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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08. 2020

하고 싶은 건 하고 살기, 해야 하는 것 안하지는 말기

니편 내편 남의 편으로 같이 사는 건

"오빠, 화내지 마요."


 이번에도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 말해."

"진짜 화내지도 말고, 잔소리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말고."

"어 말해."

"진짜 화내지 마요."


 바깥양반과 만나고 결혼하고 사는 동안 바깥양반의 곧은 심지를 존중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리고 내가 어찌 통제하지 못할 그녀의 주체성에 대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피해를 입거나 해도 딱히 하고픈 것을 막진 못했다. 그냥 나는 그런 길을 택해왔다.


"나 민지랑..."

"언제 가냐."

"아 진짜 오래전에 약속한 거라."

"언제 가냐고. 설마 월요일?"

"어 허허허허허."


 그러니까, 우리는 일요일 밤에 집에 도착하고.


"몇박인데."

"4박 5일이예요. 베트남이요. 싸게 가는 거예요."

"가라 가."

"근데 하나 더 있어요."

"뭔데?"

"공항까지 좀 태워주면 좋겠어요 새벽이라서."

"나 출근해야지. 안돼 안돼."

"아아아."

"...하...몇신데?"

"비행기가 여섯시반이예요."


 이럴 때만 존댓말이지.


"그럼, 내가...인천까지 네시에 데려다 달라고?"

"네."

"안돼 안돼."

"아아아!"


 일반적으론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2주의 호주 여행을 끝나고 집에 도착한지 6시간만에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신다는 우리 바깥양반의 대인의 풍모와 호연지기.


"야 그냥, 인천공항에서 속옷만 몇개 사갖고 거기 있어. 나 집에 갈게."

"안돼요 그래도 집에서 하룻밤이라도 편히 쉬어야죠."

"아니 괜찮아 바깥양반. 오빠가 너 편히 다녀오게 배려해줄게. 팬티만 몇개 사면 되잖아. 그리고 이번에 호주여행에 오느라 속옷도 집에 거의 남은 게 없는데?"

"아 다 긁어와야죠."


 호주에서의 마지막 밤, 그러니까, 바깥양반은 딱 집에 도착하기 24시간 전에 내게 베트남여행을 간다고 고백한 것이고, 그리고 그 베트남여행까진 30시간이 남았으며, 나는 인천공항까지 바깥양반을 데려다 주고, 한시간 남짓 집에 와서 쉬었다가, 출근을 하는 남자가 있다!?


 화도 안났고, 잔소리를 할 마음도 전혀 없고, 사실 놀라지도 않았다. 바깥양반에겐 흔한 일이고 바깥양반과 사는 나에게도 흔한 일이었을 뿐이다.


"잘 다녀오고, 선물 사와."

"베트남에서 뭘 사와 허허허허허허."


 바깥양반은 진짜로 웃을 땐 짱구가 웃는 듯한 소리를 낸다.


"야 그리고, 너 김장이랑, 김장 때까지 가족모임 절대 빠지기 없기."

"아 당연하죠 작년에 김장 빠진 건 사정이 있었잖아요."


 사정은 무슨 사정. 놀다 오셨다. 속초여행. 덕분에 내가 혼자서 김장을 하고 왔다. 결혼하고 세번 김장을 했는데 딱히 바깥양반이 김장 때 <시월드체험>을 한 일은 기억에 없다. 얻어먹었으면 얻어먹었지. 게다가 오늘 마침 엄마가 언제 귀국을 하냐시면서, 만두속을 해놨다고 말씀하셨다. 버무린 재료라 신선도가 생명이다. 귀국하자마자 가지고 와야한다.


 그런데 가족모임에 대한 요구는 내가 좀 박하게 구는 것이긴 하다. 부모님, 누나 부부 우리 부부, 조카들까지, 생일은 무조건 얼굴 본다! 라는 모토가 있다보니 사실상 매달 가족모임이다. 이건 시월드체험의 조건에 충분히 부합한다. 지금까지 이미 바깥양반이 잘 맞춰주고 있는 것이긴 하다. 그점은, 물론 나도 항상 감사하는 와중이다.


 여행의 마지막날을 함께 보내며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을 뒤로 하고 우리는 벤치에서 엉덩이를 털었다. 내가 마시던 플랫화이트와 바깥양반이 마시던 핫초코 테이크아웃잔을 정리해, 쓰레기통에 넣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거에 화낸 적 없잖아. 딱히 기대도 없고. 넌 하고 싶은 거 하고, 너도 나 하고 싶은 거 하게 해주고. 이것도 쉽진 않지."

"네."

"내가 뭐에 화내는지 알잖아. 하고 싶은 거 하면 돼. 대신에 하라는 걸 안하지는 마. 네가 여행 가는 건 내가 화내는 지점이 하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자."

"네."

"근데 하라는 거는 해야지. 옷 정리 언제 할거야?"

"아 하죠오."

"좋아. 이야기는 끝. 나 이거 오늘 글로 써야겠다."

"뭐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나는 "글을 쓰자"라는 발언 뒤에는 바깥양반의 여행에 관심을 껐다. 나에게는 전혀 무관심한 일이 되었다. 바깥양반은 바깥양반의 삶이 있고, 자기도 휴가를 내서 즐기는 4박 5일 정도의 여행에 내가 말을 더해 무엇할까. 이런 상황을 경험하며 나는 우리가 충분히 신식 부부임을 깨닫는다. 우리의 삶은 부부이되 상당히 분리되어있다. 바깥양반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나에게 매우 크게 의존하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구가하고 있고 이따금 내가 필요한 것에는 맞춰준다. 뭐 큰 건 아니다. 그냥 자기 스케쥴 비워주고, 가족 모임 때 외식을 하며 조카들 챙겨주는 정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처가에도 나도 그정도 챙김은 하게 된다. 이정도가, 각자 결혼이라는 틀에 묶인 요즘의 삶의 방식인 것이겠지. 나나 바깥양반이나 가족이라는 굴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부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서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 밖에는 서로의 자유를 대단한 수준으로 보장한다.


 여행을 와서 대화보단 내 생각에, 글쓰기에, 책 읽기에 골몰하고 있는 나를 보며 바깥양반은 심심해하고 투정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다. 한편으로 내가 운전을 할 때 조수석에 앉은 바깥양반은 조금도 날 배려라곤 하지 않는다. 분명히 자기가 원해서 가는 드라이브인데도 말이다. 그냥 그대로 둔다. 바깥양반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은 굳이 하루종일의 대화로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 삶이다. 나는 대학에 들어간 뒤로 부모님의 뜻을 충분히 어기고 살았다. 바깥양반도 그렇다. 애초에 다른 사람 말을 듣지는 않는 쌍이고, 사실 그래서 둘 다 부모님들이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아했다. 대신에 서로의 그런 "말 안들어먹는 기질"에 대해선 조금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 바깥양반은 나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자기의 고집을 꺽께 되면서 그 사실을 받아들였고, 나는 그보다 조금 일찍 받아들였다.


 덕분에 얻은 자유를 어찌 쓸지 조금 고민이다. 이상하게도 지난 연말부터 딱 술을 절반으로 줄였다. 결심을 한 것도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원래 술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어느날 술자리에서 술이 역하게 느껴지더니 소주 세잔째부턴 그냥 물만 마시며 자리를 채우고 이야기를 듣다가 나왔다. 바깥양반이 4일이나 자리를 비우는데, 일단 술은 나의 자유를 만끽하는 옵션에서 제외된다. 게임을 미친듯이 하고시지만- 게임도 영상물도 바이오리듬을 심하게 타는 편인데, 요즘 딱 게임을 안하는 흐름이다. 애석하게도. 남은 것은...글과 책인가. 그건 바깥양반 있어도 아무때나 할 수 있잖아! 내 단순한 삶이란, 어쩌란 것인지 정말.


 내가 지금 이 이야기를 바깥양반에게 했더니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한다.


"원래 그런 거야. 내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한결 같은 게 당연한 것이지."

"야 아깐 너 존댓말 하더니."

"저기 샘들이랑 커피나 한잔 해."

"아니 그건 너 있을 때도 하는 거라니까."

"밥이나 먹어 샘들이랑."

"아니 그건 너 있어도 하는 거라고 네가 더 바쁘니까 내가 혼밥하게 되면."

"순대국 먹어."

"아."


 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췄다.


"너 베트남 가는 댓가로 앞으로 나랑 순대국집 간다."

"그건 생각해볼게."

"아 재미없어 뭐야."

"빨리 잠이나 자 내일 새벽에 우리 공항 가야하잖아."


 아...뭐하고 5일을 보내야 할까.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이번 여행에서 산 책이나 읽어야 하는, 그런 선택지 밖에는, 정말로 다른 길이 남아있지가 않다.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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