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소마>가 말하는 소통과 공동체

(스포일러 없음)

by 공존

영화가 끝나고, 지금 지구 위에 몇명이나 전쟁으로 죽고 있을까 생각했다. 전쟁이 아니라 마약, 폭력, 권력에 의한 죽음은 또 얼마나 될까.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나에게 닥치지 않을 "나쁜 소식"이 타인에게 일어났음을 영화를 통해 간접체험하며 그로써 불안감을 삭히는 우리에게, 찢어져 죽고 터져 죽고 불에 타 죽는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멀고 아득한 것일까. 그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눈을 감고 극장에 앉아 팝콘을 입에 넣는 우리는, 과연 어떤 인간들인 것인가.


<미드소마>는 무섭지 않은 영화다. 호러를 위한 장면이 극히 드물고, 그보다는 스웨덴 오지 마을의 샤머니즘과 그 오컬트함을, 그리고 등장인물들 간에 빚어지는 불통의 파열음을 훨씬 더 자주, 공들여 그려낸다. 영화의 결말부까지 계속되는 오컬트집단의 기괴한 축제 묘사와 그 안에서 줏대 없이 빙빙 돌고 있는 등장인물들은 관객에게 불쾌감과 지루함, 중간 중간 터지는 실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는 대체적으로 낮은 공포, 지루한 축제 묘사, 이해하기 어려운 주인공들의 기만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왜 우리는 잔인한 살육장면을 기다리고 원하는가? 주인공들의 참혹한 비명의 순간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팝콘통을 내던지는가? 가공의 장면일지언정 신체가 잘려나가고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는다. 우리가 시원한 웃음과 함께 극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생생한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도처에 편재한데.


영화가 보여주는 "호르가"의 오컬트 공동체는 1차적으로 우리가 공포영화를 보는 심리를 메타적으로 묘사해 영화 속 인물들, 혹은 타인의 고통이 어떤 '향유'의 대상이 아님을 넌지시 시사한다. 주인공 '대니'는 동생의 정신실환으로 일가족을 모두 잃은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그녀의 고통을 누구보다 깊이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녀와 진정한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 사실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미 대니가 처한 상황과 그로 인해 연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극한의 감정소모에 크리스타인은 지칠대로 지친 상태. 이것을 감독은 영화 초반부터 중반부까지 반복적으로 힘주어 묘사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으로 일가족을 잃은 참상으로 자신 또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대니에게 있어 현실은 매 순간 고통이고 공포다. 그런 당연한 사실조차 누구에게도 공감받지 못하는 비극을 그녀는 또한 혼자 감당하고 있다. 대니를 진심으로 위로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생각조차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크리스티안이지만 그런 그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 그러나 호르가 공동체는 모든 감정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 태어남, 고통, 기쁨, 죽음. 타인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고 그의 감정을 나에게 전이함으로써 완성되는 완벽한 공동체. 이러한 광경에 대니와 크리스티안을 비롯한 여행객들은 모두 기괴함을 느끼지만, 영화가 마무리될 무렵 그것은 하나의 통일된 메세지를 전달한다. 기만의 벽과 자아의 성을 모두 허문, 하나가 된 우리.


그러나 이런 공동체가 그냥 건설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풀려난 인간의 모든 부정적 생각과 감정도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몫이기에, 마을은 기꺼이 그 악덕을 수행한다. 호르가의 방문객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광기로 비칠지 모르나 과연 그럴까?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에서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는 그들을, 아프리카의 소년병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과연 제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은 남미의 마약 카르텔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영화의 주제의식은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과 나를 가르는 자아와 기만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로 확장되어간다. 호르가 사람들은 4계절에 비유해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공동체의 숙명론에 충실한 일부로 삶을 영위하고 마무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까지 모든 과정을 일말의 번뇌 없이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비록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오지의 소규모 공동체를 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의 규범을 준수하는 한, 얼마든지 타인도 호르가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아의 성을 허문 것은 그들이고, 욕망의 속박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우리니까.


호러영화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고, 또한 영화의 개연성이나 디테일에서 부족함이 더러 있다. 이를 테면 주인공 일행은 인류학 연구 목적으로 호르가를 방문했는데, 이들이 호르가를 끝까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마약으로 묘사한다. 물론 주술적 행위임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이지만 '왜 도망 안가?'라는 의구심을 명쾌히 설명하진 못한다. 그러나 다소 어려운 주제의식을 화려한 미술효과로 풀어내준다.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호르가 마을을 처음 보는 순간 에덴동산 같은 지상낙원을 암시함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향효과가 탁월하다.


공포라는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 살아있는 한, 호러영화는 언제까지나 장르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공포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소통의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호러영화가 아닌 호러를 넘어선 영화로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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