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관계맺음을 소망해

그것도 무척 열정적으로

by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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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300+의 숫자를 확인하며 잠에서 깬다. 밤새 아이들이 신나게 떠들고 논 것이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대학생이 되어 첫 여름방학 때 매일 해가 뜰 때까지 채팅을 하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는 PC조차 흔하지 않던 시절이고 나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을 새운 것인데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생들이 이래도 되나? 아이들은 새벽 세시가 넘도록 공부하자고 만든 단톡방에서 떠들다가 잔다.


10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모두 다 함께 떠드냐 하면 그것은 아니고, 나의 안내에 따라 다섯 학급의 아이들이 거의 모두 들어와 있는데 그 중에서 떠드는 것은 고작 십여명. 80:20의 법칙이 여기서도 적용된다. 문제는 이 아이들의 신난 맞장구에 공부를 위해 만든 방이 수다방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통제에 앞서 성찰을 요구한다. 왜 아이들은 굳이 교사인 내가 만든 단톡방에 모여서 떠들까? 저마다 반톡이 활성화되어 있고 어른이 없는 공간에서 훨씬 편하게 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단지 내가 만만한 선생님이라서?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여러분들은 반톡이랑 팸톡(친한 친구들끼리의 소규모 채팅방)이 있고...그런데 거긴 딱 인원이 정해져 있고...여긴 익명이고...그리고 100명 모여있고...하니까 썸도 타고 장난치긴 좋은 공간이 된 거로군?"


아이들은 내 관찰엔 관심이 없다. 딱히 마땅한 답변 없이 즉시 또 떠들기 시작한다. 녀석들 참. 그러나 이런 공간과 교사의 참여 경험은 온라인 환경에 대한 어느정도의 시사점을 얻어내기엔 충분하다. 이를 테면, 일반적인 교실 환경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은 굉장히 많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바쁜 학사일정에 스스로 쫓기느라, 쫓기는 교사를 따라가보다가 제대로 된 관계맺음을 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수업 재구성을 해서 아이들에게 개별화된 지도를 할 수 있는 교사라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코로나 덕분에 아이들과의 개별적인 관계맺음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판판히 깨진 상태다. 교실에서 모둠활동을 할 수 없다. 협력학습이 안되니 아이들에게 개별화된 학습기회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러니, 많은 교사들이 다시 지식전수 위주의 수업으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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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할 이유. 한글로 100자. 1등은 베스킨 아이스크림 쿠폰 줍니다."


학기 중에는 불가능한 이런 일도 대신에 해볼 수 있다. 거금 8000원짜리(거금이라기엔 고작 1시간의 초과근무수당 정도다. 교사는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로 수당을 지급받는다. 그 중에는 담임이든 비담임이든 어느정도 아이들에게 환원할 수 있는 금액도 포함되어 있을 터다.) 아이스크림 쿠폰을 바코드를 감추어 톡방에 올린 뒤 아이들에게 참여토록 했다.


그랬더니 꽤 많은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전했다. 이런 정도의 활동은 학기 중에도 가능하지만 하지 못했다. 수행평가와 생기부 입력을 위한 관찰평가 때문이다. 무엇이든 일단 영어로 쓰지 않으면, 그리고 교육과정에 반영되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런 영어와 교육과정은 아이들이 교사와의 관계맺음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시도를 가로막는다. 이렇게 신나게 내 앞에서 떠들고, 말을 거는 아이들인데 말이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런 시도를 교육과정 내에서는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관계맺음과 교육과정 운영 중에 단연 우선순위는 교육과정 운영이다. 그것이 우리 교육의 구조이고, 코로나로 인해 수업 여건이 제한된 상태에서는 더욱 우선순위에 따른 취사선택은 간단명료해진다. 그러니 단톡방을 만든 것은,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시도다. 아이들과 관계맺음이 다양하게 이어지고, 짧은 방학이지만 1학기에 발생한 관계와 학습의 결손을 메울 수 있는 기회다.


보충수업도 아닌데 왜 하느냐 라거나, 힘들지 않냐는 질문은, 나는 그저 교실에서 발생한 관계와 학습의 공백을 메우는 것일 뿐, 이것이 노동이라 부를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대신에,


"쌤 이모티콘 옛날 거잖아요."

"ㅋㅋㅋㅋㅋ아재ㅋㅋㅋㅋㅋ"


이런 말이 훨씬 상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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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업의 공백이 관계의 파도에 휩쓸려 메워지지 못하는 것이 줄곧 관찰되기에 3일만에 다른 수를 냈다. 방을 새로 만들었다. 진작 이렇게 할걸 싶지만 이것도 시도를 하며 내가 깨닫는 과정일 따름이다. 원하는 아이들을 모으니 100명 중에 20명이 들어왔다. 역시 80:20 법칙이다. 딱히 관계맺음 방에서 아이들이 빠져나오진 않았다. 톡이 300개씩이나 울리는 소란스러운 방인데도 그 방에도, 공부를 위해 새로 만든 방에도 들어와 있는 것이다.


어른들의 관점에선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지만 아이들의 관점에선 아주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여러개의 단톡방을 살아간다. 그 중 상당수는 자기가 읽지도 않을 수다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 집단과의 관계맺음을 위해 데이터 낭비를 무릅쓰고 "나가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다. 스마트폰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다. 즉, 나는 아이들의 숱한 단톡방 중에 고작 한 두개를 더한 것이다. 채팅을 통한 관계맺음에 훨씬 친근한 아이들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변화를 받아들였다.


"줌으로 수업을 해볼까 해. 하루에 지문 하나. 꼼꼼히 한다. 밤 10시에 들어올 사람 들어와봐요."


공부 공백을 메우기 위한 톡방을 새로 만들었으니 나는 마땅히, 수업을 해보기로 했다. 옛날 모의고사 1,2학년 출제 지문을 아무거나 꺼내서 설명해주는 짧은 시간이다. 수업진도와 무관하게, 해당 교육과정 수준에서 별도의 지문을 학습하는 것이니 선행학습은 아닐 터다.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공부와 관계맺음의 두 끈을 아이들과 함께 맞잡고 무엇이든 해볼 따름.


그런 어제는 공식적인 방학 첫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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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의 아이들 중에 8명 가량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쉬운 지문이라 하나를 했더니 16분이 지났다. 30분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쉬워서 한문제를 더하기로 했다. 지문이 쉬워 문법설명을 할 것이 없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단 여행 숙소여서 내가 제대로 판서를 할 수가 없다. 수업자료를 최소한도로 편집을 해서 아이들이 보기 좋게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좀 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봐야 할 상황. 그러나 이런 배워감이야말로 내가 교사로서 살아가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지문 두개를 한 뒤에는 단어를 집중적으로 몇개 설명했다. process, excessive, recess, access였다. 모두 cess(가다)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인데 나름 중요한 단어들이기도 하고. 그리고 아침, 나는 "정보에의 지나친 접근은 인간성의 후퇴를 초래한다."라는 영작을 시켰다. 문장은 좀 요상하지만 지금 그런것까지 따지진 못할 것이고.


공부방 아이들이 이내 여러개의 문장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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