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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2. 2020

24000원으로 집들이 한 사연

그래놓고 사진 한장을 안찍어?

 언제나처럼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오빠 다담주 토요일에

- 응.

- 나 첫 직장 친한 언니네 두 커플 집으로 초대했어

- 응?

- 오빠 요리 칭찬을 많이 했더니 너무 궁금하다고

- 응?

- 여기 언니들 요리 잘 못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해줘

- 응?


 바깥양반이 첫 직장 동기들과 오랜만에 만나더니 어쩌다가 내 요리 이야기가 나왔고, 어쩌다가 바깥양반은 그들을 집으로 초대까지 해버린 모양. 당연히 바깥양반과 나의 생활에 이런 문제야, 통보만 되면 그만인 것이고 그날 집에 와서 다른 두 커플들의 사연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길 들으며 천천히 생각을 했다. 집들이인가. 오랜만인데. 한 커플은 결혼을 한지 제법 오래되었고, 여행을 좋아한다. 다른 한 커플은 만난지 100일 정도 되어 결혼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성실하게 일만 하고 살아온 사람이라서 요리는 서툴다고.


 집들이도 오랜만이고 그래도 바깥양반의 첫 직장 동기들이라 소중한 인연들이니 뭔가 좋은 요리를 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몇일 정도 고민을 했다. 나에게 있어서 타인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나의 취향을 선물하는 것이다. 책이든, 차든, 다른 무엇이든 딱히 받는 사람의 성격을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뻔뻔하게 "자 이런 것도 즐겨봐. 하고 던져준다." 군대 가기 직전에 한 1년 간 의미있게 읽은 책들을 친한 후배 여럿에게 뿌렸는데, 그들이 책 선물을 받고 어떻게 생각했을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요리도 그런 식이다. 상대방들의 취향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와서 내 멋대로 챙긴 음식을 알아서들 맛있게 먹고 가주면 그만.


 그리하여 어느 볕 좋은 토요일에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장을 보러 갔다. 계획은 세워두었고 시간도 넉넉하다. 오늘 차릴 음식은 6인분. 마트에 가서 산 것은 9900원짜리 딸기 한상자, 7900원짜리 돼지 앞다릿살, 2000원짜리 새싹샐러드, 3800원짜리 크림소스. 끝. 끝? 끝이다. 다만, 마트 매대에 라이스페이퍼가 없다. 집에 라이스 페이퍼가 넉넉히 있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설마 국수는 있겠지.


 첫번째 메뉴는 뇨끼다. 이탈리아식 감자떡이라고 해야 하나. 바깥양반이 사줘서 처음 먹어봤는데 이 음식을 내가 만들게 된 계기가 웃기다. 맛은 있었는데, 호기심이 들어서 검색을 해보니 지금 먹고 있는 요리가 어딘지 식감이나 그 풍미에서 감자의 느낌이 확 살아나는 것이 아닌 기분이었다. 극소량의 밀가루만 들어가고 감자를 최대한 살려서 만든 요리라면 분명히 그 포실포실한 느낌이 살아야 할 텐데.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을 갔다왔는데, 화장실 앞 수납장을 보고 허탈하게 웃고야 말았다. 선반에 떡하니 감자전분가루가 놓여있던 것이다. 아하. 생감자 함량이 높지 않았구나. 단박에 눈치를 채고 조만간에 만들어봐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 뒤로 두어번 집에서 바깥양반에게 뇨끼를 해 주었었는데 첫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다. 내가 바로 그 식당처럼 밀가루 떡을 만들어버렸다. 뇨끼에도 계란이 들어가는데, 감자를 뭉쳐서 떡처럼 작은 조각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밀가루나 전분과 함께 소량만 넣는다. 그런데 그만! 계란 하나를 다 까넣어버린 것. 신혼 초기에 그런 생각없는 실수를 많이 했다. 시행착오를 겪고 그 뒤에 두 번 정도는 제법 먹을만하게 만들어냈다.


 뇨끼를 만드는 건 쉽고 재밌다. 다만 시간이 걸리고 솜씨가 필요하다. 쉬운데 솜씨가 필요하다니 뭔가 앞뒤가 안맞을 수도. 그러나 실제로 재밌는 건 사실이다. 우선 감자를 찐다. 미국산 감자가 좋다. 우리나라 감자는 미국감자에 비해 찰기가 있어서 포실포실한 느낌이 적다. 그러나 오늘의 집들이에서는, 객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따로 감자를 살 여유까진 없어서 마침 냉장고에서 푹 쉬고 있던 국산감자 일곱알이 사용되었다. 마트에 가기 전에 미리 삶아서 습기를 말리기 위해 꺼내두었다. 집에 오니 제법 수분은 날아가 있었지만, 최상의 상태로 요리를 하기 위해선 최소한 반나절, 습기가 "말끔히" 날아갈 정도가 가장 좋다.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해야할 부분. 맛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겠지만.


 감자를 다지며 소금 약간, 후추 약간, 계란 하나를 까 넣고, 전분을 소량 넣었다. 감자가 퍽 많으니 계란 하나를 다 넣어도 괜찮겠다 생각을 했지만, 그게 최상의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대비를 해 두었다. 오늘 뇨끼는 부실한 감자의 함량을 감추기 위해서 크림소스를 끼얹을 것이다. 파마산 가루를 더해서 감자가 완전히 다져지도록 고루 섞은 뒤에 찰기를 조절하며 전분을 더 넣었다. 많이 넣진 않았을 거야. 이정도면 괜찮다. 이정도면 괜찮다. 어느 정도 합리화를 하며 반죽을 간신히 뭉칠 정도로만 전분을 조절한다. 음, 괜찮은 비율인듯하다.


 도마 위에 밀가루를 수북히 뿌려서 반죽을 밀 준비를 하고 뇨끼반죽을 가래떡 처럼 뽑아서 동전 크기로 떼낸다. 냄비에 물을 올려서 팔팔 끓이면서 순발력있게 후딱후딱 반죽을 떼는 동시에 냄비에 삶아낸다. 오늘 할 요리가 많다. 시간은 아직 넉넉하지만 서둘러야 한다. 지금 뇨끼를 삶아낼 작은 솥 옆에선, 돼지고기를 한다발 넣은 솥이 팔팔 끓는중.


 한번 데친 뇨끼를 냄비에서 건져내고 다음 한 무더기를 투하, 다시 건져내고 한 무더기를 투하하는 일을 서너번 반복해서 냉면그릇에 적당히 찰 만큼의 뇨끼가 나왔다. 좀 많은가 싶었지만, 입이 여섯이다. 에피타이저지만 양은 넉넉해야 한다. 냄비를 치우고 후라이팬을 올려 버터를 녹인다. 삶아낸 뇨끼를 버터에 구워낼 차례다. 이것이 뇨끼가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감자를 뭉쳐서 버터에 구웠는데 맛이 없다면 신천지겠지. 냉면그릇에서 뇨끼를 건져내 한판, 또 한판을 구워내며 뒤집개로 살살 눌러서 버터에 바삭하게 구워지도록 한다. 원래는 중간 단계쯤에 포크로 뇨끼를 눌러서 독특한 문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여유는 없다. 스피드!


 버터에 구워지면서 넙대대해진, 그러나 대략 지름이 엄지손가락 길이는 넘지 않는 뇨끼들을 큰 접시에 담아내고, 잠시 쉬도록 한다. 다음 요리를 만들 때까지 잠시 뇨끼는 안녕이다.


대충 이렇게 생겼었다. 바깥양반이 사진을 남기지 않아 퍼옴. 출처는 : https://www.masalaherb.com/gnocchi-cream-sauce/


 두번째 요리는 짜조인데. 라이스페이퍼로 만든 스프링롤을 기름에 살짝 튀긴 요리다. 이건 내가 역시 신혼 초기에 아무 생각없이 스프링롤을 만들었다가 심심해서 기름에 한번 튀겨봤는데, 실제 베트남의 레시피처럼 아예 팔팔 튀긴 것이 아니라 후라이팬에서 살살 굴리듯 튀겨낸 거라서 훨씬 스프링롤의 원형에 가깝다. 나는 그것이 짜조인지도 몰랐는데, 바깥양반의 친구가 와서 "짜조네."라고 한마디 해서 이름을 알았다. 그 뒤로 한 두번 해보고 이번 집들이 때까지 한참을 안했다. 이유는, 속에 들어갈 야채를 살 일이 잘 없어서.


 뇨끼도 시간과 손이 많이 투자되는 요리인데 짜조 역시 그렇다. 스프링롤을 일일히 싸야 하니 6명이 먹을 채비를 하려니 얼마나 일이 되는지. 그래서 열두개 정도나 겨우 만들었는데 집에 있던 라이스 페이퍼가 똑 떨어졌다. 마침 볶아둔 고기와 야채도 떨어졌다. 만들다가 두개 정도는 옆구리가 터져버려 내가 먹어없앴다. 그리고 이걸 기름에 살살 볶아야 하는데.


 두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이걸 옆에서 또 다른 요리 하나를 하며 만드느라 손이 너무 바빠졌다. 두번째 문제는 라이스페이퍼를 오랜만에 다루다보니 내가 스프링롤을 제대로 싸지 못했다. 만드는 족족 흐물흐물하다가 옆구리가 터져나갔다. 시간은 없고, 그러나 만들긴 해야겠고, 하다 하다 안되겠어서 튀김을 받치는 채반을 내서 스프링롤을 받쳤다. 그래야 수분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가 튀길 수 있을 정도가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욕심에, 다른 음식을 하나 더 하면서 시간에 혼자 쫓겨 흐물흐물한 스프링롤들을 제대로 도닥이지도 못하고 튀겨내면서 절반 정도는 라이스페이퍼 옷이 튀겨지며 옆구리가 샜다. 그 바람에 제대로 굴리지도 못했고, 좁은 후라이팬에 열개 가까이 우르르 올리다보니 서로 달라붙어서 난리들이다. 아. 좀 여유있게 할걸. 만들어지고 나서 수습을 못하니 후회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어떻게든 수습을 했다. 겨우 건져내면서 뇨끼에 올릴 크림소스를 마저 볶는다.

신혼 초기, 부모님을 모시고 대접드린 잘 만든 짜조. 그냥 스프링롤을 살살 기름에 돌려볶은 정도.

 짜조와 함께 하고 있던 요리가 뇨끼에 올릴 크림소스인데, 이것은 그냥 베이컨을 자르고 버터 약간과 볶다가 크림소스를 따서 볶아내면 끝인 것이라, 내 생각엔 짜조를 하면서 같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이 하려니 욕심이 과했다. 손님들이 죄다 일찍 집에 도착하면서 내가 마음이 더 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급박함을 견디다가, 어쨌든 요리가 둘 완성되었다. 나는 재빠르게 달려가 손님 상에 두 요리를 놓았다. 바깥양반은 그동안 집을 청소하고 젓락과 앞접시, 컵 등 손님맞이로 바빴다.


"와 이게 뭐예요?"

"뇨끼랑 짜...조인데 좀 실패했네요. 맛있게 드세요."

"오빠는?"

"지금 바쁘지."


 나는 바깥양반을 테이블에 남기고 후다닥 달려와 오븐을 확인했다. 중간에 미리감치 해두었던 요리가 오븐 속에서 익어갈 시간이다. 세번째 요리는, 정말로 대충 만든 푸실리 라자냐. 그래도 코스 느낌을 갖추기 위해서 요리를 네가지는 차리고 싶은데 도통 마땅한 게 없어서 급하게 추가한 요리다. 집에 있던 토마토 소스. 집에 있던 푸실리(스프링모양으로 꼬인 짧은 파스타면), 방금 크림소스 뇨끼에 쓰고 남은 베이컨을 담아서 치즈를 올려서 오븐에 굽는 것으로 끝.


 이번에도 사고가 두개나 터졌다. 하나는 푸실리면을 좀 오래 삶았고, 다른 하나는 슈레드 모차렐라 치즈를 냉동시키지 않아 곰팡이가 피어 있는 것을 오븐에 넣기 직전에 알았다는 것이다. 최소한 마트 가기 전에만 알았더라면. 어쩔 수 없이 치즈는 버리고 네모난 치즈를 두장 겹쳐 올렸다. 임시변통이다. 그러나 일단 세가지 요리가 완성되었고 구색은 갖추어졌다. 나는 라자냐를 꺼내 자리로 갔다.


 실제로 라자냐를 직접 반죽을 해서 만든 적도 두번이나 있다. 심지어 먹어본 사람들이 다들 만족했다. 그러나 그 땐 라자냐가 메인인 날들이었고 오늘은 뇨끼와 짜조, 그리고 세번째 요리가 메인이었기 때문에 구색으로 간단히 만들었을 뿐이다. 여섯명이 한 숟갈씩만 퍼가면 대략 끝이 난다.


"괜찮으세요?"

"아 정말 맛있네요."

"이 언니는 뇨끼 처음이래."

"아하 보람이 있네요."

"고생 많으셨어요 한잔 받으세요."


 잠깐 여유를 갖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잔을 받았다. 한쪽에서 여성분이 남자친구분에게 '오빠 난 이정도는 안돼.'라고 속삭이는 것이 보였다.


"제가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네네."


 나는 잠시 이목을 집중시켰다.


"요게 하우스 레시피인데요. 집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요리들로 한 거거든요."

"아 뇨끼는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한쪽 여성분이 물었고, 나는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다. 이어서 짜조는 잘못 만들어 민망하다는 말까지. 식사와 대화는 흥겨웠고 아랫집 윗집에서 찾아오지 않을까 겁날만큼 깔깔 웃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뇨끼도 짜조도 모두 비워졌다. 허접하기 그지없는 라자냐까지.


"제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음식이."

"네."


 다시 잠깐 이목을 모으고,


"고기국수인데요."

"헐."

"고기국수 진짜 쉬워요. 집에서도 하실 수 있어요."


 면을 삶아서 건져두고 왔다. 육수도 약불에서 끓고 있다. 언제든 삶아내기만 하면 된다. 파만 썰면 된다. 결국 그날 다섯시에 시작된 집들이는 열시를 꽉 채워서 끝났다. 나는 중간에 비장의 군만두를 대접했고, 와플을 굽고 딸기를 올려서 디저트를 장만했다. 냉장고를 조금 털고, 24000원으로 여섯명이 배가 터져라 먹었다. 다만 바깥양반은 그날 단 한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손님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나 뭐라나.


 사진이야 찍든 말든. 나는 내 취향껏, 내가 대접하고 싶은 음식으로 집들이를 즐겁게 마쳤다. 뇨끼도 짜조도 고기국수도 라자냐도 집밥으로는 평생 먹을 일이 없는 요리들이다. 집에서 해먹을 일이 없는 음식들로만 구성을 했고 저마다 결함이 있지만 어쨌든, 나의 컨셉은 성공이라고나 할까. 그 뒤로 여섯은 친해져 종종 만났고, 이번주 금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리고 오늘 글을 쓸까 고민을 하다가, 국산감자가 아닌 미국산 감자로 뇨끼를 만들고 싶어 두군데 마트를 갔다가 모두 허탕을 쳤다.


 미국산 감자는 어디서 사지. 잘못 샀다간 한달쯤은 감자 요리를 하게 될 테지만.

이건 한 커플만 초대했던 다른 집들이. 오른쪽이 정성 라자냐. 가운데는 고등어 파스타였는데 나만 좋아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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