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교육의 역사에 관한 독후감
나는 교육의 긍정성에 주목한다.
과도한 교육열로 해마다 수십명을 죽이는 것도 교육이지만, 촛불을 들게 하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교육이다. 싱가포르 국민의 피부색에 따라 각자의 인생을 수직계열화하는 것도 교육이지만, 싱가포르의 하층민이 그들의 고향보다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교육의 힘으로 가능했다. 지독한 인종, 계층, 이념 갈등으로 학교 교육의 난맥상이 쉽사리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미국을 세계 최고의 나라로 만들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교육이다. 따라서, 교육의 문제점들을 들어 비관론을 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러한 방식은 실제로 교육 현상이 품고 있는 진실을 바라보기에 타당한 태도는 아니다. 대체로 교육에서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들은 그것이 교육의 작용이라기보다는 교육이 충분히 미치지 않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도와 정책의 미비, 교사의 역량의 부족, 학습자의 환경 조건, 교육 평가를 둘러싼 논쟁의 정치적 성격 등의 문제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사전쟁>은 미국 공교육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의 학교가 갖는 여러 문제점들의 원인과 연원을 성찰하며, 과거의 투쟁들로부터 미래에의 비전을 탐구하는 여정이다. 왜 오늘날 미국의 학교는 국가를 위기에 빠트리는 주범이 되어있는가. 미국의 학교 교육은, 급격한 과학기술 발전을 등한시하고 학습자의 경험을 중시한다는 이상한 사조에 빠져 적국 소련과의 우주전쟁을 뒤처지게 만들었다. ‘세금만 먹는 하마’인 교사들은, 낮은 업무능률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고용의 안정성을 누리고 있으며 능력에 따른 합당한 임금지급이라는, 자본주의의 원칙마저 틈만 나면 어기고 있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을 막지 못하며, 학교에서의 폭력도 막지 못하고, 근본적으로 저학력의 학교에 입학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바꾸지조차 못한다. 이토록 무능하고 무력한 학교, 그리고 교사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사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다인종, 다이념 공동체 속에 <공교육-학교-교사>라는 하나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지난한 투쟁의 역사였다. 이를 테면 인터넷이라는 시스템이 처음 개발되어, 기술의 진보에 따라 가능성이 발견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자본을 흡수하여, 법적 정당성을 확보한 뒤 더욱 더 많은 자본을 투자받고 가치를 창출해, 하나의 산업이 되고 오늘날 전 지구적 혁명을 견인한 문명 영역이 된 것처럼 학교는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민들의 한없이 열악한 삶을 개선시키면서 동시에 여성들이 노동 그리고 신앙을 통한 공동체 속 자기 정체화로 처음 시작해, 차츰 더 많은 교사와 더 많은 학생이 더 많은 학교로 모여들면서, 법적 제도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하나의 미국을 위한 공공재로서 이념, 계층, 인종의 갈등을 계속해서 극복하기 위해 투쟁해왔다.
그 속에서, 교사는 끊임없이 자기헌신적인 투쟁을 계속해왔다. 최초의 공교육 교사들은 어떤 제도적 뒷받침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신앙심과 봉사정신, 교육열로 서부로 향했고, 버티어냈다. 여성이었던 그들은, 남성에 비해 20% 내외의 임금만을 받았다. 여성을 위한 직업으로 시작되었던 공교육 교사는 남성과 동등한 노동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지속하면서, 교사양성제도를 만들고 교직의 남녀통합에 박차를 가했다. 여성의 노동가치를 위한 운동은 교사 노동조합, 그리고 공산주의 진영과 연계하면서 미국 내에서 거센 이념의 갈등을 촉발했다. 교사는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받았고, 이 시대의 민주주의 교육은 곧 냉전 이데올로기와 매카시즘으로 뒤범벅되었다. 교사들은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곧이어 학교의 인종통합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교육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각성, 진정한 통합을 위한 교육과 교과 내용의 보편성을 위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레이건 대통령 시기 시작된 “위기의 국가” 교육담론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 공교육의 낮은 효율성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와 여론작업으로, 교육의 계층화, 교사노동력 구조조정의 제도화, 교육예산의 유연화 등을 폭압적으로 진행했다. 이전 시기까지 이루어지던 다양한 교육적 시도는 신자유주의적 산업구조 조정의 바람 앞에서 하릴없이 무너졌다. 훌륭한 교사든 게으른 교사든, 인턴교사 제도와 자율형 공립학교가 정착하면서 교단을 떠나야했다. 교육의 성공을 명분으로 교사에 대한 인종차별은 강화되었고, 계층에 따른 학교 분리는 심화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광풍 앞에서도 교사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안타까웠던 점은 해방 후 우리나라를 관리한 미군정이 한국 교육과정의 기초를 세우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그 근간으로 삼았는데, 실제로 1950년대 미국의 민주주의는 수십년간의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인해 심각히 훼손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교육청과 학교장들은 교사에게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했고, 선서와 서약을 거부한 교사는 해고되었다. 교사 노조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이 지속되었고, 국가주의 교육이 공산주의와의 대척점에서 이루어졌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인 교육의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적 교육이란 무엇이었을까? 실제로, 박정희 정권에서는 민주주의교육을 반공교육과 국가주의교육으로 변질시키고, 교육의 위계와 교과 내용을 어지럽힌 바 있다.
다시, 교사는 무엇인가. 이 어려운 질문으로 돌아와, 책을 마주하고 답을 한다면. 교사는 미국의 공교육이 탄생한 이래로 항상, 투쟁하고 헌신해 온 집단이라는 점. 부분이 아닌 총체로서 교사 집단을 평가할 때 교사는 항상 부족한 예산과, 계층화되고 분리된 학습자 집단의 문제와, 스스로의 불안정한 지위와, 학교에 시시각각 가해지는 여러 종류의 억압과 폭력. 이 모든 문제들과 강고하게 싸워왔다. 교사는 공교육이라는 하나의 사회분야가 잉태하고, 사회적으로 지위를 획득하고, 제도화하고, 다른 사회적 권력과 갈등하는, 마치 하나의 국가공동체를 새로 세우는 것과 유사한 전선 속에서 학교를 지켜온 “학교 독립의 영웅들”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사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무엇을 해왔고,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할까? 즐거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