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를 때 아이는 무엇을 느끼는가
2017년도에 기회를 얻어 5일간의 싱가포르 교육시스템 연수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싱가포르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알려진 편인, 세계 최고급의 선진교육 시스템을 갖춘 나라이며 그것은, 자원도 영토도 없는 비좁은 도시국가가 아시아 무역의 교두보로서 생존하는 방법으로써 인적자원에 적극 투자한 결과인 것이죠.
실제로 저희들이 방문한 학교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물론 싱가포르 정도 부국에서 교육체계가 잘 갖춰진 학교를 찾는 것이 어렵겠습니까만은, 실제로 학생들이 고도의 사고와 인지기능을 발현하고 있는 것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작업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싱가포르의 핵심인재들이 얼마나 강력한 국가경쟁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의 소위 명문고등학교들은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영미권의 명문대에 진학이 예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삼고 있으며, 국제금융의 요지인 탓에 학생들도 수월하게 어린 시절부터 다문화적 풍토에서 세계시민의식을 키우고 있게 될 테지요. 게다가 그 나라에서 최고의 교육시스템의 수혜를 받고 있으니, 우리가 선망하는 아이비리그의 즐비한 명문대에 학생들을 진학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닌 것으로 보였습니다.
고등학교가 끝이 아니겠지요. 초등학교에도 가보았습니다. 싱가포르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써 중학교에서부터 계층화 서열화된 교육과정으로 학생들이 갈라지게 됩니다. 중학교 입시 재수생이 발생하는 일도 허다할 정도고, 중학교 입시 실패에 비관해 자살을 하는 일도 있다고 하네요. 그런 정도의 사실은 알고 갔기 때문에 초등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지만, 실제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보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싱가포르에서 매년 7월 21일을 정하여 기리는 "인종화합의 날" 활동 사진입니다. 싱가포르는 인도계, 말레이계, 중국계 세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인데 워낙 좁은 나라이다보니 이들이 도시 곳곳에 복잡하게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게다가 본래 말레이시아의 영토였기 때문에 다수 인구를 차지하며 정치 경제적으로도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계가 다른 민족과의 화합을 도모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이지요. 그런 덕에 매우 적극적으로 인종화합을 강조하며, 학교에서도 이를 교육으로써 실천하고 있습니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날이 인종화합주간이었기 때문에 교실에서는 다양한 활동물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벽마다 위 사진과 같은 활동물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고, 모둠으로 이루어진 책상마다 학생들이 영어 연극 대본을 연습하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화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히잡을 쓴 아이, 흰 피부의 화교, 남자 아이 여자아이가 골고루 섞여서 함께 영어 연극 대본을 외우고 있었고, 그들은 우리 교사들의 질문에도 척척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말이죠.
교실에서 싱가포르의 다양성 교육, 그리고 우수한 교육수준에 깊은 감명을 받고 교정을 둘러보며 그러나,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맞이하여 세미나실로 들어가 학교의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교장과 교사진은 누구 하나 차별없이 흰 피부의 화교였습니다. 싱가포르의 지배계층을 형성하고 있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피부가 섞여있었죠. 그들은 차별 없이 교육받고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더운 날씨에 복도에서 땀을 흘리며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은 모두 진한 피부의 인도계 남성들이었고, 급식실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은 모두 말레이계 사람들이었습니다. 교사들은 흰 피부의 중국인들, 고강도 노동직은 인도계 남성들, 중강도 노동직은 말례이계 사람들로 명확하게 피부색으로 구분이 가능한 이 학교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인종화합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인지부조화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교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종화합교육에 대한 크나큰 불신에 휩싸였죠. 매일 매일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인종화합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싱가포르는 독재정권이 수십년째 이어지면서 고도성장의 그늘에 여지없이 노동자들은 신음하는 사회입니다. 그리고 높은 교육열과 교육수준에 학생들의 고통이 매우 높은 사회지요. 일제고사 한번에 우수수 나가떨어진 아이들은 하위직으로 도태되어 다시는 출세의 사다리를 밟지 못합니다. 그 사다리는 대체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다수와 상위계층을 형성하는 중국인들에게 유리하게 배치되어 있죠.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아이들도 한 두 해 뒤에는 완전히 갈라져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교육과 경제구조로 인하여 인종 화합을 넘어선 장벽이 큼직 큼직하게 늘어서 있는 것이죠.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은 인종화합을 어떻게 인지할까요?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이 판이하게 다를 때,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공부해!"
위 그래프의 X축, 가로선은 연령입니다. 세로선, Y축은 고등문해력, 즉 학력입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인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교육열에도 불구하고...어라 일단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리 높지도 않네요? 그리고 20대 초에 정점을 찍어 가파르게 하강곡선을 그립니다. 북유럽의 선진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과도 비교가 안되네요. 어째서일까요? 라는 질문은 잠시 미루어두겠습니다. 아주 긴 이야기니까요.
쉽게 말하자면 이 그래프는 우리나라 성인들의 낮은 독서율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우리나라 성인들이 1년에 책을 한두권 밖에 읽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일본의 경우 성인 독서율이 아직 높습니다. 인구가 1억이 넘으니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여 출판시장이 굉장히 잘 유지되고 있죠. 만화책과 소설책을 함께 읽은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만화책과 소설을 함께 읽으며 독서습관을 유지합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왜 읽지 않을까? 라는 질문은 잠시 미루어두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부해!"라고 외치는 학부모님들, 독서를 하고 계신지요? 공부는 하고 계실까요?
제가 싱가포르의 초등학교에서 발견한 교육과 현실의 괴리는, 다수의 학생들에게서 쉽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공부하라고 말하며 아이와 책을 읽지 못하거나, 책읽기를 넘어서서 아이와의 "공부대화"를 해내지 못하는 학부모들은, 곧 아이들에게는 인지부조화로 다가오지요.
굳이 학부모들의 독서량과 학습태도를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고작 10살무렵부터 수차례의 인지부조화를 겪게 됩니다. 아는 것과 보이는 것이 충돌하며 그 부모의 말에서 신뢰를 잃게 되지요. 무엇이든 잘한다고 칭찬하던 엄마 아빠가, 갑자기 시험 성적표 하나에 극도로 민감해집니다. 남들보다 반년은 늦게 걸어도, 남들보다 1년은 늦게 말을 배워도 마냥 기다려주던 이들이 아이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경쟁에 내몹니다. 아이들입장에선 자신들의 모든 인지의 바탕인, 평생의 부모와의 양육관계가 모두 부정되는 경험들입니다.
아이는 성장을 하고 옆집 부모들은 학원을 돌리고, 부부 자신들은 맞벌이에 살림에 바쁘디 바쁜 터이지만 딱 그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부모라는 거울로부터 공부하는 모습이 비치지 않으니, 아이들은 더욱 부모를 불신하고, 공부를 불신하게 되죠. 타고난 기질로 밖으로 도는 아이도 있습니다. 조직화된 생활습관이 자리잡지 못하여 예습 복습은 커녕 숙제도 잘 하지 않는 아이도 있죠. 제가 그 케이스였습니다만, 아이의 성품이 완성되기 전에는 이처럼 다양한 행동특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양육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교사의, 일관된 “공부 시그널”은 장기적으로 아이의 공부습관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것이 아이들의 세계를 무너트리지 않고 유지하는, 부모와의 관계를 여전히 신뢰하고 그 신뢰관계 속에서 부모의 메세지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길이니까요.
네 공부해야 합니다. 책을 보아야 합니다. 교사인 저나, 학부모인 독자님들이 말씀이죠. 공부하라는 말에 아이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만드는 가장 중요한 핵심열쇠죠.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아이와 공부대화는 가능합니다. 아이 수준의 책을 읽으며 길잡이를 해주면 되니까요. 관련한 책이 수십권은 서점에 있습니다. 아이와 영화를 보고, 혹은 어린이연극을 보고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을 나누어줄 수도 있죠. 역시 그런 대화법 책에 다 나와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뻔한 일을 굳이 하지 않았을 경우에 아이가 얼마나 심대한 의심을 갖게 되고 공부 자체와, 부모님들의 공부 메세지에 대해서 불신을 갖게 되는가를 알아주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싱가포르의 초등학교에서 느꼈던, 피부색에 따라 갈려진 학교풍경과 교실의 부조리만큼이나 큰 충격을 아이들은 고작 여덟아홉살에 경험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