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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23. 2021

삼합 먹고 우리 셋이 행복하자

이이이이이이이이조오오오오오옹혀어어어어어억!!!!씨 팬입니다.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이렇게…가 아니라…이이이이이이이조오오오오오오옹혀어어어어어어억!!!씨께서 출연한 어제 “해방타운” 방송을 보시더니, 바깥양반이 여수삼합을 주문하셨다. 여수삼합이라니 이런 맙소사. 게다가 친~절하게 첨부사진까지, 이렇게. 아니 저게 손이 좀 가는 게 아닌데…지난번에 만들어드린 삼합이 또 마음에 드셨나.

…가 어딨습니까 여러분. 임산부께서 하라면 하셔야지. 사실 이종혁씨 팬이다. 말죽거리잔혹사도 그렇고 우리 또래에게 이종혁씨가 워낙 호감이라서. 추노에서 참 멋있었는데 근래에 이종혁씨 나온 드라마를 내가 본 것이 없다. 아쉽구만. 재작년에 권상우, 이정현 씨와 셋이서 주연한 영화는 극장에서 소소하게 재밌게 봤는데. 어쨌든…회의가 있어 퇴근이 한시간 늦었다. 집에 오자마자 쌀부터 씻어서 밥을 짓고 저녁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나 저나 해방타운은 모처럼 또 바깥양반이 찰싹 정을 붙이고 보는 예능이다. 나는 바빠서 볼 짬이 잘 안나지만 어젯밤엔 바깥양반이 여러번 자지러지며 웃는 바람에 저러다 동백이 놀랄까봐 나는 노심초사. 아침에 TV에서 여수삼합 방송을 보고 그 자리에서 여수로 가더니만, 애먼 고창석씨까지 끌고가 하루 재밌게 노는 저런 모습에 대리만족도 제법하시고 임신으로 쌓인 스트레스가 썩 잘 풀리는 모양.


 또 동백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태동이 정말 활발해졌다. 바깥양반이 일에 집중이 안된다고 할만큼 하루 종일 뱃속에서 신나게 논다. 임신 초기에 혹시나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는 날들이 잘 흘러가 이제는 알아서 똑똑 엄마를 두들겨주니, 네가 효녀지 뭐니.


 그래서 장을 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나는 삼합이라는 메뉴가 새삼 참 정다워졌다. 우리도 바깥양반과 나 동백이까지 셋. 여수삼합에는 채소 고기 해물이 셋. 엄마가 전번에 해주신 갓김치는 다 떨어져서 여수 서타일은 아닐 거라고 바깥양반에게 말을 해뒀다. 갓김치는 아니지만 다른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전복과 낙지. 가격이 나쁘지 않다. 칫솔로 빠닥빠닥 열심히 문대보지만 이놈의 전복이 살아있는 놈들인지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주름살 사이 낀 때를 벗겨내지 못하게 아우성이다. 지지 않고 성실히 때를 밀어준 다음 낙지를 손질한다. 원래 낙지 머리도 잘 익혀서 멋으면 눅진한 고소함이 세상 별미인데 요새는 중금속 무서워서 먹지를 못한다. 머릿속 내장을 아낌없이 빼낸다. 알주머니도 보이는데. 아깝지만 과감하게 포기다. 홀몸들이면 모를까 혹시라도 알을 먹었다가 뱃속 아이에게 좋지 않을 수 있으니.

 미리 감자는 버터와 소금을 뿌려 조금 익혀뒀다. 사실 여수삼합이라는 게 가서 먹으면 보기에 즐거운 요리이긴 하나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건 아니다. 철판에 저렇게 재료를 같이 올려서 해물을 오~래 익혀봐야 좋을 거 하나 없다. 전복은 그나마 괜찮은데 오징어나 낙지 같은 생선은 오래 끓이면 물이 모두 빠져버려 치명적이다. 게다가 새우가 저기에 올라가서 좋을 것도 없어보이고. 그래서 나의 삼합의 컨셉은 가볍게 한소끔 볶아내서 바로 먹는 음식이다. 그게 삼합에 들어간 해물에 대한 예의다. 


 감자를 한번 뒤집어준 다음 양파를 반통 잘 썰어서 자리를 잡았다. 감자와 양파가 T자로 자리를 잡고 위 아래로 해물과 고기를 넣기로 했다. 300그램에 만원으로 할인가에 산 호주산 등심을 참기름 소금 간장 설탕으로 조물조물,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주물럭해 두엇다. 그러면 다른 양념을 더 하지 않아도 삼합 속에서 잘 어울릴 것이다. 벌써 50분이 지나 밥이 다 익어간다. 버너를 꺼내 식탁에 올리고 인덕션 렌지에서 후라이팬을 옮겼다. 이왕이면 볶으면서 바로 바로 먹으면 더 맛있겠지. 


 그리고 바깥양반이 주문한대로 버섯. 일단 팽이버섯을 올리고...올리고...

사진만 보실 분들이 계시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면봉으로 간장 찍어 쓴 글씨예요...

 이렇게. 새송이버섯을 칼질해서 간장을 면봉에 콕콕 찍어서 글씨를 써 내려갔다. 바깥양반의 리퀘스트와는 달리 애호박도 없고(수지 안맞아서 안샀음) 부추도 없지만(이건 순전히 까먹음. 살걸.) "돌문어 상회"라는 다섯글자 대신 한조각엔 수달(바깥양반 가정 내 직함), 동백, 그리고 오빠이기도 하고 아빠이기도 한 나까지. 삼합에 걸맞게 새송이 세 조각에 이름을 넣었다. 이쯤이면 괜찮지. 괜찮은 삼합이지. 굳이 위에 올릴 필요는 없을 테지만 버터도 이제야 조금 설어 올린다. 완성인가. 아침부터 여수바람이 들어 내게 이 고생을 시키신 이종혁씨 잊지 않겠다. 


"맛있어?"

"응 맛있어. 근데 뭐 쌈야채 없나?"

"...잠깐만."


 수제 명이나물 절임을 꺼낸다.


"쌈장도요."

"......"


 쌈장도 꺼낸다. 난 방금 사실 열무김치 덜어서 내고 앉아서 먹을 참인데. 


"음 맛있군. 많이 먹어."

"응 동백아 많이 먹자!"


 사실 아까 바깥양반은 식탁에 앉아마자 버섯 세조각을 보고 빵 터지셨다. 이정도 센스야 뭐. 그리고 부록. 두종류 버섯, 두족류 육수, 등심과 전복에 양파까지 두루 육수가 맛깔나게 버터와 함께 배어나오길래 바로 여기에 라면까지 끓여버렸다. 훌륭하다 훌륭해 동백아빠. 동백이도 삼합 맛나게 먹고 우리 셋이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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