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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11. 2020

맛있어서 자꾸 생각이 나

공부가 안돼

 설날 전에 내가 엄마에게 보낸 문자에 엄마는 명절 다음날, "야 만두 속은 너 여행 다녀와서 가져가라. 바빠서 못했다."로 답하셨다. 엄마는 바쁘셨다. 대전에서 올라와서 얼마 뒤에 누나와 조카들을 먼저 맞아야 했고 다음날 점심 지나서 우리가 건너갔을 무렵에 이미 갈비며 녹두전이며 여러가지 음식을 해두셨다. 만두 속까지는 준비할 시간이 안되었던 게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귀국 하루전, 엄마는 카톡으로 "야 언제오냐 만두속 얼른 가져가라."라고 말을 하셨고, 나는, 어제 저녁에 집으로 가 호주에서 사 온 온가족 선물세트를 드리고, 엄마가 만든 만두속을 받아왔다. 그런데 세상에나 많기도 하지, 하나는 양배추, 다른 하나는 파였던가. 두가지 재료로 만두속을 만들었는데, 그 양이 대략 2kg은 넘어보인다. 이걸 다 먹으려면 몇일이 걸릴까...아니, 그 전에 냉동실에 자리가 많지가 않아서 그것부터가 고민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홉시반이 넘은 시간. 집 바로 앞에서 만두피를 샀는데, 어렵쇼 냉동실에 꽝꽝 얼려놓은 것만 팔고 있다. 피곤하기도 하고 만두피가 녹으려면 세월이기도 하고 이걸 굳이 또 해동하는 것도 일이고 게다가 빨리 글은 쓰고 싶고, 하여 두루두루. 어제는 휘딱 냉장고에 만두피와 만두속을 넣고 글만 하나 완성하고 자버렸다.


 그리고 아침, 여섯시반에 눈을 떴다.


 어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라오면서 고민을 잠깐 했다. "싸갈까?" 만두를 말이지. 만두피는 녹아있을 것이고, 만두는 하루라도 빨리 빚는 게 맞다. 월요일에 점심으로 감명깊게 순대국을 먹었는데 점심을 먹고 함께 차까지 마시고 오니 모두가 돈과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냉동실과 냉장고에 빨리 먹어야 하는 식재료가 가득이고, 게다가 원래부터 도시락을 싸다니던 사람이고, 게다가 커피는 호주에서 사온 아주 훌륭한 원두가 있어서 커피도 낭비이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만두는 매우 맛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점심에 도시락으로 만두를 싸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간을 잠깐만 들이면 된다. 군만두를 한다. 만두를 빚어서 바로 후라이팬에 올려두고 씻고 나오면 되겠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여섯시반에 눈이 떠졌고, 잠깐 말똥말똥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일어나서 우선 아침을 차려먹었다. 바깥양반은 없는 혼밥상이지만.


 아침 메뉴는 호주로 떠나기 전에 만들었던 돼지갈비찌개. 김치를 좀 썰어넣고 고추장 약간 해서 한시간 팔팔 끓여 뼈가 분리되기 쉽게 했다. 출국날 아침 한끼만 먹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2주만에 꺼내서 데펴먹는 것인데, 다행히 맛이 여전히 훌륭하다. 남은 돼지갈비를 뼈까지 몇개 핥아가며 냄비를 비웠다. 김치 쪼가리는, 미안하지만 이별이다. 설거지를 간단히 해두고 남은 시간을 보면서 만두 재료들을 꺼내온다. 간단하다.


 공기에뜨거운물을담고만두피를뜯고왼손에만두피를올린다음에오른손손가락으로테두리에물을찍어바른한바퀴빙돌려바른뒤에숟가락으로만두속을떠내어조물조물만두를빚어서미리기름을뿌려둔후라이팬에타악.


 다시, 왼손에만두피를올린다음에오른손손가락으로테두리에물을찍어바른한바퀴빙돌려바른뒤에숟가락으로만두속을떠내어조물조물만두를빚어서미리기름을뿌려둔후라이팬에타악. 왼손에만두피를올린다음에오른손손가락으로테두리에물을찍어바른한바퀴빙돌려바른뒤에숟가락으로만두속을떠내어조물조물만두를빚어서미리기름을뿌려둔후라이팬에타악. 박자를 타며 홀홀 만두를 빚는다.


 냄비에 자리를 잡아 여덟개를 올리고, 뚜껑을 닫아 중불로 가열하면서 피와 속을 냉장고에 넣고 손을 닦았다. 아, 아직 상 위에 김치가 올라와 있다. 냉장고에 역시 치운다. 조금 익었을라나? 뚜껑을 열어보니 아래쪽이 제법 모양새가 나쁘지 않게 익어간다. 물을 반컵 붓고 다시 뚜껑. 불을 중불에서 약간 더 낮춘 뒤에 욕실로 들어간다. 조금 조급하게 샤워를 마치고 다시 나와서 즉시 뚜껑을 열어본다. 보지 않아도, 냄새로 타지 않았음을 안다. 야. 딱 좋다. 바삭하고 쫄깃하게, 예쁘게 익어간다.


 살살 돌려가며 여러 면이 튀겨지도록 만두를 자리를 잡아주고, 옷을 챙겨입는다. 시간이 아무래도 조금 뺏겼다. 화장품이라고 하기엔 선크림 하나 달랑 바르는 편이지만, 아침 단장은 여기까지다. 머리를 말리고 왁스를 바르는 일은 포기했다. 출근해서 해야지. 옷을 입고 양말을 신으면서 오며가며 만두를 굴리고 뒤집는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잠깐 잔열로 익히면서 외투와 도시락을 싸갈 통, 에코백 등등을 챙긴 뒤 다시 뚜껑을 열었다. 보람찬 아침.


 점심시간이 되어 전자렌지에 만두를 돌린다. 기화된 습기가 뚜껑에 맺혀 아롱아롱 흔들린다. 너무 뜨거워지지 않게 적당한 시간을 조리하여 꺼낸다. 온도까지 적당하다. 조금 뜨겁게 후후 불면서 먹을 정도. 그리고 만두피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역시 만두피는 사서 먹어야 제맛. 그리고 엄마가 만든 만두속은, 정말로 훌륭한 맛이다. 양배추의 달콤함, 돼지고기의 탱글함, 후추와 소금의 짭짤하고 매콤한 밸런스가 환상적이다. 여덟개의 만두를 내가 먹고 하나는 다른 선생님에게 맛보라고 주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전에 내려둔 원두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으로 입을 씻는다. 도시락과 점심시간의 완성.


 글을 쓰는 지금은, 만두의 맛이 입에 계속 감돌고 있다. 커피를 한잔 더 내려마실 생각으로 양치를 잠깐 미뤄뒀는데 이게 문제다. 입 안에 계속 만두의 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신종코로나로 아이들이 조금 일찍 하교한 상태다. 시간이 나 책을 보고 있으려니 입 안에 계속 만두 맛이 집중을 깬다. 마치 혓바닥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오늘 저녁도."


 오늘 저녁은...안타깝게도 술약속이 있다. 우선 만두와의 재회를 미뤄두고 빨리 커피 한잔을 내려마신 뒤에 양치를 해야겠다. 호주 Campos 커피의 원두로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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