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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3. 2020

우리 바깥양반은 고양인간

단 하나의 과장도 없는 순도 100프로 실화!

 코로나의 공포는 여지없이 바깥양반과 나의 작은집을 할퀴었다.


 시작은 장례식이었다. 2주 전에 고등학교 선배님의 모친상으로 은평성모병원을 찾았는데 내가 다녀온 다음날 아침에 그 병원에서 재직했던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은 것. 나는 즉시 학교 보건선생님과 교장선생님께 보고를 했고, 지정격리대상자는 아니고 동선도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방 차원에서 그날로부터의 2주간의 자체 자가격리를 권고받았다. 그 당시에는 개학 연기가 논의되기 이전이었는데, 3월 첫주에 개학한 뒤에도 3일이나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갑갑하고 암담하게 된 처지가 어이없을 따름이었다. 확진자와 그 어떤 접촉도 없었고 심지어 은평성모병원의 본원과 장례식장은 분리되어 있는데도 그저 뉴스 하나에 내가 학교에 오지 말라는 소릴 듣다니. 일단,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으니 근무상황 결재를 올리러 장갑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하고 학교에 들러서 10분도 안되는 시간만에 나왔는데도, 나를 발견한 한 선생님이 학교 오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개인톡을 보냈던 것도...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쳐도.


 그러고서 코로나는 바깥양반조차도 여지없이 할퀴었다. 외출에 대단히 조심스러워진 그녀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스크를 쓰고서 집에 와서야 벗는다. 바깥양반의 외출사랑에 의해서 저번주까지는 하루에 한번씩은 카페를 갔는데. 자, 생각을 해보자. 바깥양반과 나는 현관문을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탄 다음에, 차를 타고, 차에서 내려서, 카페에 가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는다. 마스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이것은 과민한 경우라고 난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주민과 말을 섞는 것이 아니라면, 혹은 그 주민이 갑자기 감기사레에 걸려 우리 앞에서 비말을 뿜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카페에 내려서 주문을 하는 그 짧은 시간을 위해 무균질의 마스크에 내 입김을 뿜어내 세균을 감염시켜둘 필요가 있었을지 말이다. 방역은 과도하게 해야한다는 명제야, 국가 수준의 것이고 일반인의 경우엔 평시 수준의 주의 정도면 충분할 것인데 말이지. 코로나의 감염력 자체는 일반 감기와 다르지 않으니까. 면역이 문제인 것이지.


 어쨌든. 그런 상황으로 인하여 바깥양반이 급기야 이번주에는, 자택근무를 명 받고 나와 함께 방구석에 나란히 대기를 하게 되었다. 카페조차 잘 가지 않는다. 집을 잘 나가지도 않는다. 외출이라곤 토요일에 바깥양반 친정에 가서 배달음식으로 장인어른 장모님께 식사대접을 한 것이 다였다.


 그래서 요 3일간, 자체 자가격리를 하고 계신 바깥양반과 집에만 있어본 결과...나는 그녀가 고양인간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1. 하루에 15시간쯤은 잔다.

 교사는 일반적으로 개학 시즌이 되면 알람없이도 아침에 눈이 떠진다. 나의 오늘 기상시간은 7시 20분. 잠깐 누워서 인터넷을 한 20분 정도 돌아다니다가 일어나서, 멘보샤를 만들고 남은 빵을 가지고 러크스를 만들고 차를 우려 잠깐 책을 보았다. 그리고 게임을 한시간 반쯤 했고, 바깥양반을 깨워서 밥을 함께 먹었다. 바깥양반이 일어난 것은 11시 30분.


 그리고 나는 1시쯤 되어서 낮잠을 잠깐 잤는데, 내가 침대에 올라갈 때까지 바깥양반은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같이 거실에서 티비라도 볼까 제안을 했지만 딱히 티비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이불밖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던 것인가. 난 한시간쯤 누웠다가 일어났는데, 기묘하게도 내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한잔 내려 책을 좀 읽을 때까지 바깥양반은 잠을 자고 있었다. 바깥양반은 외출을 못해 억울하다며 어제 2시까지 버티다가 잠을 잤다. 그러니까...13시간을 거의 내리 주무신 것이다. 잠이야 자면 잘수록 좋지.


2. 자는 포즈가 기상천외하다.

 그렇게 아침에 한번, 낮잠을 자면서 한번, 내가 먼저 깨서 바깥양반을 살피면, 자는 포즈가 어떻게 된 것인지 기이하기가 짝이 없다. 겨울에 우린 2장씩의 이불을 겹쳐 덥고 잔다. 바깥양반은 거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얇은 이불을 하나 속에 끼워서 덥는다. 그러니까 세겹인데, 항상 잠들기 전에 내가 그 세장을 차곡차곡 덮어서 잘 감싸이도록 해준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반드시 한장은 바닥에 떨어져있다. 그리고 한장은 배만 덮고 있다. 그 얇은 이불만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데, 내가 깨어난 기척에 바깥양반도 설핏 잠에서 깨어서는 "추워...추워..."라고 뇌까린다. 아니, 이불들은 죄다 팽개치고?


 다시 내가 이불을 건지고, 제대로 펼쳐 덮어줘야 안심하고 잠에 든다. 일어나는 시간은, 어김없이 12시. 24시간이 모자라다는 노래가...틀림이 없는 것 같다.


3. 그런데 뜬금없이 손으로 뭔갈 친다.

 지난 금요일에 어김없이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바깥양반은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좀 당하고 와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밤에 잠을 들지 못하고 내내 뒤척였다. 잠이 안올 땐 환경을 바꿔야한다면서 거실로 나가서 온수매트에서 잠을 좀 청하다가는, 다시 들어와 침대에 눕길 반복했다. 나는 이미 잠들어 있었는데 하필 그날 맥주를 하나 먹고 잤다. 멘보샤를 만든 날이었기에 그정도의 떳떳함이 내게 주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날 나도 뭔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듯, 결혼하고 처음으로 이 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원래 자다가 이를 가는 버릇이 있었는데 나나 바깥양반이나 세상 모르고 자는 편이라 그간 몰랐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정말로 내가 이를 갈지 않았던 것일 수도.


 문제는, 그때 바깥양반이 잠이 안와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잠버릇에 바깥양반이 신기했던 것인지 내 어깨에 몸을 엎드리고 누워서는, 그만 내 입 근처를 건드린 것이다.


 나는 바로 흠칫하며 잠에서 깼고, 그 순간, 바깥양반과 정면에서 눈이 마주쳤다.


 새벽 3시에, 어두운 방에서, 흠칫 하고 눈을 떴는데 그만, 날 바라보는 바깥양반의 눈을 정면에서 보게 된 것. 나도 놀랐지만 바깥양반은 더 놀랐나보다. 세상에, 남편이 이를 가는 것도 세상 당황스러운데 무심결에 입을 한번 건드렸다가 그 남편이 눈을 확 뜨고 자길 바라보았으니.


"오잉? 깼어요?"

"...야...왜 건드려...?"

"이상한 소리 났어요. 막 뿌득뿌득."


 문제는, 그 다음날 또 바깥양반이 잠을 자지 못한 것. 금요일에 모자란 잠을 보충한답시고 토요일에 바깥양반 친정에 가서까지 둘 다 낮잠을 세시간씩이나 잤다. 집에 와서도 거의 혼절하듯 잠을 잤다. 그래도 나는 수면시간이 규칙적인 편이라 자정을 넘겨 이내 잠에 들었는데, 내가 억지로 침대로 끌어다 눕힌 바깥양반은 전날 모자란 잠을 낮에 충분히 보충했던 것인지 또 말똥말똥 상태였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무슨 소리를 낸 것도 아닌데, 그냥 자기가 잠이 안온다고 막 잠에 들려는 내 얼굴을 만졌다.


 나는 당연히, 흠칫 하며 잠에서 깼고, 그만 "야!" 하며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왜 그렇게 자꾸 손으로 뭘 건드리는 것일까?


4. 자다가 혼자서 자지러지곤 한다.

 예민한 성격이라 잠꼬대를 종종 한다. 악몽을 꾸는 탓이다. 항상 그 잠꼬대를 발현하는 날이면, 뭔가 불쾌하고 싫은 일을 당해서 짜증을 내는 소리다. "아냐!" 라거나 "놔!" 라거나. 그래서 다리가 좀 길쭉허니 컸나 싶기도.


 바로 그 잠꼬대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항상 이불이 하나는 바닥에, 하나는 배만 덮고 있는 원인일 것인데, 그래서 하루 15시간까지 잠을 자는 것이겠지.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렇게 바깥양반의 잠꼬대에 내가 잠에서 깨어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안고 등을 토닥일라 치면 그마저도 잠 자는데 방해가 되는 것인지 뿌리친다는 것이다. 그런 것까지 그저 고양인간인 것인가.


5. 자기 주변 5미터 이내에 다른 고양이의 접근을 불허한다.


 고양이는 겁이 많은 영역동물인데 바깥양반도 그렇다. 고양이를, 겁나 무서워한다. 냥덕인 남편을 두고서도 고양이가 그렇게 싫어서, 고양이 카페는 당연히 못가고, 흔히들 고양이 한두마리쯤 보살피는 일본풍 카페를 그렇게 찾아다니면서도 고양이가 근처에 다가오면 질색을 한다.


 고양이가 영역동물인 이유도, 다른 고양이가 그 영역을 침범하면 질색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지. 그런 덕분에 애먼 사장님들만 고생이시다. 바깥양반이 앉아있는 카페에 고양이가 있다면, 반드시 바깥양반은 비명을 지르고 고양이를 떨쳐내고, 대개 손님들이 많아서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고양이가 다리라도 스칠라치면, 이윽고 사장님이 소환되어 고양이를 건사해 간다.


6. 지가 고양이인 줄을 모른다.


 고양이는 대개 자기가 고양이인 줄을 모른다. 바깥양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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