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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Dec 30. 2019

멋드러지게 맛들어지게

는 나의 길은 아닌것.

 “맛 어때?”

 “아 매워.”

 “야이!”


 절에 다니시는 엄마는 동지에 새벽에 절에 가서 팥죽을 한다. 매번 한 통을 가져오시는데 절에서 만든 것이니 심심하다. 짜지도 달지도 않은 팥 맛. 며칠 냉장고에 두었다가 토요일 아침에 주말 특식으로 팥죽을 데우기 시작했다.


 찹쌀로 빚은 새알들이 식었다가 다시 데워지는 과정에서 녹아 흩어져 있었다. 아쉽다. 눌러붙지 않게 휘적휘적 젓다가 이것을 어떻게 재밌게 먹지 고민해본다. 아. 장모님이 주셨던 아몬드편이 있다. 한줌 털어넣었다. 토핑으로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맛을 보니 여전히 심심하다. 나는 생강조청에 눈을 돌렸다. 유명하다는 팥죽집에선 계피향이 나거나 생강향이 나거나 하는데, 계피와 생강은 정작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다. 계피가루도 즐기지만 겨울엔 역시, 생강이지. 나는 한숟갈 아낌없이 톡, 털어넣고 휘휘 저었다.


 뭉근히 데워지는 팥죽의 빛깔이 좋다. 향은 더욱 좋다. 한 입 먹어보니 단맛이 약간 부족한가 싶다. 설탕을 반스푼. 다시 두바퀴 휘 휘 저은 뒤 맛을 본다. 딱 좋다! 그릇에 옮겨담은 뒤 아몬드 토핑을 올리고, 자고 있는 바깥양반을 깨워 식탁에 앉혔다.


 팥의 구수함과 생강의 매콤한 풍미가 늦은 아침의 주린배를 살살 녹였다. 겨울에 먹기에 딱 좋은 별식이다. 그리고 그릇이 크지 않은데 금방 배가 찼다. 나는 바깥양반에게 맛있냐 물었다. 바깥양반은 열중해서 먹고 있다가 내가 묻자 비로소 “매워”라고 답한다. 야이!


 더 없이 만족스러운 아침이었는데 음식이 정갈하고 예쁘게 올려져 더 만족스럽다. 평소에 내가 꾸밈새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더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음식을 하는, 내 본위의 요리이기 때문에 데코레이션이나 사진 찍기에는 아주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만족스러운 요리를 하더라도 사진을 찍지 않고, 사진을 찍더라도 모양새가 그리 이쁘지 않다. 바깥양반이 이따금 마음에 드는 요리를 찍는 정도. 한동안 구형 아이폰을 오래 써서 카메라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겨울에 고생해서 만들었던 육개장도 그렇다. 고생 고생을 해서 끓였지만 제대로 된 사진을 한장 찍지 않았다. 맛과 영상을 위해서는 온 정성을 다하지만 멋을 내는 것이 나의 본분은 아닌 것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런 탓에 바깥양반도 내가 맛을 물으면 왕왕 “데코!”라고 맞받는다.


 그러나 브런치에 부부일기를 쓰게 되면서, 그리고 몇개의 글이 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으면서 그런 나의 습관도 이리저리 바뀌고 있다. 욕심이 난다. 이쁘게 찍고 싶어진다. 맛들어지게 음식을 하고만 살다가 멋드러지게도 음식을 하고싶다. 그러다 문득, 식탁이라는 사적공간이 타인에게 공개되는 공적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 번번히 사진을 찍어야 하고, 음식을 만드는 중에 글감을 떠올리고, 중간 중간 사진을 찍기 위해 손을 닦는 모양새를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조금은 쓴맛이 입안에 감돌곤 하는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멋있어보이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바깥양반은 우선 좋아하겠지. 왜 이뻐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설득을 하진 않는다. 반드시 외식을 할 땐 음식 사진을 찍곤 하는데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하여, 내가 뿌듯해하는 경우에조차 사진을 찍어주지 않으니 그에 대한 심술이 나는 돋는 것이고, 아마도 바깥양반은 그 음식들이 "사진"으로서 미적 가치는 전혀 없다고 느끼는 것일게다.


 그렇다면 바깥양반을 위하여, 나의 브런치의 번창을 위하여, 독자들을 한분이라도 더 맞이하기 위하여 기꺼이 이 "멋들어진" 음식사진을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글을 팔기 위하여 스스로 글의 가치와는 무관한 장식품을 덧대는 것은 적응일까 타협일까. 이런 고민조차, 사실은 글 없이도 살 수 있는 밥통 하나 찬 사람의 배부르고 등 따신 소리는 아닐까. 어찌되었든, 읽히지 않는 글은 스스로의 가치가 여하하든 무의미한 것이니까. 


 대신에, 음식사진을 자주 찍는 바람에 효도는 좀 더 한다. 엄마에게 자주 사진을 보내드리니 기뻐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브런치에 올린 신혼일기 글들이 뜻밖의 관심을 얻게 된 것처럼, 음식의 모양새에 조금 더 공을 들임으로써 현대적인 효도를 좀 더 할 수 있으니, 일단은 좀 더 노력은 해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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