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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18. 2021

어떤 한 시간

세가지 기묘한 불운이 한꺼번에 날 덮친다!

"끝나고 원장님께서 잠깐 봐주실 거예요-."


 응? 웬일이지 원장님이라니. 단지 스케일링을 위해 치과를 찾았는데 원장 진료를 봐준다는 건 처음이다. 서비스인가-좋은 치과네 라는 순진한 생각을 호락호락 품어줄 수야 없지. 차분하게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장님이 척 앉으시더니, 예측한대로의 상황이 이어졌다.


"자 손거울...네 보시겠어요?"


 스케일링을 받은 의료기기에 왜때문에 손거울이 있었나 싶더니만 치위생사께서 내 손에 손거울을 집어준다. 그리고, 방금 10초도 안되는 사이에 슥슥 내 치아를 살펴보신 원장선생님께서는 손거울로 직접 보라며 내 좌 우 어금니를 짚어주신다.


"여기 아말감 옆쪽에 검거든요. 충치입니다. 금니 인레이로 하셔야 하고요."


 이야. 오늘 내가 화타를 만났구나. 15년 가까이 꼬박 1년에 한번씩은 스케일링을 받으러 다녔는데 스케일링 끝난 후 진료를 봐주시는 원장님도 처음이고, 5초에 하나씩 진단에 처방까지 끝내주신 선생님은 처음이다. 내가 이게 문제인가를 되묻자 한번씩 더 치아 상태를 보여주시더니, 치료가 필요하다고. 진단과 처방만큼이나 진료도 짧아서 더 설명을 붙이지 않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16,000원의 치료비를 내고 나왔다.


 보통은 이런 일은 글감이 되지 못한다. 정말로 화타일 수도 있다. 내가 치료가 필요한 일일 수도 있고. 그냥 친구들이 모인 톡방에 이야기를 전하고 웃어넘기며,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 두개를 포장해 바깥양반을 태우고 집에 왔는데,

 패티가 없다. 


 네?


 햄버거에 패티가 없다니 무슨 무도 못친소에 김범수가 빠지고 된장찌개에 된장이 빠지는 일이란 말인가. 햄버거라는 명칭 자체가 함부르크, 함부르크 스테이크에서 온 건데!? 나는 침착하게 방금 햄버거를 포장해 온 매장에 전화를 걸었다. 


"네 버거킹 XX점입니다."

"어 방금전에...기네스베이컨와퍼 사 간 사람이데요...패티가 없네요?"

"네?"

 

 나는 장난끼를 담아 소곤대듯 다시 말했다.


"패티가..."

"잠시만요."


 수화기 넘어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린다. 이따금 있는 일이긴 하다. 이런 게 버거킹의 묘미이기도 하다. 그때 재료를 추가할 경우 그때 새로 만드는 경우들이 있기 떄문에 매장이 바쁜 경우 재료를 왕왕 빠트린다. 이미 진작 두어번, 재료가 빠져 다시 받은 적이 있다. 바깥양반은 더블치즈버거를 먹으며 나에게 일단 그냥 먹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잖아. 패티가 없이 햄버거냐구 어디. 게다가, 패티가 없이 베이컨만 꼽아져 있는 햄버거는 심지어 맛도 없었다. 


"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네네."

"죄송하지만 어제 판매개시한 신상이라서, 레시피 숙지를 못한 것 같습니다."

"아하...네 괜찮습니다. 종종 그렇죠."

"저희 매장 가끔은 오시죠?"

"네?아아 네애."

"정말 죄송한데 혹시 존함을 알려주시면 매장 방문하실 때 다시 제작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 제가 그냥 지금 가서 교환하려고 했는데."

"아니요 그러시면 고객님께서 번거로우시죠. 적어놓을 테니 편할 때 방문 주십시오."


 점장님은 굉장히 정중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재방문을 요청했다. 나는 가서 교환을 받으려다, 일이 편해졌다 생각하고 통화를 마쳤다. 대신에 바깥양반이 학교에서 하나 남겨 온 김밥을 대신 먹기로 했다. 


 이 김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또 사연이 있는 것이, 오늘 재량휴업일이라서 내가 바깥양반 학교 교무실 선생님들과 나눠드시도록 사간 것이다. 내가 음료수 값을, 바깥양반이 김밥 값을 지불했다. 원래는 그냥 내가 간단한 크루아상 같은 간식거리나 커피류랑 사갈 예정이었는데, 동네에 유명한 김밥집에서 이왕 사오라고 바깥양반이 요청한 일이다. 


 내가 사다 준 김밥을 하나 또 챙겨서 가져오다니 그것도 별난 일이긴 하지만 그 김밥이 날 구원했다. 패티가 없어서 먹기 힘들어진 햄버거 대신에 방송까지 몇번 탄 동네 맛집 김밥이라니 인생사 새옹지마로구나. 하고 김밥을 탁 집어서 먹었는데.


 어. 맵다.


"바깥양반 이거 원래 이렇게 매워?"

"응? 그거 안매운 건데?"


 바깥양반은 평화롭게 치즈버거를 해치우시고 감자튀김을 쏙쏙 빼먹고 있다. 나는 감자튀김은 몇개 먹지도 못하고 김밥을 다시 입에 넣고는, 매운 맛에 콜라를 호로록 빨아마셨다.


"아냐 매워."


 꽤 맵다. 반건조오징어무침이 들어간 김밥인데 척 보기에도 고춧가루 양념이 김밥 안에 자작한 것이, 누가봐도 의심하지 못할 매콤함이다. 그러나 바깥양반은 감자튀김을 평화롭게 먹으며 다시 말했다.


"아까 주문할 때 다 1단계로 했는데."

"그래? 별일이네 거...아 맵다."

"오빠 원래 나보단 매운 거 잘 먹잖아. 우리 교무실 샘들은 다들 1단계는 싱겁다고 하는데?"

"이게 싱겁다고?"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다시 김밥을 맛봤다. 맵다. 아무리 생각해도 맵다. 저녁으로 먹었다간 다음날 아침 화장실에서 반복감상할 수 있는 매콤한 맛이다. 그러나 아침에 직접 주문전화를 건 바깥양반이 이리 말하니 내가 뭐라 더 보탤 수도 없고. 배는 채워야 하니 콜라를 벗삼아 김밥은 거의 다 먹어치웠다. 한줄 김밥이 그래도 배가 부르다. 


"하나 남겨봐 내가 먹어볼게."


 그때가 되어서야 바깥양반은 감자튀김을 거의 해치우고서, 김밥을 한줄 집었다. 그리고,


"아 매워!"


 라고...했다. 그럼 그렇지.


"1단계 아니지?"

"응 아니야. 어 이상하다 분명히 1단계만 시켰는데?"


 이것이 오늘 내가 4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정확히 1시간 동안 겪은 일들이다. 눈탱이를 맞아도 하루에 세번을 한시간 사이에 맞는 일이 또 있을까, 그것도,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설마했던 바깥양반이 나에게 고춧가룩 듬뿍 든 벌칙과도 같은 김밥으로 피니시 블로우를 날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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