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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y 22. 2021

<캐빈 인 더 우즈>, 억압된 경험계의 삶

창의적 체험활동으로 진로수업 교재로 아이들에게 설명한 내용

https://www.netflix.com/kr/title/70112368


<SPOILER ALERT!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위의 링크를 따라 영화를 감상하신 뒤에 읽으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영상매체를 활용한 교육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고민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어느정도 성숙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지도를 하는 입장이라 책이든 영화든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의 성격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필요하다면 책을 보는 게 맞고, 영화로 충분하다 할 때는 영화를 활용하지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 4개 학급을 대상으로 매주 1시간씩 진로활동으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교육계획에 따라 진로교육 교재가 채택되어 학생들에게 배부된 상태로, 150페이지 가량의 분량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고작 주 1회의 수업입니다만 시간이 좀 남습니다. 그래서 교사 재량에 따라 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영상이나 뉴스 등을 활용하여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아이들에게 소개한 영화가 <캐빈 인 더 우즈>, 그리고 다른 수업에 활용한 몇가지가 더 있습니다. 찬찬히 한개씩 소개해보겠습니다.





80~90년대를 풍미한 "숲속 별장" 장르

 헐리웃 공포영화에 혁신을 일으킨 영화감독과 영화가 있습니다. 2000년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감독, 그리고 90년대 비디오가게에서 꽤나 핫했던 <다크맨>이라는 영화의 감독인 샘 레이미 감독의 데뷔작인 <이블 데드>입니다. 아마추어 작품으로 시작된 영화라 배경이 참 단촐한데요, 20대 청년들이 숲 속의 어느 별장에 들어가서 악마를 만나고 하나 하나 홀리며 그 안에서 죽어가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공간은 오로지 숲과 별장 뿐이지만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에는 함부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죽기에 딱 알맞은 숲도 제법 있고, 그 속에 별장도 제에법 있어서 영화는 꽤나 공감대를 일으키며 큰 성공을 거둡니다. 20대 청년 샘 레이미는 하나의 공포영화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죠.


 같은 시기에 또 하나의 공포영화가 숲속 별장을 배경으로 만들어집니다. 살인마 제이슨이 등장하는 <13일의 금요일>입니다. 이쪽이 국내에는 더 유명하지요. 물론 시리즈도 훨씬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역시, 숲속 별장, 놀러온 젊은이들, 살인마의 등장. 워낙 숲으로 캠핑을 가는 일도 흔하고 거기서 어떤 사고를 당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숲속 별장" 장르는 8,90년대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임스 완 감독이 부활시킨 고전스타일 호러영화 <컨저링>이나 <인시디어스>처럼 집이라는 생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도 극장에서 한바탕 즐겁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 되고, 제작자들의 입장에서는 괴물 분장 말고는 제작비가 정말로 들지 않는 저예산 장르였기 때문에 사랑받았죠.


 그런 영화도 20년 가까이 무수하게 반복되고 반복되면서 관객들에게는 익숙함으로 각인되고 더는 흥미를 끌지 못하고 버려지게 됩니다. 90년대의 걸작 <스크림>에서도 이런 공포영화의 공식을 비꼬는 장면이 나오는데, 1. 성행위 금지, 2. 술과 마약 금지, 3.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 "금방 돌아올게(I'll be right back)."라는 대사를 하지 말 것. 이 외에도 살인범은 처녀만이 이길 수 있다는 공식도 있습니다.


 <스크림>이 훌륭하게 공포영화의 공식들을 뒤튼 것처럼 <캐빈 인 더 우즈> 역시 그러합니다. 다만 훨씬 더 크게, 그리고 넓게 판을 짰죠.


왜 이 모든 공포영화는 만들어지는가?

 <캐빈 인 더 우즈>는 이 정말로 인기있었던, 지금도 매년 만들어지고 있는 "숲속 별장" 장르를 기반으로 모든 공포영화에 대한 기발한 해석을 시도합니다. 영화의 첫장면부터 흰 셔츠에 넥타이를 맨 두 남자가 건강과 주말 일정과 같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그것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조직"들에게 있어서 공포영화의 사건과 고통들이 얼마나 일상화된 것인지를 알리는 장면이죠. 이런 장면이 영화 내내 반복됩니다.

 

 다음 장면에선 영화의 주인공인 다섯 남녀가 등장합니다. 의대생과 장학금을 받는 수재이면서 풋볼팀의 리더까지 매력적인 20대 청춘들이 모여 숲속 별장으로 떠나죠. 이때부터 영화는 공포영화의 공식들을 하나 하나 노골적으로 늘어놓으며 그에 대한 기발한 해석을 선보입니다.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고, 성행위를 기어코 하며, 술과 마약에 쩔어서 실수를 저지르는, 모든 그 뻔하고 지루한 장치들을. 그리고 비명이 시작되고 하나 하나 죽게 됩니다.


 영화에서 그것은 정장 셔츠를 입은 "조직"의 기획과 조작으로 묘사됩니다. 아직 결말부까지 가서 영화의 진상이 드러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은 대체 이 조직이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통해서 "아 이 영화가 공포영화들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구나" 정도는 알 수 있죠. 그중 백미가 바로 아래 장면입니다. 늑대인간, 외계야수, 돌연변이, 악령, 좀비, 도마뱀인간...우리가 한번씩은 봤을만한 여러가지 공포영화들의 주인공들이 화이트보드에 적혀있죠? 알고 보니 우리가 봤던 그 많은 공포영화가, 이 조직들이 만들어낸 거라고? 대체 왜?


다시 포스터를 보시면,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서 위에 올렸던 영화의 메인 이미지

 다시 포스터를 보시면 별장이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이 세 층위가 이루어내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임을 결말부까지 가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층부는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는 "별장"입니다. 20대 청년들이 놀러갔다가 좀비 괴물집단을 불러내고, 술과 마역에 쩔어서, 성행위를 하다가, 돌아온다고 약속을 하다가 한명씩 잔인하게 살해됩니다. 중층부는 그 사건을 통제하는 "조직"입니다. 이 별장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일정한 주기로 수백개의 참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영화에서 설명됩니다. 그러나 왜 그런 일을 하는가?는 답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의식만 하는 것으로 추론되죠. 해답은 실제로 심층부의 "고대신"에 의해서 해명됩니다.


 지금부터 상당히 중요한데요, 상층부의 청년들은 중층부의 조직에게 영향을 못미칩니다. 그리고 중층부의 조직은 심층부의 고대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죠. 심층이 중층을, 중층이 상층을 낳는 구조입니다. 영화를 통해 표면적으로 이 세 층위의 관계는 <별장=공포영화> <조직=영화제작자> <고대신=관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영화제작자에게 있어서 자신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관객들은 정말로 신적 존재이죠. 신의 분노를 사면 모든 것이 파멸해버리는 것이고요. 그들에게 공포영화는 그저 창작물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 청년들이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한다 한들,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죠. 심층은 중층을 통제할 뿐, 그로 인한 피드백을 받지 않습니다. 중층은 상층을 통제할 분, 그로 인한 피드백을 받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 현실을 상당히 반영합니다. 잠깐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 겉핥기 수준입니다만 영화를 우리 삶과 연관하여 설명하기엔 아주 좋습니다.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이론체계가 있는데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사건들은 어떤 구조에서 만들어질까요? 내 감정은 어떻게 촉발되는 것이고, 나의 경험과 생각은 어떻게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이 사건에서 어떤 경험과 감정을 느끼게 될까요?


 이것을 <캐빈 인 더 우즈>를 대상으로 먼저 설명해봅시다. 청년들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은 중층의 조직의 계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백명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겠죠. 이번에도 한명씩 죽어가는 가운데, 마약에 쩌든 주인공 "마티"만이 다른 경험에서 다른 인식을 하게 됩니다. 마티가 별장 사건에서 나 홀로 다른 진실을 보게 된 것은 마약이 그의 감각을 변형시켰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덕분에 그는 원래라면 차단되었어야 할 중층부의 진실에 다가가게 됩니다. 괴물들로 가득한 유리로 된 방에서 벗어나자, 조직의 보스는 냉정한 목소리로 그들은 아주 거대한 힘에 바쳐지는 희생양임을 밝히죠. 물론 고대신과 같은 관객인 우리는 화면 바깥에서 그 모든 것을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결말부에서 고대신의 모습을 실제로 보기까지 합니다.


 자. 우리는 고대신의 입장에서 영화 속에 나타난 상층-중층-심층의 구조를 파악했으니, 마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의 문제를 그러한 시각으로 관측할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를 고대신의 위치가 아닌 별장 속 청년들의 위치에 넣어봅시다. 공포영화가 아닌, 실제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말이죠. 우리가 겪는 일들을 상층의 문제라고 치면, 중층에는 어떤 문제가 있고, 심층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이게 제 이번 영화 수업의 주제였습니다.


억압된 경험계의 삶

 사실 지금까지 이러한 다층적 현실의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된 영화는 <매트릭스>였습니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세가지 층간의 상호 간섭이 너무 심한 영화라 이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구조를 설명하기엔 충분하지 않습니다. <캐빈 인 더 우즈>가 딱이죠. 우리의 삶을 생성하는 중층과 심층의 문제를 네오와 같은 히어로가 아니라, 피살자인 청년들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으니까요.


 심층의 실제 현실이 있습니다. 거대한 권력이 있을 수도, 신앙이나 의식체계와 같은 다수의 공통된 생각이 자리하는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중층의 사건이 있습니다. 사건은 우리 자신과 별개로 발생하는 것이죠. 어느날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고 한다면, 그 사건 자체에는 인간의 간섭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인간이 모두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겠지요. 그것이 경험적 영역입니다. 사건을 인간의 입장에서 관측한다면 인간의 종말, 우주적 관점에서 관찰한다면 운석 하나의 소멸입니다. 이것을 설명한 것이 아래의 표입니다. 출처를 들어가셔도 어려운 말들이기 때문에 그냥 수박 겉핥기로만 보시는 게 좋습니다. 저도 그러고 있으니까요.

출처 : http://jcp.kcti.re.kr/archive/view_article?pid=jcp-34-2-105

 현실의 다양한 문제를 이러한 구조에서 관측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인식은 훨씬 넓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설명한 결론입니다. 물론 중간에 성행위 장면은 요령껏 넘겼습니다. 왜 우리 학생들의 삶은 괴로울까?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입시 문제로 만들어지는 고민, 진로와 취업으로 만들어지는 고민. 그중에 어느것도 아이들 본인의 과실인 것이 없고, 중층과 심층에 사건과 현실의 문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단지 상층부의 말초적인 경험의 문제에서 해석을 하고 교정을 하려 하니, 아이를 조이고 고통을 주는 일이 반복되죠. 위에 쓴 것처럼 위에서 아무리 안달볶달해봐야 중층부 내지 심층부를 바꿀 순 없습니다. 현상계에서의 문제는 사건계인 중층부를 바꾸어야 해결할 수 있고, 중충부를 해결하려면 심층부를 통제해야 하죠. 심층부의 현실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이건 매우 어려운 문제이지만 아예 불가능하진 않고 신대륙 발전이나 산업혁명, 종교적 구원 수준의 대사건이 쌓이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차원의 문제라면 그보다 작은 수준으로 현실을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구요.  


 이런 구조를 안다고 해서 삶이 바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파멸을 맞았구요. 그어나 적어도 마티와 데이나는 진실엔 근접해나갔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네. 실재가 빚어내는 사건을 완전히 바꾸긴 했네요. 이 구조를 잘 파악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경험 수준의 문제로 안달볶달하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아주 중요하죠. 안달볶달의 결과물로 미국에선 트럼프가 당선되고 한국에선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혐오하고 있으니까요. 문제를 해결하진 못하지만, 내가 타인의 광기에 휩쓸리진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 스스로 나의 경험과 인식을 통제해 나간다면, 그 경험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도 가능합니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이런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가이드하면서, 나 자신은 매번 볼 때마다 짜릿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명작입니다. 모든 공포영화에 대한 해석을 시도했고 성공했다는 점에서만도 가치가 크므로 감상해보시길.

포스터로 모든걸 스포일러 하는 일본 배급사의 패기...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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