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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15. 2020

착하기만 해서 발암인 캐릭터

좀비물에서 군상극의 작위적 인물은 필수지만

 다른 여느 장르처럼 좀비물 역시 스스로 제약을 걸고 진행되는 장르다. 예를 들어 "화공"은 금기! 개떼처럼 몰려드는 좀비들에게는 불이 특효지만 누구도 그런 아이디어를 쓰지 않는다. <부산행>처럼 화공 자체를 봉쇄하는 공간설정이 제대로 먹힌 케이스도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면, 좀비라는 재난상황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충돌하는 군상극이라는 점이 좀비 장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며, 이는 최초의 좀비물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부터 정확히 구축되고,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발암캐릭터가 있다. 이기적인 인물. 다른 인간을 좀비의 먹이로 삼는 인물. 기어코 좀비 쓰나미를 불러오는 파아아국적인 인물.


 클리셰를 잘 활용해야 좋은 장르물이 나온다. <킹덤>은 좀비물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작위적 악인을, 극에 정치적 음모를 버무림으로써 피해갔다. 이 점은 <창궐>의 장동건의 캐릭터와도 유사하지만, 좀비사태의 장본인인 조학주(류승룡)는 본인의 권세를 위하여 사사건건 주인공을 훼방놓고 사태를 키운다. 여기에 중전의 음모와 생존을 위한 서비와 영신의 노력, 조선 일대로 판을 키운 서사가 합쳐지니 군상극임에도 불구하고 작위적 인물이라는 좀비물의 헛점은 완벽히 희석됐다.


 딱 하나, 조범팔 빼고는.

 시즌 1에서의 조범팔은 감초캐릭터였다. 극의 긴장감을 이완하는 성장형 캐릭터. 서비와의 관계를 통해 인물이 변화해가며 초기의 무능하고 부정적인 모습보다 착하고 어느정도 헌신성을 지닌 성격이 부각됐다. <좀비사태 발생 - 탈출 - 생존자 결집 - 최초의 방어 성공> 이라는 좀비물의 등식 속에서 조범팔은 훌륭하게 극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러나 시즌 2에서 조범팔과 조학주의 관계가 묘사되면서 인물의 현실성은 급격히 무너지고 단지 서사장치에 그치고 마는 작위성이 드러난다. 조선을 쥐락 펴락 하는 천하 제일의 권세가의 직계 조카가 사람좋은 호인이라는 점, 그가 동래부사에 제수되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권세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스트 조학주가 조범팔의 무능함을 계속 용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는 없애야 한다. 조학주가 조범팔을 정리했어야 한다. 죽이진 않더라도 적절히 극에서 퇴장시키는 것이 조학주에게 걸맞은 행동이다. 혹은, 그마저도 안된다면 최소한 명확한 경고, 그리고 행동지침은 필요했다. 그 어느쪽이든 조학주는 무언가 했어야 한다.


 조범팔 스스로도 조학주와 만나고 사태를 파악하게 되면서 무언가 행동변화는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끝까지 착하고 선한 인물로만 남는다. 시즌 2에서 조범팔은 다양한 곳에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조범팔이 곳곳에서 하는 행동은 극의 진행을 위한 장치에 불과할 뿐, 인물의 합리에 따라, 서사의 개연성에 따라 채용된 것들이 아니다. 그냥 조범팔로 인해 극이 진행되고, 해결된다.


 이런 문제점은 시즌제로 구성된 극의 특성 상 한정된 분량 속에서 충분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긴 하다. 6부작으로 구성된 각각의 50분 내에 서스펜스가 충분히 들어가야 하고, 그래서 매 회차마다 하나의 사건이, 그리고 그 사건이 긴밀하게 연결된다. 조범팔은 시즌 1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한 생존자그룹의 주요인물인만큼 시즌 2에서도 당연히 적절한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 맞지만, 대체로 그가 보이는 행동들은 장치적이다. 굳이 그 자리에 조범팔일 이유도 없는, 누가 와서 그 자리를 채워도 되는.


 물론 <미생>에서부터 만나온 반가운 얼굴이 귀여운 감초연기를 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즐겁고 조범팔 또한 극의 활력을 더하는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모든 인물이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가운데 사람 좋기만한 작위적인 캐릭터라서, 극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 조금 아쉽다. 조범팔의 역할을 분담할 다른 캐릭터가 하나 정도 있었으면 어땠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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