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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10. 2019

진미채 볶음 말고 무침

밑반찬 중에 유일하게 빨리 소비되는 녀석

- 어 왜?

- 응 엄마 옛날에 해줬던 오징어채 양념 좀 알려달라고. 마요네즈랑 해서 무치는 거.

- 그거? 올리고당으로 먼저 한번 비벼놓고 마요네즈랑 고추장이랑 1:1로 무치면 되지. 오징어채 하게?

- 응 수달(*바깥양반의 다른 별명. 엄마와의 대화에서는 본명 대신 표기함.)이가 좋아해서. 근데 진미채가 비싸네 요즘.

- 오징어 비싸지

- 알았어 고생하셔

- 그려 언제 올겨? 오이김치랑 열무김치랑 가져가

- 이번주에 한번 보고.

- 그래.


 엄마와의 통화를 끝내고 볼에 진미채를 담았다. 워낙 오징어 물가가 폭등해 고심하고 고심하다가 만들어준다고 한지 한참이나 지나서 산 진미채다. 재래시장이 혹여 더 쌀까, 인터넷쇼핑몰 중에 더 싼 것이 없나 찾아보다가 결국엔 다른 일로 바깥양반과 같이 외출했다가 생각난 김에 눈에 띄는 놈으로 적당히 사온 참이다. 비싸서 오징어를 못먹는 세상이라니 황당하기가. 이러다가 몇년 뒤엔 새우값이 폭등해서 순대국에 새우젓도 못넣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바깥양반 사무실에서 여직원들끼리 반찬공동구매를 매우 활발하게 한 것이 진미채 무침을 내가 만들게 된 배경이다. 처음 바깥양반은 우리집 식생활을 고려해 생 양념닭갈비를 주문해서 가져왔는데, 만원 짜리를 사서 세끼 정도 배부르게 먹고는, 마음에 들었는지 그 뒤로 두번 정도 더 사왔다. 나는 파와 양파, 냉장고에 깻잎이 있다면 넣고 굴소스를 추가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것을 요리했다. 우동사리를 사와 추가할 때도 있고, 감자나 떡볶이 떡을 넣을 때도 있었다.


 닭갈비는 분명히 저렴한 가격에 맛도 있었는데, 어느날.  


“이번에 진미채 팔길래 사왔어. 이거 완전 인기야.”

“그래? 줘봐. ...앵? 뭐야 이거? 이게 얼마야?”

“5000원.”

“야!...뭐어? 꼴랑 이거 주고 5천원?”

“응. 왜? 좀 양이 적긴 하다 근데.”


 5천원 가격에 고작 50g이나 될까? 반찬포장용기에 들어있는 진미채가 너무나 보잘것없이 양이 작았다. 나는 분통을 터트리며 저녁상을 차렸고 바깥양반은 절반 약간 안되는 양을 굳이 남겨 아침식사에 먹겠다고 했다. 좋아하는 반찬은 누구보다 빠르게 먹는 바깥양반인데. 그 얘기를 듣고 더 신경질이 났다.


 설거지를 하며 생각을 했다. 진미채라. 바깥양반 입맛에 딱인 반찬인데 결혼하고 한번도 만들어준 적이 없다. 밑반찬이 두 명 살림에 잘 소비되지 않아서다. 처가와 우리집 모두 애매하게도 가까운 거리라 매달 한번씩은 양쪽에 들르는데, 갈 때마다 반찬이며 식재료를 잔뜩 주시는 바람에 신선식품을 해치우느라 다른 반찬이 그만큼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다. 작은 냄비에 김치찌개를 하나 끓여도 5일, 미역국을 한 솥 하면 이 주 가까이. 이런 상황이니 내가 밑반찬을 더 하기 어렵다. 결혼식을 올린 예식장에서 혼인 100일 기념이라며 보낸 무슨 레토르트 국 세트도 한두개 먹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 그때쯤에 바깥양반 친구가 선물해준 반찬세트도 일부만 먹고 일부는 한참 뒤에 냉장고에서 발견해 뒤늦게 먹거나 버렸다. 깻잎절임이 다행이 1년이 지나서도 먹을만했다.


 어릴 때 진미채는 정말 흔한 간식거리였다. 반찬을 만들고 남은 진미채는 봉지에 담겨 주방에 놓여있었고, 한개 두개 집어먹다가 나중에는 접시에 주먹째로 퍼갔다. 물이랑 먹다가 우유랑 먹고 비교를 하기도 했다. 도시락반찬에도 가장 흔한 메뉴였다. 그런데. 3년 사이에 가격이 두배가 오르다니. 분하다 분해.


 먼저 올리고당을 적당량 진미채에 뿌렸다. 중학교 때 쯤 엄마의 진미채 조리법이 확 바뀌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는 ‘나중에 물어봐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질문 전에 그냥 엄마가 만드는 걸 목격했는데, 볶는 과정 없이 고추장과 마요네즈를 넣고 비비기만 하셨다. 그때는, 굉장히 큰 양푼에 아주 많은 양이었다. 나는 올리고당이 전체에 섞이도록 비벼준 끝에 이번엔 마요네즈를 먼저 뿌리고 고추장을 그에 맞추어 숟가락으로 퍼 넣었다.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숟가락을 한번 쓱.


 몇번 비비다 보니, 눈대중으로 양을 맞춘 것이라 마요네즈와 고추장이 부족하다. 다시 마요네즈와 고추장을 넣었다. 조심해야 한다. 마요네즈와 고추장의 밀도가 달라, 잘못하면 고추장이 충분히 섞여들지 못하고 겉돌다가 덩어리 째로 진미채에 들러붙을 수 있다. 큰일이...날까? 그러고보니. 그냥 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하긴 하니까. 멸치도 그렇고 말이지. 어쨌든, 신중하게 몇번이나 볼을 닥닥 흔들어대며 진미채를 마저 무쳤다. 볶지 않아 손도 덜 가고 마요네즈 덕에 부드러운 맛이다. 반찬통에 무친 것을 담은 뒤, 마무리로 깨소금을 꼼꼼하게 뿌려 올린다.


 바깥양반 직장 동료들은 계 모임처럼 아침에 메뉴를 골라서 한 사람이 모아 주문을 하고, 퇴근시간 쯤 되면 맞추어 배달된 것을 받아간다고 한다. 무엇이든 주문배달이 되니 참 편한 세상이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하나 둘 생기면 빨래도 늘고 설거지도 늘고 청소도 늘어난다. 몸은 하나요 체력은 줄어드는데 집안일은 곱이 아니라 제곱 스케일로 커진다.


“오 맛있다.”

“당연하지 난 프로니까.”

“역시 짱이구만.”

“사실 너희 시어머니 레시피임.”

“아 그럼 그렇지!”


 한편, 아직 아이도 없고 바깥양반이 하지 않으면 나 또한 청소를 매우 대충 하는 우리집에서, 나는 이번에 새로운 요리를 하며 오징어 물가도 검색하고, 어린 시절에 또 젖기도 하고 엄마와 통화를 길게 하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엄마는 손이 크기에, 아직까지 “오징어채 해놨다.”라는 연락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오징어 가격이 빨리 떨어지면 더 자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런다고 냉장고 속 신선식품들이 알아서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서.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그땐 밑반찬 하는 재미가 생기긴 하겠다. 멸치볶음 참 맛있게 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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