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구는 코로나 대응에 무능한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한국인들은 나폴레옹이 한 명언은 알아도, 그가 알프스 산맥을 왜 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프랑스의 황제에 스스로 오를 만큼의 권력을 거머쥐기 전에 그가 왜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하고 전 유럽을 정복하는 대장정에 오르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코르시카 촌놈, 하급 지휘관이었던 그가 몇년만에 장군으로 벼락 출세를 하게 된 것, 그리고 영국의 침략군을 섬멸하는 최초의 전공을 이룩한 것, 그리고 국가의 혼란을 종식하고 이탈리아를 격파한 것, 그 모든 시작에는 프랑스 대혁명이 있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의 씨앗이.
프랑스 대혁명은 유럽사회의 격변을 불러일으킨다. 시민들의 왕의 목을 자르고 의회가 국가를 장악했으니 주변 국가들은 대경실색해 프랑스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침략을 가했다. 그에 호응해 프랑스 내부에서도 다시 왕정을 복고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실제로 이후 프랑스 왕정은 복고되었고, 그렇게 과거로 되돌아간 프랑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공화정 재건을 외치다가 스러지는 젊은 목숨들의 목소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레미제라블>의 서사다. 여기까지만이라도 우리 한국사람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고 또 이해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근대 민주주의는 탄생했다. 유럽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하나 둘 점령해가면서도 스스로는 절대왕정에서 벗어나 공화정으로, 입헌군주제로 진화해 갔다. 헌법이 세워지고, 국가 3부가 정립되고, 상호견제의 원리에 따라 권력을 분점할 수 있도록 했다. 식민지 착취를 통해 이룩된 풍요와 그러한 풍요로부터 발생한 높은 문화수준과 지식체계는 문명을 근대화했다. 한 때는 "자비로운" 사형 수단이었던 기요틴은 20세기 들어서 야만으로 인식되었고, 늘어난 평균수명과 발전한 의료기술로 인하여 인간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졌다.
인간의 가치와 함께 인구가 폭증하면서 유럽은 "인간"의 범주를 확장시켰다. 유색인종도 비로소 인간의 옷을 입게 되었고, 여성도 참정권을 얻었다. 장애인, 정신병자, 동성애자도 이른바 "정상인"과 동등한 권리를 차차 부여받았다. 바야흐로 식민지까지 해방되었다. UN이 설립되고, 민족자결주의의 원리가 제창되고, 선진국의 원조를 통하여 후발산업국가들이 속속 세계시민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21세기. 이제 인터넷으로 더욱 지구촌의 문명인들으 상호교류는 시간과 공간의 벽을 거의 넘어서고 있다. 발전된 컴퓨터 기술은 언어의 벽을 무너트리기 일보직전이다. 항공기술도 발전했다. 인류는 더 가까이, 더 하나가 되는 길로 달려왔다. 그런데,
정작 유럽, 그리고 새로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그렇게 전 지구가 함께 쌓아올려온 문명이란 사다리를 걷어차는 걷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들의 지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다리 걷어차기
매 순간 순간 서구문명이 지구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거침없이 후발국가들이 오를 사다리를 걷어차거나, 문명 그 자체를 거부하고 걷어차 온 것을 보면 정말이지 기가 찰 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의 한 구절이다. 이것이 작성 및 선포된 것은 1776년이다. 그런데 1890년, 미 7기병대는 "운디드니 대학살"을 일으킨다. 미국 서부의 마지막 인디언 거주민들을 섬멸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 서부가 "평정"되고 서부가 완전히 유럽 정착민들의 것이 되었다. 대체 독립선언문의 정신은 어디에 간 것인가? 그 후로도 미국은 남미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쿠바에는 직접 파병을 하고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등의 행보를 보여왔다.
Broken bottles under children's feet
깨진 병조각들은 아이들의 발 위에 나뒹굴고
Bodies strewn across the dead end street
막다른 길엔 시체들만 즐비합니다.
But I won't heed the battle call
하지만 나는 ,
It puts my back up
끝까지 싸울것입니다.
Puts my back up against the wall
벽에 내 등을 기댑니다.
Sunday, Bloody Sunday
일요일, 피의 일요일
U2의 명곡 <Sunday Bloody Sunday>다.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베르사유조약에서 민족자결주의가 승인된 이후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아일랜드인의 특징인 강렬한 흰 피부와 붉은 머릿결은 미국 대중문화에서도 차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지 붉은 머리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혹은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하지조차 못하고 있다. 영국은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벌여 북아일랜드 시민을 총격 사살했다.
4.19 혁명은 미국의 한국 전후 복구 지원사업의 빚을 크게 졌다. 38선 이남을 점렴한 미군정은 일제 잔재를 걷어내고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을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 구성해야 했는데, 그들은 그 핵심가치로서 민주주의를 채택했다. 전란 속에서도 자갈밭에서 수업을 듣던 1950년대의 까까머리 초등학생들은 동시, 구구단과 함께 민주주의란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가치롭게하는지를 배웠다. 4.19 혁명의 초기 주도세력이 초중등학생들이었던 것은 그런 사정이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이승민의 민주주의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참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반공주의의 광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이미 미군정이 한국에 들어와 민주주의교육을 제안하고 있을 때 미국 각지에서는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교사들을 숭덩숭덩 해고하고 있었다. 교사들의 자신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던 것이 해고와 "공산주의자" 딱지가 붙은 이유였다. 탱자가 회수를 건나와 귤이 된 격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병들어 있던 민주주의가 한국에 건너와 아시아 최초의 시민혁명을 일으키고, 그 역사가 다시 흐르고 흘러 세게 최초의 무혈시민혁명을 이룩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문명이란 사다리를 걷어찬 나라의 국민들은 과연
과연 그 나라 시민들의 인식은 어떻게 구성될까. 미국은 운디드니 대학살을 사과했는가? 진상을 규명했는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유대인 홀로코스트 사죄를 연례행사로 하고 있는 독일이 막상 식민지 유색인종들에게 했던 일에 대해선 사죄도 배상도 없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치가 벌인 전쟁의 피해자연하고 있는 유럽 각국이 사실은 전세계 식민지에서 잔혹한 학살자로 군림했던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식민지배를 당한 민중들이 <1917>, <덩케르크>,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볼 때, 그들은 서구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감수성에 대해서 과연 얼마나 분노를 느낄까.
자유, 평등, 박애, 천부인권, 민주주의 그리고 수많은, 오늘날의 현대 문명을 규정하는 수많은 가치들이 서구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분쇄되어 왔고 지금도 분쇄되고 있는 것은 서구인들의 잠재의식에 인지부조화를 내재시켜왔을 가능성이 크다. 흔히들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 특권의식이라 불려왔던 그들의 비도덕성. 그리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사건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그들의 반항과 혐오감.
https://www.youtube.com/watch?v=Vn6elsrKz70
위 TED 영상에서 강연자가 말하듯, Civility는 미국 사회에서 더러운 단어가 되었다. 도덕과 예의를 갖춘 태도가 편향성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 사태는 현실이 되었다. 혐오를 두룬 정치세력이 세계 최강대국의 행정부를 장악했다. 왜? 백인이 다수이고, 그들은 지금까지 룰을 아무렇지 않게 여겨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그 어떤 룰이라도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거침없이 파괴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받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코로나
총기를 든 백인들이 "Live Free or Die"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날 미국이, 그리고 여러 선진국들이 그 국가적 위상에도 불과하고 코로나에 놀라울만큼 무능력하고 무질서한 것이 내게는 그들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문명이라는 사다리를 걷어차 온 결과로 보인다. 그들은 자유, 평등, 박애, 민주주의, 세계시민의식, 천부인권을 실천해본 경험, 그 가치를 내재화해본 경험이 놀라울 정도로 부재하다. 그들이 내재화하는 가치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아닐까.
"우리는 나치와 베트콩들에게 맞서 싸운 영웅들."
"우리 선조들은 전세계를 경영한 엔터프라이저들"
"학살과 폭력이 오늘날 우리의 영광이 되었고, 지금 보잘것 없는 나의 모습은 그놈의 유색인종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탓."
이런 서구인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상시착용, 기본 보건 위생이 씨알이나 먹힐까?
한국 다음으로 독일이 유~일하게 코로나 대응에 성공하고 있는 것은 우연한 결과로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독일은, 유럽인들을 대상으로라도 성실하게 사죄를 해 왔다. 독일인들은 적어도 유럽사회 안에서 만큼은,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명제를 내재화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보다 높은 준법의식이 형성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문명이라는 사다리를 거부해온 딱 그만큼, 사회는 야만으로 치닫는다. 독일과 함께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이었으면서도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한 일본과 이탈리아가 놀랍도록 코로나 대응에 무능하고 무질서한 것 역시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일본은 전후 사죄 및 배상을 거부했고 반문명적 성취를 구가했다. 전쟁특수를 통해 일궈낸 부로 과거사를 도리어 미화했다. 그런 나라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조차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 잃어버린 10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아베노믹스에 이어서 코로나 판데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자민당 1당 독주체제는 무너질 기미가 없다. 아직도 마피아가 지역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말할 것도 없을 테다.
도리어 한국인으로서는, 전세계를 휩쓸어간 제국주의의 파고 속에서 어떻게든 어떻게든 생존하고, 그 다음에는 신자유주의로 촉발된 국가부도 사태와 극도의 양극화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 오로지 문명의 힘이 아니었을까 하는 웃기면서 슬픈 생각조차 든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이식된 근대문명을 받아들이기에, 일제강점기라는 안티테제가 존재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군사독재정권과 피 흘리며 싸우고서도 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잘못된 선택의 댓가로 36년의 치욕을 겪었고 국가분단의 참상을 겪었다는 트라우마가 현대 문명에 나름 충실할 수 있도록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물론, 우리도 어느덧 아시아의 강국으로서 베트남 전쟁이라거나 국내의 인종차별에 대해 아직 사죄와 배상을 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과거사부터라도 하나 둘 되짚어 고쳐나가고 있다.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진전되고, 광주에서 양민을 학살하도록 명령한 살인마 전두환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다시 법정에 세워지고 있지 않은가.
영토도 작고 자원도 없는 판국에 국가권력은 무도한 독재정이라 그에 조금이나마 다가설 수준의 지식이 아니면 생존이 불투명했기에 온 국민이 자기 자식들을 교육경쟁으로 몰아넣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국. 멈추라고 하면 멈추고 마스크를 쓰라고 하면 쓰고, 국민에게 복종할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맞춤하게 만들어내서 코로나 비상대응 체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명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끊임없이 단련한 가련했던 우리의 지난날이 빚어낸 역사의 역설이다.
코로나는 세계적 재앙을 불러일으켰고, 마치 호수 밑바닥부터 온통 물이 뒤집혀 흙탕물이 되듯 세상을 어지럽혔다. 그 바람에 국가권력 수준의, 기존의 질서는 소실되고 Civility와 같은 시민의식, 국민 하나 하나의 역량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역량과 가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해가는 미래사회의 생존규칙을 고작 코로나가 10년쯤 앞당긴 것일 뿐인지 모른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반성과 속죄가 없이 이루어진 영광으로 인해 서구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에서부터 배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