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영어 수업 재구성 분투기 : 1년차 / 교육과정 구상
2010년대 중반부터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라는 개념이 중요한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나는 혁신교육 업무를 오랜 시간 담당하면서 지역 장학사들이나 연수를 통해 대략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업은 항상 평가에 메여있다. 교사는 "진돗개(진도 나가는 개XX)"라며 자조하고, 학생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않다가도 "이거 시험에 나온다."라고 한마디 하면 눈치 빠르게 칠판을 바라보며 손을 놀린다.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해 비판적인 교사들이라면, 내신 중심의 입시정책이 도리어 수업의 본질을 교사의 지도능력이 아닌 시험문제의 공정성으로 함몰시켰다며 한탄하는 교실 현상이다. 심지어 나중에 연수에서 만난 서울의 어느 학부모빨 센 지역의 교사는 수학 과목에서 서술형을 내지도 못한다며 평가에 종속되어 끌려가는 수업의 고충을 들려준 적도 있다.
독해 활동지의 구색을 맞춘 뒤 내가 생각한 것은, 영어 단어 교육과정이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교육부 자료는 고등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습득해야 할 적정 어휘량을 2200 단어로 명시하고 있다. 교육목표가 분명히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나의 경험으로는 단어 학습은 수업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교별로 아이들의 대체적인 수준에 따라서 교사는 수업의 난이도를 조정하는데, 특히 영어의 경우 '이 정도 단어는 애들이 공부했겠지.' 라는 짐작으로 지도할 단어와 지도하지 않을 단어를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학교 때 심심찮게 나오는 various(다양한)라는 단어는 아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vary(다양하다)라는 단어는 명백히 고등학교 수준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수업 중에 지도한다. 그러나 두 단어의 어원이 같다는 점을 설명하고, vary의 과거시제,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와 자동사로 쓰이는 점까지 구분하는 교사는? 더욱 흔하지 않다. 수업 중에 이 단어에 대해서 시간을 할애해가며 가르치기에는, 그냥 외우면 되는 단어 굳이 설명하면서 진도 안나가냐는 아이들의 눈총이 너무 무시무시한 탓이다.
그러나 교실 학생 평균의 영어단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이라면? 이 아이는 3월 첫째주부터 수업에서 배제된다. '이 정도 단어는 공부했겠지.'라는 교사의 가상의 선에 미달하는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존재한다. 교사의 저 짐작조차도 학급 내 우등생들의 요구에 맞춰서 곧잘 상향되는 탓이다. 3월에 개학을 준비하며 방학 동안 어느정도 교재연구를 하고 수업 보조자료를 만든 교사들이, 수업에 들어와서 50분 내내 교사와 칠판을 주시하는 아이들에게 맞추어 수업을 할까 아니면 10분도 안되어 책을 덮고 딴청을 부리는 아이들에게 맞추어 수업을 할까? 이것이 교사 일방향의 수업의 본질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영어 수업 관행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을 일으키는 것이 어렵지 이왕 수업 재구성을 시작하자 내 문제의식이 위로 옆으로 퍼져나가는 흐름이다. 우선 큰 방향에서 수업 내 영어 단어 교육과정을 짜보기로 했다. 봄방학 동안에 틈틈이 노트북을 펴고 영어단어 학습법 등을 찾아보며 원칙을 세웠다.
- 영어 학습에 단어는 반드시 필요. 그렇다면 단어 교육과정을 세우고 일관되게 운영하자.
- mp3까지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으면 좋다!
- 모둠활동으로 매 시간 단어게임을 하면?
행맨은 아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게임이다. 쉽고, 분단 혹은 줄별로 보상을 줘 모둠활동으로 인식시키기도 쉽다. 단어로 게임을 하는 것이 교실 내에서 충분히 적용 가능한 수업 기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를 들어 행맨은 "단어" 보다는 "게임"에 훨씬 치우친 활동이다. 전혀 영어 단어 학습에 기여하지 못한다.
나는 5X5 빙고를 양면으로 한장 만들었다. 그리고 본문 1과 단어장도 하나 만들었다. 벌써 두장의 학습지가 단 한시간의 수업을 위해 만들어졌다. 방법은 간단하다. 모둠을 편성하고 단어장과 빙고를 준다. 영어 단어를 칸에 채운다. 그리고 우리말 뜻으로 부르도록 한다. 아이들은 뜻을 듣고, 그에 맞는 단어를 찾아 체크하면 된다. 교사가 제시하는 모든 단어를 아이들이 적어도 한번은 쓰게 되고, 해석을 듣고, 뜻과 맞는 찾아보게 될 것이다. 수준별 활동으로 조직하는 것도 매우 쉽다. 모둠별로 1~2명은 뜻도 미리 쓰라고 하면 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뜻만 듣고 단어를 찾을 것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한 아이는 게임을 즐기면서 모둠을 이끄는 효능감을 얻을 수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모든 활동에는 보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로, 빙고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연히 모둠점수를 감점한다. 둘째로, 감점만이 수업의 보상으로 제시되어선 교사의 강압이 된다. 혁신교육 예산으로 캐러멜 캔디류를 주문했다. 게임의 보상으로 캔디를 줌으로써 아이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로 했다. 나는 이 두가지 보상책을 1년 내내, 그리고 이듬해, 그리고 지금까지도 비교적 잘 유지해오고 있다. 어떤 활동이든 아이들이 수업에서 '감점'이 아니라 '보상'을 떠올리도록, 매 시간 사탕바구니를 들고 간다. (물론 모든 수업 때 캔디를 주는 것은 아니고 문법 수업 때는 어려움이 발생한다.)
수업 재구성과 보상을 이야기하면, 많은 교사들이 이 사탕바구니를 나쁘게 평하는 경우를 본다. '샘 캔디 하나만요'라며 매 시간 교무실에 쫓아오는 아이들, 복도에 버려지는 캔디포장지가 대표적인 이유다. 교사 본인의 수업 재구성 노력이 부족했거나, 학교 차원의 고민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캔디 보상 역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설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이를 영어 수업에 비유하면,
'모든 학생들이 평균적 단어 능력을 갖는다' (교육과정)
'모든 학생들이 빙고 게임에 참여한다' (수업)
'빙고에 참여하지 않으면 수행평가를 감점한다, 1~3등 모둠에겐 캔디로 보상한다' (평가)
이러한 체계 안에서 캔디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어느 교사도 사탕바구니에 대해서 참견하지 못한다. 수업 중에 큰 소리로 단어 하나 불렀다고, 교사의 질문에 빨리 대답했다고 캔디를 주거나, 교실에 들어가니 말썽쟁이 두어명이 와당탕 앞으로 나와서 칠판을 지운 다음에 '샘 캔디요!' 라고 해서 보상을 주니 캔디를 받겠다고 교무실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현상을 옆에서 보면서, 이를 바로잡아주는 교사들이 없는 것도 문제다. 사탕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교사들이 있고 교사 집단 내지는 학교 내에서 문제로 인식된다면 수업참관을 통해 어떻게 사탕이 분배되고 있는지, 교사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아주 쉽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반 학교에서 잘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단어 빙고는 아주 손쉽게 활동 구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 문제가 남았다. 나는 이 해에 1학년을 가르치기 전에 3학년 수업을 지도했다. 그래서 수업 중 잠드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했고, 1학년으로 내려와 거꾸로수업을 시도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나보다 먼저 1,2학년을 지도하고 계셨던 선생님들은 수능에 대비해 영단어 부교재를 정해, 1학년 때 절반, 2학년 때 남은 절반을 학습하도록 계획해 두었다. 나는 새로 1학년에 내려왔고, 비록 해당 학년 교육과정을 지도하던 선생님들과는 같이 1학년에서 교과 팀으로 구성되진 않았지만, 교육과정의 연속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어 단어 부교재는 단원별로 80개 정도의 단어를 한 학기에 6~7단원의 진도를 나가고 있었다. 500단어 이상의 분량이다. 고 2까지 모두 마치면 2200단어를 충분히 학습하게 되어 있는, 나쁘지 않은 설계다. 3학년은 수능 대비 EBS 모의고사를 나가게 되어 있으니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교육과정의 연속성을 갖추었고 타당성이 있다. 나는 단어 부교재를 유지키로 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빙고 말고 다른 활동을 고민했다. 빙고만 매 시간 할 순 없으니까.
그리고 평가의 다른 방안을 고민했다. 문제가 남는다. 아이들이 한 학기에 500 단어를 외웠는데 정작 지필평가와 내신에서 이것이 평가되지 못한다. 지필평가(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철저히 본문 독해지문의 응용문제다. 2년 동안 단어를 외워야 하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나 보상으로 충분하지 못하고, 매 시간 캔디 보상은 해당 시간의 활동과 학습에 대한 보상이지, 총체적인 교육과정의 어떤 결실로 맺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기말에 단어 대회를 새롭게 시도하기로 했다. 스크래블scrabbl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