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롭지 않게 밥을 먹고 문득, 나중의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하다.
"이름은 하늘하늘 어때? 네 안녕하세요 하늘하늘민박입니다-."
"괜찮은데, 이름은 신중해야돼."
"음...그럼 잎새에이는바람 어때?"
"푸하하하."
"네 안녕하세요 게스트하우스 잎새에이는바람입니다. 아 발음 어렵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며 바깥양반에게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꺼내놨다. 바깥양반은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봄날의 밤 길. 어두운 길가의 양옆에 목련꽃들이 유달리 큰 꽃잎으로 총총히 거리를 비추고 있다. 한가로이 국도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 더욱 흥겨웠다.
조금 전 저녁을 먹은 식당이 딱 그랬다.
"오빠 여기가 부부가 같이 하는 식당이래 봐봐. ‘요리하는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가 운영하는 부부식당입니다.’”
"응.”
메뉴판을 보며 바깥양반이 꺼낸 첫마디를 나는 귓등으로 받았다. 오늘 읽고 있던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마침 얼마 분량이 남지 않아 욕심을 내던 참이다. 부부가 같이 일하는 식당이 뭐 드물지도 않을 뿐더러.
책에 눈을 못박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바깥양반은 부지런히 식당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조립식 건물의 자재가 노출되어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실내는 높은 천장 덕에 후련한 느낌이었고, 탁 트인 실내는 디자이너인 아내분의 손길로 이곳저곳 정성들여 장식되어 있었다. 서울 근교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식당치곤, 꽤 욕심을 부린 인테리어다. 그 속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점원 두분의 길을 동시에 막고 서 있는 바깥양반을 보고 내가 슬쩍 가서 옷깃을 잡아 끌어 자리에 앉혔다.
“사진은 후딱 좀 찍어. 일하시는 분들 길 막잖아.”
“알았어. 아 우리도 나중에 오빠가 요리는 하면 되는데 내가 커피를 못마셔서, 식당 하면 난 뭐하지.”
“커피 계속 마셔서 카페인에 면역 만들어. 나도 처음엔 잠 못잤어.”
이번에도 바깥양반의 말을 난 귓등으로 넘겼다. 다시 책에 집중하려 했고, 그보단 바깥양반이 점원 분들 길을 막아서 다소 짜증이 나 있었다.
“이게 인기메뉴래. 하나 더 뭐 시키지?”
“흐음...”
눈을 들어 바깥양반이 메뉴판을 가리킨 곳을 슬쩍 봤다. 치킨 칠리 파스타?
“요즘 왜 이렇게 매운 걸 많이 먹어 간짬뽕 찾더니.”
“이게 추천메뉴래. 또 하나는?”
“알아서-.”
“응 그럼 오일 파스타로 해야겠다.”
바깥양반이 음식을 주문하도록 두고 나는 창가쪽으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은 6인석 정도. 테이블도 소파도 크디 크고, 저녁시간이라 실내가 어두워 책을 보기 좋지 않았다. 창가에 스탠드가 있어 조금 밝다. 주말 저녁에 한적하게 이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편하게 소파에 몸을 묻다니. 바깥양반이 일반적으로 택하는 선택지는 아니다. 핫플레이스도 아니고 게다가 이탈리안이라니.
“아 오빠가 파스타를 안해주니까 오랜만에 이탈리안 먹네.”
“뭐어? 야 내가 너 때문에 파스타를 못하는데.”
“아니이 내가 보통은 약속 있으면 파스타 파는 곳을 주로 가니까 집에서 또 먹긴 싫잖아.”
“어이가 없네. 내가 파스타 먹고 싶어서 만들려고 해도 맨날 밥이나 찾더니.”
“아냐 해줘.”
“응...면 있어.”
잠시 뒤에 샐러드와 식전빵이 나왔다. 가격대에 비해서 한없이 친절한 접객 태도가 인상깊었다. 빵은 조금 찰기와 수분이 있었다. 찹쌀가루가 함유된 건가 짐작도 해보며 발사믹과 올리브유가 섞인 소스에 찍어 싹 비운다.
이어서 차례로 나온 두 파스타는 소담하고 차분했다. 치킨 칠리 크림 파스타는 진한 닭 육수와 마늘 향이 어딘지 친근한 맛, 해물 오일 파스타는 오일 다운 식감이 입에 착착 감긴다. 상술한, 바깥양반의 외식 패턴 덕분에 나는 이탈리안을 먹을 일이 통 없어서 오랜만에 스파게티면의 식감을 즐겼다. 음식에 대한 평을 몇가지 나누며 식사를 마쳤는데,
자리를 뜨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벽면에 붙여둔 책갈피의 문구 하나에 눈이 박혔다. “오일파스타냐 크림파스타냐 인상 최대 고민” 그리고 다른 몇가지 낙서 같은 쪽지들, 또 몇가지 사진들. 그리고 조금전에 바깥양반이 설명해줬던 "요리하는 남편과 디자이너 아내"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메뉴판과 가게 안내도 함께 붙어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다 말고 한참이나 우두커니 서서 벽에 붙은 여러가지를 꼼꼼히 읽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디자이너 아내가 꾸민 인테리어가 메뉴판의 유머러스한 문구들과 합쳐지면서 나에겐 부부의 정성 가득한 공간으로 인식되었고, 방금 먹은 찰진 빵도 부부의 협업이었겠구나, 뒤늦게 깨우치며 빵을 보관하는 큰 바구니가 비워진 것을 유심히 쓸어보았다. 서비스를 하시던 점원들이 모두 어린데, 이 중에 디자이너 아내분은 없으셨을까. 주방에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을 남편 대신에 누군지라도 봐두고 싶었지만 마침 또 모든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중이다.
대신에 복도 방향으로 나 있는 주방 벽면에 붙어있는 메모장들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주방에 난 창을 가리고 있는 면으로 된 커튼 아래 다양한 쪽지들이 빼곡했다. 하나 하나 읽어볼 시간은 없었지만 부부의 식당을 꾸미는 디피로는 더 없이 살뜰하다. 그저 음식을 파는 공간이라면 이 글은 손님들의 감상일 것이지만, 부부가 함께 꾸미고 꾸리는 식당이라면, 단지 감상 이상의 의미일 테다. 정갈한 식당 인테리어를 마지막으로 훑어보고, 나는 먼저 가게를 나와 차에 올랐다.
"바깥양반, 나중에 카페를 열면."
"으응."
"넌 베이킹을 해. 내가 요리 하고 커피 내리면 될듯."
"아 근데 너무 식당을 본격적으로 하는 건 좀 어렵고, 우리 작년에 갔던 민박 정도가 좋은 것 같아. 카페 하면서 숙박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아 그렇지. 바깥양반의 꿈은 카페도 카페지만, 동시에 여행자를 맞을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혹은 민박이다. 그래. 민박에 카페면 적절하지. 나는 바깥양반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아 그래. 그 정도면 딱 좋겠다. 어차피 큰 돈 벌 필요도 없고 식당보단 게스트하우스가 내가 만들고 싶은 음식 만들고 살기 좋겠네."
"응."
월급쟁이들 주제에 요식업을 우습게 알고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거기에 숙박업이라니 간도 크다. 그런데 아직 내 기준으로 25년이나 남은 은퇴 후 미래를 꿈꾸는 것이 허황되면 어떻고 무모하면 어때. 나는 방금 다녀온 식당에서 느낀, 부부가 함께 차린 식당의 알뜰살뜰 정감있는 차림새에 비로소 바깥양반이 아까 쏟아냈던 말에 뒤늦게 대화에 응했다. 카페를 사랑하는 바깥양반의 꿈은 카페를 차리는 것. 그리고 여행을 사랑하는 바깥양반의 꿈은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것. 둘 다 은퇴를 하고 나이를 먹은 뒤에나 이룰 수 있는 꿈이지만.
"그러면 베이킹을 하는 김에 네가 쿠키랑 빵을 계속 만들어. 그건 무료로 아무렇게나 먹고 싶은대로 먹으라고 내놓자. 우리가 큰 돈 벌 필요는 없으니까."
"오 괜찮네."
"우리 둘 다 나이 먹고 하면 한달에...연금도 나오고 하니 100만원 정도만 벌어도 괜찮지 않을까?"
"응 그냥 돈 많이 안벌어도 은퇴하고 나서 재밌게 살 수 있을 정도만."
"그래그래. 나 그러면 메뉴판 없는 식당으로 할래. 아무거나 먹고 싶은 거 주문하면 대충 만들어주는 걸로."
"뭐어? 안돼 그러면 재료 관리 어떻게 하게."
"게스트하우스 손님들 조식으로 그때 그때 남는 재료들로 밥하면 되지 푸하하."
무모한 이야깃거리가 아무말대잔치가 될 조짐이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고 갖게 된 내 꿈은 손님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아무거나 만들어주는 식당이다. 돈 벌 욕심이 없으면 대충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나 요식업이 그리 만만할 리는 없지.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없을 땐 어떻게 할까. 남는 식재료, 그리고 바깥양반이 구워놨다가 아무도 가게를 찾지 않아서 남아돌게 된 쿠키와 빵은 어쩌려나. 상관 없다. 먼 미래의 일이니까. 지금은 우리도 안단테처럼, 안단테의 속도로 천천히 나아가면 될 일.
카페를 좋아하는 바깥양반,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함께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 우리가 이것을 화제에 올리는 일도 많지 않고, 그리고 그것이 처음 식당에 와서 바깥양반이 던지는 한두마디 말 이상의 것으로 발전하진 않는다. 결정적으로 커피를 먹지 못하는 탓에 바깥양반의 역할을 우린 스스로 제약하고 있다. 그런데 안단테에선 그런 관습이 극복되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식당의 어여쁜 꾸밈새와 유머러스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석구석 드러나는 손때의 매무새가 나에게 오래된, 먼 미래에 대한 꿈에 현실의 색을 입혔다.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로.
"그럼...어디에 게하를 만들지? 제주도?"
"아. 제주도에 그럴 땅만 있으면 좋겠다."
"뭐 어때. 어디 구석이라도 자리 잘 잡고 홍보 열심히 하면 되지. 아 맞다. 바깥양반이 할 역할이 또 있네."
"뭐?"
"홍보해야지 홍보. 조이서. 파워블로거. 인플루언서. 홍보를 네가 하면 되지."
"아하하."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는 우리는 카페를 차릴만한 땅을 살 정도의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안단테의 빠르기로, 안단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