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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18. 2020

문빠 담론과 진보정치의 소실

그리고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1. 태초에 "문빠"가 있었다.

<사진1> 한겨레21 1163호의 편사성 논란 해명기사 자료. 한겨레는 대선주자들을 순차적으로 표지모델로 게재하기로 기획했으며, 마찬가지로 안철수 당시 후보 역시 문재인 후보와 같이 표지모델로 죽 배치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마주보고 있는 표지 이미지는 안철수 후보가 주장하고 있던 양자구도에 대한 밀어주기 의혹이 있다.


 "문빠"가 담론으로서 폭발한 계기는 한겨레21의 문재인 대통령 표지 논란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한겨레21>이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기간동안 게재해 온 표지모델의 선정에 분노했고. 그간의 기사와 칼럼, 사진 선정 등의 근거가 더해지며 한겨레신문사 전체의 정치편향성에 대한 비판에 불이 붙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지지자들의 그러한 분노와 미디어 활동의 배경에는 조기숙 교수의 <왕따의 정치학>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는데, 해당 저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후보가 얼마나 오랜 시간 조직적인 정치적 공격에 휩싸여있었는지를 종합해 제시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 집단들의 정치참여에 동기와 정당성을 부여했다.


 "문빠"는 어떤 집단인가? 정치인에게 생기는 팬덤도, 시민들의 정치참여도 전혀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빠"라는 담론이 탄생했던 이 <한겨레21> 표지 논란에서는, 시민들의 공격의 대상이 타 정치집단이 아니었다는 점, 언론의 자유와 해석의 주관성의 영역이 감안되어야 하는 언론사의 표지 선정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해당 집단을 후진적 정치집단으로 프레이밍하기에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다. 그것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건의 당사자, 한겨레21의 전 편집장 안수찬의 "덤벼라 문빠들" 망언이었다.

 언론사는 오피니언란이라 하여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지면이 있으며, 구독자의 여론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편성되어 있다. 언론의 본질 자체가 사회의 현상을 구성원 사이에 전달하는 mediating 기능이다. 관객 없는 영화 없듯, 독자 없는 신문은 존재할 수 없다. 신문사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유언비어가 되었든 과대망상 환자의 허언이든간에 언론이 포착해야 할 세계의 일부이고,언론사는 실제로 이를 보장하며, 실제로 이를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안수찬의 "덤벼라 문빠들"이란 발언은 그러한 독자들의 집단적 문제제기가, 단지 그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만을 전체 맥락에서 잘라내와 특정 정치집단의 비이성적 행동으로 규정하고, 그를 통해 문제제기 자체를 배제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전제하는 "매스미디어"로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언론으로서는 최악의 행태다.


"덤벼라 문빠들" 논란은 그의 사과와 함께 이내 정리되었으나 이 사건은 민주당과 진보세력을 아우르고 있던 "촛불"의 균열을 본격화했다. 그 이유는 첫째,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의 경쟁자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진영 내부에서 터진 사건이었기 때문이고 둘째, 대선 때까지는 잠복해 있던 내부갈등이 실제 굉장히 컸으며 가장 중요한 셋째, "문빠"라는 프레임이 허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2. "문빠"란 무엇인가.


"문빠"는 존재하지 않았다. 적어도 2017년 5월의 상황까지는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은 팬덤이 없는 정치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사실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뒤, 그는 정치인으로서는 잠행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갔다. 당권은 김한길과 안철수에게 넘어갔고, "친문패권"이라는 공격 때문에 정치세력은 이미 2012년 대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거의 분쇄된 상태였다(당시의 정황은 홍영표 의원이 쓴 <비망록>과 문재인 대통령이 쓴 <1219, 끝이 시작이다>에 잘 설명되어 있다.) 외롭게,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세월호 진상규명 요구 단식에 함께 했고, 외롭게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 기간 동안 정치평론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손학규만도 못한 대통령 후보로 평가절하했으며,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선호도에서는 박원순에게 내내 밀려있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둔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도 박지원의 당내 세력에 미리며 45.35% 대 41.78%. 근소한 격차로 당선된다. 여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2015년 말과 2016년 초, 국민의당 분당 사태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만일 "친문패권"이 실재했고 "문빠"가 실재했다면 그가 그렇게까지 고통을 당했을까.


 문재인 대통령의 팬덤의 형성과 조직화는 2016년 초부터 6월 총선까지의 6개월의 기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 시기 문재인은 (1)기존의 노무현과 참여정부 지지자들, (2)점점 색깔을 잃어가는 진보정당에서 이탈한 진보적 지지자들, (3)국민의당으로 떠난 구태 정치인들과 안철수의 행태에 분노한 정통 보수 민주당 지지자들, (4)새롭게 투표권을 획득한 젊은 유권자들을 모두 묶어내는 극한의 미션을 달성한다.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외연확대와 지지층의 확장을 어떤 정치공학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기숙과 김어준의 프로파간다는 정치공학이 아니냐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정치에서 프로파간다는 상식이다. <왕따의 정치학>이 사실이 아니라 가정한들, 조기숙의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갖고 있는 피억압자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그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을 끌어모으는데 기여했을 따름이다. 피억압의 사실 자체가 부정될 순 없다. 김어준은 거시적으로 "문재인 지키기"라는 담론 프레임을 형성해왔는데, 이 또한 정치 컨설턴트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이 공론장에서 이슈를 제기하고 그를 통해 유권자들을 공동의 관심사로 묶는 것은 정치의 본질에 가깝다. 안철수의 탈당과 합당, 우클릭 반복 따위나 안희정의 대연정 주장 같은 것 보다 훨씬 건전하고 긍정적인 방식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상황은 말이 아니었다. 김한길계의 전횡에 질린 지지층이 민주당을 거의 떠나있었고, 2015년 말 경 민주당은 반 이명박 박근혜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보수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모여 당시 새누리당의 공세를 겨우 막아내고나 있는 판이었다. 당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는 "세월호 정국" 하나로 요약이 가능하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로 당선되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보다 진보적이던 기존의 노무현 지지자들과, 정의당 내에서 참여계 정치인들의 정계은퇴로 지지할 정치인을 잃은 유권자들 일부와 뒤에 메갈리아 논란으로 정의당을 탈당한 유권자 일부를 흡수했다. 홍보위원장 손혜원 의원 영입으로 당이 순식간에 젊고 크레이티브한 이미지로 탈바꿈한 것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였고, 국민의당 분당사태를 표창원 박주민 등 유능한 정치신인 발굴과 온라인 당원 가입시스템 개방이라는 정수로 받아친 점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진 이들이 2016년 총선의 과정에서 문재인의 사력을 다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도 계속되는 핍박(보수언론, 일베, 국민의당 등)에 대한 저항 등으로 강고하게 뭉쳐지고, 마침내 총선에 승리하면서 이들이 미래 권력까지 획득한 것. 이것이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판단할 수 있는 "문빠"라는 집단의 형성과정이다.


3. "문빠"를 증오한 사람들


 비극은 여기서 발생한다. 형성과정에서 보았다시피 "문빠"는 현재 시점의 우리나라에서, 정치공학을 동원하지 않고 형성된 가장 크고 가장 복합적인 집단이다. 또한 그들은, 가장 진보적이며 참여지향적인 정치문화를 공유한다. 문재인이라는 정치리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실천해오다가 규합된 집단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빠"의 형성과정과 그 활동은 정치학의 교과서에 실려 분석되어도 아깝지 않다. 그만큼의 대단한 일을 문재인 대통령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이룬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문빠"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생겨났다. 보수가 아닌 진보진영에서. 대체 왜?


 이를테면, 한겨레신문사의 언론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한겨레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어댄 것 말고 대체 무엇을 했는가. 시민의 합법적 의사표현에는 제한선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SNS 등 기자 개인들에 대한 댓글공격은 언론활동에 지장이 되는가?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많이 오면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데 방해가 되는가? 정치인들에 대한 항의문자라는 대단히 평화적이고 선진적인 의사표현, 정치참여는 왜 비난받는가? 그들은 쇠파이프를 손에 든 난닝구들이 판치는 것을 기대하는가? 게시판에서, 공론장에서, 커뮤니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배타적 지지태도를 보이면서 다수의 세를 과시하는 것은 그것이 "문빠"라는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특이사항인가? 정치라는 권력투쟁의 장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들로서 유권자들 스스로가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것이, 비판받아야 하는가?

"문빠"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그러한 비판에는 도무지 근거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다. 문빠의 난동에 친문패권이라니, 세상천지 자신들의 대선 후보가 백주대낮에 백색테러를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제대로 보복도 못하는 호구집단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돌이켜보건데 "노빠"와 "깨시민"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노사모는 당대의 가장 진보된 유권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참여가 늘어난만큼, 그들을 보조할 정치시스템과 정치문화가 마련되어있지 않았고, 다른 집단 어디에나 존재하던 모순들이 노사모라는 집단에 집중적으로 조명되면서 그들은 참여정부의 쇠락과 함께 흩어졌다. 문빠도 마찬가지다. 가장 복합적인 집단이고, 가장 수가 많고, 가장 활발한 집단이기에 드러나는 활동이 많은,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해 권장되고 보다 확대되어야 할, 그들에 대한 비난은, 왜, 멈추지 않을까?


4. "대깨문"과 "문빠"라는 해결책


 보수세력이 생산해내는 "문빠" 프레임은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언론과 사법부를 장악해 정치적 경쟁자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사실을 왜곡하여 권력을 투쟁하는 방식은 보수집단이 전통적으로 해 온 일이니까. 무엇보다도 해괴한 점은 이러한 "문빠"라는 프레임과 비난이, 진보진영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안수찬의 "덤벼라 문빠들" 와중에 터져나온 어떤 기자의 코멘트는 이들의 기괴한 인식을 잘 드러낸다.

 이 기자가 매체에서 어떤 지면을 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2017년도 대선까지의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적어도 "문빠"들 스스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지지자들을 주종관계로 명명한다. 현실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인식이다. 기자는 해당 발언을 사과했지만, 이런 인식이 다만 이 기자만의 것일까? 문빠에 대한 가장 열렬한 비판자로 진중권이 있지만, 그냥 입에 담지 않는게 좋겠다.


 적어도 스스로를 민주 사회의 시민으로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을 비이성적 대중이라고 먼저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이들은 서슴없이 이 일을 자행한다. 이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로 도출될 수 있는 결론이 아니라면, 다른 원인을 찾는 것이 타당하다. 어째서 진보정당과 그 지지자들은 문빠라는 프레임 안에서 타인을 판단하고, 비방하는가?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은 양당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방식의 하나로 도덕적 우월성을 선택했다. 물론, 도덕적 우월성이 안철수가 택했던 퇴행적 지역구도보다는 나은 선택이긴 하다. 그리고 한동안은 잘 통했다. 노무현 정권 역시 과거의 정치문화 속 존재였고 불법정치자금과 뇌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민주당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진보에서 중도로의 외연확장이 영원히 불가능한 진보집단으로서는 정책노선에서 차별화가 어려워져가는 민주당과의 경쟁, 그리고 심상정과 노회찬 이후의 정치 리더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실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정리 리더들과 그 지지자들의 구성을 살펴보았을 때, "도덕적, 지적 우월성"은 필연이었을 수 있다. 어쨌든, 선거를 위해 민주당과 연대하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당의 부정과 비리, 단점을 공격한다. 이것이 민주노동당과 노무현 정권의 기본적 관계설정이었고 이 전략은 문재인 정권 탄생 뒤로도 정의당의 고정지침이 되었다.


 도덕적 우월성 전략의 연장이 바로 "문빠" 규정하기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부정과 비리, 단점을 공격해야 한다. 문빠 이전에 깨시민이 있었고 그 이전에 노빠가 있었다. 그보다 이전엔 전라도 깽깽이가, 그 이전엔 빨갱이가 있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와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불특정의 대중에게 혐오의 코드와 함께 네이밍을 부여함으로써, 혐오를 받아들이고 특정집단에 남을 것인지, 혐오를 벗어나기 위해 집단에 소속되지 않는 길을 택하도록 만든다. 그를 통해 고립시킨 소수에 대해서는 거듭 비판과 공격을 가하고, 마침내 세력을 소실시킨다. 김어준이 총선 기간 주장한 Divide&Rule과도 일맥상통하는 전략이다.


5. 그리고 진보정치의 소실


 진보정당들의 노력과 진보정당의 분화와 정립에는 복잡한 내막이 있기 때문에 이 글이, 그들의 살아온 삶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유지해온 도덕적 우월성 점유 전략과 "문빠" 솎아내기는, 이제는 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Divide&Rule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환경은 시민의 정치의식이 낮고, 정치참여가 저조하며, 상호간의 연결성이 낮은 상황이다. 80년 광주를 예를 들어보자. 언론은 완전히 통제되어 있었다. 광주 사람들의 말은 모두 거짓말로 몰렸다. 시민들은 김대중 혐오와 지역주의에 함몰되어 있었다. 서울역회군 이후,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신군부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다. 이로 인해 광주의 시민들은 철저히 한국사회로부터 분리되고, 광주와 광주 바깥은 신군부의 통치 하에 놓이게 되었다.


 현대 사회? 초등학생도 페이스북으로 라이브방송을 하는 세상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이 데이터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개인 미디어로 정보의 유통과 상호연결을 지속하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시민들의 정치참여와 정치의식을 입증했다. 결정적으로, 집단주의 경향은 사라지고 합리적 개인주의로 시민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Divide&Rule이 통용되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때문에 "대깨문" 찍어내기와 "문빠" 규정하기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메갈리아처럼, 문빠보다 훨씬 심각한 프레임이 설정되어 있는 집단조차 그들 나름의 논리구조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정의당에 여러 정치참여를 이끌어내는 마당에 문빠라는 집단을 따로 빼서 공론장의 바깥으로 내모는 일은, 현대 정치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민주당에 대한 도덕성 점유 전략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두 차례의 총선을 통해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되었다. 가장 구세대의 민주당 정치인조차 이명박근혜 10년을 버텨낸 사람들이다. 도덕적 결함이 쉽게 발견되지 않고, 민주당의 지지자들고 평균적으로 그 수준의 도덕성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 도지사에 대한 당내의 논쟁이 당 바깥보다 내내 뜨겁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정치집단으로서는 현재의 정의당보다 훨씬 젊은 집단이 민주당이다.


 시대는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과거의 민주당이 아니고, 그를 지탱하고 있는 지지자들도 과거의 민중이 아니다. 과거의 정치전략으로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유일한 원내진보정당은 본인들의 실패에 대한 탈출구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패착을 저질렀다.


 정의당은 당명 개정 이래 뺄셈의 정치만을 계속했다. 참여계와의 화합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천호선과 유시민의 뒤를 이을 정치인은 등장하지 못했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증폭되자, 여성집단의 왜곡된 주장을 택하여 다수의 남성 유권자들을 떠나보냈고, 그런 기조는 박원순 시장 사망 사건 때 최악의 결과를 불렀다. 한때는 15%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어내기도 했지만, 민주당이 최악의 상황에서 회복되면서 도로 지지층을 빼았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시행했던 지지층의 확장, 외연확대가 정의당에서 이루어졌더라면 좋았겠지만, 애초에 그런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진보정당이 쉽게 이룰 일도 아니다.


 정책적 차별화 실패, 정치신인의 부진, 줄어들어가는 지지율. 정의당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 하나는 확실하다. 과거에 안주해선 안됐다. 민주당의 실패에 기대는 것도 노빠 공격하듯 문빠를 공격하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심상정은 정치공학에 기대었다. 2016년 대선 후보 토론 때의 발언, "굳세어라 유승민"은 최악의 행태였다. 어떻게 사드와, 사드를 넘어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구태정치인을 응원할 수 있었을까? 당내 성갈등 상황에서 여성주의 집단의 손을 들어준 것도 악수였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여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고, 정의당과 진보집단의 도덕적 우월성 프레임이 강화되었다. 한때는 유수의 셀러브리티들이 지지하던 민주노동당인데, 정의당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들과도 연대하지 못했다. 대체 왜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 신해철 같은 사람들을 당의 얼굴로 끌어오지 못했을까? 정의당은 실패했다. 민주노동당을 전성기로 이끈 사람들이 시대의 한계 속에 머물면서, 진정한 불임정당이 되어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존심. 문빠라는 탈출구는, 이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6. 그리고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

 그리고 돌이키지 못할 어느 죽음을 떠올린다. 노회찬. 4천만원을 수수하고 정치후원금 처리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거짓해명을 한 것이 노회찬의 죄였다. 살아서 버텨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1997년 그가 보여주었던 환한 미소. 많은 것이 손끝에 걸린다. 그리고 박원순. 아아 박원순.


 2020년의 정치지형에서 "문빠"를 둘러싼 온갖 담론이 횡행하며, 진보는 여전히 고립되어 날로 저물어가는 상황이 이 글을 다시 과거의 기억에서 끌어올리는 동기다. 나는 노회찬의 죽음이 정의당의 실패의 결과라 생각한다. 정의당이 공당으로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회찬 같은 경력의 정치인이 고작 4천여만원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나는 믿고 싶지 않다. 그를 보좌하고 지원할 정의당의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었다면, 제대로 된 재정담당 보좌관이 있었다면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노회찬을 넘어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이르러서도 정의당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노무현을 죽였을 때처럼, 진보정당은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들쑤셔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려 했다. 스스로의 정책적 노력, 정치캠페인, 지지층에 대한 이해 없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을 여성혐오주의자로 몰아부치는 도덕적 우월함이라는 구시대의 잔재에 빠져든 채.


 슬프게도 노회찬의 사망 뒤 정의당의 당원과 후원금이 상당히 증가했다고 하는데, 박원순의 사망 뒤 다시 당원들이 수천명이 떠났다고 한다. 마침내 심상정 대표까지 물러나며 이제 정의당은 우리가 알던 정당이 아니게 되었다. 진보정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여전히 검찰과 사회 기득권들의 폭거가 만연한 이 때에 "문빠"라는 벽을 먼저 치고 돌아앉은 그들이 어떤 사회진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선, 조금의 희망도 찾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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