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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Nov 25. 2019

아이돌 산업 망국론

자본주의, 아동노동, 마이클잭슨, 구하라와 설리 그리고 수많은 소년소녀들

0. 들어가며


 아이돌 산업은 망국적 산업이다. 젊은부터 어린까지의 여성들이 최대한과 최소한 사이를 줄타기하며 자신의 신체를 노출해 흔드는 것으로 자본을 생산한다. 몸과 외모, 젊음을 팔아 돈을 번다. 포르노와 다를 것은 무엇인가? 예술성? 120BPM에 담긴 멜로디의 화려함? 아이돌 가수가 파는 것은 자신의 육체이고 그를 통해 구매자들이 얻는 것은 이성에 대한 판타지의 강화다. 포르노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덜 벗고 더 벗음?


 아이돌이 아이돌로서 상품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 시작이 미성년자여야만 하고, 데뷔 이전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 고강도의 연습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초중학교생인 연습생에게 댄스와 가창 훈련 그리고 스타일링을 위한 기획사의 천문학적 자본이 투여되는데, 전체 산업규모는 수조원에 이른다. 인적자원 개인 개인에게 투자되는 수조원의 자본. 한 산업 구조 안에 최저임금과 마이너스 이익률 그리고 수백억의 이익창출체가 공존한다. 인간이 도구화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구조 아닌가?


 청소년인권의 관점에서도, 여성인권의 관점에서도, 노동인권의 관점에서도, 아이돌 산업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즉각 시행이 필요한 조치로는 아이돌에 대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미성년 아이돌 노동계약 표준화,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화 등이다. 즉각적으로.


1. 화폐의 탄생과 인간의 욕망


 <화폐, 마법의 사중주>란 책이 있다. 좋은 인문교양서를 여럿 저술한 고병권 씨의 저작이다. 이 책은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화폐자본주의의 탄생과 역사적 발자취를 따르며 어떻게 "물질"이 아닌 "개념"이 "부"로 인식되고, 돈이 돈이 낳는 구조를 만들어냈는지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현대적 화폐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한 인간이 평생 가질 수 있는 부에는 한계가 상당히 명확했다. 가장 대표적 물질화폐를 예로 들어보자. 금이 많으면 창고가 커져야 한다. 창고가 크면 경비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경비인력을 관리할 관리인을 확충해야 하고, 외적으로부터 방비를 해야 하니 군대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그나마 썩지도 고갈되지도 않는 금이니까 가능한 것이고, 쌀이나 비단이라면 어떨까? 관리의 부담에 기한이 추가된다. 물질화폐는 이러한 관리의 비용과 제약에 따라서 한 인간이 보유할 수 있는 부를 제한했다.


 그러나 신용화폐는 부의 제한선을 소멸시켰다. 차용증, 신용장, 어음, 위임장 등이 복잡하게 얽혀 유럽 여러 나라를 돌고 돌며 신용 화폐의 존재 가능성을 예감한 17~18세기의 유럽 은행가와 자본가들은, 마침내 물질이 아닌 물질 지급에 대한 약정, 즉 신용만으로도 충분히 "거래"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이 책의 알맹이를 짧게 요약하여 유감이다. 꼭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화폐가 물질에서 벗어났으니, 무한한 부의 축적이 가능하다! 그로 인해 근대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다. 신용화폐는 식민지 그리고 제국주의와 만나 상호작용하며 한 개인의 부를 지구적 규모로 부풀린다. 무한한 부의 가능성이 눈 앞의 실체로 다가오자, 유럽인들은 폭주한다. 우리에게 튤립 파동으로 잘 알려진 최초의 사례가 발발했고, 증권시장의 붕괴를 목도하고서도 유럽인들은 반성하지 못하고 수차례 반복한다. 이제 부에 대한 무한한 욕망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개인이 평생 써도 가질 수 없는 부가 축적되는 것을, 매일 보고 있기 때문이다.


2. 자본권력의 확장

 

 이렇게 물질에서 화폐로 새 옷을 갈아입고, 그 덕분에 무한한 힘을 얻은 자본권력은 유럽의 왕실들과 협력하며 사회 전 분야에 속속 손을 뻗친다. 이 과정에 이번엔 계몽주의와 이성의 정립이 자본과 손을 잡는다. "무지몽매"한 국민들에게 "규율"이 건설적이고 모범적인 사회풍속으로 자리잡는다. 물질화폐의 세상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환 사이클에 따라서 생산물이 결정되고, 그로 인해 일상의 체계성은 계절에 따라 통제되었다. 그러나 신용화폐의 세계에선 시간 자체가 자본으로 간주되었다. 18세기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분 초 단위로 통제했다. 교복을 입혀 기숙사에 입학시키고, 자는 시간, 자는 자세를 가르쳤다. 군대에선 군인들의 걷는법, 총 집는 법, 대열 이동하는 법도 구체적인 규율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훈련된 군인들은 철저한 기계가 되어 전쟁에서 승리했다. 훈련된 학생들은, 훌륭한 노동인력으로 간주되었다. 이성이 자본의 무한한 욕망에 알리바이를 제공한 근대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당시의 프랑스 앙제 시의 한 제조소 관리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제조소에서는 근로자가 10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나태와 그 결과로 인한 가난에 빠지지 않을 생활수단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대량산업 사회의 아동노동자는 탄생했다. 생산수단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빠르게 변화되고, 아동은 가내수공업, 농업에서 부모의 보호 아래 노동에 참여하던 관습에서 벗어나 공장에 갇혀 하루 종일 물레를 돌렸다. 시시각각, 일분일초가 자본창출의 기회임을 잘 알고 있는 자본가들은 아이가 근육에 힘을 줄 수 있는 나이만 되면 공장에 집어넣고 일을 시켰다. 그리고 그 질서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된다. 82년생 김지영의 엄마 세대들은 소녀 시절 공장에서 미싱기를 돌렸고, 82년생들은 스무살부터, 92년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02년생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에 뛰어든다. 최저임금으로 마음껏 부당노동행위를 해도 찍 소리 못하는 어린 아이들로 점주들은 아르바이트생의 나이를 낮추고 낮춘다.


3. 그리고 아이돌, 산업


 글 서두에 짚었듯이 아이돌은 아동을 착취하는 대량산업이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중 하나인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커리어의 밑바탕이 된 잭슨 파이브 시절을 이렇게 회고한다.


"너무 일찍 데뷔해 학교도 못가고 친구도 없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

"나이 들어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성형을 해야 했다"

그림도 존잘

  마이클 잭슨과 그 형제들을 음악가로 키우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벨트와 구둣발을 이용한 구타를 서슴치 않았다. 잭슨파이브 시절 최소한 500번의 공연에, 거기엔 스트립클럽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버지의 음악교육 자체는 트집 잡을 수 없었고, 덕분에 마이클 잭슨의 천재성은 빛을 발할 수 있으나 과연 그의 빼앗긴 유년시절이 그의 성공으로 보상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판단하고 그에 맞추어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한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노동조건이라는 점에서 과연 어린 시절의 마이클 잭슨은 공장 속 아동노동자와 다를 것이 있을까?


 아이돌 산업을 지배하는 자본가(음반제작자)와, 아이돌을 희망하는 지망생 양쪽 모두에게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배태된 잘못된 인식과 현상들이 여럿 발견된다. 고작 초중등생인 지망생들은 스스로가 개인 산업체인지 노동자인지 명확한 인식이 없다.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입장이 아니고 투자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회사의 결정에 반발할 권리에 대한 판단조차 어렵다. 그러나 기획사에서 지망생들에게 투자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고, 그렇게 창출된 수익에 대한 1차적 배분권은 회사가 규정한다. 회사에 계약된 지망생들은 어디까지나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아이돌 직군의 특수성 탓에 그런 인식이 우리나라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또한 지망생들은 그들이 바라보는 아이돌 산업의 상당 부분이 자본주의가 과잉투자된 거대산업이라는 점을 바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소녀시대든 방탄소년단이든 빅뱅이든, 그들의 성공을 위해 투자된 자본은 얼마일까? 그리고 그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 없이는 불가능한 화려한 삶에 이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자본 없이 소녀시대, 방탄소년단, 빅뱅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신곡을 만들고, 프로듀싱을 하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 연습생 수준의 투자만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그들이 여전히 소녀시대, 방탄소년단, 빅뱅일 수 있을까? 지망생들이 바라보는 아이돌스타의 성공은 그들의 오롯한 성취인가 자본의 게임인가.


 반대쪽에서 음반제작자(자본가)들에게 아이돌 지망생들은 그들 산업의 원재료이고, 자신들은 자본투입은 통한 가치창출의 주체이다. 산업의 주체로서 지망생에게 자본을 투자한 뒤에는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하니 언제든 부당노동행위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그런 케이스는 아이돌산업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발견되고 있다. god가 연습생이었던 당시의 눈물겨운 일화가 단지 그 시절 일일까. 오히려 자본가 집단의 부당노동행위는 아이돌산업이 역대 최대규모로 발전한 지금, 역대 최대규모의 사기극으로 진화하고 발전해왔다. 바로 CJ의 오디션 프로그램 대규모 조작사태다.

 화폐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무한경쟁을 시작했고, 자본권력은 다른 거대권력과 결탁하고 연대해 제국주의부터 글로벌금융사기까지, 이 세상의 규범을 흔드는 짓을 서슴없이 저질러왔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아이돌 산업이 있다. 열살 어린 아이가 핫팬츠를 입고 연습생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허리를 흔드는. 열다섯 소녀가 가슴골을 보이기 위해 보정속옷을 입어야 하는. 열여덟 소년이 브레이크 댄스를 추다가 디스크에 걸리고 마는 세상. 고사리 손으로 독성 용액에 손을 담궈 물레를 돌리던 초창기 대량산업시대의 공장 속 아동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 아이돌 지망생 스스로의 욕망이 개입되었다는 단 하나의 차이 빼고는.


4. 그리고 설리, 그리고 구하라, 그리고, 그리고


 왜 성찰하지 않는 것일까. 아이돌 산업은 사라져야 한다. 소년 소녀가 음악적 재능을 대중 앞에서 소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하며,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하며 인생의 이야기를 숙성시키고, 그로써 정말로 자신만의 고유한 예술로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기까지는 자본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떨어져 나와, 평생 부풀어져 있던 욕망이 꺼진 공간의 침묵과 어둠에 갇혀있는 소녀들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공평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고작 열일고여덟에 데뷔해 수억의 연봉과 대중의 넘치는 사랑을 받다가, 자신의 성공과 행복 조차도 아이돌산업의 또다른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다른 "상품"들이 채널과 무대를 장악하고 나이를 먹고 아이돌로서 가치가 소실된 뒤의 삶을 살게 되었을 때의 공포에 대하여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잠시 주었던 사랑의 절반만이라도 잠시 나누었다면 설리의 죽음, 구하라의 죽음, 그리고 다른 죽음들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기획사의 매니지먼트라는 보호막이 약화되거나 사라졌을 때 연예인들이 얼마나 쉽게 대중의 질시와 증오를 접하고 있는지는 이미 수차례 악플 사건으로 잘 알려진 바다. 그리고 설리와 구하라 두 사람 모두에게, 과거의 비극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반복되어 그들을 덥쳤다. 왜 미리 예감하고, 막지 못한 것일까.


 아이돌산업은 사라져야 한다. 청소년들이 음악적 재능을 표현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을 기회는, 굳이 아이돌이라는 규격화된 상품이 아니어도 충분히 많다. 악동뮤지션이라는 사례가 있잖은가. 청소년들이 정식 연예인으로 활동할 경우에도 학습권 등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연간 TV 출연시간을 줄여야 하고, 수명이 짧은 대중연예인으로서의 활동이 끝나더라도 그들이 행복한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닦아줘야 할 터인데, 어째서 거기에 들어가야 할 자본조차도 아이들의 의상을 짧게 만드는데 투여되고 있는 것일까.


 자본의 게임이 아닌 고유의 가치로서 예술이 대중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음원 사재기 처럼 눈에 보이는 게임 뿐만 아니라 PD의 영향력, 프로듀서의 영향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인 아이돌들이 더는 태어나서도 희생되어서도 안된다. TV 전파는 공공재다. 편성권과 섭외권을 쥔 몇몇 권력자들이 전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공의 가치를 향상시키는 것을 첫째로 고려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 가치에는 마땅히 출연자들의 건강한 삶도 포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한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에도 열세살 아이들이, 열다섯 아이들이, 열일곱살 아이들이 저마다의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연습생의 하루하루를, 지망생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아이돌산업은 성장하고 있으며 음반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자본은 대중의 사랑을 받던 제법 성공한 스타들의 연속된 죽음에도 반성은 커녕 더 많은 가치창출에 골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성장해온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돌 산업의 아동착취에, 부당노동행위에, 성상품화에 눈을 돌리고 그들의 성공과 환호만을 즐기는 대중들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큰 공범일지 모른다.


 당신과 내가 이번에도 침묵하면, 죽음은 켜켜이 또 다시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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