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ul 07. 2021

이대남에 대하여#1

20대 남성을 관통하는 세가지 테제 (1) 소외

0. 이십대 개새끼론과 20대 남성

 마침 적당하게 10년쯤 전에 이십대 개새끼론이 있었다. 이명박 정권의 폭정에도 정권교체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18대 대선을 앞둔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막강한 대권후보였던 박근혜를 앞세운 여당이 승리하자, 이 상황에 대한 분노가 결국 지지정당을 택하지 못하고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는 20대들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그 20대들이 불과 몇년 전 이명박의 미국 소 수입 협상 규탄시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정권 초창기에 강력한 민의를 보여주는데 함께 했거나,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강남 3구의 강력한 계층투표가 아니었다면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을 것 등의 사정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기성세대는 담론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젊은 세대에게 전가하였고, 젊은 세대는 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강구하여 맞서게 될 뿐.


 하여 지난 4월 재보궐선거를 전후로 20대 남성 비판론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름하여 '이대남'. 같은 연령대 여성과는 판이하게 다른 표심으로 정권을 심판한 이들에 대한 새삼스러운 분석이 줄을 이었고 그중 다수는 비난이었다. 선거의 충격도 열기도 기억에서 희미해진 3개월이 경과한 지금에서도 그런 상황은 마찬가지다. 선거 후 여당이 수행한 청년과의 대화에서 20대 남성 다수가 조국 전 장관 문제를 거론하거나 불공정 문제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면서 여당에서 거듭 사과 의사를 내보였으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여론이 정리되지도 않았다. 그 사이 보수야당 측에서는 공정과 능력주의 담론으로 그에 호응하는 20대 남성을 지지층으로 흡수하며 이준석씨가 30대로서 당대표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로 인해 더더욱 20대 남성의 보수화 프레이밍은 강화되었다. 


 온갖 개별 현상이 파편처럼 쏟아져나오면서 내밀하고 심도있는 분석은 쉽게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그나마 오독의 희생양이 된다. 인상깊은 보도가 두개 있었는데, KBS에서는 50대를 대조군으로 삼아 "세대인식 집중조사"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 20대 남성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런 집단적인 인식을 형성하게 된 경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분석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50대와 20대를 비교하는 자료를 20대 남성의 편향성이나 특이성을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하였다. 


 이를 테면 아래 두 그래프이다. 중년층, 여성과 큰 인식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분명한 통계데이터로,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개인주의 및 신자유주의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을 두고 20대 남성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SNS에서 몇가지 경로로 공유되었다. 그러나 "20대 남성들이 보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다"라고 비난을 하려 한다면, 저소득층에서 다른 집단에 비하여 두드러지게 복지에 대한 요구와 나눔의 의지가 높은 것에 대해선 해명이 되어야 한다. 

 또한 20대 남성들의 관점에서 중년층이 복지를 위해 큰 정부를 필요로 한다거나, 내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라는 저런 응답에 대하여 "위선"이라고 느낀다. 중년 남성과 여성이 모두 압도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눈다고 응답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대한민국의 빈부격차는 이토록 심한가? 이처럼, 20대 남성을 비난하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는 두 그래프만 하더라도 그에 대하여 다양한 고찰이 가능하고, 또 그것이 강력하게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대 남성들에 대한 관점과 논의는 오리무중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사IN에서는 <‘이대남’과 ‘이대녀’, 재보궐 선거 결과가 갈린 이유>라는 꼭지에서 폭넓게 남성들의 인식을 분석했는데(글 하단에 기사 있음), 논쟁적인 지점들에 대한 날것에 가까운 청년층의 목소리를 표집했으나, 역시 그런 인식의 간극을 보여주고 단편적인 해석을 하는데 그쳤다. 페미니즘이나 혜화역 시위 등, 남성이 적개심을 느끼는 키워드에 대한 응답을 중심으로 남녀의 인식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은 과거 나무위키를 키워드 분석한 시사IN의 <분노한 남자들> 커버스토리의 방식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한 보도다. 


 특히 시사IN의 기사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아무도 내 말을 안 들어준다"라는 20대 남성의 인식을 중요한 특성으로 제시하면서 그것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려 하지 않고, 반례로서 20대 여성들이 얼마나 절박한 입장인가를 대비하고 있다. 기사를 쓴 시각 자체가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경계짓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더욱 가슴 아픈 부분이다.


 이처럼, 20대 남성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경계짓기의 희생양으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어째서 20대 남성은 정부와 여당에게서 등을 돌리고 보수화하였는가? 어째서 20대는 여성을 혐오하는 목소리에 동조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을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투표를 통한 심판이라는 방식을 통하여 실체화되지 비로소 그에 대해 살피고는 있지만  원인이 배제된 현상진단으로 도리어 그들을 경계 밖의 타인으로 단정짓고 배제하려는 시도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이대남"이라는 단어가 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 관찰해보면, 20대 남성을 특정한 집단으로 묶고 그들의 보수성이나 개인주의, 여성혐오적 특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문제제기하려는 양상이 자주 발견된다. 


 그러므로, 20대 남성들이 다른 집단과 어떻게 다른 인식체계를 형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드러나고 밝혀지고 있는 지금, 이들이 어떻게 사회 타 집단과 상호작용하면서 그들의 집단적 의사를 구현해냈는지를 탐구하는 일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이의 행동에는 자신의 당위가 있다. 그리고, 그런 당위를 가치판단하여 부정하거나 비난하려는 태도로는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메갈"이라는 기호에 대해서 씌워진 혐오가 부당하다면, 마찬가지로 "이대남"이라는 기호에 담겨진 혐오 역시 부당한 것 아닐까? 집단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경계 밖의 타인이 아닌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갖추어야, 이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1. 소외


“아무도 내 의견을 들어준다는 생각이 안 든다.”(남성, 20~24세, 학생)/ “믿고 있는 정당의 무시와 조롱… 그렇다고 돌아서기엔 반대편 정당은 ×××.”(남성 30~34세, 취업준비 중)/ “남자가 역차별에 대해 소리를 내면 부모님마저 남자가 쩨쩨하다는 소리를 한다. 내 편 없는 세상보다 외로운 것은 없다.”(남성 20~24세, 학생)


 시사IN의 기사에 제시된 남성들의 설문 응답이다. 한국 남성이 소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은 기사에서 중간타이틀로 따로 다룰 정도로 두드러진 현상이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한 기자 본인이 그렇듯, 여성이나 기성세대로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응답이기도 하다. 왜 인터넷에 똘똘 뭉쳐서 자기들 목소리를 마음껏 내며, 자기들끼리 술도 마시고 게임방도 갈 수 있는 20대 남성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일까? 


 20대 남성이 느끼는 소외감은 정확히는 "공론장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느끼는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계를 돌려 2016년~2017년 시점으로 돌아가면, 강남역 사건으로 인해 여성들의 일대 각성이 발생하고, 그에 힘입어 이미 몇 년 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축적된 여성들의 에너지가 메갈리아라는 이름과 함께 공론장에 쏟아져나오게 되면서 급격한 사회·제도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 조직화된 사회운동 수준으로 여성주의 실천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여느 사회운동이 그렇듯 운동 자체의 역동성을 중시하여 그에 내재된 모순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6년 당시 이미 "메갈리아"를 넘어서 "워마드"라는 극단주의 페미니스트 집단이 분리된 상황이었고, 그들이 저지르는 혐오범죄 역시 다양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보편주의적 페미니즘과 극단주의 페미니즘이 강남역 사건을 고리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면서, 극단주의를 시정해야 한다는 20대 남성들의 지적이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극단적인 사태가 모 여성 만화가에 얽힌 사건이다. 그녀는 2016년 논쟁의 복판에서 SNS를 통하여 잔뜩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언어폭력을 가했는데, 그로 인해 유명세를 얻으며 여성주의단체 곳곳에서 강연 연사로 초청되더니, 자신과 언어폭력을 나눈 남성들을 고소하고 JTBC 인터뷰에 응하여 그런 남성들을 일베로 지칭하였다. 이 JTBC 인터뷰는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극단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당한 비판들마저 일베라는 또 다른 극단주의 혐오집단, 남성들이 가장 혐오하는 집단으로 호명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극단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은 2021년 현재 여러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지만 남녀갈등이 격화되던 2016년 상황에서 이런 양상은 상당한 비극을 낳았다. 어느쪽의 혐오집단도 싫어하는 남성과 여성이 있어, 양쪽 공히 "일베"도 "워마드"도 비난을 했는데, "일베"를 비난하는 사람은 정상인 취급을 받았지만 "워마드"를 비난하는 사람은 일베 취급을 받았다. 이것이 당시 여성주의운동이 보여준 주된 흐름이었다. 시사IN 기사에서 인용한 혜화역 시위나 그 이전 게임사 시위에서도 "워마드" 류의 혐오는 넘쳐흘렀다. 그러나 공론장에서 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워마드가 가하는 혐오의 피해자는 남성들은, 그들이 당한 혐오와 폭력에 대한 해결책을 어느곳에서도 얻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흔한 반론은 "그런 혐오를 여성은 일상에서 당하고 산다."라는 것이지만 논점은 크게 다르다. 일상에서 겪는 개별 주체의 혐오폭력의 피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공론장에서 어떻게 펼쳐지느냐"의 문제이고, 여성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고 있지만 남성을 위한 노력은 2016년 이래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KBS 조사에서도 임동균 교수는 같은 지적을 한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남성의 응답 다수에서 공격성과 배타성을 감지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청년 남성들이 사회 지도층 또는 기득권층으로부터 냉소를 받아온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이 현상의 근거를 찾는다. 여러 가설이 있을 수 있음을 전제로 "최근 몇 년간 사회 주류층에서 여성 문제 해소에 주목하면서 일부 청년 남성들은 기득권층이 자신과 손잡아주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 그들과의 연대를 철회한 측면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임 교수는 진단했다.


청년 남성의 성향이 원래 이랬던 건 아니다. 임 교수는 "7~8년 전 자료를 비교해보면 청년 남성과 여성의 인식 차이가 이처럼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며 "최근 몇해 사이 젊은 남성들이 현실에서 표출하지 못하는 불만을 온라인 공간에서 터뜨리면서 필터 버블에 갇힌 경향이 크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즉, 실제 사회적 권력을 20대 남성과 여성 집단이 어떻게 점유하고 있느냐와 별개로, 그런 개인들이 공론장에서 어떻게 대우를 받았는가의 문제를 보았을 때 실제로 현격한 차이가 있고, 그것이 남성의 집단적 소외의식과 피해의식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공론장에서 남성집단을 대변할 이데올로그나 지식인의 부재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2016년 페미니즘 각성이 있을 당시 진중권 씨는 <나도 메갈리안이다>라는 기고문을 내고 남성집단의 이기심을 지속적으로 공격했다. 진보 논조의 신문들은 일제히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보도를 연이어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혐오에 함께 노출되고 있던 일부 남성집단들은 "X 잡고 반성하라"거나 "공부는 셀프다"라는 기성세대의 담론의식에 의하여 철저히 버림받는다. 그 격렬한 논쟁 속에서 혼란스러운 것은 20대 여성이고 남성이고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20대 남성들의 경우 자신들이 향유해본 적도 없는 권력을 누린 기성세대로부터 "알아서 반성하라"는 공격을 당한 것은, 여성과의 다툼을 넘어서 공동체 전체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진보 주류 언론이 총체적으로 여성주의에 호응하는 논조를 낸 것이 옳냐 그르냐의 문제와 별개로 이 일을 기화로 20대 남성은 미디어 공론장으로부터 멀어지고 자신들의 커뮤니티 내부의 담론에 강하게 이끌리게 되었다. 임동균 교수가 "필터 버블에 갇혔다."라고 지적한 것은, 20대 남성에게 신뢰할 수 있는 공론장으로서 매스미디어도, 그 공론장에서 여론을 중재할 롤모델 성격의 지식인이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2017년 대통령 선거가 있으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여성주의에 어필하는 캠페인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든 마땅히 수행했어야 할 성평등의 정책과제는 이후 대통령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는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강화했다. 


 그런 가운데, 커뮤니티에 집결한 남성들은 자기들 고유의 피해의식을 공유하며 외부와 다른 인식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군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여성과 기성세대는 사회적으로 강자에 속한 남성들이 가질 수 있는 피해의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고, 군대도 우습게 생각한다. 그런데 "신성한 병역의무"라는 국가주의가 지배하던 2000년대까지의 사회배경에서 자란 세대와 현 20대는 크게 다른 인간유형들일 뿐더러, 여성들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남성과 크게 다른 인식체계를 형성하듯 군대에서 1년 6개월간 인간성을 부정당하는 처우를 받으며 겪는 스트레스 남성들로 하여금 그로 인한 고유한 인식체계를 형성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남자는 군대, 여자는 임신"처럼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닌 일이다. 


 여성이 고통에 대하여 연대할 권리와 의무가 있듯, 남성도 고통에 대하여 연대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군대 문제를 비롯, 남성들은 자신들이 당하고 겪는 고통을 그들 집단 내부에서 광범위하게 교류하며 피해의식을 가중시켰다. 여기에 극단적 여성주의 집단의 조롱과 공격이 뒤따르면, 피해자의 서사는 충실히 완성된다. GS 편의점 이미지 논란들이나 2016년 스타벅스가 군인에게 무료 커피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자, 여성집단에서 공격하여 취소시킨 것이 대표적이 사례들이다. 


남성은 공격받아 마땅한 사회적 권력자 집단의 일원인가?  

 그렇다면 결국 질문은 이것으로 돌아온다. 남성들은 공격받아 마땅한, 진중권씨의 말마따나 "X 잡고 반성이나 해"야 마땅한 사회적 강자집단인가? 20대 남성으로 한정한다면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남성이 사회주류의 강자에 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취업과 승진에서 거듭 혜택을 충분히 누린 40~50대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20대 남성은 12년간의 학력경쟁으로 대학에 겨우 가거나 취업을 하거나 한 뒤 군대라는 단절을 감당하고 사회에 재편입되기 위하여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처지가 다수다. 다수의 남성이 다수의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쟁에 쫓기고 쪼들린 삶을 산다. 7~8년 전에는 여성과 남성의 인식 격차가 크지 않았는데 그 사이 취업시장이 남성에게 급격히 불리해진 것이 아니고서야 당시의 조사 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 아닌가. 


 20대 남성이 사회적 강자 집단으로서 남성에 속해있다는 사실만으로 기성세대가 져야 할 책임을 나누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비유하자면 미래에 고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니 알바인 지금 미리 세금을 떼어간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그것이 심한 경우에 "역차별"로 인식되는 것이고 말이다. 


 남성이 일상생활, 데이트, 성선택, 성관계 후의 입장 등 사적 영역에서 여성에 비하여 누리는 이점이 많으니 역차별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도 더러 있지만 그런 생물학적 선천적 차이를 보완하라고 제도가 있는 것이고, 20대 남성에게 그런 일상에서의 여성과의 다른 성역할로 인하여 생기는 편의를 책임지도록 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일방적인 주장으로 인내를 강요하는 것은 여성 스스로도 거부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긴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16년 여성주의 각성 이래 남성은 다양한 사회변화를 직면하고 있다. 둘째, 극단적 여성주의가 2016년 이전부터 축적되어 왔고, 정당한 사회변화와 뒤섞여 이들의 혐오와 폭력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했다. 셋째, 남성이 사회적 강자 집단의 일원이므로 사회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논리 속에 부당한 혐오와 폭력에 대한 수용도 강제되었다. 넷째,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의 혐오와 공론장에서의 수용 압력에 의해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의 대변자가 부재하다는 상실감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남성 집단을 강화하여 그 속에서 자신들의 인식체계를 강화하게 되었다. 


- 2편, <무능>으로 이어집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15511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69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