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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07. 2020

그냥 평범하게 좀 먹으면 안돼?

응. 안돼.

 라면은 바깥양반에게도 나에게도 스트레스다. 그러니까 오늘은, 대충 11시에 아점, 3시에 늦은 저녁을 먹고 바람을 쏘이러 다녀왔다. 카페 두군데를 다녀오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 보통의 나라면 무언갈 먹는 시간은 아니다. 그냥 차나 몇잔 마시고 말겠지만 바깥양반은 출출함을 견디지 못하시고 라면을 끓여달라는 요청을 보낸다. 이런. 라면이라니. 


 나에게 라면이 스트레스의 원인인 이유는 기어코 그것을 요리로 만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면은 당연히 나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물과 면과 스프에 계란으로만 만들어진 라면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 무어라도 넣어야 한다. 황태라도, 새우라도, 삼겹살, 미더덕이나 조개라도 넣고야 만다. 


 넣으면 되잖아? 라고 생각하면 쉽겠지만 그것도 내가 먼저 오늘은 라면을 먹어야지 결심하고, 재료를 물색한 다음에, 흥미가 돋는 방향으로 요리를 하기로 해서, 그에 맞는 재료를 체크해보고, 없을 경우 장을 봐갈 때가 요리가 될 수 있는 것이지, 밤 9시에 집에 갔는데 라면을 먹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그 때는 조금 막막해진다. 어쩌지. 뭘 넣고 끓이지. 결론을 정하지 못하고 일단 물은 올라가고, 나는 스트레스를 겪는다. 아, 오늘 라면은 뭘 넣고 끓일까. 당장 떡국 떡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다.


 반대로 바깥양반은 그런 나의 엉뚱한 짓거리가 스트레스다. 바깥양반은 순정파랄까, 순정부품만 사용된 라면을 끓여주는 것을 원한다. 컵라면도 잘 먹고 라면도 그냥 물 면 계란이면 땡이다. 오히려 내가 번번히 온갖 재료로 자기 입맛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라면을 끓여댄다고 투정을 부린다. 당연히 나는 바깥양반이 그렇게 무식하게 먹는 라면이 불만인 것이고. 


 그래서, 오늘도 엉뚱한 짓을 한다. 며칠전 끓여둔 얼갈이무국이 있다. 양지를 넣고 한~~~솥을 끓여 아주 맛있게 며칠 먹고 있다. 라면 1인분 물이 550ml정도이니, 서너국자를 퍼 넣고 물도 그정도 양을 맞춘다. 간이 적당히 되어 있으니 스프 양을 조절할 예정. 만두를 꺼낸다. 90알의 만두 중에 벌써 20알도 남지 않았다. 바깥양반이 물릴 정도로 만두를 구워댔으니 당연한 일이다. 다섯알을 넣었다. 팔팔 끓이면서 계란을 넣는다. 육개장 사발면이 아니라, 육개장라면 느낌으로. 


 라면에 장난질을 하도 치다 보니 둘이서 먹는데도 보통 하나를 끓이게 되었다. 라면을 두개를 끓이고 이렇게 재료를 퍼부어대면 바깥양반이 먹을만큼을 먹고 나면 혼자 거의 2인분의 라면을 끓인다. 국그릇 하나 정도의 얼갈이무국과 만두 다섯개에 라면 하나니까, 이정도면 딱 2인분이다. 그래도 아마 남을 것이다. 이미 늦은 시간이고 나도 많이 먹을 생각은 없으니까. 


 스프를 넣기 전에 미리 간을 본다. 상당히 싱거워서 그만 스프를 다 넣으니 대충 간이 맞는다. 계란 탓에 염도가 중화되었을까나. 만두의 밀가루 때문일 수도 있다. 만두국을 하든, 라면에 만두를 넣든, 얼려둔 만두는 피가 쉽게 분리된다. 어떤 음식이나 만든 그 때 먹어야 최상이지만 특히나 만두는 얼렸다가 녹으면서 피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 덕분에 비주얼도 개밥에 가까운 라면이 완성됐다. 당연히 바깥양반이 싫어하겠지. 나는 거실에 작은 상을 펴고 TV를 보고 있는 바깥양반에게 대령한다.


"먹고 남겨."

"같이 먹어야죠."

"나 설거지 마저 하고."


 양은 2인분이어도 1개의 라면을 끓이니 대강 이렇게 바깥양반을 먼저 먹이고 내가 남은 것을 먹는다. 라면에 대한 내 태도가 이리 썰렁하다. 국자와 식기를 대강 설거지하고 라면을 먹는 바깥양반 옆에 앉아 커피를 내려 마신다. 바깥양반은 김치도 없이 훌훌 면만 건져서 빠르게 먹는다.


"육개장 라면이야 오늘은."

"아 그냥 평범하게 좀 먹으면 안돼?"

"억울하면 끓여드시는 쪽으로다가..."

"아휴. 후루룩."


 잠시 뒤 바깥양반이 상을 물린다. 국물도 거의 그대로, 만두도 거의 그대로. 면만 대강 사라져 있다. 나는 국물과 국 건더기, 그리고 만두를 건져 먹는다. 지금 딱 맛있는 총각김치가 있는데, 그걸 꺼내오는 것도 귀찮다. 빨리 먹고 치우고 글 써야지. 만두가 라면 스프를 머금어 더욱 맛있다. 국물 또한 소고기, 얼갈이, 무의 육수에 만두의 육수까지 섞여서 고차원 고품격의 맛이다. 딱 하나 단점은 보기에 과히 좋지 못하단 것 뿐이지만.


"아 코로나면 어떡해. 그릇이랑 젓가락 바꿔서 먹지."

"됐어 걸리려면 벌써 걸렸겠지."


 바깥양반의 식기를 그대로 받아 쓰는 날 보고 바깥양반이 한 소리 덧붙인다. 다 먹고나니, 그냥 황태 정도만 좀 탁탁 잘라넣어서 간소하게 끓일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덕분에 라면 하나로 장황한 글이 나왔다. 바깥양반이 베트남에서 세 종의 원두를 사왔는데, 그 중에 베트남 마트에서 사온 그라인드 된 커피는 전형적인 베트남의 쓴맛이 돈다. 지금 시간에 이것을 마시고 있으니 잠이 쉽게 들지 못할 것인데 엄마가 설 때 돼지갈비를 하고 남아서 나더러 알아서 해먹으라며 준 고기덩어리가 싱크대에서 해동되는 중이다. 새벽이 되어서야 양념에 재울 정도로 녹을 터다. 밤 10시 반을 넘어가는 이 시간에 나의 취미생활은 조금 더 긴 이야기가 남아있다. 

이건 그러니까...돌미역+새우+보리새우+삼겹살...이던가? 백종원의 미우새라면 베이스를 만들어서는, 거기에 고기와 새우를 추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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