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의 역대급 성공사례를 마이클 키튼의 연기로 간접체험한다!
영화는 마이클 키튼이 강렬한 눈매를 빛내며 일장연설을 쏟아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자글자글한 주름이 자신감 넘치는 그의 표정 위에 마치 훈장처럼 빛나고, 낮게 깔린 목소리엔 확신이 있다. 상대방을 추어세우기도 하고, 경영학과 경제학의 비전까지 아우르는 그의 말엔 에너지가 충만하다. 그러나, 고작 그가 파는 것은 밀크쉐이크 믹서. 그가 마주한 햄버거집 사장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꺾는다. 그것은 1954년의 미주리주. 한여름 더위에 키튼의 얼굴에서 방금 전 흘러넘치던 자신감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린다.
레이 크록(마이클 키튼)은 밀크쉐이크 믹서 유통사의 사장이자 유일한 판매원이다(다른 몇가지 상품을 더 취급하긴 한다). 드넓은 미국 땅을 나홀로 누비며 레스토랑과 햄버거집에 어떻게, 최신식 밀크쉐이크 믹서를 팔아보려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이 썩 재미가 없다. 쓸쓸한 외지에서의 밤. 자기계발 강의를 들으며 의지를 불태우지만 다음날에도 레스토랑 사장들은 냉담한 반응들일 뿐. 이제 슬슬 용사의 훈장처럼 보이던 그의 잔주름이 세월의 풍파로 보이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주에서 혁신적 햄버거식당을 운영하는 맥도날드 형제와의 만남으로 그의 인생의 전기가 새로 열린다. 중부의 미주리주에서 캘리포니아까지는 수천km.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던 최신식 밀크쉐이크 믹서를 8대나 사겠다는 미친 식당 주인을 만나기 위해 레이 크록은 그 길에 기꺼이 나서고, 맥도날드 형제의 햄버거 조리 공정 혁신과 그를 통해 만들어진, 당대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서비스 품질과 매출량을 보게된다. 그리고, 그는 맥도날드 형제와 프랜차이즈 사업 계약을 맺게된다. 어렵사리.
그렇게 영화는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를 설립하고, 맥도날드 형제들과 사사건건 대립을 하다가, 마침내 형제들을 사업에서 물러나게 하고 세계적 기업가로 우뚝 선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과정이 완전히 도덕적이지 못했지만, 거꾸로 레이 크록이 겪는 현실적 한계 역시 밀도있게 보여준다. 확장하는 프랜차이즈, 그로 인해 발생하는 체인점 관리의 어려움, 만성적인 재정악화, 사업가인 레이를 옥죄는 판권자 맥도날드 형제의 옹고집. 영화는 이미 꽤나 잘 알려져 있는 레이 크록의 일화를 미화하려고 하지 않고, 대신에 그가 욕망이라는 발톱으로 어떻게 현실의 벽을 할퀴고 올라가 승리자가 되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가 갖는 첫번째 장점은 의외로 비주얼인데, 1950년대의 정경에 대한 풍요롭고 느긋한 묘사는 물론이고 흑색과 백색을 바탕으로 원색으로 장식된 화면들이 영화의 스피디한 진행과 어우러져 상당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점원이 미니스커트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차로 와서 음식을 서빙하는 당시의 드라이브인 형식이라거나, 맥도날드 형제들이 만들어낸 햄버거 조리공정 혁신 장면은 맥도날드라는 소재의 매력을 십분 살려낸 장면들이다. 특히 햄버거 조리공정 먼저 실제로 보여준 뒤에, 그것을 시뮬레이션 하는 장면을 배치해서 맥도날드 형제의 혁신이 얼마나 훌륭한 것이었는지를 힘주어 묘사한 시퀀스는, 그것만으로도 영화의 가치를 갖는 명장면.
맥도날드가 현대 미국의 식품산업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지라, 레이 크록의 맥도날드 설립이 워낙에 중요한 사건이다보니 이 과정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다. 스피디한 진행과 편집으로 여러 사건을 빠르게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레이와 맥도날드 형제의 갈등, 그리고 다른 주변인물들이 엮이며 터져나오는 의외의 변수들까지 합쳐서 영화를 온갖 예측불허의 사건들로 이끌어간다. 레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프랜차이즈를 키워가고, 그 과정에서 수십가지 장애물을 맞닦트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룰을 파괴하고, 게임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그는 정점에 오른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 과정이 쉽지 않다. 벽을 오르는 그의 손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고 갈수록 바람은 거칠게 그를 흔든다. 극 후반까지 레이의 발에서 땀이 마를 날이 없고, 주름은 깊어지기만 한다. 그가 결코 선인은 아니지만 그가 사업을 이끌며, 정말로 온 힘을 다한다. 허세와 허술함이 엿보였던 그의 풋내기 사업가로서의 행보가 정말로 사업이 커지고 그의 역량을 넘어서는 여러 장애물들을 하나 둘 넘어서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크나큰 성공을 이뤄내게 되는 장면에 이르러선, 관객의 긴장 역시 폭발하며 레이에 깊이 이끌리게 된다. 냉정한 자본의 세계에 애초에 선과 악이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이때쯤 관객도 깨닫는다. 무언가를 쥐고 흔들 권력을, 스스로 얻어낸 이 과정을 지켜보았으니 말이다.
레이의 일대기는 맥도날드 형제의 본점을 사실상 강탈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성공한 개새끼"인 그를 묘사하는 후반부는 레이 한사람에 대한 묘사라기보단, 냉정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 중 하나인 그를 통해 비즈니스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재능이 있어도 성공하지 못한 이들보다 흔한 것은 없다. 천재성도 소용없다.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성은 진부한 이야기다. 끈기와 결단만이 힘을 발휘한다." 레이는 모텔방을 전전하며 밀크쉐이크 믹서를 팔던 중년의 남성에 불과했고, 그날 밤 그가 매일 꾸던 꿈은 진심이었다. 꿈이라기보단 욕망이었지만, 적어도 그는 모든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냈다. 누구도 함부로 못할 도전에 애초에 뛰어든 것을 포함하여.
버드맨으로 입증된 마이클 키튼의 연기력이 이 영화에선 한 층 더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만나 그의 아우라를 잘 살린다. 맥도날드 형제나 다른 등장인물들도 흡입력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아~주 익숙한 배우가 한명 등장한다). 어두운 밤의 맥도날드 점포를 보면, 배가 고프기 전에 가슴이 떨린다.
우리도 결국 모두가 정글 속에 던져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