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영어 수업 재구성 분투기 : 1년차 / 교육과정 구상
"안녕하세요."
이틀 뒤, 나는 새로 오신 기간제 선생님 두분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앞서서 교무실에서 인사들을 나누고, 영어교재를 받고, 영어과에서 간단한 소개와 인사가 다시 오간 참이다. 한분은 여성, 다른 한분은 남성이었다. 두분 다 임용고사를 보다가 처음 학교에 나온, 젊고 유능한 선생님들이었다. 사실 두 분에 대해서는 미리 교무부장을 통해서 귀뜸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필기 시험에서 성적이 월등했고, 면접도 그대로 1,2등으로 통과했다. 그래서 1학년 수업을 이 두 선생님과 함께 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기도 했다.
"선생님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일단 먼저 보시고 대화할게요. 거꾸로 수업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네 들어는 봤습니다."
"오티자료로 만들었는데 일단 읽어보셔요."
(자료에 대한 설명은 이전 편을 참고 : https://brunch.co.kr/@coexistence/29)
두 선생님은 이따금 미소를 띄우며 말 없이 읽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다 읽기까지 기다렸다. 두 사람이 프린트를 내려놓자, 내가 지체없이 말했다.
"저도 처음이라서 어려울 것 같긴 해요. 그래도 선생님들께 부담은 안드리고 해보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쯤까지 와서는 절박함이 무엇보다 크다. 월요일, 퇴근을 미루고 오티 자료를 만든 참이다. 그에 앞서 겨울방학 연수를 들으며 수업 재구성을 처음 떠올리고, 여러 날을 거꾸로수업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해왔다. 처음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신 분들에게 부담이 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꼭 성사되어야 하는 일이다. 물론, 나는 두 선생님이 거부할 입장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었다.
"네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두요. 그런데 저희 둘 다 학교 근무가 처음이라 잘 할지 모르겠네요."
두 분은 웃으며 말했다. 기다리지 않고 내가 말을 받았다.
"활동지는 제가 1년 동안 전담할 거구요. 한분은 영상촬영과 업로드를 해주시면 되고 한분은…이게 좀 제가 봤는데요, 1년동안 활동지가 많이 나가는 것도 있고 수행평가가 좀 많이 생길 것 같아요. 한분은 수행평가 입력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매 수업마다 레슨플랜 만들어서 드릴게요. 일단 영상만 미리 올라가 있으면 수업은 아이들에게 활동지 나눠주면서 진행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1년동안 어떻게 해볼 순 있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영상 촬영 때문일 게다. 나는 직감했다. 그러나 고민의 시간이 길진 않았다. 뒤나 밝혀진 일이었지만 우리 세사람의 공통점이 있었다. 선택장애를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것. 승희 샘이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솔직히 강의는 자신이 없어서 선생님께서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수행평가 입력을 잘 하겠습니다."
"아 그러시면 저는 상관 없습니다."
"정말요? 아 진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재원샘이 시원하게 답변했다. 그에 나의 함성이 터지자, 교감선생님이 놀라서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교무실 구석에서 그만 소리를 질러버렸다. 마음 졸이며 며칠간이나 고민하던 문제가 풀렸다! 그것도 순식간에 말이다. 교직생활이 쌓여갈수록 학교를 바꾸는 열쇠도, 바꾸지 못하는 이유도 교사협의라는 것을 절감하곤 한다. 그런데 두 선생님은 1분을 넘기지 않고 나의 무리한 요구를 가뿐하게 받아주셨다. 이런 일을 함부로 말을 꺼낼 일도 아니다. 기간제 선생님들 또한 하나의 개별 교육 주체이고, 한 사람의 교사이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방어할 권리가 없는 입장인 두 사람에게 나이와 경력을 앞세워 무리한 요구를 들이민 것은 바로 나라는 사실이 움직이진 않는다. 그래서 더 나는 두 사람에게 수업의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1년 내내 노력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아닙니다 하하 열심히 해야죠."
"레슨플랜 주시면 뭐 애들 잘 하겠죠?"
두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승희샘은 웃을 때마다 시원시원 액션을 크게 해 보는 사람에게 쾌적함을 주었고 재원샘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웃는 모양이 도드라진다. 거꾸로수업을 해보겠다고 설득하는 교사협의에서 구김살 없는 두 사람이라니, 얼마나 행운일까.
"네네 아! 그리고 더 중요한게 있어요. 이거랑 이거. 부교재입니다. 문법은 강의식으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영어 문법은 교사마다 해석이랑 응용이 다르니까 거꾸로수업은 안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마 수업의 절반만 거꾸로로 하시면 됩니다."
진도에 대한 상의, 수행평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영어과 대회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텐데, 우리 학교에서 내가 두해쯤 전부터 영어대회를 1년에 여섯가지 -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단어, 연극으로 세분화해두었다. 그에 대해선 3월 개학 전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면 될 것으로 보였다. 두분과 인사를 마치고 각자 부서에 보내드렸다. 그들에겐 긴 하루가 되겠지.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겠다. 그리고 나도 아마 그럴 테다. 노트에 몇줄 더 적었다.
- 운이다 운. 대박.
- 결국은 교사협의. 교사협의 없이는 절대로!!
- 일 나누지 않기!
이제 드디어 활동지를 만들 차례가 되었다. 거꾸로수업 연수를 들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덩달아 연구회에 가입해서 자료와 영상을 받지도 못했지만 지역 혁신 연수를 통해서 활동지 구성의 기본 요소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미리 활동지를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레슨플랜도 만들고, 한 단원의 수업을 짜 놓으면 봄방학 동안은 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고민보다는, 아이디어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첫번째 활동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주안점을 둔 것은 활동지 항목을 모둠과 개인으로 나눈 것이다. 모둠은 필수 활동이다. 하지 않으면 감점이다. 그리고 개인활동은 하지 않아도 감점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활동은 발표가 수월하다. 알고 있는 국어와 영어 명언 한두가지씩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첫 단원이 고 1 학생들의 미래 비전을 이야기하는 내용인 만큼, 그에 맞추어 명언을 한두가지 써볼 수 있도록 했다. 그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응용영작을 해볼 수 있도록 활동지를 구성했다. 나의 영어교육관은 매우 간단하다. 자신이 해석할 수 있는 문장은 쓸 수도 있어야 한다.
언어능력은 흔히 네 가지 능력으로 구분된다. 읽고, 쓰고, 말하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 영어교육은 과도하게 읽기만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상식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수능을 핑계로 교실영어의 불균형을 수십년간 방치했다. 아니, 적어도 최소한 최선을 다하진 못했다. 학교 영어교육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 첫째로, 나는 읽기 능력에 맞추어 아이들이 쓰기 능력을 발달시키도록 1년간의 교육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할 계획이었다. 우선 쉬운 문법을 중심으로 영작 과제를 주었다.
다만 평준화된 고 1 수준은 워낙에 천차만별이다. 교과서의 단어 단 하나도 모르는 아이도 있고, 학원에서 이미 본문에 대한 세부적 사실부터 문법의 핵심까지 완벽히 이해하고 오는 아이도 있다. 그들이 한 학급에서 함께 수업할 수 있고,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두번째 페이지의 모둠활동은 그를 위한 것이다. 한 모둠의 네 아이들이 각자 나누어서 그날의 수업영역을 해석할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 우리 수업의 최소수준이고, 아이들 또한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수업 대부분을 관심 없이 보내는 아이들 중에서도 절반 정도는, 시험 일주일 전에 선생님들을 찾아와 말한다. "샘 해석본 주세요." 그러니까 우리 수업의 활동지는 아이들이 영어 해석본을 미리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자신의 손으로 쓰는 것만 있으면 된다.
아이들이 요구하는 것이 해석인데 어떻게 자신의 것을 해석해서 그날의 활동을 완료하는가. 당연히 자신의 것을 해석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수준별로 모둠을 편성하고, 잘 하는 아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모둠의 단 한사람이라도 뒷장의 자기 칸을 채우지 못하면 전원이 감점이다. 모둠점수와 개인점수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단 한번의 감점이라도 영영 복구되지 않는다. 이미 해석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불러줄 것이다. 해석이 필요한 아이들은 자기 칸의 서너 문장을 적기만 하면 된다.
쓰면 쓸수록 속도가 붙는다. 본문 수업재구성의 틀을 짜 두었으니 이제 영단어 활동을 구상하고, 그것을 교육과정의 연속성에 맞추어 배치하면 된다. 어렵다.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교사협의가 방금 이루어진 참이라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신나서 단어활동지 샘플을 만들었다. 매우 쉽다. Bin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