맛있는 음식을 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면, 1년은 쟁여두고 먹을 깐마늘 정도야. 견딜만한 일이다.
닭다리 정육을 꺼내 물로 씻은뒤, 키친타올에 물기를 빼고, 다시 맛술과 허브솔트로 버무린다. 치킨스테이크. 치킨스테이크는 나와 아내 모두 즐기는 요리다. 손도 많이 안가고, 맛있다. 일반 치킨보다 건강할 것이란 환상을 품은 채로, 심지어 나는 올리브유에 이것을 굽기 때문에, 겉바속촉한 닭고기를 즐길 수 있다.
이 겉바속촉 치킨스테이크조차 그러나 마늘에 이어서 오늘의 핵심은 아니지만...최종 결과물을 위한, 일종의 조미료라고 할까. 지금부터 난, 내가 오늘 먹을 고급진, 맛있는 요리의 밑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그래서 튀김가루를 묻혀, 올리브유를 올린 팬에, 약불에 굽는다. 자작자작하게.
올리브유에 로즈마리에 마늘...방금 손질한 깐마늘. 이 작업까지 마치고 나서, 설거지도 해둔다. 주방이 바쁘다. 방금 전엔 쌀도 안쳐놨다. 그리고 대망의 시금치와 토마토 소스를 냉장고에서 꺼내, 마무리를 준비한다.
시금치. 토마토소스에 시금치. 시금치 토마토소스 치킨스테이크. 그것이 내가 오늘 바란 고급진 맛. 겨울섬초는 아니어도 시금치는 그냥 뭘 먹어도 달고 맛있다는 느낌. 그것이 토마토 소스에 버무려서 익혀질 때의 부드러운 식감과 눅진하게 입안에 번지는 단 맛. 가지처럼 보드라우면서 묵직한 식감이, 오늘의 저녁이다.
차려먹으려면, 싸게 차려먹을 수 있다. 어제는 내가 대학원에 스터디가 있어 저녁에 집을 비웠는데, 아내는 여지없이 밥을 시켜먹었단다. 힘이 들었다고 한다. 그럴만하다. 아이와 아내를 집에 두고 혼자 저 멀찌기 대학원을 다녀와서 밤 늦게 들어오는 아빠가, 할 말은 없지. 다만 이렇게 차려먹는 일에 대해, 특히나 남성인 나는 썩, 주변에 공유할 구석이 없다. 여성동무들과의 요리 교류 따위 "사모님이 부럽네요"같은 말이 거의 반드시 따라나오는 처지이기 때문에. 아니, 닭고기 5천원어치에 시금치 천원어치만 들이면, 거기에 토마토소스 천원어치만 더하면(유통기한 임박 마감세일 기준), 이렇게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데. 그냥 이렇게 소소한 이야기를 스몰토크로 즐길 기회가 통 없는, 요리하는 남자사람의 적적함.
물론 그 적적함이야 이노무 여섯살 꼬맹이 때문에 그닥 와닿지 않긴 하다만.
20분은 족히 앞뒤로 구운 치킨스테이크들은 접시로 건져내고, 스테이크가 익혀지던 팬 위에 그대로 시금치들을 투하한다. 그 위에 토마토 스스를 듬뿍 올린다. 이렇게 하면, 닭고기와 시금치, 그리고 소스가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아이가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 빨리 자라서, 아빠가 해준 이 음식들을 가리는 일 없이 다 먹어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침에 먹였던 식판도 설거지하고, 식판에 함께 올릴 포도도 꺼낸다. 여섯살이 뭐든 쉽지 않은데 나의 경우 프로주부로서...아이가 과일을 먹지 않고 과자뽀시래기 먹는 게 눈꼴시려 죽겠다. 과자를 거의 먹지 않는 나로선 포도나 딸기, 귤이며 사과가 냉장고에 있는데 간편하게 과자나 먹는 이 식성은 도저히. 도-저히 참기 어렵다. 빨리 커서, 나의 식성으로 길들이고 싶다는 생각.
그러면, 그렇게 되면, 이 맛도 알게 될 텐데. 나는 사실 치즈를 갈아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냉장고에 마땅한 게 없다. 훈제 치즈를 올릴 수도 없고(...) 예전에 치즈 간다고 뭐시깽이들을 두어개 구비해뒀는데 말이다. 이렇게 쓸데 없는 주방도구가 괜히 늘어나서 방치중.
"밥 먹자. 나와."
아내와 아이를 부른다. 새로 지은 밥에, 그대로 시금치와 치킨 스테이클 올려 한입. 푹 익은 시금치가 맛깔나게 졸아붙은 토마토소스와 버무려져, 닭기름의 풍미를 품고, 올리브유의 향기를 품고, 치킨스테이크와 함께 입을 채운다.
그래, 이 맛을 원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