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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1. 2020

까일 영화 아님. <반도>

보아라 좀비들아 이것이 김치맥스다

 대개의 대중영상물은 장르의 특성을 품고 태어난다. 첨단 기술이 속속 영상기법으로 활용되면서 전반적인 제작비가 과거완 달리 천정부지로 솟아버린 극장영화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저예산으로 심도 깊은 드라마와 캐릭터, 주제의식을 담아낸 소규모 영화가 아무리 많이 제작되어도 시각효과에만 수백, 수천억원을 투자하는 현대의 헐리웃 영화 앞에선 속절없이 무너질 따름이다.


 단지 영화의 품질만이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선택의 문제로서도 그렇다. 우리가 꼭 봐야 할 깊이 있는 드라마가 수도 없이 쏟아진다 한들, 오히려 첨단기술이 제작에 활용된 블록버스터는 1년에 한 두편. 희소성을 따지자면 단연 블록버스터가 우리의 더 나은 선택지다. 자본의 게임이 되어버린 영화산업에서 이야기의 품질을 따지는 논리는 그래서, 투자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 온갖 장르적 클리셰를 버무리는 블록버스터 앞에서 꽤나 취약성을 드러낸다. 근래 보기 드문 깊은 드라마, 빼어난 스릴, 장르를 변주하는 능란한 각본, 뛰어난 연기까지 두루 갖춘 명작영화인 <나이브스 아웃>의 관객수는 국내에서 100만을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장르는 현대 블록버스터의 필수적인 공식이 되었다. 한국에선 장르물이 안먹힌다는 것도 옛말. 불편함으로 똘똘 뭉친 영화인 <조커>가 호아킨 피닉스의 호연과 조커의 캐릭터성에 힘입어 500만을 찍는 영화시장이다. 거기에 블랙코미디 스릴러 <기생충>이 한국인의 영화 지평을 한껏 넓혀놓은 데다가, 안그래도 멀티플렉스의 탄생으로 영화관람이 워낙 대중적인 취미생활이 되었으니 어지간한 장르도 한국에서는 통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속에서 좀비물은 굉장히 이상한 장르다. 좀비물은 장르적 특성을 심각하리만치 용서받는다. 애초에 그저 허약한 인간 신체일 뿐인 좀비들이 아포칼립스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상상력 자체가 허무맹랑하다. <월드워Z>의 원전인 <세계대전Z>의 경우에는 좀비 아포칼립스의 개연성을 위해 좀비가 심해에서 영구히 동작이 가능하다는 설정까지 해두었을 정도다. 현대적 좀비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새벽의 저주>는 <28일 후>와 함께 달리는 좀비를 처음으로 등장시켜 좀비사태의 개연성을 "조금" 높였을 뿐, 영화를 보는 내내 "왜 화공을 안하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28일 후>와 그 후속작 <28주 후>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장르적 설정을 눈감아주고서 진행되는 영화들이다. 여성을 유인해 성노예로 삼기 위해 그 멀리까지 무전을 보낸다고? 군부대가 있으면 원래 그 인근 지역에 당연히 마을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물론 장르적 특성을 용인한다고 해서, 그 어떤 영화도 마블의 <앤트맨>에 나오는, 그저 자기 편할대로 마구잡이로 써먹는 질량의 법칙을 넘어설 순 없다고 생각한다. 개미 사이즈로 작아져서 무게는 가벼운데, 그 상태에서 휘두르는 펀치는 정상 사이즈의 성인일 때의 질량이라니. 차라리 <앤트맨>이라기보단 <앤트 스트레인지> 쪽이 더 개연성 있는 설정일듯하다.


 어쨌든, <부산행>의 이야기를 먼저 조금 해보자. <부산행>의 경우는 좀비 장르의 여러 장르적 헛점을 KTX에 탑승해서 이동하는 설정을 통해 해결한 굉장히 영리한 영화다. 앞에서 말한 화공? KTX인데 어따가 해요. 생존자가 모여서 빚어내는 군상극의 부조리함? KTX잖아. 지나치게 센 좀비? 여기 마동석이 있습니다. 어디 한번 물어보시죠. 뭐 이런 식으로.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할머니의 그 장면까진 납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연상호 감독이 나름 좀비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있고, 좀비물의 헛점도 잘 피해갔다. 그 결과는 홈런.


 그러고 나서, <부산행> 4년 뒤에 속편인 <반도>가 나왔는데, 글쎄 이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여기 저기서 까임을 당하기 시작하더니, 무슨 <부산행>의 반의 반도 안되는 영화라느니, 개연성이 엉망이라느니 하는 소리는, 상당히 과도한 악평이 한구석에서 새어나온다.

 괜찮은 영화다. 기존 좀비영화의 클리셰와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판을 잘 깔았다는 점이 칭찬할만하고, 우선 완전한 아포칼립스를 그려냈다는 점이 박수를 받을만하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그린 선구자적인 작품은 <나는 전설이다>일 텐데, 좀비와의 싸움의 스릴은 유지되더라도 한정된 공간적 배경으로 인한 서사의 제약이 연출의 단조로움으로 전이되는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반도>의 경우 완전히 붕괴된 서울을 공간으로 하여 이틀의 낮과 밤의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주인공의 행동의 동기, 목적, 투쟁의 대상, 그에 따른 액션의 구성이 변화한다. <부산행>의 초기 좀비사태 발발을 넘어서고, 그리고 여타의 좀비 영화와의 차별화에 성공한 세련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동기와 목적이 변화하는 가운데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각본도 꽤나 괜찮다. 본래 좀비 장르에서 생존자 집단이 모여서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빚거나, 탈출계획을 모의하는 과정은 상당히 루즈한 편이다. 근래에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좀비 영화 <좀비랜드>조차도 1,2 모두 생존자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중반부의 루즈함에 대한 비판은 빠지지 않는데, <반도>는 이 구간을 강동원과 분리되어 따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움을 벌여야 하는 그의 매형과 교차편집을 함으로써 지루함을 피해갔다.


 인천을 통해 서울로 들어갔다가, 다시 어디론가로 탈출을 해야 하는 (좀비물 치고는 나름 깊이있는)단순한 각본을 화끈하게 만들어줄 중요한 책임을 품고 있는 액션의 경우도, "김치맥스"라고 부르고 싶은 모하비와 택배 트럭의 화끈한 카체이싱 액션이 상당한 퀄리티로 뽑혔으며, 그 구성도 다채롭고, 결말까지 시원하니 만족스럽다. 초반의 총격전은 상당히 느슨하지만 중반부엔 그것을 보상할만한 "택티컬"한 총격전도 잠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제의식이나 복선을 충실하게 배치하고 충실하게 회수하는 나름의 수미일관한 구조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만하다.


 반면에, 디테일은 정말이지 취약하고 군데군데 "장르를 넘어선" 개연성 붕괴가 적지 않게 드러나는 점은 인정해야 할듯하다. 초반에 홍콩으로 가는 탈출선의 경우도, 이를테면 마지막 탈출선인데 갑판이 텅텅 비어있다. 최대한 탈출 인원을 태우고 불필요한 화물을 빼내서 갑판에까지 난민이 가득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좀비의 그 브레이크댄스를 연상케 하는 몸짓은...초반부터 이런 디테일을 접하는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지고 강한 선입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첫인상을 좋게 가질 수가 없는 헛점들이 소격효과를 일으키고 나면, 장르의 공식은 눈에 가시다. 그리고 그 장르의 허용 한계 속에서 역시나 디테일한 연출을 보여주진 못했다. 때문에, 관객으로선 이어지는 장면마다 납득이 어렵다. 카체이싱을 위해 널찍히 치워진 도로는 "반도 내부 생존자 집단이 물자 운반을 위해 정비해 두었다"라는 대사 하나만 집어 넣었어도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간 빌런의 행동들이나 관계들도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아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배경을 추측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만하다. 그리고 모두 개연성을 확보하긴 했지만, 그래도 갑툭튀스럽게 사건들이 진행되는 면이 있다. 좋게 봐주려면 얼마든지 좋게 봐줄 수 있는 장면들이, 영화 초반에 형성된 선입견으로 인해 나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장르 영화가 오랜 기간 부진했던 이유다. 건전음악과 불량음악을 구분해 따지던 나라, 검열의 칼이 살아있던 나라이니 장르의 특성은 "건전"과 "불량"의 판단기준에 따라 평가되기 쉽다. <반도>에 대한 엇갈리는 평도 대체로 정확히 이런 측면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여전히 장르에 대한 부족한 이해도 자리한다. 아포칼립스 물에서는 클리셰적인 소재나 연출도 이 영화에서는 부족한 개연성이라고 욕을 먹는 판이니.


 이런 상황이니, 아무리 관객과의 교감을 위해 유진과 준이라는 중학생과 초등학생 캐릭터를 넣어서 좋은 역할을 맡겼거나, 강동원의 트라우마 극복과 주제의식을 살려내기 위해 배치한 후반의 장면들이 있어도 이번엔 불필요한 사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정리하자면, 연상호 감독은 확실히 좀비 장르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감독이라는 것이 증명된 속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짜임새, 스릴, 액션, 주제의식까지 훌륭하게 담아낸 영화다. 다만 디테일이 상당히 부족하고, 그 부족함이 서사의 배경을 구성하는 영화 초반부에 너무 확 드러나니 선입견을 쉽사리 형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것은 경력이 쌓여야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 박찬욱 봉준호도 처음엔 다 그랬다니까.


 덤으로, <반도>에 대한 일부의 과도한 악평은, "망작코인"을 타먹으려는 일부의 욕심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화제작이니, 쎄게 까면 조회수가 펑펑 터질 것이라는 욕망에서 정말 자유롭게, 작품성만을 생각해서 평을 하는 사람들일까 과연? 다리에 맞은 탄환이 몇구경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맞아서 어떻게 부상을 당한 상태인지도 모르는데 일단 총을 맞은 다리이니 절뚝거리며 뛰는 게 이해 안된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아니 그런 걸 따질 거면 토니 스타크가 수트 입었다고 전신골절 안당하는 건 어떻게 설명을 하려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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