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노인대학 교장이셨지.

그리고 평생교육에 대한 세가지 시선

by 공존

어릴 때 외가에 가면, 우리는 사촌형제들과 모두 집 뒤로 올라가 메뚜기와 방아깨비를 잡아와 다리를 뜯어냈다. 각자 두 손에 한마리씩을 들고 닭장으로 달려가 던져주면 눈 깜빡할 사이에 장닭들이 곤충을 먹어치웠다. 한바탕 뛰어놀았으니 출출하다며 저마다 손에 양철 국그릇을 하나씩 들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덩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산딸기가 간식이었다. 각자의 그릇을 순식간에 채워와서 수돗물에 씻어서는 고사리손을 약삭빠르게 놀렸다. 시큼한 산딸기의 과육과 아드득 씹히는 씨앗들이 여름의 더위와 허기를 날려줬다. 이어서 우리는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를 따서 설탕에 재워두고 가재를 잡으러 갔고, 한참을 물장구를 치고 놀다가 냉장고에서 차게 식은 토마토의 달콤한 맛을 즐겼다.


태안의 작은 산 속, 일대의 땅과 집을 사서 노년을 보내시던 외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하시거나, 밤나무밭, 토마토밭, 어성초밭 등을 돌보는 한편, 낮에는 대체로 집을 비우시는 일이 많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타 다녀오시곤 했는데 종종 말끔하게 정장을 입고 다녀오시는 일도 있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노인대학 교장이란 것을 안 것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고 몇년 지나서였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여러 직업을 전전하셨다. 외할머니와 함께 8남매를 낳아 6남매를 기르셨고, 젊으실 땐 목공소를 하시거나, 교회에서 목사로 생활을 하기도 하셨다. 어린 아들에 이어 딸을 잃고는 주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며 종교를 버린 이후로도 성실히 일해서 어린 시절 외가는 꽤 넉넉했다고 한다.


그런 외할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키고 나서는 노동을 줄이고 공부를 시작하셨다. 원래 목사 생활을 한동안 하실 만큼 박식하시기도 하셨지만, 노년에 한학과 동양철학을 공부하시면서 사고를 사서삼경으로 채우셨다. 외할아버지 방에는 공부를 하시고 쌓아둔 노트가 수십권이었다. 엄마는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된 뒤에도 사람된 도리를 다 하라시며 날 외가로 꿋꿋하게 보내셨고, 난 이제는 손주들도 각자 독립해 천천히 비어가는 외가에 혼자 덜렁 가서 4,5일씩 묵고 오곤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었을까, 외할아버지는 이제 한자공부를 제대로 하라시며 한자노트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주시기도 하셨다. 나는 아직 이만큼 붓글씨를 쓰지 못하고, 그리고 한자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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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학 교장이라는 직함에 대해서 외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묘한 표정을 지으셨다. 당시에는 웃음의 의미도, 노인대학 교장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짐작을 해 본다면 그것은 뒤늦게 공부를 해서 깊이 있는 학문을 일구셨고, 그것이 태안 시골에서는 노인대학의 교장이라는 당신 생각에는 남부끄러운 직함을 달게 된 것이 조금 재미난 일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은 아닐까. 내 짐작이 옳든 그르든, 외할아버지께서는 수년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노인대학 교장 일을 하셨다.


이제 교육 이야기를 해볼까요.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 1 : 산업사회와 미성년 노동, 그 그림자

"평생교육"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주름이 제법 잡히고 안경을 끼거나 파마를 하고 모인 노인 분들이 교실에 모여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려서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교육의 꿈을 뒤늦게 이루는 풍경. 저의 외할아버지께서 교장으로 다니셨던 노인대학 혹은 노인교실이, 평생교육에 대해 우리가 흔히 갖는 한가지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입니다.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초등학교만 겨우 나오고는 공장으로 들어가 가족을 부양하는 형과 누이의 사연들은 실제로 우리 사회가 함께 갖는 공통의 기억이고, 명확히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의 일부죠. 산업화 초기, 잠을 쫓기 위해 각성제를 먹고 출근해 하루 열다섯시간 이상 일한 그분들의 희생이 종잣돈이 되어 우리 국가가 자본을 축적하고, 투자를 받아, 중공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세대에게 공부란 평생의 한이고 노인이 되어 하는 공부는 빼앗긴 젊은 시절의 회한일 수 있겠죠. 그러나 그분들의 공부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그리 크지 않기에, 그 의미에 대하여서는 사회적으로 중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선진국의 대열로 들어선 1990년대부터 노인 교실들이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으나, 6,70세의 노인들이 한글을 배우는 풍경에서 우리가 "교육의 가치"를 읽어내긴 쉽지 않겠죠.


그래서 우리가 발견했던 평생교육에 대한 첫번째 관점은 긍정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전태일과 <국제시장>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은, 가슴 아픈 산업화 초기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가 함께 성찰하지 못하였거든요. 그 댓가로 그 세대의 노인들이 나이 먹고 고작 한글이나 깨치기 위해 하는 공부에 대해서 "가난"을 투사하고 "무지"를 투영하곤 하지요. 현재로서는 그나마 우리 산업화 초기의 노인 세대들 중에 공부 못해 겪었던 서러움을 뒤 늦게 보상받는 그 풍경도, 지나치게 먼 기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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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에 대한 관점 2 : 경기불황과 강요된 평생학습

IMF가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꿨습니다.


우리가 이때까지 가졌던 평생교육의 이미지가 노인이 되어서 공부를 시작하는 낭만적 모습이었다면, IMF 이후 급격히 변화한 노동환경 속에서 부장님도 과장님도 새벽 영어학원을 수강하고, 승진을 위해 영어 점수를 따는, 강요되고 강제된 평생학습이죠.


IMF는 국민들의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꿨습니다. "노인대학"은 국가 주도로 복지정책 차원에서 추진되었던 사업이라면 "승진 경쟁을 위한 교육투자"는 시장 주도로 개인의 경쟁과 생존의 문제죠. 승진을 계속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잉여인력으로 취급받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권고사직이라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나 자신의 몫이죠.


현재 학부모 세대는 누구도 이 평생학습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물며 자영업자조차 백종원 대표 같은 사람이 나타나 "연구하세유!"라고 다그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요식업도 목 좋고 요리 잘하면 돈이 벌리는 사업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수십가지 어플리케이션, 인터넷 포털 댓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등을 공부하고 투자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첫번째 관점이 우리 부모 세대들에 대한 낭만적이고 가슴아픈 풍경이었다면 평생교육에 대한 두번째 관점은 급격히 불어닥친 산업구조의 개편, 좁아진 일자리, 격렬한 생존경쟁으로 인해 강제된 스트레스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엄마 아빠처럼 고생하기 싫으면 공부해!" 평생학습이 싫은 사람들은 그리고, 노량진으로 몰려갑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 3 : 정보지식산업사회와 고령화사회

IMF가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을 한번 바꾸었다면, 또 한번 평생교육에 대한 관점을 바꾼, 아니 처음으로 되돌린 것은 이제 완전히 한국사회에 정착한 정보지식산업사회입니다. 제 4의 물결이죠.


여기서 먼저 이 세 단계에 대해 먼저 의문을 풀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인대학, 직장인 학원, 그리고 지금 말하려는 정보지식...4차 산업혁명이 평생교육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까요?" 네 됩니다.


교육은 국가산업발전의 동력인 노동자들을 공급하는 핵심 수단입니다. 각 나라는 저마다의 산업구조에 맞춘 인적자원을 생산하기 위해 교육제도를 정비하고 그에 맞추어 국가 예산을 투자합니다. 교육은 국가의 최중요 과제 중 하나임과 동시에 국가사무 그 자체이기 때문에, 국가의 산업경제환경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되지요.


교육, 그중에서도 평생교육은 우리 국가의 경제환경과 산업구조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국가경제가 마구 성장하던 8,90년대까지는 대학만 나왔으면 취업이 되었으니 평생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죠. 그래서 그 당시에 교육의 의제는 오로지 대입이었습니다. 실제로, 전두환 정권은 그런 의제를 반영해 대학 정원을 대폭 늘린 바 있습니다. 당연히 IMF 이전에는 평생교육이 소수 노인들 이외에는 관심을 가질만한 문제가 아니었고 실제로 정부 정책으로도 그랬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처음으로 평생교육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노무현과 이명박 정권 시기까지 평생교육은 여러 모습으로 변화하며 원래의 틀은 유지됩니다.


문제는 이것이죠. 학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노인대학"으로 상징되는 평생교육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인식"을 먼저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쟁사회"라고 하는 평생교육의 "현실" 속에서 스스로가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겪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평생교육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평생교육에 대한 세번째 관점입니다.


한국사회가 고령화사회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정보지식산업의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릅니다. 이 점 또한 스스로 체감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라는 개인미디어를 가지고 우리 세대가 상상하지 못했던 막대한 양의 정보를 이미 활용하고, 그것을 고유의 정체성으로 형성하며 자라나고 있습니다.


아마도 현재의 청소년 세대는 우리가 평생교육이란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스마트폰을 조작하고 각종 어플을 활용하는 경험 속에서 훨씬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나름의 "공부"라는 것을 하고 자라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공부라고 스스로 인식조차 하지 않고 말입니다.


몇해전부터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훌렁훌렁 여행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목격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친구들과 다 같이 스키장을 가보는 것이 최대의 낭만이었던 저의 경험을 생각하면 상전벽해죠.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검색만으로 딱딱 식당을 찾아내고 여관을 예약하고 외국인과 대화를 합니다. 인스타그램이 아이들의 여행엔 효자효녀죠. 동기부여의 막강한 기회를 열어줍니다.


미래의 교육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모할지는 모릅니다. AI를 교육에 적용해 인간의 학습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교실과 칠판, 연필과 노트가 아니라, 뇌에 직접 신호를 보내 지식을 주입하고 암기시키는 기술이 아이들의 생애에 등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기술을 누구나 평등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세상이 오기까지, 대학과 생존 경쟁에서 뒤쳐지면 안된다는 불안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겠지요. 네. 그에 대한 답변은 저마다의 것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학부모들이 갖고 있는 평생교육에 대한 "노인대학""인식". "경쟁사회""현실"과, 아이들이 실제 살아가고 경험하고 있는 평생학습사회의 "경험"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입니다.


분열된 시각은 분열된 행동을 낳는다

아이들에게 삶에 대하여,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스스로 그 답이 정답인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정말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그것과 같을까요?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공부"가 아닌 것일까요? 우리는 그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까요?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잠시 다시 해보겠습니다. 저희 외할아버지의 경우 한글을 공부하는 수준은 진작 넘으셨죠. 사서삼경을 놓고 한학을 공부하고 산을 누비며 풍수까지 공부하셨으니까요. 강제와 강박도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노년에 땅을 조금 사 산에 들어가서 안분자족의 생활을 하며 공부를 하신 것이니까요. 그 나이에 노인대학 교장이 목표가 되셨을 리도 없고 사시 패스를 하실 것도 아니니까, 온전한 학업의 욕구. 그것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그저, 공부가 좋아서 하신 것이고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고 세상을 보는 참된 인식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신 것입니다.


저도 공부가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매거진 글이 한 일주일만에 작성된 것도, 평생교육 관련 논문을 스무개 정도 뽑아서 보느라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데 당장 평생교육으로 제가 시험을 볼 일도 없고 굳이 논문을 스무개나 볼 필요까진 없을 테지요. 쉽게 대중적으로 교육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주 목적인데 스무편의 논문은 과도한 양입니다. 그런데 그냥 봅니다.


그러나 "교육"에도 "공부"에도 "평생교육"에 대해서도 분열된 시각을 갖고 있거나,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모습이 초라하다거나, 아이들의 미래의 공부에 대해서 지금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서 판단을 하려 드신다면, 그러한 학부모의 태도는 아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악영향을 말이죠.


아이들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세대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유튜브 생방송에선 시청자들이 방송인들에게 후원금을 보내주면 즉시 그에 대해서 감사의 표현을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 그에 이어지는 반응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으로 아이들에겐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부모들이 갖는 공부에 대한 분열적인 태도는 바로 리액션의 대상이죠. "아빠는 공부 해?" "엄마는 책 읽어?" 이런 질문, 어떠신가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는 고작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그렇게 변했고 우리 나라의 산업구조가 그렇게 변모했습니다. 초중고 12년을 공부 시키고 나서도 영어 학원, 공무원 학원, 유학 학원 등등.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들어서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취업하고 나선 공부가 끝이 나나요? 언제쯤 이 긴 경쟁이 끝이 날까요? 끝나지 않습니다. 아마 운이 좋아 60대에 퇴직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아마도 그 뒤에 자영업을 시작해야 하고, 변함없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우리 아이들에게 닥칩니다. 평생공부를 좋든 싫든, 아니면 자연스럽게든, 해야 하고 하게 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대학만 가면", 혹은 "취업만 하면" 이라는 약속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나이를 먹고 공부하는 꼴이 부끄럽거나 구차하다고 거부하고 계시진 않은가요? 현실과 맞지 않은 자녀교육입니다. 아이들의 공부의 종착점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부모의 재촉에 끌려다니면서는 평생교육을 위한 자발성은 육성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킬 수 있는 세상도 이제 끝났습니다. 권위에 무감각하고 소통에 민감한 세대입니다. 아이의 평생교육과 나의 평생교육을 통합시키는 방식으로, 학습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작고하신 외할아버지를 제가 평생학습의 롤모델이자 동반자로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의 부모 세대가 가졌던 부끄럽고 안타까운 평생교육의 경험, 우리가 그토록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이 고통스러운 평생학습의 스트레스로 아이들의 공부를 규정하거나 바라보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산업환경과 학습환경을 토대로 아이들이 평생 스스로 공부를 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길러주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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