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 당연히 보내줘야지

서울대 대학원 두번 붙은 사연(7)

by 공존

겨우 일주일의 결혼 특별휴가였지만, 월요일의 출근은 혼돈의 소용돌이였다. 교체된 수업이 빼곡하게 박혀있었고, 교육과정부장이었던 내 앞으로 밀려든 학기초 업무쪽지와 공문이 첩첩이 쌓여있었다. 오전 수업을 연달아 마치고 점심시간 내내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가 주섬주섬 일어나 오후수업을 들어갔다. 오후에도 업무며 수업이며 홀리듯 하루를 보내고 겨우 퇴근 전에 공문을 확인했다.


있다.


경기도교육청 교원정책과_2018학년도 서울대학교 대학원 전기모집(석사과정) 특별연수(파견) 선발 계획 알림



일이 되려고 하는 것인지, 되려면 또 어떻게 되려는 것인지 마침 오늘 딱 하달된 공문이었다. 나는 피곤에 찌든 몸으로 눈을 부비며 꼼꼼하게 공문을 읽어봤다.



2018학년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대학원 전기모집(석사과정) 현직교원 특별연수생을 선발하오니 희망하는 교원이 응시할 수 있도록 안내하여 주시고, 응시 희망자는 학교장 추천서 및 추천명부를 아래와 같이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 선발인원 : 총 10명

나. 추천 및 지원자격 : 교육공무원으로 경기도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력

(2017.9.1.기준, 기간제교사, 휴직, 파견 경력자 제외)



공문을 막상 대하고 보니 갑자기 훅 하고 귓볼에 열이 올랐다.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과 함께.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려면 파견을 나가야 하고, 파견을 나가면 2년간 학교를 벗어나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데, 월급도 수당을 제외하고 기본급을 상당히 보전받는다니! 1억짜리 로또나 다름이 없었다. 우선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M에게 전화를 했다.


"와."

"지금 공문 봤어."

"어어 그거 챙길게 좀 많다. 출근은 잘 했냐?"

"아...근데 너 어떻게 파견 시험볼 생각은 했냐? 안어려웠어?"

"야 어려웠지. 난 일본어도 안되잖아. 제2외국어 시험 치느라 뺑이 쳤다."


M은 낄낄대며 길게 얘기를 헀다. 제2외국어! 생각을 못했다. 토플도 챙겨야 하는데 한달 남짓한 사이에 교육학 필기에, 제2외국어 시험까지 준비를 해야 한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공부해둬서 제2외국어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문제는 시험 일정이겠지. 나는 다시 눈을 부비며 말했다.


"아니 야...씨 아니 근데 왜 서울대를? 너는?"

"나는 교사 체질이 아니라서 그렇지 마 낄낄. 연구사 시험 볼라고. 근데 모르겠다 귀찮아서. N이랑 통화는 했냐?"

"아니...해야지. 이제 막 수업 끝나고 공문 본 거야."

"어 할튼 공부 잘~ 하고."

"야 근데 파견은 되면 좋아?"

"좋지. 종강하면 쭉 쉬어도 되고. 뭐 나도 다음학기부턴 일 좀 시킬거라는데 모르겠다."

"아...아이고 모르겠다 그래 또 연락할게."

"어 그래라. 넌 X된 거야 임마 어허어허허."


통화를 끝내고 다시 공문을 봤다. 생각을 못해본 일이라, 판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 하루도 낭비할 수 없을만큼 시간은 촉박했다. 한참동안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심을 하고 인쇄버튼을 눌러서 2부를 출력해, 한부는 가방에 밀어넣고 다른 한부를 챙겨 조심스럽게 1층으로 내려가 교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응~ 선생님 어서와~ 신혼여행은 잘 다녀왔어?"

"하하 네 교장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은 죄송한데 김영란법 때문에..."

"선물은 무슨~ 앉아요."

"네."


이게 예의랄까 순서랄까 그런 것과는 좀 다르게 염치없이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손에 든 공문을 들고 뻔뻔스레 교장선생님께 결혼식에 참석해주셨다는 감사와 휴가를 다녀왔다는 인사를 함께 드리면서, 파견 공문을 챙겨온 참이다. 소파에 앉자 교장선생님은 차를 내주며 "나도 미국 갔을 땐 말야~"로 시작하며 운을 떼더니 한참 수다를 떨기 시작하셨다.


여느 관리자처럼 교장선생님은 단점과 한계가 있는 분이었지만 나에겐 은인이었다. 학교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교육과정을 담당하는 부장으로 추천을 하셨고, 이듬해에는 연구사를 보라며 대뜸 공문을 내밀어, 학위도 없고 연차도 딸려서 난감해 하는 나에게 그래도 무조건 넣어보라며 강짜를 부리셨다. 나는 업무에 시달리며 공문 제출을 차일피일 미뤘고, 공문접수 마감일이 되어서도 결재를 올리지 않자 다시 날 부르시더니 주무관에게 연락을 취해놓을 테니 다음날 직접 공문을 들고 가라고 날 재촉하셨다. 결과는 당연히 경력제한이 걸려 커트. 그러나 그 일이 내가 장학사로의 모색이나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중요한 계기 중 하나였다. 나는 그 해에 교육청과 연계해 개설된 대학원 과정에 응시하기로 결정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 그런데 교장선생님 드릴 말씀이..."

"응? 뭔데요 말해봐요."

"저 이거..."

"응? 이게 뭐지?"


나는 조용히 파견 공문을 내밀었다. 염치 없는 일이지만, 들어줄 것이라는 도와줄 것이라는 바람과 믿음이 있었고, 당연히 거쳐야 할 단계라면 신혼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이고 뭐고 관계가 있으랴.


"이게 파견 공문인데요 저기 제가...대학원을 서울대를 가게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아주 좋지! 이게 뭐야 그러니까 파견 신청을 공문으로 하는 건가요?"

"네네..."


나는 아직 긴장이 풀어지지 않은 상태,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날 보고 말했다.


"당연히 보내줘야지! 그럼 잘 준비해서 오고, 이거 공문 마감이 언제야?"

"다음주...수요일인데요 근데 문제가..."

"응응?"

"그. 이사장님께 파견 동의서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립이라서 요건이..."


최후의 관문이 남아있었다. 토플도 교육학도 제2외국어도 아니었다. 사립학교 교원이기 때문에 공립학교 교사와 다르게 별도로 인사권을 일부 행사하는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의 동의를 얻어야만 파견 신청이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 이사장이 꽤나 골칫덩어리인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는 손을 뗀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학교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보단 자기의 교육관에 따라 고집을 피우곤 했다. 당연히 파견 같은 교원에 대한 호혜적 직권을 행사할 것이라곤,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럼 걱!정을 하지마! 내가 받아다 줄 테니, 선생님은 시험 준비 잘 해요!"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공문을 접어 품에 끼며 말했다. 그래도 교장선생님께서 힘을 써준다면, 어떻게 방법이 생기겠지.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답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그럼 또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고!"

"넵."


마음이 급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물리고 교무실 내 책상에 돌아와 앉았다. 기운이 탁 빠지며 몸이 축 늘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려, 퇴근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서 다시 업무메신저를 확인해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수업준비도 해야했다. 한가지씩 해결될 때마다 더 큰 과제가 들이닥치는 기분이었다.


그날밤도 집에 와 토플을 공부하다가 책을 베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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