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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17. 2021

철학 수업 에세이 과제

나에게 철학 그리고 교육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해찬 1세대였다. 그것은 나의 의사나 내가 경험한 현실과는 전혀 무관하게 나에게 하나의 인공적 정체성이 부과된 사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교육부 정책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의 유연화와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그럼으로써 매월 1회, 토요일의 학급단위 자율활동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중학교 때 경험했던 1년에 단 두 번의 소풍이 매달 있는 것과 같았다. 또한 방과후수업도 수시전형 마중물로써 일본어, 볼링, 당구 등 다양한 과목이 개설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1년 내내 일본어 방과후수업을 수강했다. 당시의 학교생활은 여유롭고 풍요로웠다. 야간자율학습은 당연히 없었고, 나는 큰 학습의 억압과 강제에 처하지 않고 하고 싶은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시행된 2000년 수학능력시험으로 인하여 형성된 “이해찬 1세대”라는 담론은 우리 세대를 “단군 이래 최저학력”이라고 부당하게 호명하여 사회적 논쟁의 공간으로 이끌어낸다. 교육부의 정책기조로 수능이 쉽게 출제되었는데, 2000학년도 수능이 역대 최대의 응시자와 함께 시행되었던 상황과 맞물려 수리탐구에서 약 4%, 외국어영역에서 약 2%의 만점자가 발생한다. 보수정치권력과 결탁한 학력주의자들의 집요한 공격은 마침내 2000학년도 수능을 기화로, 장관 퇴진과 정책기조의 급변을 이끌어낸다. 2학년의 풍경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나는 –1교시를 수강하기 위하여 18살의 나이에 새벽 다섯시반에 일어나 여섯시반에 학교에서 첫 수업을 들었다. 야간자율학습이 재개되어 집에 오는 시간은 11시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기간 내내 나는 미디어를 뒤덮은 “이해찬 1세대”의 담론에 끊임없이 내적 갈등을 겪었다.


 개체는 사회 총체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연결체이고, 스스로 주체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인식은 끊임없이 인간을 포함한 사물과 현상과의 상호작용을 거치며 때론 변증법적으로 때론 구성적으로 그 구조를 완성하도록 항구적으로 지향하게 된다. 그 과정에 난데없이 나의 인식세계를 뒤덮은 담론적 헤게모니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왜 나의 즐거웠던 고등학교 1학년의 기억은 정책실패로 규정되는가? 어째서 나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이 7 to 10의 학교생활을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하나하나의 텍스트는 메시지가 되어 나의 인지적 세계를 확장시켰다. 학력이란 무엇인가? 학습자의 자율성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학력은 학습자의 행복권에 우선하는가? 나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 반하여 내게 퍼부어진 이데올로기와 담론질서는 그대로 나의 인식적 독립을 위한 저항의 매개체가 되었다. 세상은 진실되지 않다. 나의 행복했던 학교생활을 빼앗아간 자들이 규정하는 정체성으로 나는 살지 않아야만 한다. 그러한 생각이 성인기의 초입에 서 있던 나의 내면을 채웠다. 


 심리로서의 철학 형성 과정에 병행하여 구조와 이론으로서의 철학 형성이 이루어졌다. 제도권 이데올로기에 대한 불화를 경험하고 난 뒤에는 모든 현상의 해석에 일말의 주체성이 반영되곤 했다. 교육정책 격변과 이해찬 1세대 담론에 대하여 인식적 저항을 거친 것과 같은 해인 2000년,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메이데이 시위를 발견하고 한동안 거리에 붙들려 그것을 관찰했다. 스물한두살의 앳된 청년들이 무거운 전경 장구를 차고 긴장한 표정으로 피맛골 좁은 길을 방패와 함께 걸어가는 장면. 시위 인도용 트럭에 올라서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들. 마침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기에 쌀개방 등 시장화가 지속되면서 나는 가을 수매철이면 종묘 앞에서 농민들이 쌀을 태우는 광경을 심심지 않게 목격하곤 했다. 무엇을 위해 저항하는가? 계층적 사회구조 속에서 실제로 물리적 충돌을 빚는 이들은 누구인가? 인식은 확장되고 재구성된다. <1984>, <걸리버여행기> 수준에 머무르던 독서는 대학생이 되고 나이를 먹어가며 프란츠 파농의 저작부터 역사, 사회, 철학에 대한 독서로 옮아가며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분화된 접근으로 다가갔다.


 스스로의 철학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과 나는 충돌했다. 대학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의식화교육의 시도에도, 의식화교육의 결과로서 단편적인 사실만을 주장하는 다른 학생회 사람들과도 불화하곤 했다. 반대편에는, 학생회를 어용화하려는 시도로 발생하던 소위 “비운동권”의 주장과도 매번 충돌했다.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는 막 성인이 되어 발언권을 갖추었으되 그것을 스스로 통제할 역량은 없던 이들이 손쉽게 폭력을 발생시키고 재생산하곤 한다. 그곳에 들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다투다가 내면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의식화교육이든, 학생회 어용화의 시도든 양자 모두가 한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 형성을 가로막는 보수반동적 행위로 보였다. 그것은 곧 나에게 있어서 저항적 실천의 대상이었다. 내가 원치 않던 이해찬 1세대라는 정체성에 포위되었던 것이 부당하고 내가 그에 대하여 분노했기 때문에, 그 뒤에도 내가 발견하고 목격한 다층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띈 폭력과 권력의 행위에도 나는 반목할 수 밖에 없었다. 철학은 곧 나에게 진정한 나를 규정할 나 자신의 주권의 문제였으며 카오스적인 사회현상의 클러스터 속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침이 되었다. 동시에, 나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처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경계하고 그것에 분노하도록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내면의 심리, 구조적 이론체계와 다르게, 학습의 대상으로서의 철학을 학습하고 있다. 학습의 대상으로서 철학은 <과학혁명의 구조>나 <장대한 혁명>처럼 횡적 역사와 종적 사회현상의 총류를 반복적으로 탐색하는 일이다. 하나의 개념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천해왔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단 한 장의 페이지에 수 십 분을 투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고통스럽고 실제로 실용적이지 못한 과정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자유를 언제까지고 사수하기 위해서는 내가 탐색할 수 있는 철학의 모든 영역을 고통스럽더라도, 나 자신의 역량에 맞춘 속도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가는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그것을 유전하는 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 우리가 감각할 수 없는 그 너머의 세계의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질문은, 실용적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실용성이라는 가치로부터, 그리고 우리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분리된 가장 보편타당하고 중립적인 가치로서 비로소 “나”를 규정할 수 있게 하는 질문들일 것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스케치북과 채색도구가 필요하듯, 철학을 세우기 위해선 존재와 사유의 근거가 필요하다. 나에게 철학은 그러므로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항구적 지향의 상태다. 


 그렇다면 그런 철학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속 알렉시스 조르바는 자유인의 표상이다. 마치 세상 돌아가는 사정 따위 모른다는 듯한 그의 분방한 모습에 주인공인 “나”는 은연중에 그의 무책임하고 세속적인 태도를 무시하는 태도를 내비치며 스스로는 속박된 조국에 대한 한탄, 그리고 자신이 버리고 온 동지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루 하루 번민한다. 그러나 이야기 말미에 조르바는 그리스 무장독립투쟁에 숱한 피를 뿌린 역전의 용사였으며, 그 가운데에 무수한 생명의 엇갈림에 깊은 번민을 겪어왔음이 드러난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것은 백면서생이었던 “나”인 것이다. 


 조르바의 대척점에 서 있는 또 다른 인물은 <미할리스 대장>이다. 영혼과 육체 모두 식민조국을 떠나 자유를 얻은 조르바와 달리, 그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고 그리스인들이 함께 살고 있는 그 땅 위에 서서 번민과 갈등을 계속한다. 어쩌면 조르바의 장년 시절이 그와 같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카잔자키스는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붙인 미할리스 대장에게는 “그리스인”이라는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리스의 영혼을 글로 옮기는데 탁월했던 카잔자키스의 관점에서 조르바와 미할리스 대장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조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미할리스 대장보다, 여성들의 체모로 베갯속을 만들어 베고 살다가 편안하게 침대 위에서 배우자와 웃고 떠들다가 숨을 거둔 이에게 그리스인이라는 이름을 그는 붙여주었건 것일까? 


 교육의 관점에서 조르바의 삶과 인식을 평가한다면 한마디로 그는 달통한 사람이다. 불광불급이라는 말처럼 그는 삶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몸으로 뚫고 헤쳐나오며 그 경험을 무엇 하나 버리지 않고 자신의 철학으로 통합시켰다. 이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세상은 철학의 씨앗을 품은 이를 그냥 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다. 철학의 덕성이 부족한 사람에겐 온갖 유혹이, 뛰어난 덕성을 갖춘 이에게는 질투와 간섭이 찾아든다. 현실 학교 교육에서는 학습자 아동의 실존적 문제와는 관계가 없는 온갖 교과지식과 평가제도가 몇겹의 권력구조를 동원하여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는데 인간이 되는 길을 교육이 방해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진정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해법은 명쾌했다. 두려움 없이 번민 없이 그것을 그대로 뚫고 살아내는 것. 모든 삶의 문제를 관통한 끝에 도달한 것이 진정한 자유였던 것이다. 


 자기실현적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학습은 단 한순간도 우릴 떠나지 않는 문제다. 수 만 수 천 번이 반복되는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 사람의 모습은 변화하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을 수는 없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인식이야말로 자신의 변화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가장 원초적인 무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배움은 시작된다. 나와의 대화를 충분히 이룬 뒤에야 사물을 온전히 편견 없이 접할 수 있다. 세상은 인간의 인지 역량을 벗어나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채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pseudo-environment) 우리는 매 순간의 경험과 인지에 선입견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대상과 나를 매개하는 인식의 통로로서 선입견을 객관적으로 통찰해야 그것을 질서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물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접하고, 접하지 않을지에 대한 결정을 해야만 한다. 나의 동지와 적은 누구이며, 내 책무는 무엇인가? 나와 타인을 가르는 기준을 어떻게 삼을 것인가? 이 때문에 단지 사물을 올바르게 접하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의지의 힘이 요구된다. 프락시스의 구획을 주관에 의해 정하는 것이야말로 반프락시스적인 행위다. 나 자신을 위한 문제를, 나 자신의 주관에 관한 판단을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얼핏 역설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자유는 오로지 모든 경험-인식적 숙제를 실천을 통해 해소한 다음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조르바처럼, 그가 무장투쟁에서 자신을 버린 실천 끝에 진실을 깨닫고 자유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실제로 우리가 접한 모든 문제를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경험 인식으로 전환한 뒤에는 무엇을 나의 실천 영역으로 둘지를 진실되게 스스로의 선택으로서 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철학이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택하는 일이라면 교육은 한 인간이 그것을 성취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를 구성해 타인과 함께 교류하며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그들 사이에서 오롯이 자아와 그 실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거짓됨 없는 진실만을 쌓아가야 한다. 진실이 태양이라면 거짓은 구름과 같다. 구름은 늘 모양이 변하며 때론 완전히 태양을 덮기도, 말끔히 사라지기도 한다. 흔들림 없는 태양과 같은 실체적 진실만이 어떤 상황,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의 정신과 자아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그 다음의 배움의 연속을 이끌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물살에 휩쓸려가지 않는 바윗돌로 강에 징검다리를 놓는 것과 같다. 또한 구름 넘어 태양의 본모습을 응시하는 인내심처럼, 바위를 하나 하나 들고 강물에 뛰어드는 것처럼 그것은 늘 고통스러운 길이다. 


 진리에 접근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유에의 길에는 또 다른 실천의 영역으로서 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외부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열어둔다는 조건이 따라붙는다. 경험-인식적 실천이 외부 사물과 나 사이를 가리고 있는 장막을 거두는 일이라면, 지식-행위의 실천은 나의 자아와 존재에 얽힌 사물을 다시 완전한 객관적 사물로 되돌리는 일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비>에는 뇌가 된 과학자에 대한 흥미로운 우화가 실려있는데, 영생을 바라며 통조림 속에 뇌 상태를 스스로 만든 과학자가 그 속에서 우주의 모든 진리를 깨우쳤는데 그것을 외부와 소통해서 검증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개의 먹이가 된다. 이처럼 개인화된 모든 지식은 진리라고 말하기가 어렵게 된다. 마치 내장을 배 밖에 드러내놓고 다니듯, 항상 나의 지식과 인식을 외부세계에 드러내, 타인과 소통하고 그를 통해 주관을 벗겨내려는 실천이 학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내장을 배 밖으로 드러낸 사람이라는 비유만큼 조르바에게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지만 모든 경험과 인식이 객관적인 사물로서 나를 관통해 지나갈 수 있는 상태, 즉 성숙한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다면 지식의 절대적 양이 중요할까? 얼핏 무지렁이처럼 보이는 그의 초탈한 행위양식은 지식축적의 필요성이 사라진 완전한 철학자의 표본이라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무언가 처음 접하는 사안이 있다고 가정할 때, 충분히 그 사물을 검토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발화에서 객관과 편견을 가려낸 뒤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실체에 접근하고, 가장 그에 근접한 결론을 내린 뒤에 다시 그것을 검증하기 위한 대화와 실천으로 이어갈 것이다. 결국 배움이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닌, 지식을 올바르게 다루는 이러한 태도를 얻기 위한 고된 실천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가론>의 6장에서 플라톤은 일반적인 철학 훈련의 과정을 뒤집어, 청년기엔 교양을 익히고 중년기엔 지성을 단련하며, 노년기에 철학과 이성을 다지는 과정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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