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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8. 2020

성공적으로 스케일을 키워 그 안에 갇힌 <강철비2>

웅장해진 규모, 한 없이 작아진 캐릭터

 영화를 보다가 문득 <존 윅> 시리즈를 떠올렸다. 차츰 차츰 속편으로 가면서 스케일을 확장해나간 성공사례인데 <강철비2:정상회담>도 그렇다. 북의 정변으로 최고권력자를 남으로 피신시키는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던 전작은 어디까지나 주변부에 머무른 미국과 중국을 뒤로 하고 남한 내부의 갈등, 다소 과장된 무력을 지닌 북한의 쿠데타 집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몰입도 있게 진행시켜 나갔다. 반면 후속작인 이번 영화에서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중국과 일본의 전쟁위기를 조명하고 한국, 미국, 북한의 정치 지도자들의 평화협정 회담을 핵심 소재로 채택해서 훨씬 판을 키워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확장된 스케일에서 이야기도 액션도 유머도 자가복제되지 않았다. 양우석 감독이 "강철비 유니버스"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속편을 꽤 잘 다듬어낸 흔적이 돋보인다.


 영화의 장점도 단점도 대체로 이 커진 스케일에서 나오는데 현실성은 논외로 하고 국제정세의 스케일이 지나치게 크다. 70년 냉전, 30년 전의 북미 수교 실패가 두번이나 언급되며 일본의 극우 세력, 미국의 극동 관리와 내부 정치문제, 북한의 내부 정치문제, 중국과 북한의 관계 등등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정치적 갈등이 난잡하다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마구잡이로 섞여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제한된 러닝타임 내에 전달해야 하니 연출로서 보여주진 못하고 대사로 설명을 하는 구간이 중반부까지 여러번 나온다. 그렇다면 그 설명 장면의 대사빨이 좋으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게 문제. 극중 사건의 배경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배치된 대사들이다보니 누가봐도 도구적인 대사에 안정적으로 보이던 정우성의 연기력이 뻣뻣함으로 비친다.


 어차피 쿠데타의 주체는 북의 군부이고 핵심인물들은 남북미 정상이니, 배후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묘사는 최대한 단순하게 맥거핀 수준으로만 연출했더라면 극의 어수선함은 좀 정리될 수 있지 않았을까? 굳이 설명할 필요없는 배경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상당한 분량을 투자하다보니 초-중반부에는 배경설정을 따라가느라 지치면서도 지루한 감이 상당하다. 김윤석이나 송강호처럼 각본을 조금 더 잘 볼 줄 아는 배우가 참여했더라면 이정도 피드백은 각본단계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결정적으로 커진 스케일과 국제정세의 갈등 속에서 인물이 지나치게 평이하고 단순해져버렸다. 이 부분은 명백히 감독의 실책인데, 남북미 정상의 첨예한 대립이나 논쟁을 보여주지 못하고 대강 갈등하고 대강 화해하고 이해해주는 모습에, 각자를 신뢰하게 되는 장면이나 동기들도 상당히 부실하다. 인물을 묘사할 분량을 국제정세를 묘사하는데 쓰고, 이들의 대립과 갈등을 묘사할 시간에 담배 따위로 벌어지는 다툼을 그렸으니 전체 스케일에 비해서 핵심인물의 이미지나 가치 자체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반면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도 커진 스케일에서 잘 드러난다.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택할 수 밖에 없는 국지전에 얽힌 각국의 입장을 비교적 잘 묘사했다. 각본을 읽을 능력이 있는 배우가 있다 한들, 양우석 감독이 구상해온 “강철비 유니버스”의 스케일이나 독창성을 따라잡기가 쉽지는 않을 터라서 각본에 참여가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지난 겨울 한숨 나오는 개연성으로 욕을 한참 먹은 <백두산>의 국제정세 묘사 수준을 보면 강철비 시리즈는 선녀에 가깝기도 하고 말이다. 비록 성공한 프랜차이즈라고 부르긴 어렵지만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이런 시도를 계속 하는 양우석 감독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일이다.


 지루함을 견뎌낸 뒤 감상하게 되는 잠수함전 액션도 상당히 훌륭하다. 선악의 구도가 선명한듯, 흔들리는 상황에서의 긴장감과 잠수함 액션이 결합되면서 근래 없던 시청각적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잠수함 내부의 사건은 개연성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순 없지만 잠수함이라는 소재를 충분히 살린 다양한 장면들도 꽤나 만족스럽다.

 

 그 밖에, 초반의 지루함에 비해 중반부의 전개가 꽤 빠르고 예측이 쉽지 않다. 늘어지는 부분 없이 장면이 빠르게 전환된다. 신정근 배우의 능수능란한 연기도 좋고, 영상미가 이번에도 훌륭하다.


 정리하자면 장단점이 꽤 명확하고 취향도 갈리는 영화이고 딱 그정도 흥행스코어가 나오고 있다. 전작도 만듦새에 비해 아쉬운 인지도나 흥행세였는데 그것은 배우 정우성의 티켓파워가 여전히 크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철비 후속작은 나올 수 있을까? 정우성 양우석, 그리고 곽도원의 이 조합으로 더 좋은 “강철비 유니버스” 한 편 더 볼 수 있었으면 딱 좋겠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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