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긴 고민, 아이 기르기
취업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우리는 몇 년의 시간을 의식적으로 투자해야 할까? 대학에 입학해 전공을 마치고 입사시험 내지는 선발고사를 합격하는 타임라인이 “일반적”인 합의선이라고 가정한다면, 짧으면 5년 길면 7,8년 정도.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라고 해도 이보다는 길게 목표치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합격! 운이 좋게도 괜찮은 직장을 얻은 사람은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꽤 힘겨운 고민을 끝낸 셈이다. 10대, 20대 정도를 그야말로 휩쓸리듯 살아야 하는 한국식 템포에서 꽃다운 젊음을 한껏 낭비한 다음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여유는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길고 시간을 쪼개 적당히 운동을 하고 충분히 독서를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면 그 젊음을 조금 더 뽐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스텝, 만약에 그 길을 택한다면, 결혼 그리고 출산은 삶을 송두리째 바꾼다. 수입과 지출의 혁명적 변화, 통근과 생활패턴의 파괴, 두배 세배로 무거워지는 각자의 삶의 무게. 겨우 취업 문제 해결했고 겨우 집 한칸 마련하고 대출을 잔뜩 받았더니, 아이가 생겼다. 머리칼이 빠지고, 근육은 성기어지기 시작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조차 점차 제한되는데- 아이는 커갈수록 고민을 던진다.
이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한다는 말인가.
대학 시절 큰 가르침을 주셨던 한 교수님은 페이스북에 아이 교육에 대한 소고를 종종 올리시는데 그 중 한가지 유별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아이와 스마트폰에 대한 이야기다.
부부가 서로 연구활동에 바쁘다 보니 사내아이 둘을 기르는 것이 만만치가 않으셨다. 게다가 아무리 당신들께서 교육학 저서를 여럿 써냈다 한들 한 생명을 (그것도 둘이나)기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였던 것이다. 별 수 있나. 베이비시터를 들일 여력도 없고 가정교사를 들이기엔 너무 어린 나이니 자연스럽게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곤 하셨단다. 결과는?
큰 아이는 비교적 나이가 들어있던 터라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둘째 아이는 제법 관심을 끄는 방향으로 자랐다고 한다. 꽤 나이를 먹어서도 언어표현이 적었고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것은 잘 해냈지만 어휘 습득이 늦었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지시를 하고 그것의 이름을 물으면 답하는 일이 더뎠다. 아이가 제법 나이를 먹고서 그런 행동은 차츰 나아졌지만 그 교수님은 초등학생이 된 두 아들에게 당분간은 스마트폰을 사줄 예정이 없으시다고.(별로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 그 교수님께서는 카카오톡을 쓰지 않으신다. 스마트폰 자체를 경계하시는 편이다.)
이 에피소드는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애가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는 공공장소에 가면 거의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우리 손 안에 스마트폰이 있고, 그를 통해 로보카 폴리와 상어가족, 조금 클래식한 아이라면 뽀로로를,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데 그것을 왜 아이를 달래는데 쓰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두 아이의 행동변화를 꽤 면밀히 바라보고 그것에서 의문을 품고, 그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해결방침을 추출해낸, 아이 교육에 대한 깊은 고민의 모습은 아이를 가진 사람이라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배워야 할 것 같다. 교육의 문제로 우리 대부분은, 오랫동안 상처받지 않았던가?
이 글은 아직 아이를 낳아본 적 없는 30대의 남성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부모와 상담하며 느낀 고민들을, 최근의 교육의 변화의 흐름 속을 다채롭게 경험한 이야기다. 대체로 이야기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분들의 고민을 덜어드리려는 노력 속에서 작성되겠지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도움은 될 수 있는 이야기다. 주된 이야기거리는 학습자의 자발성의 형성과 학습주권의 행사와 관련되어 있다.
이어지는 글에서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만들기의 구체적인 방안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