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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16. 2021

세상 마상 입안에 피물집이

나이를 먹긴 먹나보다

 그게 벌써 몇개월은 지난 일 같은데, 아내의 울적한 기분을 달래느라 주말 내내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어느 일요일 밤이었다. 집에 거의 도착해서 마지막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툭" 하고 입 안에 생경한 감촉이 느껴지더니, 그것은 이내 뻐근하게 입 한구석을 찌르고 있었다. 운전 중인 터라 다른 데에 신경을 쓸 수도 없이 나는 그 감촉을 그대로 감각해야 했다. 입 속에 피물집이 생기는 10여초, 짧지만 불쾌한 순간을.


 혀로 입 속의 그 작은 봉우리를 살짝 살짝 건드리며 차를 대고 올라와 거울을 보니, 에그머니 말 그대로 핏멍울이다. 팥알 크기로 새빨갛고 거무스레 한 게 동그라니 모양새가 똑부러진다. 톡톡 건드려보다가 일단 양치를 하고 나서 폰으로 검색을 해봤다. 피물집.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당시 연말이었고 나는 생기부 때문에 끙끙 앓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선 아내를 보살펴야 했다. 몸과 마음이 바쁜 가운데 밤과 낮, 따로 쉴 틈이 없었다. 주말에 드라이브를 멀찍이 다녀왔으니 그럴법도 하다. 그래도, 서른여덟해 동안 처음 경험해보는 낯선 일이라 다시 거울을 보고 여엉 심정이 좋지 못하다. 다행히 십여분 뒤에 피물집은 저절로 터져서 아무런 고통을 주지 않았다. 다만 이틀쯤 뒤, 피물집이 생기며 만들어진 흉터로 구내염이 생겨, 알보칠로 거하게 지져버리긴 했다. 


 오늘 급식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피물집이 생겼다. 식판에 밥을 받아서 첫술을 뜨는 동시에 생긴 일이다. 주말 내내 앉아서 혹은 누워서 책만 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푹 쉬지 못했고 어제 월요일은 또 기가막히게 열심히 일을 한 날이었다. 피물집을 혀끝으로 툭 건드리며 점심 첫술을 뜨는데, 아아 그럴만도 하지. 하고 느끼는 감정. 


 그러나 평생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3,4개월만에 두번이나 연속으로 겪으니 이것은 나이먹음의 징후는 아닌 것일까 혼자 조심스럽게 따져물어보게 된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나이니. 몸과 마음이 아무리 젊어도 속으로는 차차 청춘이 사위어가고 있을 터이고, 그러니 머리카락의 뻣뻣함이나 체력의 왕성함이 이전과 같을 순 없을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이를 끌어안고서 지금까지의 혈기나 분방함을 풍화표백할 마음은 들지 않지만, 현재를 현재로서 올바로 감각하는 것 역시 자연한 일로 대면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식판의 달그락소리와 함께 이리저리 곰곰. 


 빨리 터트려버리려고 자리로 올라와 이쑤시개로 피물집을 꾹꾹 눌러봤지만 효험이 없다. 터지지 않는다. 포기하고 양치를 하러 갔더니 거품이 핑크색이다. 터졌구나. 양치를 마칠 때쯤엔 피 한방울 섞여나오지 않게 그렇게 피물집은 사라졌다. 이틀쯤 기다렸다가 알보칠로 통증은 날려버리겠지. 다만, 받아들임과 그럼에도 나아감의 갈래가 차츰 첨예해져가는 가뭇에 한자락 서늘한 생각을 가슴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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