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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n 12. 2021

시사IN 구독요청에 동의했다.

언론이 요지경

무엇을 읽고 있습니까.

 

내 방 한 편에는 아담한 무덤이 있다. 군을 제대한 뒤부터 키우기 시작한 봉분인데 2년이 지나니 어느 사이 눈에 뜨일 만큼 자라났다. 무덤의 주인은 한 쌍의 부부 같은 두 종의 주간지인데, 가지런히 쌓아놓고 보니 서너 살 아이의 키만큼이 족히 되었다. 매주 월요일 지하철 가판대에서 이들을 만나는 것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일주일마다 6000원의 고정 지출은 예나 지금이나 작지 않은 부담이지만, 이 둘을 사 보지 않는 것은 내게 더 큰 두려움이다.


 오늘의 정보가 내일의 휴지조각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간행물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 두 주간지 역시 일주일간의 소용을 다하고는 무덤으로 향한다. 그들의 옆에는 단행본들이 고고한 표정으로 책장을 채우고 있다. 책장 속의 책들에게서 뽑아낸 지혜가 보물이라면, 시효를 지난 간행물들에게서 찾아낸 사실은 유물이다. 10년 전에 읽었던 한권의 책이 오늘날 새로운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10년 전의 주간지 기사가 지금 필요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어떠한 현실적인 소용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끊임없이 사서 보는 즐거움이란, 다른 어떤 종류의 독서에 뒤지지 않는다. 선호하는 장르로 점차적으로 기울게 되는 독서의 습관에서 벗어나 세상만사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취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간지 독서는 무척이나 매력 있는 일이다. 거기에, 이들 매체를 생산하는 이들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면 그것을 읽는 보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간지 H는 1989년에 창간된 H신문의 자매지이다. H신문은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참된 정론지의 필요성을 받아 안고 태어난, 세계 최초로 국민모금의 형태로 자본이 설립된 언론이다. 주간지는 국제, 생태,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꼼꼼하고 치밀한 눈길을 보내는데, 특히 인권분야에 있어서 최근 몇 년간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우리 사회 언론 중 단연 독보적이라 할만하다.


 주간지 S는 2006년 삼성그룹에 불리한 기사를 언론사 사장이 일방적으로 삭제하여 편집권을 침해한 <시사저널사태>로 인해 해당 언론사의 기자들이 독립하여 세운, 역시 세계에서 손에 꼽을만한 독립언론의 모범사례이다. 오랫동안 주간지에서 실력을 뽐내 온 기자들이, 일체의 권력으로부터의 간섭 없이 꾸려내는 기사들을 읽을 수 있기에 약간의 구시대적인 디자인과 들쭉날쭉한 기사 편집을 참아내고 있다.


 권력화 된 언론이 미디어법을 등에 업고 방송에 진출하려는 이즈음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에 충실한 이들 언론은 그 존재만으로도 값지다. 이들이 차지한 내 방 한구석의 공간이 차츰 늘어난다는 것이 약간은 고달픈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H와 S의 무덤이 자라날수록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과 양심의 수준이 함께 성장하리라고 나는 믿는다. 나만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지 않은 유별난 즐거움이지만 아직은 주변에, 함께 하고 있는 이가 드물다. 무엇을 읽는가, 우리는. 구태여 가을이 아니고서라도 몇 번이고 되짚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는지. (2009.11.03.)



 청년기의 풋풋한 기억을 마주한다. 제대하고 두 해를 더 넘겨 쓴 글. 언론인의 꿈은 접고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며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일 때였다. 이명박 정권의 폭압이 한창일 시절이니 내가 한겨레21과 시사IN에 대해 갖는 호감이나 신뢰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아니, 정확히는 민주적 사회에 대한 신망과 열성이 빚어낸 기대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나는 매주 월요일에 학교에 가는 지하철에서 두권의 주간지를 샀다. 그리고 목요일이 되기 전에 대개 다 읽었다. 군인 때의 관성으로 아침 6시에 눈이 떠지면 한시간 정도 읽고 씻기 시작을 했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 때로 어두워지면 손에 들고 그대로 읽었다.


 정기구독을 하지 않고 가판대에서 산 것은, 정기구독으로 인하여 절약한 비용을 달리 쓰기보다는 가판 사업자들에게 나눔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제 더더욱 보기 어려워진 것이 지하철 가판대이지만. 무가지가 한참 처음 나와서 시장질서를 뒤흔들 때라 가판사업자들이 무지막지하게 힘이 들 떄다. 그렇게 의정부로 직장을 옮기기 전까지 4년을 매주 주간지들을 사고, 쌓아뒀다가,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과제를 한참 하고 점심을 먹기 전 잠깐 눈을 붙였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가 와 있길래 뭐지 하고 한번 걸어봤다가 이내 끊었다. 정 급한 용무면 문자라도 했겠지.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긁은 사람이 연락을 한 것이 아닌가 궁금하긴 했지만 내가 한번 회신을 한 기록이 있으니 그쪽에서 용건이 있거들랑 연락이 올 일이다. 그러나 그날 내내 연락은 오지 않았고, 정말 나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다시 과제와 업무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어제, 점심시간. 같은 번호로 그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정말 바쁘시고 어려운 때 이렇게 연락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조심스러운 목소리와 어투에 긴장이 그대로 담긴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순간 전화의 정체를 직감했다. 시사IN이구나. 나는 담담히 상대방의 말을 기다렸고 기자님께서는 힘겨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수 만 통은 했겠지. 예상대로 정기구독을 요청하는 것이었고, 단 1년간만 지켜봐주실 수 있게 1년 뒤 자동해지가 되며 일시납이 아니라 월 및 분기단위 분납도 가능하다는 파격적인 내용이다. 8년째 3500원이라는 그 금액 그대로.


 의정부로 직장을 옮기고 몇해간은 주간지를 사 읽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따금 지하철을 타고 술 약속도 나가고 데이트도 나가고 했지만 월요일 등교길 혹은 출근길에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사는, 4년 넘게 해 온 싸이클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애써서 주간지를 사 읽어도 나 자신의 삶도 세상의 모습도 좀처럼 나아지지 못한다는 회한과 스마트폰으로 인해 변한 통근길의 모습도 한 몫 했다. 그래서 얼마 뒤에는 드디어 정기구독을 신청해 우편으로 받아보기 시작했다. 매주 용돈을 쪼개 살 때는 무서운 줄 몰랐지만 일시납을 하니 부담이 된다. 한겨레21은 두고 시사IN으로 정기구독할 주간지를 택했다. 내가 성장하면서 전자보단 후자의 수준에 맞추어진 점도 있다. 그렇게 정기구독을 받아서 이제는 모든 활자를 읽던 청년기의 습관대로는 하지 못하고 주로 발췌독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데 사건은 터졌다. 2017년 대선을 앞둔 여러가지 소동들. 페미니즘 이슈와 안철수 열풍이라는, 언론의 이해할 수 없던 기이한 보도행태들. 시사IN의 페미니즘 이슈의 경우 편향성보다는 게으름의 문제였다. 사안을 관찰하고 논조를 정할 언론사 내부의 4~50대 기자들이 20대 내부에서 남성과 여성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 리가 없는데, 그에 대해 실사구시로 접근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인식선에서 현상을 진단했다. 나는 주로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청년들 내부에 흐르는 담론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었고 페이스북에서 여자 후배들과 여러차례 논쟁도 벌인 적이 있다. 그래서 고작 나무위키의 내용을 질적분석한 천관율 기자의 기획보도가 대단히 무능한 행태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정기구독을 급 해지할 정도의 문제는 아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날 가슴아프게 하는 시사IN의 치명적인 잘못은 바로 이 만평과, 그와 관련된 고제규 당시 편집장의 무책임한 태도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사건이라 설명은 필요하지 않지만, 당시 초조하게 탄핵과 신새벽의 갈림길을 헤메고 있던 한 사람의 시민에게 이 한장의 만평은 찢어지는 배신감을 느끼게 했다. 2017년 이래의 역사가 말해주듯 안희정(특히 안희정은 성추문 이전에 이미 예비후보로서도 너무 많은 한계를 드러내서 문재인 대선 승리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안철수 두 정치인의 부족함이나 문대통령의 청렴한 선거는 이처럼 만평을 통해 왜곡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언론사 각 지면은 편집은 하되 간섭은 할 수 없는 독립된 영역임을 익히 알고 있지만, 이것은 상상을 넘어선 폭거였다.


"네...그럼 지로도 집으로 오는 건가요?"

"....네에! 댁으로 보내드리구요 지로도 같이 갑니다."


 박지혜 기자님의 정기구독 권유를 받아들이는 짧은 시간 동안 회복될  없는 상처가 되새겨졌다. 내가 기다리고 기다려 가판대로 달려가 샀던, 신정아씨와 루퍼트 머독의 사진이 담긴 시사IN 창간호.  방에 쌓여있던 봉분들. 매일 매일 읽고  살찌우던 지면의 시간들과,  모든 애정과 나의 구독료를 한순간에 배신한, 충격적인 보도 실패의 시간들을.  기억을 품고 구독을 결정한 것은, 기자님쪽에서는 대선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할 일은  아니다. 스스로 날려먹은 천금같은 기회로 인해 시사IN 미디어 영향력은 너무나 작아져있다. 이젠 시사IN의 보도가 누구에게 언급조차 잘 되지 않는 판이니 역할을 할래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사저널 시기부터 쌓아온 신뢰와 사회적 자본을 고제규 편집장 시기 불과 몇개월만에 불싸지른 댓가는 앞으로도 영원히 복구 불가능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 나는 딱히 기자님이 정기구독의 논거로 제공한 것들에 설득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시사IN이 충분히 댓가를 치렀고 다시 기자들이 자기 언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밑거름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어봐야 언론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니, 윤전기 돌릴 전깃세는 내줘야 하니까. 단지 그뿐이다. 애정, 신뢰, 기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걷어찬 언론을 잠시나마 돕기로 한 것은. 딱 1년의 시간. 다만, 마지막 줄을 쓰고 있는 지금도 되살아나는 그 배신의 기억이, 1년 뒤에는 정말로 조금이나마 사라진다면 그것이 나에겐 위안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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