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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6. 2020

바깥양반은 부먹이더라

결혼 30개월차, 처음으로 중국집을 시켜먹었다.

 "바깥양반. 안되겠어 중국집 시켜먹어야 속이 풀릴 것 같아."

 "어 그러자 나도 말하려고 했어."


 다시 대청소 이야기를 하자면, 이틀째 대청소를 하며 나는 피로감과 어떤 해소되어야 할 것만 같은 욕구를 느꼈다. 아침은 새 김치와 여러 신선한 야채를 함께넣어 볶은 김치볶음밥. 대충 차려먹지 않는 끼니가 나에게는 외출을 할 때 바지 지퍼를 확인하는 것이나 햇살에 얼굴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선크림을 바르는 것 정도의 일이다. 당연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


 그런데 이 대청소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옷장 서랍까지 모두 뒤집어서 버릴 옷, 버릴 책, 살릴 옷, 남길 짐 등을 정리하려니 몸도 고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적지가 않았다. 바깥양반의 책들을 나누고 나니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 대청소에 알맞춤한, 이틀의 노고를 보상받을 수 있는 작은 사소한 행복 정도.


 마침 이틀 전 토요일, 조카의 생일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날 먹은 매운 간짬뽕과 탕수육이 꽤 맛이 좋았다. 누나 동네 유명 맛집이라는데 젓가락을 대기 전에 이미 음식에서 풍겨나오는 강한 냄새로 얼마나 맛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풍미가 좋았다. 그만 과식을 해서 토요일에 집에 와서 고생을 좀 했다.


 다만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바깥양반에게 탕수육을 많이 먹었냐고 물어봤는데, 조카들도 있고 사람이 많아서 자긴 몇조각 먹지 않았다고 말한다. 유명한 중국집에 가면 탕수육을 꼭 시켜보는 바깥양반의 취향을 알고 있으니, 좋아하는 음식을 굳이 먹지 않은 성정에 대해서도 좀 보답은 해야하겠고, 조만간에 탕수육은 먹을 생각이기도 했다.


 짜장면은 누구나 그렇듯 나도 좋아한다. 특히 나는 술 안주로 중국요리를 먹는 걸 좋아한다. 풍미가 강한 음식들이니 소주의 역한 냄새를 지우기도 좋고 그냥 그 자체로 워낙 맛이 있어 좋아한다. 그러나 집에서 밥으로 먹는 선택지는 별개다. 중국집에서 굳이 짜장면을 시키지 않아도 집에서 얼마든지 배달 짜장면보다 맛있는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짜장라면+돼지고기+칵테일새우+감자+대파+양파

 파를 한주먹 썰어서 고추기름에 볶다가 돼지고기 아무 자투리 부위나 대충 썰어서 볶다가, 짜장라면 하나를 뜯어 면을 삶으면서 파와 고기를 볶은 냄비에 스프들을 풀고, 굴소스 두스푼. 그리고 볶는다.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 간짜장의 맛을 즐길 수 있는데, 여기에 계란 후라이를 올려도 되고 면을 삶기 전에 감자를 미리 삶아서 감자 짜장을 먹을 수도 있다. 다만, 멋대로 양이 늘어나버려서 짜장라면 1인분이 2인분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한두번 했다. 신이 나서 재료를 들이부은 탓이다.  


 그런 나의 짜장라면 레시피를 바깥양반도 꽤 반갑게 먹는다. 탕수육도 간단하게 해 먹곤 한다. 역시 대충 썰어낸 돼지고기에 적당량의 물, 적당량의 튀김가루를 버무리고 굴소스를 두 스푼. 이걸 그대로 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루고 볶는다. 엄밀히 말하면 탕수육은 아니지만 튀기는 요리는 기름도 많이 들어가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두툼한 고기이므로 볶는데 시간이 걸리니, 대충 밀가루옷이 코팅되었다 싶으면 이 때 썰어둔 대파를 넣어 볶는다. 깐풍기를 돼지고기로 만든 비주얼이 대강 나온다. 아침식사로 자주 해먹던 요리다. 요즘은 볶고 튀기는 요리를 줄인 터라, 내가 꽤 좋아하는 간단한 하우스레시피임에도 불구하고 맛본지가 오래되었다.


 신혼 초에 집들이로 크림새우도 만들어먹고 굴소스와 대파면 어지간한 중국느낌나는 집밥을 만들 수 있기에 여지껏 중국음식을 한번도 배달시키지 않았으나 오늘은 별개다. 수고했어 어제도 오늘도. 오늘은 나 자신과 바깥양반을 위해 작은 선물을 해보자. 간짜장과 탕수육 세트를 시켰다. 현관문 쪽에 산더미같이 쌓인 각종 여러가지 분리수거된 쓰레기들을 한번 버리고 올라와, 배달음식을 맞을 준비까지를 마쳤다. 땀을 흘려서 배가 딱 고프다.


"부어?"

"응 부어."

"헐. 부먹이었어?"

"응 아아 더 부어 더 부어 소스 부족하잖아."

"헐...나 찍먹인데..."


 중국집 사장님은 책더미, 옷더미 등등 아직 난장판인 거실을 어리둥절하게 둘러보시며 음식을 놓고 나가셨고 우리는 청소 덕에 말끔해진 식탁에 앉아 음식들을 펼쳤다.


"왜 간짜장은 하나만 시켰어?"

"야 우리가 면 두개 탕수육 하나 시키면 다 먹냐. 아...근데 간짜장 별로네 여기."


 간짜장이 별로다. 볶아진 제대로 된 간짜장이 아니라, 짜장면 소스와 큰 차이가 없다.


"아 간짜장 맛있는데 옆에 있잖아 거기서 시키지."

"뭐...이럴 줄 알았나 여기도 맛집이라면서. 먹자."


 그런데 탕수육이 참 괜찮았다. 고기가 두툼하니, 내가 예전에 일반적으로 시켜먹었던 탕수육이 아니다. 물론 최근에는 탕수육이든 짜장면이든, 대략 맛은 보장된 곳들을 찾아가서 먹는 편이니 맛 없게 먹는 일도 많지 않긴 하다. 배달음식의 대표종목이었던 중국집들이 다른 배달음식과 경쟁을 하며 여럿이 도태되고, 생존자들은 품질을 지속적으로 높여온 탓일 것이다. 배달음식으로 이 정도 괜찮은 탕수육을 맛볼 수 있다니, 좋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도락가라면, 부먹이든 찍먹이든 탕수육을 그냥 먹지는 않는 법. 간장종지를 하나 내서 간장에 식초, 고춧가루를 적당량 배합해서 탕수육소스와 함께 간장을 찍어먹어야 하겠지만 마침 우리집엔 엄마표 집간장 뿐이다. 게다가 대청소 과정에서 식초도 사둔지 오래되어 버려버렸다. 어쩔 수 없지. 간장을 포기하고 소스만 푹 적셔서 먹는다.


"맛있네 탕수육은."

"소스 별로야."

"뭐? 부먹이라며? 소스 좋아하는 거 아냐?"

"아냐. 나는 덜 진하고 좀 하얀 소스 좋아해. 여기 너무 달아."

"흐응..."


 바깥양반은 조금 투덜대면서도, 탕수육을 야물딱지게 배어물었다. 두툼한 탕수육은 담백하고 깔끔한 맛.


 대청소로 밥 때를 놓쳐, 늦은 아침에 이어서 오후 네시 무렵의 늦은 점심식사였다. 조금 뒤에 물으니 바깥양반은 이게 저녁이니 뭘 더 차리냐며 내게 말한다. 나도 그만 저녁 생각은 잊었다. 밤이 되어 출출해서 사탕만 여럿 축냈다. 대청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정말로 훤해진 거실에 편안히 누워서 쉴 수 있었다. 이틀 내내 바깥양반이 광합성을 하지 못해서 우울해 한다. 내일은 뭐 해먹지. 일단 지난주에 끓여두었던 국을 해치우고 된장찌개라도 하나 끓여야겠다. 그 된장. 엄마가 쑨 집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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