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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8. 2020

멘보샤 만드느라 샤샤샤

그렇게 글감이 하나 생겼다. 사진도 오랜만에 와장창.

일주일쯤 전,


"오빠, 금요일에 J샘 불러서 집에서 그림 배우려고."

"그림? 어떤거?"

"작년엔 캘리 배웠으니까 올핸 어번 드로잉."

"흐음...좋네."

"저녁 해줄 수 있지?"

"응."

"멘보샤 해달래."

"어?"

"어 허허허허허허허허."


 바깥양반이 웃을 때 목소리는 짱구 같다. 너도 미안하고 민망한 건 아는구나. 나는 당장 J샘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 야

나 : 멘보샤가 뭐야 멘보샤가

나 : 아!!

나 : 손 많이 가요!!!!

J샘  : ㅋㅋㅋㅋㅋㅋ아 바깥양반이 자랑했단말이야 샘이 잘 만든다고

J샘 : 그럼 멘보샤 다음으로 귀찮은 거 뭐임

J샘 : ㅋㅋ농담ㅋㅋ아무거나 주세요

나 : 아오.....


 멘보샤를 만들었던 게 재작년인가,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집에 오는 길에 생각이 났고 그냥 대충 레시피를 검색해서 만들었다. 결과는 실패다. 물기를 제거하지 않았고, 계란을 그만 너무 많이 넣었다. 그래서 새우다짐이 말도 못하게 질척였고, 수습을 위해 들이부은 전분가루와 밀가루는 멘보샤의 격을 형편없이 추락시켰다.


 모든 반죽에 있어서 수분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근래에 알아간다. 호떡 반죽(?)도, 피자 반죽(!?)도, 뇨끼(!?!?)도 결국엔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분을 관리하고, 반죽을 뭉치게 하느냐의 문제.


 아, 먼저 J샘에 대해 설명하자면 나와 꽤 친한 우리 학교 미술 선생님인데 바깥양반과 동갑이라서, 몇번 안면만 트다가 먼저 우리 바깥양반이 J샘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다며 나에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얼마 뒤 둘은 친구가 되었다. 그러더니 바깥양반이 코로나 탓에 집에만 있기 갑갑했는지, J샘을 불러서 그림을 가르쳐 달라고 약속을 잡은 것이다.


 J샘도 어지간히 나와 친하고 장난도 좋아하는 성격이라, 바깥양반이 한번 말을 꺼냈던 멘보샤를 기억하고 바깥양반이 저녁 차려준다고 하니, 만들어달라고 한 모양. 아오!


 금요일이 되었고, 비가 오는 하늘 풍경을 바라보며 J샘을 집으로 태우고 오면서 식빵과 식용유를 샀다. 한동안 튀김요리를 잘 하지 않다가 최근 급격히 튀김요리 비중이 늘었다. 군만두도 몇번 해먹었고 엄마가 만들어준 돈까스를 먹다보니 그렇다. 오늘 아침에도 돈까스를 해먹었는데, 멘보샤를 헌 기름으로 튀길 순 없지.


 아침에 새우를 해동시켜놓았다. 거실은 조금 불편해 내 방에 J샘과 바깥양반이 그림을 그리도록 상을 펴 두었다. 천천히. 먼저 식빵 사각 가장자리를 쳐내고 누른다. 기름에 튀겨지면서 식빵이 부풀어오르게 되는데, 미리 눌러서 준비를 해두는 편이 조리시간도 단축되고 기름도 덜 먹는다. 식감도 조금 더 차지게 된다. 여러모로 필수 과정이다.

 물기를 뺀 새우를 다지면서 냄비에 기름을 올렸다. 갈릭솔트 약간, 후추 약간, 흰자 약간, 올리브유 약간, 전분가루 아주 약간. 흰자와 올리브유가 들어가는 이유는 새우다짐이 위 아래의 식빵과도 잘 접착되도록 하고, 너무 퍽퍽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일 터다. 귀찮긴 하지만, 새우는 언제나 옳지. 눌러둔 식빵을 4등분 해서 크래커 크기로 살살 떼어 새우다짐을 올린다. 5mm에서 8mm 정도의 두께로 반죽이 올라간다. 뭐든 다지는 요리는 마찬가지지만 너무 다져서 반죽을 만들 필요도 없고, 그러다보니 두꺼운 조각들이 그만 멘보샤를 두껍게 만들고 만다.


 이런. 고작 8개를 만들고 나니 새우반죽이 동났다. 8개면 중국집 가서 주문하면 딱 나오는 양 정도다. 다른 요리를 해줄 생각도 했지만 아쉬워하진 않을까. 한창 그림을 그리고 있는 바깥양반과 J샘에게 가서 의견을 물었다.


"샘, 바깥양반. 지금 만들어봤는데 8개 밖에 없네.

"괜-찮-아-요."

"아...적어서 아쉽지 않겠어?"

"괜-찮-아-요."

"응 오빠 그냥 해. 부족하면 뭐 시켜먹어도 되고. 오빤 쉬어"

"음..."

"?"

"음..."

"아 그냥 더 해요 더 해 그러면."

"오케이."


 혹시나 해서 흰자를 뽑아낼 때 찻잔에 계란을 남겨둔 보람이 있다. 냉동실에서 남은 새우를 모두 꺼내서 전자렌지에 해동하면서 볼에 흰자를 마저 따라내고, 올리브유도 쪼르륵 뿌린다. 그 사이에 튀겨진 멘보샤를 건져내고...하나만 먹어볼까? 간이 잘 되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음. 맛있구나. 역시 새우는 틀리는 법이 없지. 60도의 저온에서 천천히 7,8분 간 튀겨진 빵은 적당히 부풀면서 새우 반죽을 감싸고 있고, 후추와 갈릭솔트가 들어간 새우는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다. 그리고 멘보샤의 장점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고 조리과정 자체는 간소하기 때문에 손이 깔끔하다. 사진을 와장창 찍었다. 오랜만에.


 노른자가 남았다. 이건 소스로 재활용해야지. 작은 접시를 꺼내 노른자를 따라내고, 굴소스를 약간, 그리고 마요네즈를 올렸다. 느끼한 멘보샤에 느끼한 소스일까 걱정은 조금 됐지만 내가 먹을 요리는 아니라서. 1인당 8개씩의 멘보샤면 많은 것도 아니다. 둘이서 다 먹게 하고, 내가 먹은 하나 치의 멘보샤만 채우기로 했다. 2차로 만들 멘보샤는 9개.

 튀겨낸 멘보샤는 세워서 기름을 뺀다. 마지막 멘보샤를 튀길 시간이 또 7,8분은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히 기름은 빠질 것이다. 이제 슬슬 쟁반을 꺼내 먼저 튀겨진 멘보샤를 쌓아올리면서 모양을 잡는다. 잘라낸 식빵은 재활용해야지. 봉투에 넣어 냉장고로 향한다. 이제 천천히 정리를 해 나갈 시간. 볼도 치우고, 마지막 멘보샤 조각들을 냄비에 넣고 나서 슬쩍 바깥양반과 J샘에게 가서 농을 걸었다.


"어머님은 나가주세요."

"?"

"저는 절~대로 학부모님과 같이 수업 안합니다."

"푸흐하하. 기생충이예요?"

"뭐야 그럼 내가 다송이야?"

"저와 함께 다송이의 마음의 문을...열어보시겠습니까."


 바깥양반은 집중력 있게 스케치된 그림에 색을 칠하고 있었다. 하늘색을 좋아하니, 환한 색이 작은 그림에 가득하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마지막 멘보샤 조각이 빨리 튀겨지도록 위 아래로 굴려가며 재촉했다. 먹음직스러운, 갈색.


 뚝딱 3,40여분만에 멘보샤 열 여섯조각이 완성되었다. 오랜만에 말끔한 기름으로 보글보글 튀김요리를 하는 이 시간, 창밖은 뿌연 안개와 함께 비로 가득한 하늘이 펼쳐져있고 그러나, 창문은 열어두지 못한 추운 2월말의 날씨다. 오랜만에 여유있게 재미난 요리를 하고, 그것을 친한 사람에게 선보일 수 있으니 제법 행복함이 차오른다.


"빨리 먹어봐. 어때요."

"잠깐만요-."

"와. 대박."

"와 와 대박."

"바깥양반도 얼른 먹어봐."

"응 잠깐만 이거 마저 하구."

"와 진짜 바깥양반은 복받은 거라구-. 내가 샘 얘기를 엄마한테 했더니."

"헹."


 뒤늦은 집들이를 또 할까. 엄마 아빠께도 해드리고, 누나네 조카들에게도 해먹여주고 싶다. 아...대청소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집 상태가 아직 좀 별로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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