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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5. 2020

고로케를 고로케 잘 만들면 오토케

중간에 반전있음. 복선도 있음.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침대가 아닌 자리에 누워서 자니 등이 조금 배긴다. 바깥양반은 자도록 두고 나와 주방으로 간다. 아침은 고로케다. 전날 사둔 감자들을 뒷베란다에서 꺼내 다듬은 뒤 솥에 삶는다. 냉장고에서 햄, 마요네즈, 다진고기, 계란, 당근을 꺼내어 잠깐 숨을 고르며 순서를 정리한다.


 먼저 햄을 콩만한 크기로 썬다. 고로케의 식감을 위해서다. 햄을 후라이팬에 볶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고로케의 풍미를 좋게 하고 보다 쫄깃해진다. 시어링이 될 때까지 고루 볶은 햄들을 키친타올에 올려서 손으로 꾹꾹 눌려서 기름기를 쫙 뺀다. 이런다고 칼로리가 조금이라도 낮아질 리는 없다. 고로케 속을 버무릴 때 마요네즈까지 들어갈 테니까. 다만 햄이 겉도는 것을 방지할 순 있을 것이다. 


 햄의 향신료향이 배어든 팬에 이번엔 다진고기를 볶는다. 후추를 미리 톡톡. 다진고기는 키친타올에 눌러서 기름을 빼긴 어려울 것이다. 햄이 고로케의 식감을 담당한다면 다진고기는 고로케의 품격을 살린다. 부드러운 감자 사이 사이 다진고기의 식감은 고로케의 칼로리마저 잊게 해준다. 


 노릇한 겉옷, 흰색 감자, 갈색 햄이 섞여있으니 당근을 다져서 주황색을 덧칠할 차례. 감자를 삶는 솥을 한번 뒤집어주고 당근을 썬다. 나는 칼질이 서투르다. 제때 글씨체를 교정하지 못하면 평생 악필로 살게 되듯,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도 칼질을 연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채썰고 다지는 일은 힘들다. 폰으로 조용히 음악을 틀어두고 흥얼흥얼. 덕분에 지루하니는 않다. 집이 더워 살짝 몸에 열기가 돌만큼 신중하게 당근을 작게 다진다. 색깔을 내는 용도에 그치기에 당근을 많이 쓰진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서툰 칼질로 햄을 채썰어 볶고, 기름을 빼고, 다진고기를 볶고, 당근을 채써는데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감자들에 젓가락을 한번씩 찔러본다. 아직은 좀, 더 삶아야겠다. 시간을 좀 줄여야지. 대접을 하나 찾아서 계란을 풀고 휘젓는다. 빵가루를 꺼내 넓은 볼에 쏟는다. 싱크대에 자리를 잡아두고, 물을 한잔 마신다. 감자가 익었을까? 다시 젓가락으로 찔러보며 보글보글. 


"어 일어났어?"

"어어 잘 잤다."


 침실에서 집주인 D가 나왔다. 전날의 집들이에서, 음식을 차린다고 고생을 했다. 아침잠이 없는 나와는 다르게 아내와 주말의 늦잠을 푹 자고 나온듯하다. D는 화장실을 쓰고 나와 주방으로 온다.


"야 이거 정말 하는 거야? 와하하."

"어 뭐 내가 고로케 좋아하니까."


 나는 다른 볼을 하나 더 찾아내, 먼저 준비된 재료들을 쏟고 마요네즈를 대~충 쫘악 짠다. 소금과 후추를 어림짐작으로 넣었는데, 잘못하면 소금덩어리가 되기 마련. 싱거울만큼의 양을 짐작해서 넣는다.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과 마요네즈의 비중을 낮추기 위해서 생계란을 탁 하나. 고생하라는 말을 남기고 D는 침실로 돌아갔다. 다시 나는, 나만큼이나 주방일을 열심히 하는 D의 주방에서 혼자 고로케를 만든다. 


 D는 바깥양반의 절친의 남편인데, 바깥양반과 만나다보니 D가 나와도 동갑이어서 넷이서 터놓고 지낸다. 처음 만나서부터 말을 놨고, 내가 고로케를 만들던 그 날은 우리보다 2년 정도 먼저 결혼한 그들의 신혼 집들이. 전날에 D가 만든 목살스테이크와 김치찜 등을 대접받고 나서 아침은 내가 차리겠다고 미리 말을 해둔 참이었다. 그래서 만드는 고로케. 


 나 홀로 깨어나 있는 남의 집에서 맞는 고요한 아침. 감자를 곱게 다지며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고로케를 싫어하는 사람이 또 어딨겠냐만, 나는 고로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집중력 있게 요리를 할 때는 시간이 훅, 하니 빠르게 흐른다. 감자 다지는 도구 같은 것은 일반 주방에 없기 때문에 집에서나 밖에서나 숟가락과 주걱으로 겨우 겨우 감자를 햄, 고기, 당근 그리고 양념들과 버무려 섞는다. 


 재미있는 건 내가 고로케를 남의 집에서 만든 것이 또 처음이 아니라는 것. 바깥양반은 내 요리를 남에게 맛보여주기를 또 좋아하고, 난 또 요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날보다 2년쯤 더 전에는 역시 바깥양반의 친구집 신혼 집들이를 가서는 아예 종합 튀김을 했다. 그날 메뉴가 고로케와 소고기치즈말이튀김에 오징어튀김 정도였던가. 할튼 버라이어티하기도 하지. 이렇게 남의 집에서 고로케를 만드는 일의 장점은, 내 주방을 더럽히지 않고 남의 집 기름으로 마음껏 튀김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집에서 튀김을 하려면 기름값의 부담과, 아직 더 튀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름을 버려야만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그러니까 나는, 남의 집에서 튀김을 해서 같이 식사를 하는 그만큼의 댓가는 충분히 받고 있는 셈이다.


 음악을 들으며 입을 꽉 다물고 감자를 동글게 뭉친다. 도마까지 꺼내서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뭉친 감자반죽을 죽 늘어놓는다. 네명이 먹을 고로케니 제법 양이 된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시간이 지났다. 목이 조금 마른데 땀은 송글송글. 겨우 고로케반죽을 다 마치고 손을 닦는다. 냉수 한잔을 들이키니 살 것 같다. 


 감자 삶던 솥을 깨끗이 씻고 키친타올로 닦아 습기를 없앤 뒤에 가스렌지에 올려 식용유를 붓는다. 남의 집에서 만드는 고로케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집에서 쓰는 냄비보다 크다는 점이 더욱 즐겁다. 콸콸. 아낌없이. 환풍기를 켜고, 창문을 조금 열고 하나 하나 계란옷을 입히고 빵가루에 눌러 솥에 넣는다. 젓가락으로 살짝 굴리고, 다시 고로케를 빵가루에 누르고, 다시 또 튀기고, 건지고 건지고 건지고. 음악에 맞춰 박자를 탄다. 그때쯤 바깥양반도 일어난다.


"오빠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나 원래 깨는 시간인데 뭐. 잘 잤어?"

"어 고로케 벌써 다 했어?"

"응 좀 전에 D 나왔다가 들어갔어."

"응 고생하네."


 바깥양반은 화장실에 들어가 간단하게 씻고, 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D와 J 부부도 나왔다. 


"와 아침에 이걸 다 했어요?"

"네 저번에 L네 집에서도 했었어요."


 나는 2년 전의 집들이 얘기를 하며 집주인들을 안심시켰다. 코로케를 앞접시에 담아, 포크로 쿡 찔러 반으로 가른다. 크리미한 마요네즈와 계란, 쫄깃하고 탱글한 햄과 다진고기의 조화가 감자의 비단폭에 너울너울. 집주인 두사람은 탄산수에 얼음을 넣어서 내왔다. 네사람이 둘러앉아 고로케를 먹으면서, 일요일 아침을 보람있게 시작, 그리고 1박 집들이를 성대하게 마무리했다. 


"이거 뭐야 햄이야?"

"어. 식감 좋으라고."

"이건 다진 고기 같은데?"

"네 다진고기도 같이 들어갔어요. 그 정도 들어가야 좀 요리 같아서."

"우와아."


 이래서 요리는 참 재밌지. 


최근에 집에서 만든 고로케. 집에서 심심해서 만든 것이라 햄도 다진고기도 없이 계란과 볶은 양파로 소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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