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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4. 2019

일상물로부터 일상 지키기

소재가 사람인 글을 쓰는 것은 :

"너 직장은 노출 안하고 썼어."

"응 잘했어."

"쓸 건 많은데 고를 것도 많네."


 처음 바깥양반과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 삼 주 전, 술을 진탕 마시고 노래방에 앉아있을 때였다. 브런치에 수업 이야기를 쓰던 참에 같이 수업재구성을 해 온 다른 선생님과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글 생각이 떠오를 수 밖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문득 바깥양반과의 이야기도 제법 글감이 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노래방에 앉아 토도독 폰으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글을 반쯤 썼을까, 노래방 시간도 끝났고 나는 걸으며 나머지 분량을 약간, 그리고 택시에서 글을 완성했다. 그렇게 바깥양반과 나에 관한 첫 글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수업 이야기도 미뤄두고 손 가는대로 몇 편을 더 썼다. 수업은 지나온 일에 대한 회고요 바깥양반과의 생활은 매일의 기록이니 글 쓰는 데에 품도 크게 들지 않고 쓰는 즐거움이 컸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번역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하고, 포항에 놀러갔다가 진미채를 사오는 길에 KTX에서 그와 관련된 글을 썼다. 진미채 글을 마치고 아직 기차 시간이 남아, 게임하고 있는 내게 바깥양반이 귤까서 먹여준 이야기도 폰으로 썼다.  수업 재구성 이야기는 한번 쓰는데 두시간이요, 첨부파일이 방대해 품이 많이 드는데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은 훨씬 수월하다. 결정적으로 그저 일기인 덕에 어디서나 쓸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화자인 나의 입장에서 글감이 되는 바깥양반 그리고 바깥양반과의 생활을 생채기 없이 써내는 것에는 상당한 고민이 수반되었다. 흉을 보려면 수십가지는 볼 수 있고 가공을 하려면 수백가지 조미료를 칠 수 있을 것이다. 살림을 대체로 책임지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사에 서투르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바깥양반의 생활은 트집잡기 딱 좋은 이야기 투성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이 신혼 일기에는 드러내기보단 감추고, 가공하기보단 정제를 위한 노력이 요구되었다. 덕분에 사실은 바깥양반과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대체로 화자인 나의 이야기가 글의 대부분이다. 


 그러다 하나의 글이 브런치 에디터의 추천으로 놀라운 조회수를 얻었다. 낮잠을 자다가 알람에 정신이 확 들었다.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하필 드물게 흉을 본 바깥양반의 편식 이야기라니. 어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기다리다가 또 하나의 알람을 보고 나는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야, 바깥양반 이걸로 5만 편식 달성했네."

"흥."

"그러게 스팸 말고 좀 고루 먹지."

"그럼 오빠가 메인을 못갔지."

"흥."


 바깥양반은 사실 내가 도저히 못할 초능력을 두루 발휘하고 있는 놀라운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감추어야 할 영역으로 남는 그녀의 사생활인 터에 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한다. 만약 우리 신혼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바깥양반이었다면, 나름 전문직인 그녀의 직장 이야기와 함께 수십가지 요리를 아침 저녁으로 해주는 남편이라는 꽤나 러블리한 소재가 나왔고 인기도 훨씬 많을 텐데 바깥양반은 글을 쓰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심심~한 신혼일기가 이어질 전망. 바깥양반과 나의 일상은 남에게 보여질 상품이 아니고, 타인을 위하여 일상을 가공할 마음도 전혀 없다. 마음의 주춧돌은 확고히 내 안에 있으니. 신중히 골라낸 이야기를 신중히 쓸 것이고, 누군가를 위해서보다는 나와 바깥양반을 위한 삶을 살고 나서, 괜찮다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바깥양반의 뜨거운 열정 덕에, 하루하루 이야깃거리는 끝없이 터져나온다. 어제 바깥양반은 당일치기로 인제를 다녀오셨고, 자기만 맛보실 수 없다며 황태를 한봉지 사오셨다. 놀라운 것은, 엊그제 밤 내가 공들여 황태해장국을 끓여놨다는 것이다. 20인분쯤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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