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Mar 27. 2020

무너짐으로써 쌓아올리다, <주디>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영화를 보면서 나나 바깥양반이나 다소 아쉬웠던 점은 주디 갈란드에 대한 인식, 인상, 혹은 감정이 영미인들과 같을 수 없기에 받을 수 있는 감흥이 그들의 절반이나, 혹은 그 절반의 절반이나 될까 싶었다는 점이다. 명곡 <Over the Rainbow>가 보여주듯, 암울했던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후의 처절한 유럽의 상황에서 <오즈의 마법사>가 상징하는 사랑과 가족의 향수는 오래 오래 서구인들의 유전자에 각인되었고 지금에까지 이른다. 연기력과 가창력을 다 갖춘 명배우 르네 젤위거주디 갈란드를 연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따낸 뮤지컬영화인데도 코로나에 휩쓸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조용히 묻히고 있으니 이를 어쩔꼬. 코로나가 아니었다고 해도, 영화가 상당히 흥행을 했다고 해도, 어쨌든, 우린 주디 갈란드를 모르고 <Over the Rainbow>를 그들과 같은 감정으로 느낄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주디 갈란드를 우리가 그들과 같은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점이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미 무너져있는 주디를 보여주고, 그녀의 밑바닥까지 관객을 끌고 내려가 감정의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가져간다. 주디 갈란드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점은 지금 이 시국에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대충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러한 사실을 모르더라도, 영화에선 이미 완전히 무너져있는 그녀에 대해서 일말의 희망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중증의 약물중독과 알콜의존 그리고 불면으로 그녀를 묘사하고, 그녀가 만나는 기회들을 조금도 희망의 빛으로 바꾸어줄 생각이 없음을 잘라말한다. 이미 완전히 무너진 그녀에게 삶은 어두운 밤 거리를 홀로 걷는 고독 그 자체다. 


 그러나 그녀의 무너짐이 영화를 쌓아올린다는 아이러니를 통하여 결말까지 숨 막히는 긴장과 스릴을 이끌어내고, 특히나 마지막 뮤지컬 넘버들이 전하는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배가시킨 점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깊은 특징이자 매력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으로 주디를 내몰고, 그녀의 무너짐은 과거로부터 내내 쌓여온 결과임을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그렇게 주디 갈란드를 모르는 우리는 극장에서 그녀에 대한 기억을 쌓아나간다. 뻔한듯하지만 결말을 조금도 예측할 수 없고, 지루한듯한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영화 자체가 주디를 평생 괴롭힌 아이러니를 - 스타가 되고 싶으며 동시에 평범하게도 살고 싶고, 엄마가 되어야 하나 엄마가 되려면 엄마가 될 수 없는 -  다루고 있지만, 영화가 갖는 붕괴와 완성의 병치구조로 관객에게 이처럼 아이러니한 감정을 갖게 하다니. 이것 참 기묘하다. 


 이러한 아이러니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당연히 르네 젤위거의 빛나는 연기인데, 웃는듯한데 우는듯하고 우는듯한데 웃는듯한 그녀의 표정과 연기력이 말 그대로 "아이러니" 자체였던 주디를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한다. 울지도 웃지도 못했던 주디의 삶을 그녀 아니면 누가 연기할까. 게다가, 그 미친 가창력이라니. 너무나 불행하고 비참한 상황에 처한 주디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아 르네 젤위거 많이 늙었네"라고 안쓰럽다가, 주디가 첫 공연에서 첫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 진짜 단 한 순간도 주디의 눈에서 내 눈을 떼지 못했다. 숨도 못쉬고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스크린에 빠져드는 경험을 선사할만큼 그녀는 완벽한 모습으로 완벽한 연기를 보인다. 


 디테일한 시각연출도 무척 좋은 영화다. 모든 넘버가 주디의 독창인데, 특히 카타르시스가 터지는 마지막 넘버의 카메라워크와 구도, 인물들 간의 상호작용은 영화의 주제와 주디의 삶 자체를 영화언어로 훌륭하게 전달하는 명장면이다. 혼자 위태로이 빛나던 별이 새벽의 여명 속에서 빛 속으로 사라지는, 이윽고 모든 무너진 것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렇게 쌓아올려진 것들이 다시 무너지는 희망의 좌절을 이처럼 선명히 교차시키는 연출들이라니. 


 무대 위의 별, 브로드웨이의 스타였던 그녀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 밤 속에서 내내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휘광은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였을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와, 이어진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던 그녀는 그리고 모두의 기억 속에 살아남았다. 그녀의 처절한 무너짐 속에서 빛난 최후의 무대. 그 아이러니 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착하기만 해서 발암인 캐릭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