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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30. 2019

손석희, 김어준, 유시민 : Old & New

매스미디어(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변증법 그리고 세 언론인

서문 : 여전한 언론의 위기


 글을 구상하고 짬을 좀 내 오늘은 써야겠다 생각한 오늘에야 현재 가장 파급력 있는 언론인 세 사람이 그러고보니 모두 진보진영에서 성장하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글이 공정할 수 있을까? 비판적으로 글을 독해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미 논거 자체가 편향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손석희야 언론인 영향력 1위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김대중 주필이라거나 조갑제 선생을 빼고 김어준 잡놈이라니. 이 세 사람을 같은 선상에서 놓을 수 있는 것이 가당한가 등등의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선 명확히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로 이 글에서는 세 언론인의 활동영역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차이점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검토를 해보고자 한다는 점이다. 세 사람은 각자 주류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무대로 언론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상당히 유의미한 언론관의 차이를 보인다. 둘째로, 정치적 중립성보다는 언론으로서 파급력을 중시해 선정한 인원구성이다. 실제로 이 세사람은 수년간 언론인 신뢰도에서 123위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밑으로 김대중 주필 주진우 등등이 랭크된다. 셋째로 세 언론인이 사회적인 기여를 하고 명성을 쌓아올린 과정이 실제로 진보적 가치를 확산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손석희는 현재는 JTBC에서 사장 겸 앵커를 겸하고 있지만, 그가 언론인으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한 것은 노무현 정권 기간 MBC의 백분토론과 라디오프로 시선집중에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이미지를 확립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본문에서는 세사람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서문에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갈음코자 한다. 그러나 혹여라도 여전히 이 글에서 편향성이 발견된다면, 세 언론인이 신뢰도 1~3위를 차지하고 있는 추세가 길어지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언론의 위기를 자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되게 노무현 정권 시기 축적된 사회적 전문적 자본으로 이 세사람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기를 뚫고 나온 지금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언론이 정권에 굴하고 양심있는 기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역사에서 비롯되었던 것은 아닌지를 말이다.


0. Old & New Media  

 첨부한 표는 미디어의 기술적 구분에 따른 역할과 작용의 차이를 밝힌 것이다. 학부 시절 수업 자료를 수년 전에 손으로 옮겨 쓴 것을 대충 찾아 올리게 되어서 출처는 찾기 어렵다. 어쨌든. 이 표를 통해 언론의 전통적 영역인 매스미디어와 최근 영향력이 급증하고 있는 뉴미디어의 차이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좌측열의 대면적 커뮤니케이션은 실제로 인간 사이의 대화의 작용을 통해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작용을 비교해볼 수 있는 자료다.


 매스미디어의 특성에 대하여 논하기 전에, 매스미디어가 성립된 역사를 짧게 짚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보는 TV방송 시스템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정립되었다. 90년쯤 된 체제라는 이야기다. 물론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90년의 시간만큼이나 매스미디어의 변천도 있었으나 채 20년도 안된 나이의 뉴미디어와 비교하면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 그런데 신문은? 훨씬 더 오래됐다. 1800년대 초중반에 오늘날과 유사한 신문사 형태들이 정립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현대의 언론정보학이 대체적인 틀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의 언론모델 자체가 현 시점에서는 상당히 위협받는 처지가 된 것은 이런 이유다. 이른바 "덤벼라 문빠들" 사건이나, 공중파 방송에 마구잡이로 출몰하는 일베충들의 이미지 등, 매스미디어는 모든 체계가 상대적으로 변해가는 현대에 그 내실이 현저히 부실해져가는 뼈 빠진 공룡같은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뉴미디어가 대세인가? 하면 전혀 아니고.


 매스미디어의 특징은 매세지의 흐름이 일방향적이며 또한 메세지의 다양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Mass는 불특정의 다수를 의미한다. 미친듯이 공장을 돌려 최대한의 생산성을 기해야 하는 공산품처럼, 매스미디어가 바라보는 대중은 기본적으로 평면적 집단체다. 그들과의 상호작용은 낮고 ,피드백은 극히 제한적이다. 당연히도  집에 안테나 달랑 있던 시절이기에 우편에 사연 적어 보내면 4,5일 뒤에 사연 읽어주고, 사은품 추첨하던 시간이 수십년간 지속되었다. 피드백이 불가능한 기술적인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매스미디어는 전체 국민의 총의에 가장 근접한 집단으로서의 대중을 상정해 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무한대의 메세지 교환이 가능한 뉴미디어에서 이런 추세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메세지의 흐름은 쌍방향적이고 그 내용은 다양하다. 피드백과 메세지의 취사선택에서 폭넓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뉴미디어가 상정하는 대중은 매스미디어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대중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이 평면적 대중을 상정해야 하는 매스미디어와는 달리, 뉴미디어는 메세지를 수용하는 대중에 대한 폭넓은 정보를 지니고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고, 또한 생방송 중에도 피드백을 통해 더욱 수용자의 디테일을 강화하고, 그에 맞춘 메세지를 즉각적으로 보낼 수 있다.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는 전파와 네트라는, 근본적인 기술의 차이로 인하여 이와 같은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각 언론유형에 종사하는 개개의 언론인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부터 그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1. 손석희 : 최고의 올드미디어 스타

 손석희는 매스미디어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이 시대 최고의 올드미디어 스타다. 그의 언론활동은 뉴미디어가 프로그램 제작 능력을 갖추어 유튜브에서 일일 뉴스보도가 가능한 지금의 시대에 매스미디어가 갖는 파급력을 입증하고 유지하는 올드미디어 시대의 언론인의 모델과도 같다. 그가 MBC에서 수년간 보여준 토론사회능력과 이슈에 대한 이해력, 냉정하고 공정한 언론의 자세는 김어준 같은 소위 잡놈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덕목이다. 그렇게 손석희는 수십년간 축적된 전문적 자본을 JTBC의 보도부문 사장으로서 만개해내, 세월호 참사 보도와 박근혜의 국정농단 보도를 통해 매스미디어의 파워를 입증했다.


 그러나, 손석희의 언론모델은 지금 위기를 맞고 있다. 조국전쟁과 같은 초대형 이슈에 뉴스룸의 시청률이 드라마틱하게 추락해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조국을 둘러싼 시청자들의 정파성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언론의 본분은 기본적으로 중립보도이기 때문이다. 조국 일가가 혐의가 100가지가 있더라도 그것이 모두 사실에 근거한 냉철한 보도라면 언론은 그를 통해 새로운 신뢰도를 쌓게 되고 그것은 시청률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손석희의 뉴스룸은 오랜 시간 그것을 입증해왔다. 무엇이 문제일까? 환갑을 넘은 만년의 그가 보여준 언론 모델은 거대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와 개인의 권위주의적 언론인 유형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앵커브리핑은 손석희의 언론인으로서의 권위를 상징한다. 언론사의 사장이자 메인앵커, 십수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이라는 타이틀. 그만을 위한 무대에서 그는 매일 세련된 이미지와 함께 TV뉴스로서의 칼럼에 해당하는 단평을 한다. 그것은 별도의 꼭지로서 소비되며, JTBC에서 그의 브랜드를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이런 뉴스포맷의 존재는 언론사의 작동구조를 왜곡한다. 앵커브리핑 기사문을 손석희가 작성한다면, PT되는 이미지는 누가 작성하는가? 원고를 최종검토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루하루의 아이템을 선정하고 뉴스의 맥락을 건져내는 것은 누구와 하는가? 매스미디어는 수십부터 수백명까지 협업으로 기능하는 거대집단이다. JTBC 뉴스는 손석희의 것이어선 안되고 실제로도 그만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 뉴스꼭지가 마무리되고 사장이 직접 나서 송출하는 앵커브리핑은 JTBC 뉴스가 온전히 그의 것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한다.  


 뉴스제작자들의 협업에 형성되는 권위는 치명적이다. 팩트가 왜곡되고 그 이전에 제작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 국민들의 총의를 반영하는 대중을 상대로 한 메세지를 제작하는 방송뉴스 제작자는 그 누구보다도 권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손석희는 스스로를 덮어누른 권위주의를 거북해하지도, 벗어날 생각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요소가 강한 매스미디어에서 성장하고 자란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뉴스룸 보도국이라는 "인의 장막"은 그의 언론인의 권위를 지키는 성벽이다.


 그의 뉴스포맷은 여전히 올드미디어에 머무른다. 언론 분야의 권위자인 그가, 평면적 대중을 향해 일방향적 메세지를 보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은 불필요하다. 시청률 등의 지표로 언론의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알람이 보이지만, 피드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매스미디어는 쌍방향 소통을 전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조가 정해지면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논조"는 모든 언론사가 갖고 있는 한계이지만 아래에서 다룰 유시민과의 차이점에서 보듯이, 일방향성과 피드백의 부재는 그가 결코 극복하지 못할 올드미디어의 맹점이다. 언론이 취재를 통해 충분히 팩트가 구성되면, 그때부턴 눈가리개를 하고 결승선까지 달려간다. 방향이 맞았으면 특종하고 성공한 보도가 되고 방향이 틀렸으면 정정보도와 사과문 몇번이면, 다시 경주에 나설 수 있다. 그것이 올드미디어가 매스로서의 대중을 대상으로 해 온 일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2. 김어준 : 뉴미디어에서 태어나 올드미디어로 파고든 괴물

 반면 김어준은 "잡놈"이다. 언론사 공채 출신도 아니다. 딴지일보 같은 삼류 도색 사이트나 운영하다가 책 팔고 성인물품 좀 팔고 하다가 한겨레가 밀어줘서 계속 언론인인 체하다가, 뉴미디어의 시류를 빠르게 읽고 팟캐스트에서 "나는 꼼수다"로 대박 한번 쳐서 대중적 언론인으로 거듭났다. 기성 언론은 대체로 그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이것은 김어준을 지금까지 키워준 한겨레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겨레 이상의 매체영향력을 갖고 있는 김어준과 한겨레는 완전히 갈라졌다고 봐도 무방할듯하다.


 그러나, 전세계 언론의 대다수는 사기업이다. 그리고 언론사 공채 같은 것이 아니고, 입사시험이다. 언론인이 공직자도 아니고, 그냥 언론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다. 쉽게 말하면 기성언론사들은 공룡대기업마트이고, 김어준은 성공한 자영업자정도 된다. 김어준이 언론인인가 잡놈인가는 그러므로 아무 의미없는 평가다. 언론사 소속 언론인이라는 점은 그가 제작하는 뉴스에 그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는다. 권위보다는 뉴스제작의 협업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교차검증의 절차를 통한 신뢰도가 뉴스에 부여되어야 하는 가치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도는 뉴스에 따라, 언론인과 매체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평가되어야 한다. 김어준이 어떤 언론사 출신인가, 그가 언론사 시험을 통과했는가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가 생산하는 뉴스가 검증된, 신뢰도 있는 것인가의 질문이어야 하며, 그리고 그것은 매 순간 평가되어야 할 따름이다. 그리고 김어준은 "나는 꼼수다"의 열정적인 언론활동을 통해 기성언론매체와 언론인들을 압살해버리는 신뢰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의, 이후 이루어질 권력의 판도변화를 예고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김어준의 언론관은 철저히 뉴미디어를 기준으로 한다. 우선 그는 탈권위를 표방한다. 대중의 총의, 수능으로 따지면 5등급, 내신으로 따져도 5등급, 대학은 지방대, 노동자로는 마흔에 월 300 수준의, 평범하고 소탈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이것은 그가 뉴미디어에서 태어나 다양한 대중들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며 언론관을 정립해 온 결과다. 때문에 철저히 그는 뉴미디어의 언론관에 충실한, 뉴미디어 언론모델을 보여준다. "논조"로부터 우선 자유롭다. 뉴스제작자들이 일치단결해 달리지 않는다. "나는 꼼수다"나 뉴스공장이나, 뉴스포맷이 우왕자왕 널을 뛴다. 그가 지지하는 문재인 정권에 정면충돌하는 논객들이 장광성을 쏟아내도 그것이 필터되지 않는다. 권위가 없으면 뉴스의 신뢰도가 저하되는 매스미디어는 절대로 불가능한 언론형태다.


 또한 그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사안을 평가하는 훈련이 되어 있고, 손석희처럼 보도국의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지 않기 때문에 뉴스아이템의 선정과 취재에 큰 자유를 누린다. 뉴스공장에서 그가 자주 하는 말은 "제가 확인했는데" 혹은 "저도 취재해봤는데"다. 매스미디어의 앵커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손석희가 해야 할 일은 전체 뉴스의 논조를 정하고 뉴스를 전체 검토하고 기자들과 피드백하는 등등의, 경영인으로서의 일이 훨씬 중요하다. 취재를 할 틈이 당연히도 없다. 그러나 김어준은 직접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하며, 매일 두시간의 뉴스 분량의 상당부분은 패널에게 돌리며 매체의 공정성을 유지한다.


 손석희와 김어준의 이런 특성은 그들이 각자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에서 나고 자란 배경의 차이 때문인데, 다른 것보다는 권위와 피드백에서 앞으로 손석희보다는 김어준 쪽이 더욱 공정할 가능성이 높다. 김어준은 지금도 매일 위협받는 처지다. 당장 방송이 다 짤려도 이상하지 않을 뿐더러 실제로 SBS 프로도 하루아침에 짤렸다. 그런만큼 김어준은 객관성과 공정성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손석희는 JTBC의 총괄사장으로서 무한대의 안정성을 누린다. 상대적으로 그가 공정성의 훼손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에, 외부 반응에 대한 피드백도 당연히 없거나 한 없이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는 바로 지금 JTBC 뉴스룸의 추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3. 유시민 : 올드미디어의 권위를 쥐고 뉴미디어로 뛰어든 철인

 그러나 김어준보다는 유시민이 더욱 진보된 뉴미디어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확고한 지식인이 뉴미디어 영역의 언론 활동에 뛰어들어, 사회 현상을 학문적으로 검토하는 동시에 그것을 대중과 공유하는 유형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경제와 정치분야의 전문가다. 그리고 대학에서 강의할 수 있는 경력과 짬이 되는 그 수준의 지식인들은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사실들을 그 철학적 저변에서부터 역사적 맥락, 타인과의 인식차이 등 다방면으로 검토하고 이야기한다. 그가 사회적인 이슈들을 접수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대중들이나 기성 언론인들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이다. 또한 그가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가지고 있는 권위는 그의 언론활동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 언론활동에서의 신뢰도 하락은 그의 전문분야의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즐겨 칭했던 것처럼 저술가의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데, 그가 갖는 전문분야의 지식의 신뢰성이 곧 그의 출판 성적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지금처럼 사회적으로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는 이슈에 전문가가 뛰어들어 잘못된 보도를 했을 경우, 그가 얻게 될 전문성의 훼손이나 신뢰도의 추락은 치명적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적 자본을 무기로 사용함과 동시에, 자신을 지킬 갑옷으로 그리고 위태위태한 줄타기의 밧줄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적 자본과 그를 통한 권위를 축적한 유시민은 뉴미디어 분야에서 독자적 언론활동을 하면서 부침이 없지 않았다. "노유진의 정치카페" 시절에는 패널의 한사람이었고 "알릴레오" 시즌1 때는 피드백도 없고, 메세지는 일방향적이고, 확고한 논조가 매체를 지탱하는 올드한 포맷이었다. 때문에 알릴레오 시즌1은 심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시의성도 떨어지고 유시민 입장에서 취사선택관 일방향적인 아이템은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2에 이르러서는 그의 단점들을 대체로 보완해냈다. 라이브 방송을 하며 댓글을 피드백하는 그의 순발력은 놀랍다. 대단히 어려운 이슈를 라이브로 분석하는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시간에 댓글의 포인트를 잘 잡아내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놀라운 점은 그가 보이는 철저한 피드백이다. 그는 반론을 반드시 심층적으로 다룬다. 학자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KBS나 JTBC, 검찰이 하는 반박에 그는 긴 시간을 들여 반드시 반론하는데, 반론을 하는 상황 자체가 뉴스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여기는 매스미디어 언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다. 반면 유시민은 반론을 통해 그의 권위를 강화한다. 그리고 반론을 넘어선 추가 취재를 보도하며 상대방의 재반론을 요구한다. 생방송 뉴스프로그램에서 반론과 재반론이 이루어지고, 또 다른 피드백을 요구하는 모습은 현재까지 나타난 언론의 가장 진보한 포맷이다.


 유튜브가 메이저 플랫폼이 되고 데이터사용료 가격의 인하로(이는 매우 중요하다. 대중매체의 활용에 투여되는 주권자의 자본이 낮아지고 민주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실시간 영상매체가 주류가 된 오늘날, 유시민과 같은 유형의 전문가 채널은 지금 큰 성장을 거두었다. 자동차 정비 전문가 채널, 헬스트레이너 채널, 요리 채널 등, 많은 전문가가 자신의 전문적 자본을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유시민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넘어서 시민 일반의 문제를 취재하고 사실의 영역부터 진실의 영역까지 학문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진일보한 언론인 모델을 보인다. 지금까지는 극 소수의 변호사들에게나 가능했던 언론 유형이다. 놀라운 점이 알릴레오 시즌 1을 마치고 짧은 휴식 뒤 이런 단점들을 보완해서 만들어낸 성과라는 점이고, 그것이 다른 언론인의 조력보다는 스스로가 매체의 특성이나 여론시장의 구조를 분석해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이다.


4. 마치며

 조국전쟁을 기점으로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세사람은 상당히 다른 저마다의 길을 가게 되었다. 유시민은 뉴미디어의 가장 진보된 뉴스포맷을 만들어내는 선봉장이 되었고, 김어준은 올드미디어인 매스미디어에서 탈권위의 언론 모델을 유지하며 역시 최전선에서 다투고 있고, 손석희는 탄핵의 주범이라는 야권 코어 지지층의 질시에 이어 조국 탄압의 부역자라는 여권 코어 지지층의 비방까지 뒤집어 쓰고 권위주의 언론인 유형의 맹점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겨날까?


 매스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막론하고 유시민을 넘어설 언론모델은 한동안 나오기 어려운데, 우파 유튜브 채널들이 유튜브의 노란 딱지 정책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점이 관심을 끈다. 유시민을 견제할 수 있는 언론매체든 언론인이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개인매체이기 때문에 김어준이나 손석희보다 훨씬 방어도 쉬울 뿐더러 스스로 변호사들과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법적 대응은 충분히 하고 있다. 유시민 스스로의 권위의 하락 말고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유시민 스스로 성찰하고 경계해야 할 시점이 오리라고 본다. 아직은 이러한 유형이 나타난지 초기라서 낙관하긴 어렵다. 물론, 유시민 한 사람만 제정신 차리면 큰 걱정은 없다.


 MBC의 보도가 여당에 편향적이지 않은가 하는 비판이 존재할 수 있지만, JTBC도 그렇듯 언론사는 거대집단이기 때문에 논조가 정해지고 그로 쏠리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방송통신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MBC가 친정부적인 보도를 하면서 시청률이 상승하고 백분토론의 경우 코리안시리즈보다 시청률이 높아지는 점에서는 또한 언론계의 자성이 있어야 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듯이, 언론매체도 읽기를 포기해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MBC의 최근 논조와 보도가, 언론 자체를 멀리해 온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대체적으로 사기업인 언론사로서, 많인 시청률 많은 구독률은 전혀 나쁠 것이 없다. JTBC는 추락하는 시청률을 무겁게 받아안아야 하고, 손석희 또한 자신의 언론관부터 반성적으로 평가해봐야 할 텐데...글쎄, 피드백이란 것이 없이 수십년간 매스미디어 언론인으로 살아왔으니 그것이 바뀔까?


 김어준은, 그냥 그대로 살면 된다. 그의 언론인으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해주는 것은 그 자신보다는 그의 적들이다. 그의 적들이 추격을 멈추는 날은 김어준이 언론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그것이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일 뿐.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앞으로 미디어기술은 끝없이 발전해나갈 것이고 언론의 유형과 언론인 모델도 더욱 예측불가하게 변해갈 것이며, 그 핵심에는 쌍방향성, 다양성, 피드백의 확장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에는 "더 많은 대중들과 더 깊게 더 개별적으로" 대화하는 언론인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세사람을 넘어설 새 언론인의 탄생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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