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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1. 2021

이대남에 대하여#3

20대 남성을 관통하는 세가지 테제 (3-1) 공정 혹은 공작

중앙일보

 교육부의 대입제도 개편안 발표를 하루 앞둔 가운데 정치권과 정부, 진보·보수의 주장이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당 의원들이 보수 성향 시민단체와 비슷한 주장을 내놓는가 하면, 진보 성향 시민단체가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정시 확대, 수시(학종) 축소'가 있다. 지난달 30일 교육부 박춘란 차관이 10여년간의 수시모집 확대 기조를 깨고 각 대학에 정시 확대를 요청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보수성향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지난 9일 청와대 앞에서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정시 확대 방향에 동의한다"고 했다. 앞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영향력을 50%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더불어민주당 더미래연구소 보고서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같은 날 진보성향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실천교육교사모임 등은 정시 확대에 반대하는 집회를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해왔던 단체들이 교육부와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갈등의 핵심은 입시 '공정성'이다. 특히 수능의 공정성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나타나면서 정시 확대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출처: 중앙일보] [대입개편안 D-1] '공정성' 놓고 결론은 왜 제각각일까? 2018.04.10




1. 문재인 정부에서 공정 담론은 어떻게 흘러왔는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종 불공정론"이 확산되었다. 언론은 늘 그렇듯 여론조사를 총동원해 "빈부격차로 스펙 경쟁에서 불공정을 만드는 학종은 불공정한 제도이며, 객관적으로 학생의 지식을 평가할 수 있는 수능이 공정한 제도다."라는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다. 그에 문재인 정부는 민의를 수렴하여, 1년간의 학생-학부모-교육전문가 숙의 체제를 마련하여, 2018년에 그에 대한 답변을 내기로 하였다. 2018년 당시의 결론은, 수능과 학종의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답보 수준의 협의종료였다.


 10년 가까이 일반고에서 진학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해 온 나로선 2017년부터 시작된 수능 공정론이 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정책방향이 정 반대로 뒤집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벽두에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장은 "어륀지" 논란과 함께, 수능 중심 교육을 극복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일성을 발했다. 그에 따라 교육의 개별화와 수월성을 강조하는 교육개혁이 시작되어 자사고를 우수죽순 만들고, 입학사정관제를 전면 확대했다.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권 시기 초중고 모든 학교에 강제 시행되어 학교 및 학교장의 평가에 반영하여 심각한 병폐를 빚은 학력평가를 완화하고, 입학사정관제를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정비하며, "알파고 쇼크"와 세월호 참사라는 두가지 시대변화를 맞아 학생중심 교육으로의 전환을 꾀한다.

 

 이명박 정권에서 학력평가를 전면 확대한 것은 심각한 병폐를 낳긴 하였으나 학교와 지역별로 심각한 교육력의 차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만큼, 제도의 의의가 없다 말할 수 없다. 당대의 교육관료들의 인식 체계에서 학교의 교육력이란 곧 학력평가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하는 것이고, 그것이 이루어져야 입학사정관제가 여러 학교 학생들의 학생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당락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문재인 정권에서도 무난하게 지속될 전망이었다. 수능 전 영역을 절대평가로 시행하기로 논의가 지속되어, 실제로 국영수 3개의 기초교과 중 영어는 먼저 절대평가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당시 교육의 수월성과 학력경쟁을 강조하던 교육학자들은 모두 "4차 산업혁명 교육"에 매달려, 2015 개정교육과정의 핵심인 역량중심, 과정중심 교육과정을 학교에 요구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터진 "수능 공정론"이 아니었다면, 원래 교육부의 로드맵대로 국영수 모두 절대평가로 바뀌어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벌어진 교육의 논쟁들은 모두 그 배경을 의심할만한 주장들로 가득했다. 그 해 겨울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캐슬>은 교육을 향한 자본의 열망을 보여주며 "교육지옥" 대한민국의 폐부를 찌르는듯 했지만, 수능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학종 코디네이터를 툴러싼 이전투구만 보여주다가 정작 일개 교사의 시험지 유출이라는 허망한 결론으로 학종비판론을 마무리한다. 강남 8학군에 편입하려는 이유도, 강남 8학군에서 생존하는 방법도 결국엔 수능 경쟁에서의 타 학군에의 우위라는 것을 완전히 각본에서 배제한 채로. 게다가 이듬해인 2019년에는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 논란으로 "부모찬스"에 불을 지폈는데, 그것은 2009년 입학사정관제 초기에 학교 현장에서 무수히 많은 우려와 논란을 낳았던 "스펙 뻥튀기"가 얼마나 만연해있었는지를 의도적으로 은폐한 상태에서 10년이 지난 현재의 관점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의 부모 변인에 대한 지적에 머물렀으나, 결정적으로 민심이반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여 무려 주요대학 입시전형에서 수능정시 비율 10%를 늘리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논쟁이 실제로 공정성과는 멀게 진행되어왔다는 점이다. 당장 스카이캐슬은 수능 문제를 은폐함으로써 우리 교육 모순을 학종에 몰빵해 묘사한다.(이점은 최근의 <펜트하우스>에서도 그대로 답습된다.) 조국 전 장관 자녀 문제는 수사와 기소 자체의 불공정성이 심각하다. 그리고 나경원 전 의원의 자녀 문제나, 국정감사를 통해 드러난 명문대 교직원 자녀들의 입시 비리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경원 전 의원 자녀의 문제는 입시비리의 복마전인 음대 입시인데다가, 학점 변경에서도 문제가 포착되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조국 전 장관 일가의 문제가 검찰이 펼친 불공정 게임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대선을 1년 앞두며 정치적 격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야당 당대표 선거를 중심으로 "공정" 논의가 또 다시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역시 공정과는 거리가 먼 형태로.  

  즉,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공정 담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배경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종의 파워게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그 위에 20대 남성의 집단의식이 형성되어 있고, 그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방식도 상당히 정치적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극닥적인 관점에서는 공정이 아니라 "공작"으로 지칭할 수도 있다. 이를 테면, 2017년 느닷없이 소환된 “수능 공정론”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여러 입시비리를 저지른 집단이 문재인 정권 시기에 그런 입시비리를 더는 저지를 수 없다는 점을 파악하고, 학종을 축소하여 자신들의 교육력의 우위를 지속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는가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굳이 이런 음모론적인 해석이 아니더라도 보수정권 9년간 지속적으로 수능교육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유지되어 왔고, 특히 4차산업혁명 환경에서는 수능 교육의 폐해가 너무도 빤한 것임에도 공정성 문제를 고리로 교육의 퇴행을 초래한 것, 그 과정에서 언론과 보수세력이 상당한 에너지를 투자했다는 것에 대해선 최소한 설명은 필요하다. 한 가족을 타겟으로 한 권력집단의 폭거로 인하여 정책퇴행을 용납하기엔, 교육정책은 너무나 중차대한 문제다.


 그러나 20대 남성을 중심으로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를 논의할 때 이러한 사후평가 성격의 거시적 논의는 완벽한 해석이 되지 못한다. 개별 주체가 모두 정치적인 의도에 동의하고 그러한 역동에 동참하는 것도 아니며, 교육 문제에 있어서 한국인의 절대다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공정담론의 정치적 배경과 별개로, 20대 남성이 감각하는 현실에서 공정의 문제가 어떻게 발견되고 인식되는지, 왜 20대에서 남성과 여성의 정치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새로이 논의해야 한다.


2. 20대 남성에 부여된 권력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남성권력을 비판하는 지점은 참으로 광범위하다. 가장 기본적으로 남성중심의 사회질서 및 헤게모니의 수혜자라는 점이 존재한다. 남성은 머리를 감는데 5분씩 소비하지 않는다. 드라이를 하는데 30분을 소비하지도 않는다. 화장을 하는데 또 30분을 소비하지도 않는다. 이런 일상의 불편함에 대하여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하기에는, "꾸밈노동"을 강제하는 사회적 억압은 실제로 방대하다. 또한 일상적인 "시선강간"부터 성폭력의 위협 역시 남성이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수준으로 여성은 늘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하여, "제도적인 보완점은 무엇인가?"라고 한다면 마땅한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가사노동을 하는 엄마와 딸, 가사노동을 전혀 하지 않고 밥을 받아먹는 아빠와 아들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대하여 여성주의자들은 양측의 인식개선과 전면적 실천을 넘어선 답변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제도란 권력의 힘을 빌어 어떤 행위를 거부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길을 걷다가 매력적인 여성을 발견하고 눈길이 가는 것을 "시선강간"이라 지칭하여 부정한다 한들, 그것을 금지할 제도적인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리도 없다.


 즉,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남성권력의 다수는 사회문화적인 문제로, 제도적 보완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더욱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진입하지 못하는 연령대인 20대 남성들에겐 거의 모든 것이 그렇다. 언어폭력, 데이트폭력이나 성폭력 등 엄연한 불법행위, 다시 말하여 제도적으로 보완된 문제를 모든 남성을 예비혐의자로 대상화하는 논쟁적인 문제를 소거하고 나면, 20대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은 실질적으로 전무하다.


 물론 그렇다고 20대 남성이 남성중심의 사회질서에서 수혜자라는 점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남성권력이 축적한 인센티브 요인이 너무나 많다. 여성을 희생자로 한 포르노 등 성산업의 수혜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제도적으로 용인된 성착취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남성은 권력의 수혜자들이다. 산업재해의 피해자 대부분이 남성이긴 하지만, 마땅히 산업재해는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하며, 사회제도가 미치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다. 공정하게 산업재해를 소거하고 나면 노동효율성을 추구하는 많은 고용주들은 남성을 선호하여, 그로 인해 남성들이 여성에 비하여 더 많은 노동의 기회, 그로 인해 더 큰 경제권을 얻고 있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20대 남성은 본인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보다는 부여받은 권력이 많으며 여성에 비하여 더 큰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다만 그들 다수는 제도적인 보완이 어려운 사회문화적 맥락이나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로부터 야기된다. 20대 남성이 요구한 적이 딱히 없고, 선택할 수도 없었으며, 개인의 인식 및 실천 수준에서 개선이 어려운 문제들이다.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사회가 마련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속에서는 남성 기득권을 향유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다양한 억압을 20대 남성들이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체험하고 있다는 문제가 남는다.


3. 제도적 보완이 초래하는 것  

 한국사회는 세계최악의 교육열이 불러온 극한의 경쟁사회다. 그중 20대 10년간은 남녀구분 없이 생애 모든 기간을 지옥같은 경쟁에서 겨우 살아남아 놓고서도 인생 최악의 좌절과 절망을 맛보는 시기다. 한국의 극한경쟁의 핵심인 교육 영역에서 질문을 하자면, 한국의 교육경쟁에 성차별은 존재하는가? 교육 없이는 계층상승이 불가능한 한국 사회에서 남성은 교육경쟁을 함에 있어서 기존의 남성 중심 사회질서의 수혜자인가?


 한국의 교육열은 성차별의 여지를 모두 제거했다. 당장 초등학교 교원문제만 해도 공정한 교육경쟁을 그대로 타고 타고 온 결과 초등교원의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며 오히려 남성은 궂은 일을 떠맡는 소수자에 불과하다. 2017년 외무고시의 여성합격자 비율이 70%였다. 5급 공무원 공채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은 41.4%, 사법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은 36.7%, 7급 공무원과 9급 공무원 여성 합격 비율도 각각 41.7%, 57.6%였다. 기업의 남성선호라는 사적영역, 산업재해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남아있는 숙제"인 부분을 제외하고 "공정한 경쟁"이 실현되는 부분에선 대부분 여성이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다. 도리어 남성은 군대로 인한 학력단절을 강요받으면서도, 이러한 공정경쟁이 실현되는 공공채용 영역에서 군가산점이 위헌판결이 나면서 그 피해를 보상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이것이 군가산점 폐지에 대하여 남성이 실제로 분노하는 지점이다.


 군가산점 폐지처럼, 대다수의 20대 남성이 공정경쟁이 실현되는 제도적 영역에서 남성권력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남성기득권을 보완하고자 하는 제도권력의 역차별은 그대로 감당한다. 20대 남성들이 생애 전 과정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권력을 행사해본 경험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의 남성권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착취를 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최근의 강력한 성폭력 대책의 적용은 똑같이 받는다. 남성기득권을 대상으로 한 "한남충" 담론으로 인하여 실제 고통을 당하는 것은 20대 남성들이다. 이러한 부당함에 대하여 항변하려 해도, 남성 기득권을 견제하고자 하는 사회적, 제도적 노력은 그러한 20대 남성들의 여론을 신중히 반영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20대 남성들에겐 불공정의 문제로 인식된다. 대표적으로 성폭력 범죄의 경우, 여성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대칭적 폭력인 만큼 강력한 제도적 처벌이 최근의 조류다. 그런데 성범죄가 발생부터 후과까지 전부가 비대칭적 폭력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극한 공포를 주듯, 그것을 저지른 범죄자가 된다는 공포와 경계심 역시 남성에게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음주운전, 아동학대와 같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여러가지 범죄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범죄는 대다수의 남성에게 당연히 엄격한 금계이며 치욕적 낙인이다. 성폭력 범죄가 비대칭적인 만큼, 성폭력 무고의 피해 역시 비대칭적으로 남성을 향한다. 2010년대를 뜨겁게 달군 연예인 성범죄들 중 여러건이 무고로 판명났다. 남성들은 일상적으로 성범죄 무고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감당한다. 허황된 주장이라 하겠지만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무고죄 발생 건수는 모두 3617건이다. 하루에 10명의 무고 피해자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 처벌은 극히 경미한데, 무고는 성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성을 대상으로 평생동안 지속될 수 있는 주홍글씨를 남길 수 있는 비대칭적 폭력이고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진술에 우선적으로 의존하는 성범죄 조사의 형식 및 우선 조사가 시작되면 즉시 직장이나 가족에게 통지되어, 최종판결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원리가 부정되는 한계를 무고죄는 품고 있다.


4. "윤지선 논문"이 말해주는 것들

 이러한 기성세대 남성권력으로 인하여 20대 남성이 감내하는 역차별을 거의 모두 보여주고 있는 것이 여성주의 철학자 윤지선씨가 터트린 <‘관음충’의 발생학> 논문 사태다. 이것이 심각한 것은,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고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수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제도는 늘 불완전하다. 산업재해나 시선강간, 데이트폭력의 문제처럼 항상 제도의 사각은 존재하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열린 상태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철학지성계는 논문의 기본 요건조차 충촉하지 못한, 더욱이 심각히 연구윤리를 위반한 윤지선의 논문에 대한 피해당사자의 정당한 항변을 묵살함으로써, 제도적 미비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할 책무를 저버렸고 그로 인하여 결정적이고 심각하게 20대 남성의 공정 담론에 불을 지폈다.


 사건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윤지선씨는 한국사회가 남성 기득권 카르텔 구조로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관음의 폭력을 아동기부터 체득하여 그 경과가 벌레의 불완전변태와 유사해 "한남유충", "한남충", "관음충"과 같은 명명이 타당화될 수 있으며, 특히 이런 언어전술이 남성 중심사회에서 소수자 여성들의 정당한 언어전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논문에서 다수의 인용이 부적절하고 불완전하게 이루어졌고 일부는 참고문헌과 각주를 부풀리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었다. 또한 "보겸"이라는 유투버가 "보이루"라는 용어를 "보지+하이루"라는 의미로 창안해 사용하였다는 명백한 허위사실이 논문에 담겨있었다.


 보겸의 보이루가 "보지+하이루"라는 의미라는 허위주장이 2019년 이전에 이미 여성주의 일각에서 제기되었고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이미 종결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윤지선은 기본적인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고 이를 논문에 담아 심각하게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였고, 당사자인 보겸이 이를 시정할 것을 요구하고 윤지선이 재직하고 있던 가톨릭대학교, 논문을 수록한 철학연구회, 한국연구재단에 두루 항의하였지만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의 소지가 있음에도 논문철회나 저자 윤지선과 논문을 통과시킨 심사이원들의 책임있는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겸이 몇개월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그의 유투브 영상을 수십만명의 시청하는 일이 있고 나서야 논문 내용을 일부 수정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연구윤리에 대한 조사가 시행된다.


 윤지선의 논문을 공정의 문제로 검토한다면,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논문이 심사절차를 통과하여 학자의 연구성과로 인정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게다가 그 내용은 한국남성 및 아동을 벌레로 지칭하는 것이 사회적 맥락에서 정당하다는 혐오적 메세지다. 한국남성이 여성혐오범죄에 일상적으로 침윤되어 있다고 윤지선은 주장하지만 한국은 포르노 산업과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다. 미국이나 일본 등 포르노와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에 비하여 성착취가 만연하다고 판단할 근거도 빈약하고, 몰카 등 성착취 컨텐츠에 아동이 얼마나 노출되고, 그로 인하여 어떤 성개념을 학습하는지에 대한 입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합리성과 공정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나 학술연구를 빙자한 윤지선의 혐오폭력은 철학연구회, 한국연구재단, 여성주의 집단, 일부 언론의 지지를 받았고, 당연히 지탄받을만한 남성권력을 갖고 있지 못한 20대 남성 다수의 분노를 자극했다.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여성처럼 남성 역시 피해에 공감하고, 집단의식과 연대의식을 발현한다. 공적 제도로 보호되지 못하는 사적영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윤지선의 논문은 보겸 개인에 대한 심각한 폭력임과 동시에 아동을 포함한 한국남성 전반을 "한남충"이라는 혐오언어로 지칭하며, 그것을 학술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철학지성계의 동의를 얻어낸 사건이다.


 실제로 한남충이라는 혐오언어에 대한 여성주의 및 그 지지자들의 입장은 줄곧 이와 같았다. 남성권력이 실제 어떤 성격의 것인지에 대한 고찰과 검증은 없고, 남성중심 사회질서의 일원이란 이유만으로 "유충"인 아동에게까지 혐오가 쏟아졌다. 이러한 행태는 미러링이라는 전략으로 2016년 이래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저항의 수단일 수 있어도, 다수의 20대 남성은 혐오언어 및 언어폭력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에 심각한 정서적 손실을 경험한다.


 극한 학력경쟁을 감당하며 대학의 문을 겨우 통과하고, 군대에서 심각한 폭력과 학력단절을 경험하고, 그를 극복해가며 생존을 위한 취업경쟁에 다시 뛰어들 즈음에 난데없이 기득권이 되어 한남충이라는 혐오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현실은, 과연 공정한 것인가?


5. 공정 담론과 정치권력

 이처럼 근 5년간의 한국사회에서의 공정담론은 남성이 경험한 불공정의 문제와 상당히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정치영역에서 공정 담론은 주로 권력게임의 룰과 관련되어 형성되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교체로 인한 기득권 카르텔의 저항의 전략으로 볼 수도 있고, 민주당 정권이 내세운 공정사회가 실제로는 이율배반적인 사기극이었다는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 수면 아래에서는 남성기득권사회를 무너트리기 위한 여성계의 주체적인 노력이 다양한 성과를 거두면서 주로 남성집단 내의 약자인 20대 이하 연령층이 주로 피해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불공정의 문제를 20대 남성이 경험했다는 경과가 존재한다.


 양자가 개별적으로 진행되어 마땅한 접점이 없었으나, 그것이 하나의 맥락에서 만나 폭발한 것이 "이준석 현상"이다. 이준석은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만 진다면 언제든 계층상승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학력엘리트의 논리를 대변하여 공정담론을 자기의 정책기조로 채택하였고, 그와 동시에 20대 남성이 겪은 불공정으로 인한 피해심리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제시하여 이들을 정치세력화하였다. 이준석이 20대 남성을 정치적 우군으로 조직화하는 과정은 거꾸로 여성에 대한 혐오정서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캠페인이 지속될 순 없다. 그러나 권력카르텔에 근접한 학력엘리트 출신의 보수정당 정치인이 펴는 공정담론은, 또다른 심각한, 심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그것은 실제 정치공작에 가까운 기획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 글이 길어진 관계로 둘로 나눠, 4편 <공정경쟁과 신자유주의>로 이어갑니다. 그리고...안산 선수 논란에 대해서도 5편에서 다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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