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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Feb 25. 2020

교차편집과 현대적 주제의식, <작은 아씨들>

원작 1도 모르고 바깥양반에게 끌려가서 보고 온 썰

 영화 초반의 인상은 감독이 꽤나 재치가 있다는 점이다.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에 대해 익히 소문은 들었지만 볼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이렇게 세련된 감독일 줄이야. 당장 봐야겠다. 편집장과의 밀당을 거쳐 처음으로 신문 투고에 성공한 조의 신나는 모습으로 극을 열더니 이내 네 자매의 오늘을 차례로 비추고는 다시 모두 모인 어린 시절의 자매들의 방으로 카메라를 이동시킨다. 결혼을 해서 현실의 벽에 갇힌 메그, 프랑스에서 자신의 재능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에이미, 쓸쓸한 얼굴로 피아노를 치는 베스. 교차편집이 좀 템포가 빨라서 설명은 부족하지만 <작은 아씨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극장을 찾는 내가 특이한 경우일 것인 터라, 그것이 흠집이 되진 않을 터다. 심지어는 MBC에서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주기도 했었으니까.


 인물의 현재와 과거를 조명하면서 각 캐릭터의 성격을 선명하게 묘사하면서 재빠르게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연출력이 훌륭한데, 특히 조와 자매들의 어머니 마가렛 여사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철학은 단지 여성주의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대배우 메릴 스트립의 능청맞은 연기로 여성의 한계와 영역을 명확하게 그려주면서 그에 대꾸하는 조, 자신의 길을 갔지만 갈등하는 메그, 안주하는 척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에이미와, 그 모두를 아우르면서 자매들에게 자애롭고 현명한 인격자의 본을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때로는 정반합으로, 때로는 포스트모던한 시각으로 다양한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세련된 감각, 깊은 주제의식을 갖춘 연출자가 가장 인기있는 여성 소설을 영상화했으니 그 밖의 만듦새가 나쁠 리가 없다. 교차편집을 통해 같은 공간을 다른 풍경으로 조명하면서 자매들의 오늘과 과거가 주는 다른 감정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내고, 하류층-중류층-상류층의 삶의 풍경을 나란히 보여주고는 그 다음 장면에서 그들이 사랑과 배려란 이름으로 기꺼이 저마다의 선을 지워내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토록 자애로운 로렌스 노인과 자매들의 어머니의 우산 아래서도 청춘의 끓는 피 덕에 자매들은 투닥투닥 좌충우돌 하는데, 1850~60년대의 시대상에서 여성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하여 수동적인 삶을 분연히 거부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리고 설득력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설 원작이 갖는 영원한 생명력, 그리고 2019년 판의 영화가 갖고 있는 현대적인 면모라고 할만하다. 


 구석구석, 배경음악이 공감과 몰입을 이끌어내고 시시각각, 아름다운 풍경이 소녀들의 빈곤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현대적으로 어레인지된 의상들이 복고풍 패션을 주도하지 싶은데, 영화를 보고 나와서 검색해보니 특히 로리 배역의 남자배우가 저 동네의 떠오르는 샛별같은 셀러브리티라 하니 영화가 개봉된 계절이 또 겨울인게라.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이니만큼 특히나 그렇겠지만. 다만, 사교파티의 의상들은 너무 현대적이지 않았나싶다. 아무리 부자들끼리 모인 자리여도 아직 남북전쟁 중인데 디즈니랜드 코스프레 수준의 형형색색에 쵸커라니. 


 라임피클이나 성홍열 등, 원작을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장치들이 있고 또 그게 극에서 나름 중요한 요소들이라 장벽이 되는 점. 그리고 베스의 성홍열이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적지 않게 지루한데 이왕 교차편집을 할 것이었으니 편집점을 좀 더 조여서, 그 부분의 지루함을 덜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베스의 성홍열이 그렇게 가볍게 넘길 부분은 아니지만.


 그레타 거윅이라는 핫한 감독이 좋은 배우들을 두루 끌어모아 당대의 성차별의 벽을 넘어서 현대의 여성주의와 그것을 뛰어넘은 보편적인 삶의 자세로까지 문제의식을 확장한 좋은 영화인데 이런 영화가 발렌타인데이도, 봄방학도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내 이름이 박힌 책이 갖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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