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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07. 2019

꽈당 다음날 쿠웅

야밤엔 몸개그가 활력소

"왜 잠이 안오지 큰일났네."

"그럼 여기 누워."


 화요일의 일이다. 바깥양반이 침실에서 잠을 청한지 15분쯤 지났을까, 거실에 남아서 게임을 하고 있던 내 앞에 누웠다. 침실에도 침대가 하나, 그리고 거실에는 싱글사이즈 매트리스가 하나. 이 매트리스는 직장 생활로 자취를 하게 된 바깥양반에게 장모님께서 사주신 것인데, 싱글사이즈 치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결혼을 한 뒤에도 버리지 못하고 일단 신혼집에 가지고 오게 되었다. 처음에 2년 정도는 내 방에 있었는데, 최근에 책장을 새로 들이면서 공간이 부족해 매트리스를 버릴까 팔아버릴까 하다가 우선 겨울동안은 거실에 두기로 했다. 와식생활을 즐기는 바깥양반의 습성 탓에 우리는 주로 나는 거실, 바깥양반은 침실로 휴식시간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매트리스를 거실에 두고 온수매트를 올리니 이제는 저녁시간이 분리되지 않게 되었다. 아이 없는 신혼의 자유분방함의 장점이다.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 집에 와보면 바깥양반은 주로 거실 매트리스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고 저녁시간을 그대로 거실에서 한 사람은 앉아서, 한 사람은 누워서 보낸다.


 어쨌든 그날은 이제 잠들 시간이 되어 먼저 바깥양반이 침실에 들어갔고, 나는 한 30분 정도만 놀다가 들어가려고 했는데 금새 바깥양반이 잠이 안온다며 다시 나온 것이다. 이불을 덮어주니 웬걸. 금새 바깥양반이 잠에 들어 나는 TV 소리를 줄이고 이불로 얼굴에 빛이 안들어오도록 해야했다. 그렇게 잠시 두었다가 나는 바깥양반에게 들어가라고 슬쩍 어깨를 건드렸다.


"바깥양반, 들어가 자."

"으응."

"얼른."

"아 졸려. 들어와요 나 들어갈게요."

"응"


 바깥양반이 일어나 침실로 세발짝 쯤 옮겼을때, 꽈당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아! 아, 아, 아- 아파!"

"뭐야 왜 넘어져?"

"아 몰라 아파 엉엉-."


 바깥양반이 넘어지는 바람에 벽에 기대놨던 접이식 탁자도 넘어지면서 소리가 꽤 컸다. 나는 당연히, 자빠진 바깥양반보다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아랫집에서 쫓아오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이 초인종이 울리진 않았다.


"괜찮아?"

"아파 여기랑 여기 부딪혔어."

"아니 요즘 거실이 미끄럽긴 했어."

"아 아파. 오빠가 괜히 들어가라고 해서, 나 잘 자고 있었는데."

"야 이것도 내 탓이야?"


 나는 바로 게임을 끄고 바깥양반과 침실로 들어갔다. 오른쪽 허벅지와 엉덩이, 반대편 팔꿈치를 만져주고 달래다가 문득 미끄러진 이유를 추리해냈다.


"내일 스팀으로 거실 걸레질 좀 해놔야겠다. 너 파라핀 때문에 가루가 날려서 그런 것 같아. 미안해 신경 못썼네."

"아 몰라 아파 죽겠어."

"내일 아프면 파스 발라줄게 얼른 자자."


 그러나 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음날 친구가 갑자기, 삼겹살에 소주를 먹자고 제안했고 나는 그녀석과, 다른 선생님과 셋이서 노래방까지 갔다가 10시가 넘어 집에 왔다. 과연 집에는 바깥양반이 언제나처럼 거실에 누워 마사지팩을 하고 누워있었다. 지난주까지는 동백꽃필무렵만 봤는데 보는 월화드라마를 이번주부터 새로 시작하셨다...


"파라핀 몇도야?"

"47도."

"오늘은 도와줄게. 좀 이따 하자."


 바깥양반이 손발이 차서 겨울엔 굉장히 불편해한다. 운동부족이라며 헬스장을 끊어준다고까지 말했는데도 바깥양반은 바쁘시다. 일주일에 세번 정도만 가도 건강관리가 나으련만. 지난 겨울에 장모님이 파라핀 마사지기를 사주셨다. 파라핀을 50도로 가열해서 손을 두어번 코팅하는 것인데, 하루종일 일을 하다가 추운 날씨에 집에 와서 하는 이 손마사지를 하루도 빼먹지 않는다.


 문제는 이 파라핀이라는 게 아무리 조심히 정돈해도 손에서 제대로 벗겨지지 않거나, 비닐에 묻었거나 해서 가루가 제법 날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바깥양반 몫의 가사일이다. 나는 거실에 파라핀 조각이 보일 때마다 바깥양반에게 청소기로 치우라고 말했지만 우리 바깥양반이 그럴리가. 내가 해줄 필요는 없으니 나 또한 방치해두었다가...그만 거실을 오가는 우리 발바닥에 붙어 바닥에 촛농을 바른듯 미끌미끌하게 만들어둔 것이다. 그리고 어제 바깥양반의 꽈당.


 나는 술을 마시고 와서 걸레질을 해야 한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다. 바깥양반이 파라핀 하는 것을 오랜만에 도와주고는, 거실에서 골목식당을 같이 보다가 바깥양반이 먼저 침실로 들어갔고, 나는 골목식당을 마지막 까지 보고 소파에서 일어나 매트리스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쿠웅.


"악!"

"뭐야, 오빠도 넘어졌어?"

"아-하하하 아오 야. 파라핀."


 놀란 바깥양반이 단숨에 침실에서 뛰쳐나왔다. 나는 통증을 참으면서 걸레질을 하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100kg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몸무게가 제자리에서 그대로 넘어졌으니 몸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오른쪽 팔꿈치가 같이 떨어져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엉치와 허리, 팔꿈치가 쑤셨다. 그리고 역시나, 아랫집에 쪽팔렸다. 어제는 꽈당 오늘은 쿠웅이라니.


"조심하랬잖아. 어제 나보고 웃더니만. 자기는."

"빨리 들어가자. 아 아파."

"나 오늘 계속 아팠어 어제 넘어진 곳."

"그러니까 파라핀 조각 좀 잘 치웠어야지, 머리카락에도 가끔 조각 붙어다녀."

"아 피곤한데 어떡해."


 오늘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스팀걸레로 바닥을 싹 닦은 것이다. 방금 닦아낸 바닥에 맨발이 살짝 살짝 달라붙는 느낌이 좋다. 하는 김에 주방과 침실로 닦았다. 나도 제법 게으른 편이라, 차 한잔 마실 시간이면 걸레질 한번 싹 하고 며칠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데 그걸 미뤄두다니 어지간히 멍청하긴 하다. 덕분에 하루걸이로 몸개그를 했으니 댓가가 비싸진 않아 다행이다. 마침 어제 게임은 엔딩을 본 참이라, 이제 조금 청소는 바지런 떨 순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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