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좋은 배우들의 호연
<모가디슈>는 우선 사건의 배경이 되는 소말리아의 내란을 상당히 잘 묘사해 보여주고 있다. 북서아프리카인을 캐스팅하지 못해 실제 소말리아인들에게는 좋지 못한 평이라는 후문이지만, 적어도 한국인이 보기엔 1990년 즈음엔 이랬을법한 모가디슈의 미장센과 소품들이 꽤나 현실적이다. 영화 도입부부터 최후반까지 줄곧 등장하는 구형벤츠부터 내란 전 후의 도시의 모습 등 몰입을 위한 배경을 잘 깔아놔서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가치를 살린다. 특히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는 사건 전 후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혼란상을 잘 대조하는 게 중요한데, 사건 전 사건 후의 공간, 사물, 사람들의 묘사가 꽤 빼어나다.
거기에 배우들의 호연으로 빚어낸 현실적인 인물묘사가 퍽 인상적이다. 허준호 구교환 두 북한 측 인물들의 경우 상당히 스테레오타입한 캐릭터고 연기였지만 그것은 분량이나 역할의 한계가 적지 않게 작용하고, 남한 측 소말리아 공관 직원들의 모습은 각기 입체적이고 디테일하다. 특히 한신성 대사 역을 맡은 김윤석 배우가 명불허전의 내공을 자랑한다. 도입부에 정만식 배우의 공 사무관과 조인성 배우의 강 참사관 세 배역이 서로 다양한 문제로 갈등을 노출하는 부분이 있는데, 두 부하직원을 각기 인간적으로 포용하는 한신성 대사의 인간적인 면모가 굉장히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한신성의 캐릭터 묘사가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송강호 배우를 집어넣고 연기하는 모습을 상상할 정도.) 선을 그을 것 딱 긋고 그 안에선 무진장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런 한신성의 캐릭터가 초반부에 확고하게 구축이 되어 있으니 이후의 사건에서 보이는 그의 행보가 합리성을 띠게 된다. 이 세 인물 외의 남은 대사관 식구인 김소진, 김재화, 박경혜 역시 각기 독자적인 존재감을 선보인다. 김소진 배우는 타이틀 롤을 기대하게 할 정도의 포스.
그래서 우선 기본에 충실하다. 모가디슈의 공간적, 시대적 배경 위에 인물들까지 생동감 있게 판을 깔았으니 여기에서 뭘 해도 어지간히 좋은 스토리는 나오게 된다. 그런데, 스토리마저 실제 상황을 상당히 조리있게 각색해서 긴장감을 높였다. 영화 중반부를 넘어가면 "이건 각색이구만."하고 자연스럽게 와닿는 장면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후반부 탈출씬은 MGS를 적지 않게 쳤다는 것이 확 체감이 된다. 실제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하여 남북 합동 모가디슈 탈출극을 벌여야 했던 주인공들의 입장에선 하루 하루가 피말리는 긴장의 연속이었겠지만 스크린 넘어에 있는 우리가 편안히 객석에 앉아 에어컨을 쏘이며 그런 긴장을 느낄 수 있을리는 없고, 인물들의 정서에 함께 몰입하기 위해서라도 상당히 긴박감을 높여 스토리를 전개할 필요성은 있는데...이게 잘 됐다. 뻔히 각색인 걸 알면서도 만족스럽게 관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각색에 조금 무리수가 있어서, 영화를 보다보면 아귀가 맞지 않거나 소말리아 내전이 터지는 부분의 긴장감이 중반부에 상당히 늘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원래 탈출극 장르가 영화 <스피드>처럼 내내 달려달려 하며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인 만큼, 중반부의 지지부진함에 영화에 대한 평가를 깎아내릴 사람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정도의 단점을 제외하면 시나리오의 단점은 거의 없다고 여겨질만큼 잘 조이고 버무려낸 영화다. 정치극으로서도 휴먼드라마로서도 액션으로서도 제법 제법 잘 작동한다.
거기에 소말리아 내전의 심각성을 전달하는 동족상잔의 혼란상, 마약을 주입하고 총을 갈기는 소년병들의 모습을 꽤 세세하게 그려내서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하고, 주인공들이 휘말린 내전의 광기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데 이 지점에서 류승완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의 남북의 갈등과 대치를 소말리아 내전과 함께 배치해, 분단국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을 소말리아에 대입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은가. 민중들이 서로에게 총을 갈기고, 파탄난 경제에서 서로를 약탈하고, 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니는 모습은 다름아닌 1950년대,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어진 우리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내게는 보였다. 그 속에서 인류애로서, 동포애로서, 남과 북이 함께 그 지옥도를 탈출했다는 감동적인 역사적 사건을 이렇게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더욱 의미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