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ul 20. 2018

개고기에 대한 단상

혹은 어린 시절의 추억

우리 큰집은 논과 밭에 둘러싸인 시골집이었다. 집에서 10분만 걸어내려가면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산촌이다. 그 곳에서 아버지가 나고 자라셨고, 어릴 적 나는 대청 마루 밑에 들어가 누렁이랑 놀고 집 앞에 있는 집채만한(정말로 집채만했다) 도둑바위 위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우물이 있었고, 아궁이에선 큰어머니가 솥에 밥을 지어 명절에 모인 친척들을 먹이셨다. 그 집에서 나는 여섯살 때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었는데, 그 경위가 꽤 호러블하다.

여름날이었을까? 기억은 나지 않는다. 8남매이신 우리 친척들이 당숙부네 식구까지 꽤 많이 시골집에 모였는데, 그러다보니 사촌형제들도 그들그들했다. 나는 그 모든 사촌형제들 중에 막내였고(아버지가 막내셨다.), 누나와 터울이 적은 사촌들 몇몇과 따로 놀고 있었다.

기르던 개인지, 얻어온 개인지는 모르겠으나 큰 개 한마리를 어른들이 도둑바위 아래로 데려가셨고, 나는 사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수군대는 것을 봤다. 다들 장난끼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호기심에 마당 밖에 나가 도둑바위를 훔쳐보았는데, 아빠가 아래에서 보시더니 얼른 들어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얼마나 되었을까, 저녁을 먹을 시간은 아직 멀었지만 다들 혈기왕성하게 먹어댈 나이의 어린아이들이 모여있으니 슬슬 배고프다는 말이 나오던 참이다.

"야 애들아 고기 먹으러 나와!"

라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형의 외침에 우르르 방문을 나와 부엌으로 갔다. 그곳엔, 고춧가루 양념으로 맛깔나게 볶아진 고기가 흰 사기접시 위에 올려져있었다. 우리는 두어점씩 맛있게 먹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맛을 떠올릴 순 없고 여섯살 내 입맛에 그게 맵다는 기억은 없으니, 꽤나 맛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개고기인데~ 개고기인데~!"

라는 사촌형의 깔깔거리는 노랫가락. 그렇다. 우린, 사촌형에게 속아(아 그러고보니 정확히는 6촌이다. 당백부의 아들인) 개고기를 먹고 만 것이었다.

나는 먹으면 안되는 것을 먹었다는 두려움, 속았다는 약오름 등등이 어울려있는 채로 이 기억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개고기를 평생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그리운 유년의 추억이기도 하다.

요즘 자라나는 세대들은 대개가 개를 먹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나보다 강렬한 개식용혐오의 기억과 인상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개 사육의 더러움, 개의 동물로서의 존엄성 손상, 국제문화와의 불일치 등 다양한 논쟁들과 비판점들이 나오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개고기를 먹어온 문화권의 민중으로서 지금의 개고기에 대한 비판이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도 든다.

개고기를 먹고 먹지 않고는, 나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성장과정, 문화적 배경이 빚어낸 우연의 산물에 가까울 터인데, 그것을 선과 악, 혹은 문명과 야만으로 가르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점에서다. 사람이 사람을 혐오하는것은 옳지 못하고, 더욱이 식문화는 그 집단의 역사의 굴곡을 흐르는 강물일 뿐이다. 개를 먹는 문화권과 그렇지 않은 문화권 역시, 그저 우연의 산물에 가깝다.  

어쨌든 가까운 미래에 대체적으로 사라지게 될 과거의 풍경에는, 애잔함이 자리한다. 상처로 남게될 투쟁의 자욱엔, 씁쓸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