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첫 수업

고등학교 영어 수업 재구성 분투기 : 1년차 / 교육과정 운영

by 공존
02.jpg


“자. 수행평가가 네가지에요. 글쓰기평가 10점, 듣기평가 10점, 어휘평가 10점, 수업참여점수 10점. 다른 수행평가는 평가 전에 다시 안내합니다. 수업참여점수는 당장 내일부터 매일 기록되니까 설명을 잘 들으세요.”


3월 2일 개학식. 1학년 교실에서 나는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각자에게 나눠주고 설명을 시작했다.


“수업참여점수 10점을 다시 나눠서 5점은 모둠점수, 5점은 개인점수입니다. 모둠점수 5점은 감점식입니다. 수업은 모둠으로 진행됩니다. 활동지가 매일 주어지고 부교재를 사용할 땐 주지 않겠죠. 그래서 활동지 혹은 부교재의 문제풀이를 여러분들 모둠 네 사람이 전부 해야합니다. 간단하죠? 모둠원 중에 한명이라도 주어진 활동지나 교재의 문제풀이를 하지 않으면 5점에서 0.5점씩 감점됩니다."


아이들이 제법 집중해서 듣는다. 수행평가를 반드시 개학 첫날 안내하는 것이 좋다. 수업 재구성을 하든, 하지 않든 그렇다. 특히 우리 수업의 경우는, 모둠점수에 대하여 설득이 되어야 했다. 나는 큰 소리로 말하지만 사실 속으론 좀 걱정하고 있다.


"개인점수는 가점입니다. 매일 수업에서 영작 과제가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나는 친구와 주말에 책을 사러 외출했다.>라는 문장을, 영작해 볼 사람? 첫날인데 없죠? 자 이렇게 씁니다. <I went out to buy a book with my friend on last weekend.> 여러분 여기 모르는 표현 있나요?"


조용.


“자. 모르는 거 없는데 나와서 쓸 사람 없죠? 그럼 여러분은 10점 중에 5점 만점으로 끝나요.”


솔깃.


“수업 중에 영작 쓰라고 시키면, 아무나 나와서 칠판에 영작 쓰면 됩니다. 그럼 개인점수 0.5점이 추가됩니다. 여러분들이 모둠점수를 깎이지 않게 친구들 공부도 도와주고 영작도 10번 해야 만점인 거예요. 일주일에 우리 수업이 네 시간이니까 서른명 전부 다 수업참여점수 만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나는 잠시 쉰 다음, 힘을 주어 말했다.


여러분들이 틀려야 제가 수업을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들 중에서도, 그 속에서도 우수하다는 아이들 중에서도, be동사와 일반동사를 같이 쓰는 기초적인 실수를 왕왕 한다. <I am went out to buy a book.> 같은 문장이다. 그런 아이들도 모두 중학교 내신에서 200점 만점에 190점 이상을 받고 온 아이들이다. 독해는 뛰어난데, 기초영분법에서 당연한 실수를 한다. 이러한 실수를, 개별적으로 영작 프린트를 내주고, 틀린 아이들에게 첨삭을 해주는 게 좋은 수업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실 내 활동으로 학생이 쓴 영작 문장에 실수가 있으면, 나는 아이들 모두에게 수업을 할 수 있다. 위의 문장 같은 오류라면 나는 이 문장을 보고 하나의 주어에는 하나의 동사가 연결된다는 점, 5형식의 각 동사들, 수동태와 진행형 등의 다양한 가능성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러나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내가 수업재구성을 위해서 1학년을 자청해서 맡은 것이지만,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중 다수가 교실 안에서 ‘누구와 밥을 먹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하며, 관계형성에 극히 민감한 성향을 보인다. 그런 와중에, 수업 중 교사의 지도 하에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해도 척척 앞에 나와 칠판에 스스로 만들어낸 영어문장을 쓰라는 것이 쉬울 리는 없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리엔테이션 다음날, 첫 수업은 교과서 본문 앞에 있는 듣기파트로 정했다.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로 기간제 선생님들의 계약 시작일이 3월 1일이다. 그 전에 교재 연구는 본인의 수업 준비를 위해 해야 할 일이지만, 별도의 업무로서 수업영상을 찍어 올리는 것은 명백한 부당업무다. 개학한 뒤에 영상을 찍어달라고 미리 부탁드려두었고, 따라서 개학 후 3차시 정도는 우리의 수업영상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두번째 이유는 교과서 활용의 편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다. 1학년 아이들에게 학교 들어오자마자 앞에 교과서 영역을 재끼고 본문수업을 하는 잘못된 수업의 연장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영어교사로서, 나의 듣기 공부 방법를 제시할 필요는 있다. 1과만이라도 듣기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의 단원들에 대한 듣기 자료를 아이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세번째 이유는 아이들과 우리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해보는 일이고, 본문파트의 영작 과제들을 대뜸 시키면 나올 아이들도 없고 교사들로서도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도해서 아이들의 쓰기 발표를 시킬지 대책이 없다. 그러니까 우선, 거꾸로수업이 나쁘지 않다! 라는 것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업계획을 짜면서 선생님들께 드릴 레슨플랜을 만들었다. 대체적으로 교과서를 활용할 것이기에 간소하게 아이들의 실력을 점검해볼 수 있는 활동지를 만들었다.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진학한 아이들이 기본적인 날짜 표현들을 익히도록 했다.


모둠은 입학 전에 아이들의 중학교 내신 성적을 받아 모둠편성을 해 두었다. 물론 그것도 선생님들께 업무를 전가하진 않았다. 교육과정부의 개학준비 업무로 숨쉴 틈도 없이 바쁜 가운데 수업 준비를 허술히 할 순 없었다. 우리 세 사람이 한 팀이고, 내가 흔들리면 다른 선생님의 수업도 망가진다. 수업재구성을 시작하고 첫해의 어려움을 극복한 중요한 동기중에 하나가 이것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수업 준비를 내가 못하면,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을 방해한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해도, 고전적인 수업에 비해서는 너무나 많은 품이 들었다. 오리엔테이션 자료를 복사해, 두분 선생님 수업 인원에 맞게 세어 책상에 둔 것도 내 일이었다. 그 또한 1학기 내내 활동지 담당인 내가 할 몫이었다.

image001.jpg


image2001.jpg

물론, 첫날은, 잘 되지 않았다. 교과서 듣기 수업까지는 좋았다. 당장 오늘부터 모둠점수가 깎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짧은 영어회화를 듣고 교과서에 문제풀이나 메모를 했다. 모둠별로 학력이 좋은 아이들의 것을 보고 베끼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게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이어서 한 활동지는, 잘 되지 않았다.


우선 활동지에 모둠과제와 개인과제를 구분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거 다 채워야해요?"라는 아이들이 더러 나타났고 제대로 대응을 못했다. 감점 기준을 혼자 정할 수가 없으니, 이 활동지는 바로 버려졌다. 내가 여기서 임의의 기준을 정한다 한들, 이미 수업을 진행했을 수도 있는 다른 두 선생님과 합의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의 성적에 관련이 없을 것이 빤히 보이는 활동지다. 듣기 성적은 오로지 듣기평가 20문제를 잘 듣고 푸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가 개학하자마자 듣기평가의 유형과 다른 듣기연습을 시키더니, 그 듣기자료와도 관련이 크게 없어보이는 활동지를 하란다. 실패!


이 경험은, 나의 수업목표가 아이들의 수업목표와 간극이 클 때 발생하는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이들은 EBS 듣기평가로 수행점수를 얻는 것 이외에 영어듣기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수능 영어듣기를 위하여 조직화된 듣기평가 문제풀이를 반복할 뿐이다. 여기서 벗어난 수업을 한다면 교사의 교육관보다는 아이들의 영어듣기의 흥미를 강력하게 반영한 수업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이튿날 수업으로 구상한 것이, 아이들의 흥미를 반영한 것이었다. 나는 내일 수업을 위한 영상을 고지했다. 그리고 칠판에 다시 적었다. 선생님들께도 미리 말씀드려두어, 2차시 수업의 사전학습을 하라고 해 두었다.


- 유튜브 영국남자-불닭볶음면 1편 보고 오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업-수행평가-교내대회 재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